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래함 목사의 별세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 첫 설교 “변질되지 않도록…”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별세 2018-02-24 02:52:00 read : 369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리 그래함 목사의 별세를 애도하며
▲1973년도에 열린 서울 크루세이드 집회의 전경. 여의도에서 총 3일 동안 열린 집회에 약 300만 명이 모였다. ⓒBGEA 제공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21일 몬트리트의 자택에서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래함 목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이제 주님의 품안에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돌이켜 보자. 1918년 11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난 그래함 목사는 1940년 플로리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로스앤젤레스(LA) 전도대회를 인도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를 설립해 전 세계 선교에 나서면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래함 목사의 우리나라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한국을 방문해 미군들을 위로하고,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각종 집회를 통해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성탄절에는 경무대(警珷臺)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전도집회의 음반을 1953년 발매하였다. 그의 설교가 담긴 타이틀은 'Let Freedom Ring(자유가 울리게 하라)'이었다. 또 음반에는 이승만 대통령과의 대담을 함께 수록해 전쟁 중이던 한국에 대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원과 반공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1956년 그는 한국을 다시 방문, 한경직 목사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재건에 기여했다.
한국교회는 그래함 목사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것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영적 지원이었다. 한국교회의 급성장에는 1907년 평양대부흥 이후 1970년대 수많은 부흥성회와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엑스플로 74 가 바로 그것이었다.
1950년대 이후 1973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래함 목사는 집회를 시작하며 "한국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를 통하여, 필자는 한국과 한국민을 사랑하는 그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1973년 여의도 5·16 광장 및 전국을 투어하며 열린 그래함 목사의 설교는 복음을 알기 쉽게 전해줬다. 집회는 연인원 50만명이 목표였으나 무려 100만명이 참여하면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가능성과 함께, 한국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가져오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는 한국 개신교계의 역사적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그래함 목사 자신도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크고 역사적인 전도의 날이며, 한국 어느 곳에서나 영적인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감격을 쏟아낸 바 있다.
빌리 그래함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5천만 민족 복음화'라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북한 동포 해방'을 위한 메시지를 통해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1974년 '엑스플로 74' 집회로 전도와 철야기도, 산기도의 열정이 일어나면서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다.
엑스플로 74 전도집회에는 334만 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했고, 100만명의 결신자를 내었다. 권위주의 통치 시절 국민들의 영적 통로 역할을 했던 이런 영적 전도집회가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선하고 큰 영향을 미쳤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그 후에도 1980년 '나는 찾았네',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의 설교자로 꾸준히 방한해 한국교회 부흥의 불을 지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에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갖고 성경과 함께 복음을 전하였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 역시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구호활동을 펼치고 역시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하였다.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도 그래함 목사는 "내 남은 생애 가운데 한국의 남북이 통일된 모습을 보고 싶다"며 "통일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 구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면 통일은 꼭 이루어진다"고 당부했다.
그래함 목사는 60여 년간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설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2억여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로서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이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의 '영적 멘토'로도 활동했다.
--------------------------------------------------------------
故 빌리 그래함, 역대 미국 대통령들 조언자이자 멘토 역할
▲재선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과 빌리 그래함 목사가 면담했던 당시 사진.
빌리 그래함 목사는 생전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원 대통령을 비롯한 12명의 대통령에게 조언자이자 영적인 멘토의 역할을 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후보들이 그를 예방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로 여겨졌다.
그래함 목사는 작년 말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남성’ 4위에 오르는 등 최근까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95세 생일잔치에는 당시 사업가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등 900여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세계 지도자들 역시 그래함 목사를 추모했다.
