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기도합시다. 2002-03-28 22:57:56 read : 251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본문 : 시편 57:7-8, 누가복음 18:1-8 방송 듣기
박동선 사건이래 상무대 사건, 옷 로비 사건까지 로비문제로 정치권은 계속 시끄럽습니다. 어떤 재벌회장이 말한대로 로비란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치고 로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을 때 로비를 한 사람이 유익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 아닙니까? 로비란 현관,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교회당도 로비가 넓어야 시원해 보입니다. 거기 넓직한 자유스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 문안도 하고 교제도 나눕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신령한 로비활동입니다. 로비를 잘하면 안되던 것이 되기도 하고 어려운 것이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세상 로비는 물질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자기 이익을 위해 했기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로비는 그런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로비는 잘못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시든지, 더 좋은 것을 주시든지 둘 중에 하나지 안 듣고, 안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했고 누가는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고 했습니다(마 7:11, 눅 11:13).
교회당에 예배당이 있고 로비가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앞에 기도의 향단이 있습니다. 죄인은 바로 보좌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기도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도하면 순수하게 됩니다. 예수 믿으려고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사실 다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믿고 구원받으면 누구나 순수해 집니다. 믿음이 더 깊어지면 더욱더 순수해 집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니 그렇게 순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령의 조명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의지하고 듣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여 참는 것입니다(히 11:27). 우리들, 순수하고 가난한 사람들끼리 찬송을 부릅시다.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고 예배하는 여러분을 순수하게 보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거칠고 어두워집니다. 그렇지만 기도하고 예배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새로워지고 순수해집니다. 우리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지려고 교회당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있을 때 보다 순수해질 때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바로 기도하는 여러분입니다. 기도하자고 할 때 기도하는 여러분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순수한 것이 잘됩니다. 짐승도 순수한 짐승이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식물도 순수한 것이 잘 자라고 유익합니다. 사람도 조금 모자란듯한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사람이 조금 빈데가 있어야 미완성의 아름다움, 기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몰라도 너무 많이 모르기 때문에, 부족해도 너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우리 자신을,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아버지께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아버지, 나는 모릅니다. 나는 도대체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잘 살펴보시고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지원해 주세요." 우리는 기도하는 중에 비로소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한가닥 방향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매달립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당신을 믿으면서 당신의 손길따라 살아 갈래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도로 당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 기도하는 사람들의 체험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은 능력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조바심도 많았고 의심도 많았습니다. 기드온은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너무나 섬세한 심정의 소유자였습니다. 엘리야도 낙심천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하나님께 구했고 많은 문제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극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애에 들어오심으로써 그들의 약함을 극복하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학교는 기도의 학교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전공분야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에게 자주 구하면 비열하게 됩니다. 비겁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사람보다 하나님께 먼저 구하십시오. 하나님께 구하면 존귀와 영광을 얻습니다. 기도는 그렇게도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빚진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받으면 자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즐겁고 기쁩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기도하면 마리아가 되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세벨이 됩니다. 기도하면 다윗이 되고 기도하지 않으면 사울이 됩니다. 우리의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가진 것에 비하면 너무나 작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믿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해 갑니다. 하나님의 바다에 고기가 많은 것을 넉넉하게 믿으시고 기도의 그물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자신의 사랑과 권능을 보여주십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보화입니다. 사람이 보화를 밤낮 가지고 다니며 만지듯이, 간절한 기도는 밤낮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끈질기게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엘리야의 후계자는 엘리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에서 그는 엘리야를 좇은 마지막 한 사람이었습니다.