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만났을 때(사37:1-4) 2002-03-11 00:30:43 read : 2869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비 오는 것이 싫다고 해도, 늘 맑고 청명한 날씨만 계속될 수 없듯이,
우리 인생에도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위기가 있다.
정치적 위기, 경제적 위기, 관계의 위기, 질병의 위기…, 수 없이 많다.
사람들은 위기가 찾아오면, 2가지 반응을 보인다.
(1) 절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2) 위기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
성도도 위기를 만나고, 고난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위기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된다면, 위기와 고난은 오히려 유익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요?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내려가지 않는다. 물결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며, 더 큰 믿음을 갖게 된다.
어린 아이는 편안하고 좋을 때는,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지면, 제일 먼저 부모를 찾게 된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편안할 때보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한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원래 법학을 전공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별안간 벼락이 떨어져 옆에 있던 친구가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벼락은 친구가 아니라 내가 맞을 수도 있었는데…, 죄와 죽음은,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성직자가 되었고, 후에는 종교 개혁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삶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체험하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히스기야가 살던 시대는 위기의 시대였다.
이스라엘과 강대국 바벨론, 애굽과 에티오피아의 연합군을 이긴, 최강의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했다.
교만하고 잔인한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대군을 이끌고 와서, 유다의 성들을 쳐서 모두 점령했다.
그리고 그 부하 랍사게에게, 예루살렘 성에 있는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을 권했다(사36:13-20).
히스기야 왕은, 생명의 위기, 민족 멸절의 위기를 당했다. 그때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37:3).
히스기야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무릎꿇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역전 드라마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건 기도였다.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가? 위기를 만났는가?
그렇다면 히스기야와 같이, 생명을 건 기도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성도는 팔자나 운명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고, 고난까지 축복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이다.
1.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보여라.
히스기야( )는, '나의 힘은 여호와, 또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다'라는 좋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다.
이방종교를 받아들이고, 여러 우상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의 문도 폐쇄했던(대하28:24), 지극히 나쁜 왕이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아버지의 불신앙을 보면서 자랐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망령된 행동을 닮지 않았다.
오히려 타락한 신앙을 개혁하기로 마음먹고,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었다"(왕하18:4).
불뱀에 물려 광야에 죽어가던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살게 만들었던 장대 높이 매달았던 놋뱀을, 이 당시에는 우상처럼 분향했다. 그래서 "느후스단"(놋조각에 불과하다)하며 부쉈다(왕하18:4).
히스기야는 부패된 종교를 개혁했고, 또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악한 세대를 본받기 거부하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
악한 세대를 본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오늘날 순교자의 삶은 사는 사람이다.
순교자의 삶을 사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1-2)
이 시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바란다.
순교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순교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말씀 안에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부터, 영향력을 미쳤다.
할 수만 있으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되라.
성도는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들이다(마5:10).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한다.
세상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두려워말고, 믿음으로 고난도 받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을 때,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통 우상을 좇을 때, 우상을 찍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멋있지 않은가?
어떻게 히스기야는 악한 세대를 본받지 않고, 종교를 개혁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이사야 선지자 같이 남은 자가, 그의 멘토가 되어서, 정신을 지켜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냈던 것이다.
위기 당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보여주는 순교자의 삶으로 믿음을 하나님께 보이라.
2. 함께 기도하라.
랍사게가 항복하라고 위협하며 소리를 높였을 때, 히스기야는 위기 앞에서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가서 기도했다(1). 그러나 혼자만 기도하지 않았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매"(2)
주변의 대신들도 기도했고, 이사야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사람을 보냈다.
성도는 위기를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에는 크게 개인기도와 합심기도가 있다. 골방기도(마6:6)와 다락방기도(마18:18-20, 행2:1)다.
개인기도(골방기도)는, 은밀하게 기도해야 한다. 합심기도(다락방 기도)는, 합심해서 구해야한다.
예수님은 2가지 기도를 고루 가르쳐 주셨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기도로 하나될 때, 응답이 있고, 부흥이 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마18:18-20).
하늘 문을 여는 기도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함께 하느니라"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한다. 합심기도는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날마다 힘을 합쳐 기도해야 한다. 그때 성령이 임했다(행2장).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와"는 합심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일치됐고 화목했다. 하나가 되었다. "와"의 진리가 중요하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목사와 교인…, "와"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와"의 고리가 잘 연결될 때, 행복이 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어떤 가정은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사이에, "와"의 고리가 빠져서 싸움과 갈등 속에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성도는 너와 내가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화목하는 곳에 하나가 되고, 합심하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난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고침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분쟁과 파괴는 사탄의 역사이지만, 성령은 항상 하나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 중심이 되면, 성령 받으면 하나가 된다.
부부간에 성격차이를 논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 육을 중심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왔다. 헤롯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다(행12장).
최초의 순교자가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지도자 베드로를 잡아 가두었다. 교회의 위기였다.
그때 교회는 어떻게 했는가?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12:5).
그때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다.
위기입니까? 힘드십니까? 괴롭습니까? 기도의 동지를 만들고, 문제를 함께 기도하기 바란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만하지 말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물은 둑이 있으면 막히지만, 계속 들어오면 둑이 넘치고, 계속 넘치면 결국 둑은 터진다.
앞길을 가로막는 위기가 찾아왔다면, 넘치는 기도로 위기를 넘어가고 터뜨리기 바란다.
앞길을 막는 것이 있다면, 함께 기도를 넘치게 해서, 빨리 터뜨릴 수 있기 바란다.
3.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하나님의 종에게 왜 사람을 보냈나?
물론 기도해 달라고 보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소문)을 듣고, 그 고토(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7).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나라를 잃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위기가 찾아오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가야 한다.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우리의 죽은 영혼은 반드시 살아나게 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게 되어져 있다.
기도하다가 왜 중단하는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믿음이 부족한가?
많은 경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목숨을 걸 수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막는다.
여자 수영 선수 '프로렌스 체드윅'이 LA에서 가까운 카타리나 섬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수영으로 건너가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TV는 이 장면을 방영하기로 했고, 많은 사람들이 해변가로 나와서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16시간 동안, 계속 수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안개를 헤치고 나가던 프로렌스는 사력을 다했지만, 점점 힘이 빠져서, 결국 기권을 하게 되었다.
자기를 따라오던 구조선에, 승선하고 보니, 아깝게도 육지에서 불과 5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16시간 동안 계속 수영을 해온 선수가, 500M를 눈앞에 두고 포기했을 때, 기자들이 묻는 실패의 원인에 대하여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포기한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안개 때문에 포기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안개 때문에 500M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는 목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기도하다가 왜 포기합니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모르면 방황하고 포기하게 된다.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헷갈리게 만들고, 말씀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또한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기도하면, 기복신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기 바란다.
위기 앞에서 절망되고 낙심될 때, 더욱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더욱 말씀을 잘 듣고, 더욱 말씀을 잘 읽어라. 힘이 빠질 때,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더욱 먹이다. 그러면 힘이 넘친다.
결론입니다.
위기가 찾아 왔을 때, 믿음을 하나님께 보이기 바란다. 어떻게 믿음을 보일 것인가?
(1) 세상을 본 받지 말라.
(2) 기도하라.
(3) 말씀을 먹으라.
성도는 위기가 찾아올 때, 2가지를 잘해야 한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기도로 영적인 능력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순교자의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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