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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2002-03-04 12:31:39   read : 283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4:6-13) // 2002. 2. 24. 주일 낮말씀



    15일 전, 경부 고속 도로 천안 구간에서 술에 만취한 트레일러 운전 기사 분이 중앙 분리대를 뚫고 넘어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고속버스를 쳤습니다. 그래서 열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나고 열 여덟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 트레일러 운전 기사 분이 맑은 정신으로 자기 길을 잘 달려갔으면 자기도 무사하고 고속버스의 모든 분들도 무사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길의 한계를 벗어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길을 올곧게 가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잘 감당하면, 남편의 가야 할 길을 올곧게 가면 그 부모가 흐뭇하고 그 아내가 살맛나고 그 아이들도 건전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남편이 마약이나 하고 도박이나 하고 밤새껏 술이나 마시고 새벽에 집으로 들어오면 그 집안 사람 모두가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주부가 주부의 길을 잘 가면 집안이 편안하고 3대가 복을 누립니다. 아이들도 신바람 나게, 기쁘게 공부합니다. 하지만 가정 주부가 주부의 한계를 넘어 댄스홀에 가서 아무하고 춤이나 추고 다니면 시부모가 가슴을 치고 친정 부모가 땅을 치고 남편이 초라하게 되고 아이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길을 바로 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학생이 학생의 길을 잘 가면 부모도 기쁘고 사회도 밝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학생의 길을 가지 않고 한계를 벗어나면 학교의 걱정거리, 집안의 걱정거리, 사회의 그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가야 할 곳에 가지 않으면 가서는 안 될 곳에 가게 됩니다. 학생이 아침에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가지 않으면 학생이 가서는 안 될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카락 특히 여자의 머리카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카락도 머리에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만일 머리카락이 볼에도 다섯 개쯤 붙어 있고 입술에도 열 개쯤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20cm 되는 머리카락이 입술에서 철렁이면 그 여자의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제가 서울의 한 교회에서 집회할 때의 일입니다. 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뚜껑을 여니 컵에 20cm 가량의 머리카락이 척 걸려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자기 한계를 벗어나 물 컵에 척 걸려 있으니…. 제가 그 물을 어떻게 마시겠습니까? 제가 그 머리카락을 들고서 “여러분, 이것을 좀 보십시오.”라고 했다면 얼마나 나쁜 목사이겠습니까? 그 물을 준비한 권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조용히 처리하고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아름답지만, 한계를 벗어나면 추합니다.
    아내도 아내의 자리를 벗어나면 추하고, 남편도 남편의 한계를 벗어나면 추합니다. 자동차도 자기의 길을 벗어나면 낭패를 당합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항로를 벗어나면 불행을 당합니다. 우리 여객기가 항로를 벗어나 러시아 쪽으로 가다가 불행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출렁이는 바다에도 경계선이 있습니다. 배는 해로를 따라가야 하고, 경계선을 지켜야 합니다. 해로를 벗어나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게 됩니다.
    전에 북한의 스파이 잠수함이 우리 남한을 탐지하려고 이리저리 마구 다니다가 꽁치 그물에 걸려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길로 가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서 자기 위치와 분수를 지켜야 되지만, 특별히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비행기는 항로를, 배는 해로를, 기차는 레일을 따라가야 되듯이, 우리는 기록된 말씀의 한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 자신도 무사하고 복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말씀의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볼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면 사고를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볼로와 함께 너희에게 본을 보이지 않았느냐?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가 한계를 벗어나 말씀 밖으로 나가서 서로 당을 지어 대적하며 자랑하고 교만을 떠드느냐?” 라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말씀의 한계는 은혜를 받을수록, 축복을 받을수록 더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받을수록, 은혜를 받을수록, 복을 받을수록 더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볼로 파, 베드로 파, 바울 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그룹도 많았습니다. 패거리를 만들어서 서로 자기 파, 자기 패거리 사람들을 자랑하고, 자기 지도자가 더 훌륭하다고 자랑하고, 자기들이 더 강하다고 자랑하면서 상대방을 낮추었습니다.