200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당시 작위 수여식에서 “그래함 목사의 선교활동이 영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지난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암살 기도가 일어난 직후 워싱턴으로날아가 부인 내시 여사를 위로하고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 빌 크린턴 전 대통령은 2007년 5월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린 빌리그래함복음주의협회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퇴임 후에도 지속적인 친분을 유지해왔다.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향년 64세로 별세
▲故 박상훈 목사 ⓒ박상훈 목사 홈페이지 인사말 영상 캡쳐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가 지난 13일 새벽 5시경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향년 64세. 고인은 생전 췌장암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상대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박 목사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승동교회에는 지난 1991년 2월 25일 제15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1893년 미국 선교사였던 사무엘 무어 목사가 설립한 승동교회는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전국의 학생 대표들이 모여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눠주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곳이다.
예장 합동(총회장 김선규 목사) 총회역사위원회는 승동교회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
카페교회, 수익 아닌 헌신이 목적 돼야… ‘카페교회 10계명’은
커피마을 바리스타 안준호 목사 소개
▲커피마을. ⓒ안준호 목사 SNS
고양 참포도나무교회 목회자이자 커피마을 카페와 마을공작소를 운영하며 '선교적 교회' 운동을 하고 있는 안준호 목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14일 '카페교회 10계명'을 공개했다.
안준호 목사는 15일 '카페교회, 수익이 아니라 헌신이다'라는 글도 게재했다. 그는 "카페교회를 담임하는 선교사나 목사 혹은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카페를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위해 부르심 받은 존재들이 아니라, 카페와 커피라는 통로를 통하여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 목사는 "카페는 수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카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교회는 수익을 내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교회는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진정한 헌신으로 영속성을 갖게 된다"며 "세상의 카페는 수익성을 목적으로 하지만, 카페를 통해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는 무엇보다 '헌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카페교회는 예수에게 향유를 부어 드린 여인의 헌신과 같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면 그 헌신을 통하여 그 지역에 복음이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며 "카페교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이지, 수익을 내기 위함이 아니다. 수익과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교회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린다"고 적었다.
'카페교회 10계명'에 대해 안 목사는 "커피마을 안준호 바리스타의 편협한 생각이니, 괜히 딴지 걸거나 상처받지 마시길"이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은 그가 소개한 10가지
1. 예배공간과 카페공간은 분리되어야 한다. (생각보다 공간성을 극복하기 힘들다.)
2. 돈 버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죽어라 열심히 일하는 일반 카페들도 10개 창업하면 10개 폐업하는 현실이다.)
3. 다시 말하지만, 카페를 통해 돈 벌 생각이면 카페교회를 하지 말고 장사꾼이 되어라.
4. 카페교회를 하려면 적어도 '커피'는 제대로 타야 한다.
5. 카페를 통해 돈은 못벌지만, 돈 이상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마을 주민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6. 하루에 한 사람이 카페에 와서 환대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카페교회'는 귀하다.
7. 손님들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구가 되어라. 전도는 친구 된 다음에 하라.
8. 카페교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제일 커다란 수확은 설거지 노동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이 기도'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9. 카페교회의 목적은 동네에서 최고의 카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카페를 통해 교회의 본질인 예배와 선교, 그리고 교육과 코이노니아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10. 카페교회는 자신의 재산이 아니니, 세습 혹은 매매할 수 없다.
============================================================
가수 자두, 목회자의 아내가 된 사연, 그리고 다시 찾은 소망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 출연
가수 자두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0일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을 극복하고 목회자 사모가 된 가수 자두의 사연이 방송됐다.
자두는 2000년대 초반 '김밥' '대화가 필요해' 등 통통 튀는 컨셉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활동을 하지 않던 그녀가 힘겨웠던 긴 공백의 시간을 깨고 목회자의 아내로 나타났다.
