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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찬송을 해야하나
    2002-04-29 11:16:44   read : 260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4월 28일 // <시33:1-5>

    □ 왜 찬송을 해야하나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
    이 충만하도다) <시편 33편 1-5절>

    우리 믿는 성도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생활은, 찬송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노래를 부르지만, 찬송은 세상의 노래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이 육체에 관계된 노래들입니다.
    그 가운데서 사랑에 관한 노래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사랑도 아름다운 사랑 보다는 <가버린 사랑>, <잊혀진 사랑>, <나 혼자만의 사랑> 등등 모두가 건전한 사랑이 아닌 실패한 사랑에 관한 것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은 영혼에 관한 노래들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께 향하여 부르는 노래들이 찬송이란 말입니다.

    1. 그러므로 찬송은 하나님께 향한 감사와 기쁨의 표현입니다.
    사람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사람에게서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춤으로, 눈물로, 노래로 표현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노래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한 감정의 표현이지만, 믿는 사람들의 기쁨은 찬송으로 표현됩니다.
    성경에 나타난대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찬양을 통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윗 왕 때는 성전의 찬양대의 수가 무려 4,000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골방에서 전문적으로 찬양만을 전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반드시 찬송이 포함됩니다.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기쁨은 찬송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아서 그에게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항상 찬송은 부르게 마련입니다.
    또 시편 33:1절에 보면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찬송을 부르지 못한다면 기쁨 없이 사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슴에 와 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기쁨이 있거나, 감사할 내용이 있으면 콧노래라도 부르게 됩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향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찬송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기 위하여 찬송을 얼마나 불렀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찬송이 없이 오늘까지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부터 고쳐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은혜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게 됩니다.

    2. 찬송은 은혜에 대한 표현이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질수록 찬송도 깊어집니다.
    그래서 루터는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는 은혜의 통로는 여러가지입니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도 하고, <기도>로 은혜를 받지만, <찬송>으로 은혜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찬송>은 부르면 부를수록 더 큰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상의 노래는 슬픈 자에게는 더 슬퍼지고, 괴로운 자들에게는 더 괴롭고, 외로운 자에게는 더 외롭지만 찬송은 그렇지 않습니다.
    <찬송>을 부르면 괴로웠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찬송>을 부르면 눈물을 흘리는 환경에서도 신비한 위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하나님과의 마음과 마음의 교류입니다.
    <찬송>은 목소리로 부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마음은 또 다른 마음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지은 작사자들이 모두 은혜 중에 기도하면서 지은 가사들이기 때문에 부르면 부를수록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화니 제이 크로스비(F.J.Croseby)나 죤 뉴톤(J.Newton) 같은 분들입니다. 크로스비는 여자로서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어렸을 때 안약을 잘못 사용하여 앞을 보지못하고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육신의 눈이 감겨졌으나, 영혼의 눈이 밝아져 많은 찬송을 은혜로운 찬송을 작사하였습니다.
    ① 주께로 한 걸음씩 왜가지 않느냐(323장), ②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321장), ③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424장) 등등 많은 은혜로운 찬송을 지었습니다.
    죤 뉴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일찍 독실했던 어머니를 잃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노예선을 타야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코끼리 사냥하듯 강제로 잡아서 노예선에 실어다 파는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그가 회개하기 전까지 세상에서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한 후에 얼마나 많은 은혜로운 찬송을 지었는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찬송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405장)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찬송들입니까!

    3. 찬송은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예물입니다.
    시편 100: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즉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찬송은 제물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69:30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황소 한 마리를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 찬송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찬송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찬송>은 곧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예물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감동적인 찬송은 마음의 전부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목소리 좋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특별히 바리톤 소리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늘 부러워했습니다.
    한번 청중들 앞에서 감동적인 찬송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조용남 형제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들 형제가 모두 타고난 음성의 소유자들입니다. 저는 동생의 노래를 더욱 좋아했습니다.
    형 조용남씨도 여의도에서 빌리그래함 집회 때 인연으로 미국에 신학을 했습니다. 신학을 하고서도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만일 그가 목사가 되어 찬송 부흥회를 인도했으면 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껏 TV에 나와 얼마를 받는지는 몰라도 그것보다는 더 많은 값 있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도 나이 많아지니 얼마나 더 그의 앞날이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알기에는 가정도 그렇게 행복한것 같지는 않습니다.
    뉴톤 같이 늦게나마 은혜로운 찬송을 부를지는 모르지만, 늙으면 목소리도 쇠해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나는 그의 열창에 반했던 팬이었기 때문입니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찬송으로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복된 삶이겠습니까! <찬송>을 왜 불러야 하는가?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표현이 찬송으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소리 좋을 때 찬송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찬양대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처럼 더 영광스러움도 없을 것입니다. 저 자리가 보통의 자리가 아닙니다.
    천군천사들도 부러워할 자리입니다.
    성가도 곡조가 붙었으니, 물론 기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향한 속죄의 감격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찬송은 바로 그런 찬송입니다.
    제가 목회 생활 중 잊지 못할 일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성악가가 예배에 참석했다는 쪽지가 강대로 올라왔습니다.
    메모 내용인즉 예배 중 성경봉독 후 성가대 찬양 전에 부르게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예배순서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인데, 어떤 특정한 사람의 사정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 좋지않아서 헌금순서시에 하도록 보류시켰고, 헌금시간이 되어 소개를 했더니, 갔다는 것입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자기의 유명세를 몰라보고 자기를 내세워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기분 나쁘다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부르는 찬송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찬송은 음악회에서 부르는 노래와는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깨닫고 속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영혼의 기도 내지 영혼의 헌신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을 왜 불러야 하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를 다른 것으로 표현하기 보다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이 제일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찬송이 입 속에서 터져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도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터져 나올 날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도 부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찬송>을 반복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안 나오면 먼저 <찬송>을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자연히 기도로 연결되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찬송>을 불러야 우리의 영혼의 밭이 매말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찬송을 기쁘게 부를 수 있기 바랍니다.

    시편에 보면 손뼉을 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을 치며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손뼉을 치며 율동을 하면서 부릅니다.
    장로교회 교인들은 아직도 이것이 잘 훈련이 되지 못하고 있어 처음에는 그것이 잘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여 따라 하면 자신에게 은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어린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어린아이들 같이 자기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찬송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장로교회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영국은 기독교가 국교이었기에 왕과 내각 대신들이 함께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전통으로 점잖게만 불렀습니다. 물론 정중하게 드리는 경우에는 그렇게도 드려야 하겠지만,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손뼉을 칠 때는 같이 마음을 합쳐야 합니다. 마음 문을 열면 자연히 손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이런 면에서 좀 달라야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찬송의 은혜를 받아 우리의 가정도 변화되고, 사회생활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것은 찬송 뿐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상의 교회에서부터 준비를 잘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도 적응이 잘 될 것입니다.
    찬송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감사가 더욱 더 넘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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