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시는 주님 2002-04-01 15:28:44 read : 287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복음 21:1-17) // 2002년 3월 31일
제가 이번에 다시 다녀온 스위스 중부, 쌍트 니클라우젠의 깊은 산꼴짜기에는 막 개나리가 피고, 나무 가지마다 잎이 움터 나오고, 새들이 노래하고 있어 봄인가 했더니, 밤새 눈이 내려 온 산이 온통 하얗게 덮인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니 봄꽃들이 만발한 완연한 봄인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올해도 우리는 새 봄과 함께 부활절을 다시 맞았습니다. 봄은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만물이 새롭게 소생하는 계절,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축복된 이 날, 부활주일에 주님께 예배드리러 나온 여러분에게 위로부터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주심으로써, 어둠이 물러가고, 새 희망의 꽃이 만발하게 되길 바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디베랴(갈릴리) 바다로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까요?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 잡으러 디베랴 바다로 간 제자들은 모두 전에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던 어부였습니다.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걸 버린 그들이었는데 이제는 물고기를 잡아 생활을 영위(營爲)하려고 다시 바다로 간 것입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3절)고 한 베드로의 말에는 진한 슬픔과 실망이 배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분명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음을 보았고, 또 열한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하셨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만남>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만남(encounter/Begegnung)이 없는 사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피상적인 만남은 만남이 아닙니다. 특히, "나는 매일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가?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소리를 매일 듣는가?" 생각해 봅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매일 밤 꾸는 꿈, 혹은 비전을 통해 위대한 분(Great Man)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너무 바빠서, 혹은 여유를 가지지 못해서, 아니면 너무 교만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만남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 즉 기도 생활을 통해 가능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셔서 지금 함께 계심을 느끼십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날마다 생명수를 공급해 주시는 부활의 주님과 <만남>으로써 늘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2.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그들.
고기 잡으러 갔던 베드로 일행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져보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인의 열매 없는 삶,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의 모습을 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의 말입니다. "인간은 무의미(無意味)한 삶을 견디지 못한다."
저는 이번에 융이 생전에 살았던 집을 방문했던 일입니다. 취리히 근교 퀴스하나트에 있는 그의 집에 그의 손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취리히 호숫가의 아주 오래되고 큰 저택이었습니다. 융의 손자인 안드레아스 융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쓰던 집 거실과 서재(書齋)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특히 영국 BBC에서 만든 라는 필름을 찍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거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환담(歡談)을 나누었고 사진도 몇 장 찍었습니다. 평소 책에서만 보던 것을 이번에 직접 보니 좋았습니다. 융의 집 주변에는 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취리히가 선정됐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 이면(裏面))에는 마약중독자들이 들끓는 곳임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것은 그 속에 '절망과 무의미, 그리고 공허감'이 깊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에 만족이나 보람이 없이 사는 이들이 오늘날 많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힘들게 일하지만 열매가 없을 때 삶이 더욱 고달프고 힘들게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27:2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본문에 나오는 디베랴 바닷가에 가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 일행의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허공을 치는 것 같은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땀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잠 잘 시간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어야 할 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너무 무리하여 일한다가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서지기 쉬운 인간으로 만드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빚으셨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몇 가지 가장 기본적인 신자의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중 주일을 바로 지키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주일은 성별(聖別)된 날입니다. 성전(聖殿)에 나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음으로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받는 귀하고 복된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고 주일까지 일을 한다거나 행락(行樂)을 위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17일 주일에 프랑크푸르트 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권사님 내외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오후 2시 예배를 드리러 나온 걸 보았습니다. 설교 시간에 칭찬을 해 드렸습니다. 이민생활에서 쉽지 않은데 식당 문을 닫고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는데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가슴에 모시지 못한 것을 뜻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 중심(中心)에 주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의 삶은 허공을 치는 것 같은 것입니다.
찬송 155장 "주님께 영광" 3절 중에 "주님 없는 삶은 헛될 뿐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참 좋습니다. 과연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인지 살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이 내 삶에서 가장 귀한 분인가?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가? 즉, 내주(內住)하시는가? 나에겐 진정 주님이 편하게 거하실 처소가 마련되어 있는가? 나에겐 주님이 머무르실 만한 자리가 예비 되어 있는가?"
3.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떤 분이,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이 물으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것은 "너희에게 참다운 삶의 만족과 기쁨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주님의 물음에 이제 그들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분이 그들을 찾아가신 것은 날이 새어 갈 즈음이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아보려 무척 애를 썼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하자, 그들은 정말 피곤했습니다. 실망하고 낙담하여 한숨을 몰아쉬며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분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고, 그로 인해 고기를 많이 잡았던 것이다. 성경은 "[그분의 말씀대로 했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더라"(6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에서부터 갈릴리까지 약 96km(240리)나 되는 거리이지만,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미리 아시고 그들을 찾아가신 겁니다. 그분은, 돈은 많이 모았지만, 삶의 만족이 없던 삭개오에게 찾아가셔서 구원을 선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공허한 마음을 달릴 길 없던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찾아가셔서 생수(生水)를 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다른 누가 아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오, 나의 주여, 부활의 주님이시여, 부족한 나에게도 오시옵소서!"
4. 주님이 찾아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①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명(命)하셨습니다.
6절에 보면, "그물을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왜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을까요?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오른편은 왼편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왼편이 무의식적 측면, 즉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뜻한다면, 오른쪽은 현실세계, 의식적인 측면을 뜻한다. 곧 "이제 네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정신을 차리고 굳게 서라. 더 이상 절망감에 시달리지 말고, 이리저리 낭패감으로 흔들리지 말고, 이제 삶의 원칙을 세우고 꿋꿋하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자신들의 삶의 지주(支柱)였고, 희망이었고, 전부였던 그분을 잃었다고 생각되어 낙망하며 생존을 위해 고기잡이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확고하게 현실을 바로 직시(直視)하고,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하니, 고기를 많이 잡았고, 이어 그분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영영 주님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주님이 자기네를 떠나버리신 줄 알았는데, 주님이 찾아오셔서 거기 계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집안의 지주였던 가장(家長)이 갑자기 돌아갔다고 합시다. 그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절망과 비애감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야말로 더욱 정신을 차리고 굳게 서서 나아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고전 16:13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했고, 고전 15:18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또, 골로새 1:23에는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굳게 살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②지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9-10절)
요한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이들아 내게로 오라" 하십니다.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생명수를 마시라" 하십니다. "돈 없는 자도 와서 포도주와 젖을 먹으라" 하십니다. 주님은 빈들에서 지친 자들을 먹이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배고픈 자들, 굶주린 자들을 오라 하시고, 풍성히 먹여 주십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 지친 제자들을 위해 친히 생선을 구우시고 떡으로 아침을 준비해 주셨던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아무 자격이 없는 저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친히 찾아오셔서 환대해 주심을 기억합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그들을 진정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던지신 질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다른 말로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저에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를 늘 생각하고, 그를 언제 어디서나 세심(細心)하게 돌볼 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삽시다. "정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은 묻고 계십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④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사명(使命; mission)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귀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확신이 들 때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해선 힘만 들고 보람도 없고, 기쁨도 없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치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 하나 마리 잡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정성을 다해 내가 네게 맡긴이들―네 가족, 네 이웃, 속회 식구들, 맡은 학생들―을 돌보아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네가 서있는 바로 그곳에 임하도록 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진정 사랑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교회(사람들, 일)를 맡기시고, 날마다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늘 도와 주심을 믿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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