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 2002-03-25 16:00:28 read : 282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창 6:5-22) // 03/17
설교개요
A.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1. 은혜, 은총
2. 본문 배경 설명(창 6:5∼8)
B.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
1.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 의인, 완전한 자(창 6:9a)
2.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 하나님과 동행(창 6:9b∼12)
3.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순종(창 6:13∼22)
C.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성도가 되자
A.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1. 은혜, 은총
세상에는 은혜를 알고 사는 사람도 있고,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과 죄악에 빠집니다. 그런데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일을 하더라도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직장인은 사무실에서 혹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또한 은혜를 아는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아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 은혜를 맛본 사람,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며 한평생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그런데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지겹습니다.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은혜, 선생님의 은혜,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은혜로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국에서 비교종교학 회의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 즉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을 토의하는 회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즉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독교의 독특성은 부활사상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참석했던 C. S. 루이스(C. S. Lewis ; 1898∼1963) 교수는 기독교의 독특성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는 “하늘은 필요할 때마다 은혜를 베푼다. 이것을 신속히 포착하는 사람은 운명을 개척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은혜를 깨닫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선택받고 축복받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축복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그렇게 교만합니까? “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에 된 것이다.” 하고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남이 하지 못하는 큰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2. 본문 배경 설명(창 6:5∼8)
본문 창세기 6장 5∼22절 말씀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입니다. 노아는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모든 짐승과 식물, 천하 만물을 만드신 후 제일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만큼은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인 뱀이 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그 말에 속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그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 형제도 서로 싸우다가, 결국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살인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세상에는 죄악이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죄가 아들의 죄가 되고, 후손의 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죄가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강도, 살인, 약탈, 강간이 온 땅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물로 심판하셔서 사람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판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심판과 역사적인 심판입니다. 개인도 죄를 많이 짓고 악하고 강포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만, 시대도 악하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에는 물로 심판을 받고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어떻게 심판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노아는 세상과 달리 의인이며 완전한 자요(창 6:9),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히 11:7)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사랑하셔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노아는 480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나이 600세가 되어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온 가족과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씩, 정결한 짐승의 암수 일곱씩을 방주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자 땅에서도 물이 솟아오르고 하늘에서도 물이 떨어졌습니다. 40일 동안 밤낮 비가 내려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
노아는 377일, 1년 이상을 방주에서 지내다가, 하나님께서 물이 완전히 마르게 하시자 아라랏 산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짓고 악하게 살 때, 언제 어떻게 개인적인 심판과 역사적인 심판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폭탄 테러나 사고가 생길지 모릅니다. 앞으로 원자 폭탄을 사용한다면 지구는 언제 어떻게 멸망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의롭게 살고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구원하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날의 구원의 방주는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B.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
1.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 의인, 완전한 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창 6:9a)
‘노아’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고 살아야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위로를 받고, 또 누구를 위로해야 합니까?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잘못되고 그릇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행위에 전혀 잘못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7절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노아는 ‘당세의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욕심과 탐심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1편 6절에는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은 결국 멸망을 당합니다.
이사야 26장 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정직한 사람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을 번창케 하십니다(시 37:25, 33).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잠 15:29). 성령을 충만히 채워 주시고 하늘나라까지 인도해 주십니다(행 10:22∼44).
반면 악인은 마지막에 가서 멸망을 당합니다(시 1:6). 자손이 끊어집니다(시 37:38). 평강이 없습니다(사 57:21). 형벌을 받고(마 25:46), 마지막에는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6:9∼10).
영국의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 1834∼1892) 목사님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불의한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 위험할 때나, 좋을 때나, 박해 때나, 어린 시절과 성년기와 노년기에도 의인은 언제나 행복을 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의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요즘 『CEO 정상의 법칙』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남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 존경받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생관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정상의 법칙’은 바로 ‘정직’입니다.
오늘날은 투명성의 시대입니다. 정직을 버린 사람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남을 속이고 부정 부패하면 결국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회사도, 정치가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한국의 역사 가운데도 정직하지 못해서 손가락질당하고 지탄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직하기 때문에 존경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926년 ‘유한양행(주)’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는 정직한 기업 경영으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도 부정한 것이라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한양행측은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링크제를 만들어 팔았다면 큰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선생님은 드링크 제품은 국민 건강을 해치는 것이므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분의 유지를 받들고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청교도적인 기업 이념은 오늘까지 이어져서, 2001년 유한양행의 김선진 대표이사는 한국의 100대 CEO에 선정되었습니다. 유한양행은 매출액이 2천2백억 원, 매출 총 이익 1천2백억 원의 우량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유리’를 창업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최태섭 장로님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요, 충실한 사업가셨습니다. 그는 신앙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으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신앙 철칙은 “예배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사를 통해 번 돈을 봉사하는 일에 썼습니다. 적어도 기업 이윤의 20%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있는 기업가들, 정치가들은 존경받는 삶을 삽니다. 훌륭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후손들이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2.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 하나님과 동행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 6:9b∼12)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어디로 가든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찬송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늘 노아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던 때였습니다. 여기에서 ‘강포가 충만했다’는 것은 폭력이 난무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폭력이 얼마나 많습니까? 테러 사건도 폭력이요, 강도 사건도 폭력입니다.
