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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길을 걷는 자의 모습
    2002-01-29 12:57:43   read : 231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19: 49~56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우리 마음속에 감추어진 '마음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서점가의 인기 있는 책제목이나 강연의 토픽 같은 것을 보면, 마음의 그림에 대한 단어들이 유독 많은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여인상(像), 훌륭한 아버지상(像), 바람직한 어머니상(像), 탁월한 지도자상(像), 아내상(像), 남편상(像) 등이 있습니다. 이 상(像)자(字)가 형상'상(像)'자 아닙니까? 형상 상(像)자(字)는 사람 인(人) 변에 코끼리 상(象)을 붙여 났어요. 사람이 코끼리를 그리듯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림을 얘기한 겁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마음속의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 신앙인들이 마음속에 그려야 할 그림들은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 년, 이 년, 십 년,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런 모습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여러분 속에 어떤 그림이 있으신가요? 그 그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그림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장래에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마음속에 가진 신앙의 그림은 각기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하면 기도원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누가 성숙한 신앙인인가 질문하면 그 사람은 자주 기도원에 드나드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도원에서 사는 사람은 아예 말할 것도 없죠. 그 사람은 아주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러한 그림을 그리시면 그러한 사람이 될 겁니다. 한때 이것이 얼마나 유행이었습니까? 성도들이 날마다 기도원에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러나 요사이 한국교회가 거기서 조금 돌이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좋은 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돌이키는 게 아니라, 날마다 기도원에 가서 살아도 내 삶이 그렇게 변하는 것 같지 않거든요. 그래서 기도원을 조금 멀리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어떤 신앙을 마음에 그리고 사는가, 훌륭한 신앙인이라 하면, '아멘' 잘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멘' 잘하고, '주여' 잘하고……. 제가 한때 그랬어요. 신앙이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누가 이런 말을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여!" 넘어져도 "주여!" 그래서 저도 흉내를 내봤어요. 그래서 어색하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주여!" 그렇게 했더니, 하루는 어떤 친구가 와서 "야, 너는 왜 자꾸 죽여 달라고 그러니?" 그래서 저는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하고 그만 둔 적이 있습니다. 신앙의 그림이 중요해요.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믿음 좋은 사람, 훌륭한 신앙인의 그림으로, '모나리자 상(像)'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은 제가 "아멘" 하라고 해도 절대로 "아멘" 안 합니다. 교회 나오면 그냥 미소만 지어요. 한번도 "아멘" 안 하시는 분! 이 사람들은 또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저만 쳐다보고 있어요. 얼굴을 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자기가 무슨 교황이라고, 미소만 짓습니다. 이것이 신앙 좋은 것인 줄 알고 있어요. 각기 어떤 상(像)을 가지고 사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당신의 신앙상은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의 상(像)을 한번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마음속에 꼭 품고 살아가야 할 신앙인의 모습 몇 가지를 소개해주고 있어요. 해석하기에 따라 신앙의 삶이 약간 다를 수 있어요. 뜨거울 수 있고, 이성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품고 살아야 할 신앙의 모습, 마음에 품어야 할 그 상(像)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신앙인의 모습은 다름이 아니라, 주의 가르침을 삶의 위로로 삼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 주의 가르침을 삶의 위로로 삼는 모습