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까지, 땅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열하 2장) 성령님이여 나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결단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도응답의 귀한 보배를 맡기십니다. 기도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이삭은 20년 동안 기도하여 아들을 얻었습니다. 기나긴 기도의 과정을 통하여 그 믿음과 인격을 연단한 다음 하나님은 기도 응답의 귀한 보배를 안겨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대로 내 평생에 기도한대로 이런 응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과정이 없는 학위가 늘 말썽이고 과정이 없는 축복이 늘 문제를 야기하지 않습니까? 속히 얻는 부와 부흥은 소리를 치며 날라가고 무너집니다. 기도하며 인내하는 자가 마침내 복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눅 18장에 등장하는 혼자 사는 여자는 밤낮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부르짖고 싶어집니다. 다니엘서 9장에 보면 다니엘의 기도 삼창이라 불리우는 구절이 나옵니다(19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됨이니이다." 우리 모두 더불어 한 맘으로 부르짖고 기도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에는 찬송하고 기도하는 금찬예배와 기도하고 찬송하는 한밤의 기도회가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George Herbert는 The Temple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개인적인 기도가 담대한 계획이긴 하지만 공적 예배는 더 많은 약속과 사랑을 보장한다. 사랑은 마음에 무게를 더해 주며 눈으로 표적을 보게한다. 우리 모두는 단지 냉정한 고소자들일 뿐이니 가장 따스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예닐곱 사람을 떠나 다수의 무리와 더불어 기도하라. 최선의 기도는 천상에서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날마다 용서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때마다 응답하십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의 줄을 잡고 응답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는 기도를 신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왜? 어떻게? 조금 안다고 자꾸 질문하면 부모님이 대답하시지요. "믿기만 해라. 차차 알게 될꺼야!" 기도는 신학이 아닙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교제입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니요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호흡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영혼들이요, 성도의 삶이 곧 기도입니다. 질병을 의사에게 맡기고 치료받듯이 우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밤낮 기도하고, 큰 소리로 땀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적극적으로 기도할 것을 모색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구경하고, 기도에 대해서 평가만 하지말고 네 자신이 직접 기도해라. 기도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적극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마음에 단단히 작정합니다. 기도하기로 서원합니다. 찬송하고 성경읽고 기도할 것을 결심합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은 마음의 확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일깨우시고 영적이고 고상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새롭게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일 주일에 한 번 하던 것을 매일매일 하도록 해보십시오. 시간이 나면 적당하게 하던 것을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새벽기도를 예로 들어 볼까요? 새벽기도라는 제도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찾아낸 거룩한 습관입니다. 새벽기도라는 율법에 매이지 마십시오. 성공하는 기도의 비결이 찾아낸 방법의 하나로 보시면 됩니다. 새벽기도는 그렇게 어렵고 힘이 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새벽기도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마음에 정하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면 저녁에 일찍 자리에 들어야 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12시 마감뉴스를 보고 잡니다. 늦게 자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동물들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유독 사람만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습니다. 그것은 죄짓고 난 다음부터 생긴 습관입니다. 밤의 문화는 보통 죄의 문화입니다. 간음하는 사람은 해가 지기를 기다립니다. 밤에는 사람이 후안무치가 됩니다. 어른들이 늦게 자니까 청소년들도 늦게 잡니다. 기독교 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초저녁부터 조용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밤은 조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짐승처럼 살아가는 탕자의 문화가 지배하는 나라일수록 밤이 요란스럽습니다.
이를테면 새벽기도의 보화를 "태조 왕건"이나 "여인천하"와 바꾸어서야 되겠습니까?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기가 무섭게 주무시게 되면 생활이 단순하게 됩니다. 밤의 갈등, 고민과 유혹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하면 가장 신선하고 집중이 잘 되는 두세 시간을 얻게 됩니다. 시편기자들은 대부분 새벽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시 110:3에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로 나온다"고 했고, 46:5에는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고 했고, 119:47에는 "내가 새벽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깨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서로 깨워주며 손을 잡고 교회로 나오는 부부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교인보고 주일성수해라, 십일조해라, 봉사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성도는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새벽에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황금의 시각에 드리는 중보의 기도가 가정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기도의 로비를 통해 소돔성의 롯을 구원해 내었습니다. 야곱은 기도의 로비를 통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의 로비를 통해 베드로를 옥중에서 이끌어 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순수무구한 기도의 로비를 통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세계가 엄청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나라가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적극적인 기도를 통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렘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