    그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집입니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인데, 서로 자기 파들이 잘나고 강하다고 하니,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마귀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왜 기록된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느냐?”하고 강하게 질책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연한이 깊어질수록,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축복을 많이 받을수록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고린도 교회에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여러분과 저, 이 지구촌에 있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받아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은 점점 겸손해져야 합니다. 처음 등록했을 때보다, 초신자 때보다 집사님이 되면 더 겸손하고, 안수 집사님이 되고 권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되면 평신도 때보다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잘못되면 평신도 때는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하다가, 집사님이 되면 60도로 숙여 인사하다가, 안수 집사님이나 권사님이 되면 10도만 까딱하다가 장로님이 되면 인사할 때 뒤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뒤로 넘어가면 자빠져 망하게 됩니다.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망하는 사람, 패망하는 사람은 점점 교만해지는 사람입니다.
    아기들은 부드럽습니다. 살도 뼈도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장수합니다.
    노인들은 뻣뻣합니다. 그러니 곧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왜 파멸의 길로 가는지, 왜 난 체하고 우쭐대다가 망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양곡의 우리 성도들은 모두 겸손의 챔피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 구약에 기록된 말씀과 신약에 기록된 말씀 중에 “교만한 자는 복이 있나니, 거만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오만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잘 난 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한 곳에도 없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또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말씀이나 신약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온유하고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고 세워 주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할렐루야!
    우리는 누구를 만나도 겸손해야 하는데, 겸손한 사람의 자세가 무엇입니까?
    누구를 만나도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낫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높여 주는 것이 겸손입니다.
    제가 이번에 묵었던 호텔의 식당은 얼마나 게으른지, 아침 9시에 문을 열어서 아침 식사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공하는 호텔의 식당은 아침 6시에 문을 엽니다. 그리고 로비에서든 엘리베이터에서든 손님을 만나면 직원들이 정중하게 인사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도 손님이 먼저 내린 후에 직원들이 내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묵었던 호텔의 직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내릴 때도 자기들이 먼저 타고 먼저 내렸습니다. 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도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 되는 식당도 이유가 있고, 안 되는 호텔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호텔 직원들이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제가 먼저 인사했습니다. 복도에서 만나도 본 체 만 체하는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도 제가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묵는 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제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도 “예.”라고만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만날 때마다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 주면 제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그 방에서 나올 때 편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자매님과 자매님 가정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양곡교회 목사 지용수’
    이렇게 쓴 편지와 만 원짜리 지폐를 베개 밑에 두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를 높이는 것이 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한계를 따라 사는 자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내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내가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우산을 써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서나 겸손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예뻐하시고 세워 주시고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일 겸손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시대 겸손의 챔피언은 모세였습니다.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구약의 대표 지도자로 높이 세워 주셨습니다.
    바울은 신약 시대 겸손의 최고 대표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죄인 중에 나는 괴수니라』,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는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학자입니다. 당시 최고 지성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신약의 대표 지도자로 세우신 줄로 믿습니다.
    가장 깊은 바다에 물이 가장 많이 출렁입니다. 얕은 바다에는 물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겸손할수록 더 많은 축복과 은혜가 출렁이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 바울이 없어도, 아볼로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하나님을 잘 믿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들을 풍자적으로 비꼰 말입니다. ‘너희가 영적으로 배부르고 은사가 넘쳐 우리 없이도 너희가 왕 노릇을 하는구나. 그래, 잘 해 봐라.’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왕 노릇 하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의 마음, 우리의 긍지이어야 하고, 우리의 모습에서는 겸손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왕 노릇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 천국에서 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 왕의 왕이시지만 다른 사람을 높이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여자에게 침을 뱉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의 이웃이 실수해도 “더러운 사람!”하고 침 뱉으면 안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침 뱉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수한 사람에게 침을 뱉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게 침을 뱉지 않습니다. 아내가 실수해도, 남편이 실수해도, 이웃이 실수해도 용서하고 새 출발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자기도 용서받습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이웃을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것은 조건입니다. 내가 내 아내, 내 남편, 내 이웃의 허물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 용서 없이 살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용서 없이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사람에게도 침 뱉으면 안 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자에게 돌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예수님께서도 돌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범죄치 말라.”
    말씀의 한계는 남편이, 아내가, 이웃이 아무리 못할 일을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침 뱉지 않고, 그를 존경하며 새롭게 나아가도록 도와 주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 저런 인간이 다 있나?”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귀히 여기십니다.
    모든 사람을 겸손히 대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축복을 많이 받아서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든든하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들이 지혜롭고 잘나서 누리는 줄로 알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부모는 답답합니다. 제자가 선생님께 감사할 줄 모르면 선생님은 가슴을 치게 됩니다.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보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것 좀 주워라.”
    “교장 선생님이 주우세요. 왜 우리보고 주우라고 하세요?”