원래 록 가수를 꿈꾸던 자두의 데뷔는 그녀가 생각하던 가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자두의 모습도 멋있다면서 그녀의 가치를 알아봤다. 2011년 자두가 다니던 교회에 영어 예배 목회자로 부임했던 남편은 항상 그녀에게 "넌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돼. 훌륭한 음악을 했고 대단한 업적을 남겼어. 난 네가 멋있고 지금도 멋있어. 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2013년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수입이 적어도 만족하며 살아갔다. 자두는 "돈이 하나도 없고 말도 안되게 빈털터리인데 4시간을 걸어도 같이 있으니까 기뻤다. 많이 가진게 없어도 이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남편 덕분에 웃는 날이 더 많아졌고 남편이 나를 보물로 만들어준 것 같다"면서 "남편을 만나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두번째 소속사와 계약 당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법정에 서야 했다. 절망 속에서 방황하며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힘들어하던 그녀에게 힘을 주었던 이들이 있다. CCM가수 소향과 배우 윤은혜다.
자두의 11년 지기 친구인 소향은 자두가 법정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큰 힘이 되어줬다. 자두는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검찰청에 가면 마음이 힘들고 압박감을 느꼈다. 소향 언니한테 전화해 기도해달라고 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소향은 "(자두의) 전화를 받았을 때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너무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까봐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는 것 조차 무서웠다. 상처를 들춰내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면서 '그냥 내가 안아줘야지'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의 가능성이나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 때 그녀의 가능성을 유일하게 먼저 발견해서 헤아려주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배우 윤은혜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울증에 시달리던 자두는 윤은혜와 함께 몇 년을 같이 살면서 그녀의 위로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했다.
윤은혜의 위로에 힘입어 자두는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됐고 2012년 직접 프로듀싱한 '1인분'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나 목회자 사모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5년 전부터 남편이 인도하는 영어 예배 준비를 직접 하고 있는 자두는 "남편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이라며 "이제서야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여유도 생겼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정직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자두의 남편 지미 리 목사는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없어질 수 있고 지금은 가난하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현재 정직하자라고 생각한다"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퍼즐이나 블록을 맞춰가는 것처럼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두는 "주변에 깨진 가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음세대들에게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과 가정이라는 가치가 깨질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전해주고 싶다"면서 "소소한 것들 일상 사랑에 대한 것들도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작게 시작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 첫 설교 “변질되지 않도록…”
“물질, 명예, 권력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인 되고파”
▲김운성 목사가 영락교회에서 첫 설교를 하고 있다. ⓒ영락교회 주일예배 영상 캡쳐
영락교회 새 담임인 김운성 목사가 18일 주일예배부터 영락교회 강단에 섰다.
이날 '약한 자가 의지할 것'(고전 2:1~5)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 목사는 "여러분이 절 궁금해 하셨던 것처럼 저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며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서로 조금씩 알아갈텐데, 우리의 사귐은 인간의 그것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매개로 한 거룩한 영적 사귐"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누구나 처음 만나러 갈 때는 두렵고 설렌다. 제 마음도 마치 선을 보러 나가는 처녀의 마음"이라며 "부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 눈 앞에 계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싶다. 하나님 눈 앞에 옳으면 만인 앞에 옳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없는데도 있는 척 못하는데도 할 수 있는 척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교우 여러분들도 있는 모습 그대로 제게 다가와 달라. 그런 마음으로 서로 마음의 손을 잡고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자"고 권면했다.
김 목사는 특히 "두려운 것이 하나 있다. 혹시 많은 변화 앞에서 제가 변질될까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앞으로 저를 변질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에 맞서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려 한다.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저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물질이나 명예, 권력 따위에 절대로 예속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것"이라며 "예속의 종이 된다면 오직 한 분, 주님께 매인 주님의 종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목사는 "제가 앞으로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노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자격이 못 된다. 지극히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주 예수만 붙들고 십자가 복음만 증거하겠다. 주님께 매여 그 분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자가 되고, 영락교회도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강단이 사람의 말과 지혜로 오염되지 않고 십자가 복음만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김운성 목사를 소개한 이철신 원로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영락교회에 꼭 맞는 김운성 목사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김운성 목사는) 그의 부모님이 영락교회에 다니셔서 어린시절 이 교회를 다녔다"며 "또 신학생 때는 영락교회가 주는 한경직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당시엔 주의 종을 양성하려 제공했던 장학금이었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그 장학금을 받았던 신학생이 지금 우리교회의 목사님이 되셨다"고 했다.