이렇게 불법과 비리를 행하는 죄악이 많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죄악에 빠졌다 할지라도 의롭게 살면,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하셨듯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창세기 5장 24절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3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통’하다는 것은 ‘성공’과 ‘번창’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병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흥하는 역사, 번창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 9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전쟁에 나가서도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존귀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창 26:24). 형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창 39:2∼3). 명성이 온 땅에 퍼지게 하십니다(수 6:27). 강성하고 번창하게 하십니다(삼하 5:10). 평강을 주시고(대상 22:18), 창대케 하시고(대하 1:1),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사 41:10). 위험 가운데서 보호하시며(사 43:2), 결국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 모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고난과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늘 그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는 떠나고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누구와 동행하느냐,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술꾼과 함께 하면 자기도 술꾼이 됩니다. 도박꾼, 노름꾼과 함께 하면 자기도 도박꾼, 노름꾼이 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과 함께 하기만 해도 담배 연기가 폐 속에 들어가 폐암에 걸리게 됩니다.
반면 행복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낙제생과 함께 하면 자기도 낙제생이 됩니다. 불량학생과 함께 하면 자기도 불량학생이 됩니다. 그러나 우등생과 함께 하면 자기도 우등생이 되고, 모범생과 함께 하면 자기도 모범생이 되는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과 함께 하면 교회에 나오고, 기도원에 가는 사람과 함께 하면 기도원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절에 다니는 사람과 함께 하면 절에 나가게 되고, 무당이나 점쟁이와 함께 하면 자기도 그렇게 됩니다.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남편과 함께 하면 팔자가 달라집니다. 남자도 아내를 잘 만나야 합니다. 착한 아내와 함께 해야지, 사나운 아내와 함께 하면 바가지만 긁으니까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자신의 삶도 좋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동행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요, 행복이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 1821∼1881)는 한때 주정뱅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을 써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성경과 함께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역사에 길이 남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와 같이 존경받는 인물도 될 수도 있습니다. 링컨과 같은 훌륭한 정치가도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이드포스드>의 설립자이자 발행인이었던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 1898∼1993) 박사는 『적극적 사고의 힘』이라는 책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삶에서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젊었을 때부터 항상 가슴에 쪽지 한 장을 품고 다녔습니다. 기분이 나쁘거나 울적할 때, 마음이 답답할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는 그 쪽지를 꺼내서 읽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이런 믿음, 이런 생각, 이런 자심감, 이런 확신만 가지면, 여러분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저하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18세 생일을 맞아 드디어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자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는가?”
“공부는 많이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비누와 양초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 그 일을 계속 열심히 하게.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네. 하나님 아버지를 자네 사업의 동업자로 모시게. 그리고 수입의 10분의 1을 동업자이신 하나님께 드리게.”
청년은 그 조건을 지키기로 노인과 약속하고, 그 후로 ‘하나님이 우리의 동업자시다’라는 사훈을 걸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비누와 치약 등을 만들어 미국에서 존경받는 사업가로 성공하고, 콜게이트대학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대학까지 세웠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 ; 1783∼1957)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나 홀로 인생을 살지 마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나 형제나 친척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더욱 차원을 높여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를 바랍니다.
은혜와진리교회 편모 성도(여)의 간증입니다. 어느 가을, 가슴 한쪽에 멍울이 잡혀서 진단을 받았더니 유방암 3기였습니다.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퍼져서 하루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나이도 30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두 딸을 두고 죽을 생각을 하니 하늘이 꺼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의사의 말대로 서둘러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암이 재발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암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서 수술도 할 수 없었습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가족들을 불러,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게 해 주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편 씨는 살든 죽든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특히 그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반복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위로하시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하던 사람이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암세포가 다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의지했더니 암이 다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도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순종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13∼22)
종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역사적인 종말입니다. 그래서 강포가 가득하고 죄가 가득하면, 개인도 병들어 죽고, 회사도 망하고, 나라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뿐만 아니라, 심판자 하나님에 대해서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내 인생 나 혼자 살겠다고 하고,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우리 곁에는 조상도 있고, 부모도 있고, 선생님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며 언젠가는 심판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노아는 480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방주’는 상자나 배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잣나무, 즉 삼나무로 배를 만들었습니다. 역청을 발라서 물이 들어오지 않게 했습니다. 길이가 137m, 넓이는 23m, 높이는 14m로, 약 32,800t을 실을 수 있는 거대한 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 모두 8명이 방주에 들어가고, 온 땅의 생물들,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암수 한 쌍씩,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정결한 짐승과 새는 암수 일곱씩 들어가게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비가 오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창 2:5∼6)에 사람들은 노아에게 갖은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사람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완성되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신 사람들만 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7일 후에 땅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습니다. 40일간 밤낮으로 비가 내려 천하가 물에 잠기에 되었습니다.