    교장 선생님이 가슴을 쳤답니다.
    이것이 오늘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가슴 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주실 것을 다 주셨는데, 영육간에 은사를 다 주셨는데, 방탕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보배 피로 씻어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방언을 주시고 예언의 능을 주시고 영적으로 부유하게 해 주시고, 또 세상의 것도 다 채워 주시고, 이제 것과 미래 것까지 다 주셨는데,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받아 놓고도 받은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받지 않은 것처럼 뻔뻔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너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기에 받지 않은 것처럼 하느냐? 왜 감사가 없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약에나 신약에나 ‘감사하라’는 말씀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합니다.
    특별히 시편 136편 1절에서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 위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씀이 26절까지 매 절마다 계속됩니다. 할렐루야!
    우리 성도의 한계는 잘 되어도 감사하고 안 되어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 되어도 감사하고 안 되어도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한계입니다.
    잘 되어도 감사하고 안 되어도 감사하고 순종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이번 대전 집회 때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행복하게 목회하는 그 교회 목사님이 입만 여시면 교인들을 자랑하셨습니다. 교인들이 이렇게 귀하고, 귀하고, 귀하고…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 교회에 보배가 꽉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식사를 하시다가 목사님이 예쁘장한 한 여자분을 가리키며 “목사님, 저 권사님은 정말 보배입니다….”라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17년을 하루같이 꽃꽂이를 한답니다. 그리고 매주 하루는 장애인 복지 센터에 가서 장애인들을 목욕시켜 준답니다. 자기 아들딸 씻겨 주기도 어려운데, 한 주도 빠짐없이 장애인들을 씻겨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교회 구역장으로서도 귀하게 충성하고 있답니다. 남편이 모 회사 중역으로 귀한 가정의 주부인 권사님이 겸손하게 충성하니 그 모습이 빛이 났습니다.
    수요일에 점심 식사를 할 때도 목사님이 식사 대접하시는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오래 전 그 교회를 지을 무렵 그 가정이 너무 가난하여 셋방에서 살았답니다. 1톤 트럭에 고구마, 감자, 무, 배추 등을 싣고 이 동네 저 동네에 다니면서 “무 왔습니다! 고구마 왔습니다! 감자 왔습니다!”하며 팔았답니다.
    그때도 부인은 믿음이 좋았는데 남편은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고 술꾼이었답니다.
    그런데 부흥회가 있는 날, 아내가 남편을 억지로 교회에 모시고 나왔답니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있을 때이니 강사 목사님이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복을 받는 길입니다.”라는 설교를 하신 후에 그 자리에서 작정 헌금을 하게 하셨답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다 작정을 했지만, 그 권사님은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술꾼이니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날 밤 남편 몰래 목사님을 찾아와서 얼마의 헌금을 드리더랍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헌금함에서 천만 원의 작정 헌금이 나왔답니다. 그 권사님의 남편이 작정한 것이었답니다. 당시 천만 원은 엄청난 돈이었고, 더구나 그 가정의 그 돈은 부자의 2억, 3억 원보다 훨씬 더 큰돈이었답니다.
    목사님은 그분이 술기분으로 작정을 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가정에 심방을 가셨답니다.
    “아니, 어떻게 천만 원이나 작정하셨습니까?”
    “강사 목사님이 교회에 헌금하면 잘 된다고 해서 했습니다.”
    “아, 그러세요?”
    “목사님,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가 사과 밭의 열매를 샀는데, 그것이 잘 되면 천만 원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헌금하면 되지요. 내년에 잘 되면 집을 사고요.”
    그러더니, 사과도 따기 전에 빚을 내어서 천만 원을 헌금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이것 큰일 났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과가 잘못되면 새 신자를 잃게 되고, 그 권사님은 또 얼마나 골탕을 먹겠습니까? 목사님은 부담이 되어서 날마다 사과 밭의 사과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태풍이 불어서 사과가 다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목사님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답니다. 심방 대원들을 데리고 그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태풍에 떨어진 사과를 박스에 넣어서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막 흐르더랍니다. 목사님도 울고 심방대원들도 울었답니다. 복을 받으려고 빚을 내어 헌금을 드렸는데 복은커녕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을 하셨나요? 하나님, 이 집은 어떡하라고….”하며 울고 있는데, 술꾼 아저씨가 “목사님, 울지 마세요 금년만 해입니까? 내년에 잘 되면 되지요.”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른가 봅니다.