한편, 영락교회는 오는 25일 이철신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예배를, 3월 4일 김운성 목사의 위임예배를 각각 드릴 예정이다.
================================================
오토 웜비어 아버지 “北 당국, 아들의 죽음에 책임져야”
제네바 인권회의에 참석해 책임 추궁 호소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회의에 참석한 프레드 & 신디 웜비어 부부. ⓒ제네바 인권회의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지 1주일도 안돼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회의에 참석해 북한에 대한 책임 추궁을 호소했다.
웜비어 씨는 20일(현지시간) 열린 ‘제10차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회의’(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 참석해 북한 정권을 규탄했다.
그는 다음날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아내와 저에게 오토가 ‘전쟁포로’ 또는 ‘전쟁범죄자’라고 말했다. 저는 어제 한 회의에서 왜 북한이 이러한 말을 하고도 책임을 추궁 당하지 않는지 질문했다”면서 “아들은 ‘호기심 많고, 열심히 공부하며, 유머감각도 많았던’ 좋은 아이였다. 그저 아이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 호기심에서 한 행동 때문에 가족과 연락이 단절된 채 ‘전쟁포로’ 취급을 받다가 결국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북한의 메시지이다. 북한 당국이 오토에게 이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이 북한 주민과 전 세계에 어떤 행동을 할 지를 상상해보라”며 “북한 당국이 아들을 1년 동안 인질로 붙잡아 두면서 아들과 편지조차 주고 받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매우 건강한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대표단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면서도 “한국을 방문하고 나니 한국의 체제, 한국인, 한국의 발전 등에 감탄했다. 북한도 한국과 같은 번영을 누리는 길을 택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같은 예가 북한 주민들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이러한 북한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
‘벤틀리를 타는 목회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벤테이가 소유한 美 대형교회 목회자, 화제와 논란
▲윌리엄 커티스 목사와 그의 벤틀리 차량 ⓒ마운트아라라트 침례교회, 페이스북
1만 명의 성도를 이끌고 있는 한 지역 교회 목회자가 웬만한 집보다 비싼 차량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주인공은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소재한 마운트아라라트 침례교회 윌리엄 H. 커티스 목사.
그의 차량은 벤틀리 벤테이가로 시가 3억원 정도다. 이는 교회 인근의 중산층 집 값의 2배이다.
교회에 주차된 차량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자렐 테일러는 “커티스 목사의 벤테이가는 최고속도가 시속 301km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이다”라면서 그의 호화로운 생활을 꼬집었다.
테일러는 “만약 목회자가 벤틀리 차량을 몰고 다닌다면, 그는 희망과 십일조로 당신의 공동체를 빨아먹고 있는 중”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이와 관련 커티스 목사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의 비서는 “커티스 목사님이 차량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으실 것 같다. 그렇지만 메시지는 전달해 드리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교회도 목사님 차량과 관련한 직접적인 반응을 많이 접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의 정확한 출처가 어딘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교회 웹사이트에 소개된 이력에 따르면, 커티스 목사는 17살인 1997년부터 마운트 아라라트 침례교회에서 담임을 맡았으며, 현재 오하이오 연합신학교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다. 또 마케팅 업체인 더처치온라인(The Church Online)의 공동소유자이기도 하다.
그가 담임하는 교회는 공동체십일조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이로 인해 매주마다 주일헌금의 10분의 1을 작은 교회, 선교회, NGO 단체에 기부해왔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커티스 목사가 여행을 위해 유명한 래퍼들이 주로 이용하는 비싼 벤틀리 벤테이가를 구매한 것은 일반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과는어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