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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면 살리라
    2002-04-13 17:27:21   read : 2966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 16 : 24 - 28 // 2002.03.31

    우리의 죄, 우리 죄의 결과인 죽음, 그리고 우리 죄의식의 가장 현저한 특징인 수치감과 두려움, 이 모든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모두 해결, 처분, 종결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속죄제물만 아니라 속건제물이요 나아가 화목제물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벧전 1:3). 우리 죄가 없어지고 죄의 대가를 지불 완료했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 수치심 없이 하나님 앞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적극적인 화평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쉽게 설명합니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18-24).

    사랑하는 여러분,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가 아무래도 조금 부족한 듯이 생각하는 생각을 뿌리 뽑아버리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어떤 경건이 있어야 어엿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도 치우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와 의로운 아벨의 피를 어찌 비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벨의 핏소리도 들으셨는데 하물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어찌 우리 죄와 수치를 다 씻고 양심으로 떳떳하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히 9:11-14). 옛날도 지금도 독생자의 보혈과 그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의 사역을 깎아서 해석하려는 생각들이 있어 왔습니다. 얄팍한 인간의 자존심이 끼어들어서 늘 그렇게 주장하도록 만들었고 그런 생각에 동조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우리가 죄씻음 받고 하나님과 풍부한 화평을 누리는 것은 예수의 피, 오직 예수의 피만으로 만족하고 만족한 것입니다. 이러한 담대함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찬 184장).

    우리는 예수의 피를 가지고 참 지성소인 하늘 보좌로 나아갑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고 예수의 피로 거룩하게 되고 예수의 피로 부활하고 예수의 피로 천국에 들어가고 예수의 피로 영생할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 그것이 우리가 신뢰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수건을 덮어쓰고 짐짓 겸손한 체, 경건한 체 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지적합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2-18).

    바리새인이나 천주교인들은 믿음 위에다 자꾸만 무엇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킨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수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부활절 아침에 그런 수건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마치 신랑이 신부의 면사포를 벗겨주듯이 그 수건을 벗겨 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행하신 일, 우리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받으신 수난 때문에 우리가 뒤집어 써야 할 것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빈손들고 나가서 십자가만 붙들면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율법이나 도덕률 지킨 것을 붙들면 주님의 은혜를 부족한 것처럼 여기는 불신앙에 떨어집니다. 아무 섞인 것 없이 오직 주님 주신 은혜로만 자랑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어린아이가 되세요. 마음을 가난하게 하세요. 그러면 예수 안에서 천국을 소유합니다. 복을 받고 행복해집니다.

    그 다음 오늘 부활절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어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막 8:34에도 약간 뉘앙스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의 말씀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또 눅 9:24에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했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위하여 신앙위하여 또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죽으면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너무 쉽게 회자된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도 모르고 감상적이 되어서 도마처럼 우리도 주를 위해 죽으러 가자는 식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습니까?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은 본능입니다. 인간의 제일 욕구는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위해서 죽은 것하고 나하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당일에 내가 소유했던 것, 사랑했던 것과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다 잃어버리고 다 빼앗겨 버립니다.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모두 산 자의 것이요 산 자를 위한 것이요 산 자가 누릴 것이지. 죽은 자 빼앗긴 자 잃어버린 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죽자 사랑을 위해서 희생하자"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감상이요 문학이지, 실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려고 하는 인간에게 "죽자 무엇을 위해 죽자"는 것은 속이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죽고나면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자꾸 죽으라고 그래 샀습니까? 사랑을 위해 죽어도 죽고 나면 사랑할 수 없지 않습니까?" 유대나라처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그렇게 쉽게 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정작 죽으면 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권위를 갖게 된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였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는 말씀대로 죽었더니 더 영광스럽게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부활절은 죽으면 살고 더 영광스럽게 산다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절기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고 더 영광스럽게 사는 진리를 제일 처음 가르쳐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요 그것을 실천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요 10:17-18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계명대로 예수님은 죽으셨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죽으면 산다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이고 법칙이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요 12장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자신의 계명으로 가르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순히 죽으면 산다는 정도가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열매 하나가 죽었지만 그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양적으로 표현된 부활 생명의 질적인 무한한 영광을 가르칩니다. 또 하나 부연한다면 우리가 교회와 전도사랑방을 위하여 또는 복음전도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모험하고 희생하면 우리와 똑같이 귀한 생명이 구원 얻는 것을 보게 된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진리를 부활장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시 해석합니다. 먼저 죽으면 산다는 진리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3-19).

    다음에 부활의 무한한 영광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누가 묻거든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도 있느니라"(35-44).

    사랑하는 여러분, 죽으면 산다는 이 진리 때문에 우리가 때마다 위협을 무릅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활의 진리를 믿기 때문에 날마다 죽는 삶을 즐겁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고전 15:30-31). 그렇다면 오늘 아침 바울 사도의 권면을 기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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