    그 다음 해에는 사과가 정말 잘 되었답니다. 그 다음 해에도 잘 되었답니다. 또 다음 해에도 잘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이 집도 사고 부유하게 되었답니다.
    해마다 그 가정에서 여름 성경학교나 수련회 때 수박을 한 트럭씩 사 주어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배를 두드리며 먹고도 남는답니다.
    상황을 보면 불평할 일밖에 없지만 감사하는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답답한 일이 생겨도 감사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이 안 되어도, 속이 상해도 감사하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다툼이 있습니까?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남편이 밉습니까?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아내가 밉습니까? 마귀가 여러분 집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마귀를 쫓는 길은 감사뿐입니다.
    우리 교회의 한 여집사님이 친한 친구의 꾀임에 빠져 일억 원 정도의 돈을 투자했는데,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 여자에게 큰돈을 맡기면 큰일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고 감정적이라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답니다.
    우리 여집사님이 그렇게 큰돈을 날렸는데도 남편인 우리 안수 집사님은 아내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2억을 날리지 않고 그 정도로 날린 것에 감사했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큰돈은 맡기지 않고 생활비만 준답니다. 그 집사님이 지금 회사의 별이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큰일을 저질렀어도 이혼하지 않고 잘 사니 아이들도 잘 자라고, 그 부인 집사님도 ‘내가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이제까지 잘 몰랐구나.’하고 남편을 존경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된 것입니다.
    돈 얼마 때문에 싸우고 뜯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마귀가 좋아하며 그 가정을 집어 삼키게 됩니다. 돈을 잃은 것만 해도 아픈데 가정까지 잃어서 되겠습니까? 이미 잃은 것만 해도 손해가 많은데, 서로 싸우면 더 귀한 것을 잃게 됩니다.
    남편이 실수해도 더 큰 실수를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 남편의 실수가 그 정도인 것에 오히려 감사하고 감사하면 마귀가 그 가정을 결코 삼키지 못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되어도 감사하면 시험 들지 않고, 아무리 시험 들어도 감사하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평하려 하면 불평거리도 많습니다. 같은 아내를 두고도 감사하면 감사할 것이 많지만, 불평하려면 불평도 한이 없습니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도 불평거리를 찾으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교회도 감사거리를 찾으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저도 한 번 봅시다.
    이 지용수 목사를 두고도 여러분이 감사하려고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목사님을 귀히 쓰셔서 세계에 보내시어 교회를 일으키시는구나. 우리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구나.’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려고 하면 ‘아니, 우리 목사님은 홍길동인가? 동해에 번쩍 서해에 번쩍, 교회는 지키지 않고 매주 돌아다니기만 하시고… ’하며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세워 놓고도 감사하려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고, 불평하려면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예 감사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터져도 감사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불평하라.”는 말씀이 신구약 성경에 한 곳도 없습니다. 기록된 말씀 가운데 “불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원망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한 말씀도 없습니다.
    “범사에, 환난 가운데도, 시험 가운데도 감사하라. 시련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감사할 때 향기가 나고 아름답습니다.
    1988년 뉴욕에서 마라톤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전 미국 시민의 사랑과 레이건 대통령의 특별한 칭찬을 받은 린다 다운이라는 여사가 있습니다.
    그는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다리를 쓰지 못합니다. 걷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는 그가 목발을 짚고 마라톤 연습을 하여 그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몸을 흔들면서 11시간을 달려 42킬로 195미터를 완주했습니다. 미국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친히 전화를 했습니다.
    “장하오. 장하오. 자랑스러운 미국의 시민이오.”
    그때 린다 다운이 말했습니다.
    “각하, 저는 제게 강한 의지력과 인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지만, 강한 정신력을 주시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니 전 미국 시민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불평하는 아내가 예쁩디까? 불평하는 자식이 예쁩니까? 천만에요. 감사할 때 예쁩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마귀는 물러가서 좋은 것은 더 좋게 되고 좋지 않은 것도 좋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28편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니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지 않았느냐? 정처 없고 헐벗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매맞고, 그리고 후욕을 당하면 축복하고, 핍박을 당하면 참고, 비방을 당하면 권면하니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 찌기같이 되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견디고 감사하며 사는데, 너희는 배부르고 존귀하고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도 어찌 그리 받지 않은 것 같이 사느냐?”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한계를 따라 늘 겸손하게, 또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나아갈 때 사탄이 접근하지 못하여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귀하게 살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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