노아의 배는 무려 1년 이상이나 물위에 떠 있다가 마침내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땅을 마르게 하셔서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사를 가서도, 회사를 시작하면서도 제일 먼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어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후손이 온 지면에 번창케 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는 자손이 번창케 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26장 3∼6절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하시고 번창케 하시고 함께 하시지만,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과 탐욕에 빠지면 축복을 손길을 거두시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랬듯이 대적에게 패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창 22:18).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소산의 축복을 주시고(레 26:3∼5), 번성하며 창대케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레 26:3, 9). 그리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케 되는 큰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대상 28:7).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저주를 받습니다(레 26:14∼16). 번성치 못합니다(신 28:62). 빨리 죽습니다(왕상 20:36). 재앙이 임함니다(렘 44:10∼11).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살후 1:8∼9).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히 4:6).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순종이요, 둘째도 순종이요, 셋째도 순종입니다.
영국의 시인 밀턴(John Milton ; 1608∼1674)은 “순종은 축복의 언약이 지속되는 조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해서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하셔서 그 사람을 성공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여 주십니다.
기독교는 의식(儀式)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지식(知識)의 종교도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順從)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되면 자꾸 티격태격 싸우고 다툽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자기가 옳다고, 자기가 잘났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가정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성경(벧전 3:1)에 기록된 대로 아내가 남편한테 순종하면 가정이 평안해집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한테 순종하지 않으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정도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에 질서를 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왜 파괴됩니까? 왜 이혼합니까? 역시 순종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한테 순종하는 것을 배우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가정에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순종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런데 점점 자라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 말씀을 안 듣습니다. 딸은 어머니 말을 안 듣고, 아들은 아버지 말을 안 들어서 갈등이 생기고 가정이 불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철이 들면서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다시 올바른 관계가 됩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이 사춘기였을 때 좀 힘들다가 철이 들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순종이 중요합니다. 상사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진급을 잘합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불순종에 빠져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이게 되는 장소는 감옥입니다. 법을 안 지키고 제멋대로, 정욕대로, 싸우고 다투고 거짓말하고 탐욕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순종을 잘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순종하고, 사회에 나가서 윗사람들에게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교에 가고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을 잘하는 성도가 믿음이 좋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 1623∼1662)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지혜도 있고 행복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 1813∼1855)는 “순종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가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어렵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순종하지 않으니까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말하기를 “백 번 설교를 듣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순종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10년, 20년 설교를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 교회에 나와서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면, 오래 다녔던 사람보다 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문제는 순종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순종해서 특별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성도가 되자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노아는 의인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천교회 강모 성도(여)의 간증입니다. 강 씨의 어머니는 절을 짓고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절 밥을 먹고 불상을 눈에 익히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 식구들은 그에게 교회를 나가라고 했지만, 그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시집 식구들을 멸시하고 핍박했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잘되니까 친구들과 사치스러운 모임도 만들고 호화롭게 치장도 하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부처님이 도우셨다며 불상 앞에서 무릎이 휘어지도록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6년 만에 그렇게 튼튼하던 남편의 회사에 부도가 났습니다. 남편이 친구에게 빌려준 돈 수억이 부도가 나서 사업장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귀여워하던 막내딸이 학교에서 한쪽 눈을 크게 다쳐서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시누이가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변하여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강 씨는 교회에 열심히 나갔습니다.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해서 수요일, 금요일,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교만하고 방탕하고 사치했던 것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강퍅했던 마음도 점점 녹아졌습니다. 자꾸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딸의 눈이 나아 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사업을 다시 시작하여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많은 사람들 앞에 간증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아야 행복하게 되고, 은혜를 받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은혜를 깨달아야 하나님 앞에 충성하게 되고, 은혜를 알아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인생 전체,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불행합니다. 한평생 불행과 절망과 외로움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삶이 풍족하게 됩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복을 받고, 또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에 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은혜받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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