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행복한 사람들 2002-03-11 11:29:17 read : 281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32:1-11) // 2002-3-10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되는 "귀천(歸天)"이라는 시로 유명한 천 상병 시인의 "참새"라는 시를 먼저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아와서
내 방문 앞에서 뜰에서
기분 좋게 쫑쫑거리며 놀고 있다.
저것들은
친구인가 부부인가?
하여튼 아주 즐거운 모양이다.
저들같이 나도 좀 안될지 모르겠다.
본능(本能)으로만 사는 새들이여 참새여
사람은 이성(理性)이니 철학(哲學)이니 하여
너희들보다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
시인은 자기 집 방문(房門) 앞에 찾아와, 즐겁게 놀고있는 참새 두 마리를 보면서, 그들이 오히려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들보다 더 순결하고 아름답고 기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 참새 두 마리가 시인에게는 참 행복해 보였나 보다..."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를 또 물어보아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한 삶은―앞에 인용한 시에 의하면―"서로 사이좋게 기분 좋게, 즐겁게 사는 것, 순결하고 아름답고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그 길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공중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누가 갖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해 지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가진 게 없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많이 소유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정말 행복해 지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행복의 길을 찾아보려면 먼저 행복한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선, 두 가지를 짚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지나치게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살려고 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공, 형통'이라는 말은 대단히 매력적인 말입니다. 지그 지글러라는 사람은『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무조건 잘 되고, 성공하고, 형통하고, 건강하고, 승리하고, 앞 길이 훤히 열리고, 진급이 되고, 지위가 올라가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부와 성공을 얻으려고 애쓰다 보면, 야망과 탐심에 빠지고, 만족도 없고, 기쁨도 없고, 여유도 없는 고달픈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나이가 40대 중반쯤 된 어떤 주부가 처음으로 여고 동창회에 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들 옷 자랑, 집 자랑, 남편 자랑, 애들 자랑만 하더랍니다. 다들 성공한 것 같은데 자신은 너무 초라하게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다시는 동창회에 가지 않기로 했답니다. 대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자랑하려고 사는 것 같습니다. 또 못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경우를 봅니다.
지금은 경쟁 시대입니다. 서로 경쟁하면서 정상을 움켜쥐려고 애를 씁니다. 무조건 '올라가는 것'에 관심을 두고, '성공'에 인생을 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 고독과 절망밖에 얻는 게 별로 없습니다.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정복할 나라가 더 이상 없는 것을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무언가를 더 많이 소유하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현대판 알렉산더가 많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다음에는, 향락과 방탕에 빠져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에 보면, "부자(富者)의 재산은 그의 견고한 성(城)이 되니, 그는 그것을 아무도 못 오를 높은 성벽(城壁)처럼 여긴다"(잠 18:11)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높은 성벽이라도 기어코 기어올라가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만족도 없고, 기쁨도 없고, 평안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잔뜩 얻으려고, 더 큰 성공을 거두려고, 계속 애를 쓰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공의 척도는 하나님, 다른 사람들, 자연(自然)과 얼마나 친밀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행복한 삶은 무언가를 많이 얻는다고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행복한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둘째로,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죄입니다.
죄란 희랍어로는 '하마르타노'라고 합니다. 그 뜻은 "표적에서 빗나가다"는 뜻입니다. 제가 요즘 활을 과녁에다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다 빗나갑니다. 활을 쏘면서 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로 그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물론, 어릴 때 남의 집 과수원에 몰래 친구들과 들어가서 참외나 수박을 따먹은 것(서리한 것)도 죄는 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그 거룩한 뜻을 외면하고 사는 것이 근본적인 죄입니다. 사람은 다 각기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복 있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5절에는 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죄를 토설(吐說)―여기서 토 자는 토할 토 자입니다―하고 자복(自服)해야, 죄 씻음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말씀했습니다. 죄를 그냥 가지고는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 영혼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라고 했습니다. 죄에는 과거에 지은 죄가 있고, 현재의 죄가 있고, 미래의 죄가 있습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일, 무분별한 생각과 행동으로 지었던 죄가 영화 필름처럼 펼쳐 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게 됩니다. 로마 8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定罪)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만, 과거에 지은 죄를 생각하면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죄를 고백한 다음에는 죄를 용서함 받은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죄든, 현재의 죄든 죄를 진실로 고백합시다. 그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 때 안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시 103:10)고 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샘 하나가 터져서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 줄 것이다"(슥 13:1)라고 약속하셨음을 기억합시다.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고 하셨습니다. "용서란 과거의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일은 담담히 맞이하고, 현재의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데이빗 아우구스버거). 이렇게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러면 이제부터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여백(餘白)을 가집시다.
요즘에는 신문을 만들어도, 책을 만들어도 여백이 있어야 됩니다. 요즘에는 극장을 만들어도 앞자리, 옆자리 사이에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야 관객들이 온답니다. 좌석을 줄여서라도 휴식 공간이 넓어야 극장이 된다고 합니다. 꽉 찬 것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여백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 쉴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지 말고, 때로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짚어 보면서 한 템포 쉬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많이 얻고, 더 크게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을 점검해 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회사 간부가 갑자기 병이 들어 수술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는 3주일 동안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고, 일과 후에 집에까지 일감을 가지고 와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그는 이제까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잠깐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되었기에, 그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영혼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자아(自我)가 죽어야 됩니다.『루미의 사랑노래』중에서 "죽어라!"는 시 한 구절이 매우 인상적(印象的)입니다.
죽어라! 죽어라!
이 사랑 안에서 죽어라!
네 만일 이 사랑 안에서 죽는다면
영혼이 새로워지리니
...
죽어라! 죽어라!
속(俗)된 관심의 잡담과 시끄러운
소리에 대하여, 죽어라
사랑의 침묵 속에서
생명의 불꽃을 발견하리니
본문 7절에 보면, "주는 나의 은신처(피난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고 했습니다. 귀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피난처,' 다시 말해, '숨을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 품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때 평안해 지는 법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라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찬송 455장 1절). 주 안에 있으면, 그곳이 바로 쉼터요, 안식처요, 피난처입니다. 내 뜻, 내 계획을 포기하고, 내가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할 때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자아(自我, ego)가 죽고, 그 크고 넓으신 주님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참다운 안식을 얻고, 기쁨이 생기고, 여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②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도를 주님과 만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하고 높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주님을 만나는 것 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대화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 42편 1-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渴急)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渴望)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뵙고 싶은 갈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합니다.
시편 73편 2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게 복입니다. 이게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광야 같이 힘든 세상에서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진정 행복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셨기에 행복할 수 있으셨다고 봅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고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사; 恩賜)입니다. 주님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고, 평안과 안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지혜가 있고, 영적으로 풍요한 삶을 삽시다. 이것은 주안에서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며, 주님과 매일 마다 친밀한 교제의 생활을 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밖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주님 안에서 매일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로마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天國)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순절(四旬節)은 주님과 깊이 교제(交際)하는 기간입니다.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며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세상이 줄 수 없는 즐거움이 넘치고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감사와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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