    이것이 우리가 품어야 할 신앙인의 모습이에요.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제가 조금 더 설명 드리길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낙심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누군가를 위로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 보기도 했을 겁니다. 우리는 위로를 주고받는 사람들이에요. 문제는 무엇을 위로로 삼느냐는 것입니다. 위로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데, 사람마다 위로를 받는 대상이 다릅니다. 무엇이 우리의 위로가 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당신의 신앙의 성숙도를 알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무엇이 늘 당신의 위로인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길러 보아서 잘 알겠지만, 아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해요. 실수로 화를 내어서, 아이가 낙심하여 웁니다. 넘어져서 울건, 속이 상해서 울건, 아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해요. 그래서 제가 늘 우리 아이들을 위로하려고 주머니 속에 사탕을 넣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아이가 낙심을 해서 울 때면 "자!" 하고 사탕을 하나 내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이 환하게 펴져요. 제가 주일학교 선생할 때도 그랬어요. 늘 막대사탕을 가지고 다니면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제가 위로를 너무 잘 해 주었어요. 아이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간단했어요. 백 원짜리 막대 사탕 하나 내밀면 아이가 별 문제없이 위로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어떨까요? 무엇이 여러분의 위로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잘못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아내가 낙심을 하죠. 마음이 탁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남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위로의 방법이 무엇인가? 타임지에 이 기사가 나왔어요.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아내가 무엇에 위로를 많이 받는지에 대해 여섯 가지를 얘기했어요. 아이들은 사탕에 위로받는데, 아내들은 첫 번째, 먹을 것에 위로받는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케이크를 사 주면 마음의 위로를 받는데요. 두 번째 방법은 꽃을 사다 주는 거예요. 평생 살면서 아내에게 꽃 한번 안 사준 나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우리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화장품이에요. 네 번째가 옷, 다섯 번째가 반지를 사다 주면 위로를 받는데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현금입니다. 돈을 잔뜩 넣은 봉투를 갖다 주면 굉장한 위로를 받는데요. 미국 여자만 그런지 한국 여자만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선물이 나쁜 건 아니에요. 때론 선물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위로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시적이라는 거예요. 사람마다 위로받는 방법이 다릅니다.

    여러분, 오늘 한번 질문 해보세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위로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나요? 여러분의 마음이 낙심되었을 때, 진정 누구를 찾아가는가요? 무엇이 여러분의 삶의 위로인가요? 오늘 성경은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참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위로를 얻으며 살아야 한다고요. 성경 속에서 한번이라도 위로를 받아본 적 있나요? 왜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된다고 말씀합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실 위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위로란 무엇입니까?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이죠. 육신이 다운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낙심될 때 필요한 거예요. 그러므로 위로라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가장 잘 위로해 주실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영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낙심되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가장 합당한 방법, 가장 적절한 방법, 가장 올바른 수술법으로, 우리의 낙심된 영혼을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야이로라고 하는 한 회당장의 딸이 죽게 되었어요. 허겁지겁 온갖 의원들을 불러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회당장이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찾아왔어요. 그리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예수님 우리 딸아이가 죽어 가는데, 우리 집에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감사하게도 그 바쁜 가운데서도 야이로의 집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집에 다다랐을 즈음에 집에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회당장님, 당신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얘길 듣고도 예수님은 계속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울음소리가 온 집에 가득 찼어요. 그때 예수님이 조용히 방에 들어가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소녀가 일어난 줄 믿습니다. 그 집에 큰 위로가 찾아왔어요.

    그런데 야이로 집으로 가던 도중에,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한번 만나기 위해 서로 막 떠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는데, 열두 해를 혈루증 (피가 계속 흐르는 병)을 앓던 한 여자가 나와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댑니다. 이 여인은 '내가 내 손만 갖다 대어도 내 병이 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살짝 손을 댔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하시니,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지금 수백 명이 예수님을 떠미는데, 누가 예수님을 만지다뇨?" 그때 그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어요. 두려워하면서 떨며 나와 예수님께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님 제가 만졌나이다" 그 두려워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고 그녀를 위로하시는 거예요.

    그뿐입니까?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여인에게 찾아가시면 어김없이 그에게 큰 위로가 임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인이 잡혀왔어요. 아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작전을 짰던 것 같아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여자만 잡혀왔으니까요. 현장에서 잡혔다면, 간음한 남자도 잡혀 와야 하는데 여자만 잡혀왔어요. 남자를 사 가지고 여자를 유혹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현장에서 그 여자를 잡아서 머리채를 끌고, 예수님이 설교하고 계신 그 자리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여러분, 남의 일로 생각지 말고 그 여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어요?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손에 돌을 들고 다가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이 여인을 돌로 쳐야 옳은 겁니까?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하는 겁니까?" 치라고 하면 예수님이 가르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요,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거예요.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답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양심에 가책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돌아갔어요. 그리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그 여인은 두려워 떨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그제야 여인이 눈을 뜨고 보니 아무도 없어요. "주여! 없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 여인에게 큰 위로가 찾아왔어요.

    여러분! 저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낙심될 때, 사람의 손길을 기다릴 때가 많아요. 어느 목사님을 찾아가고, 어느 성도를 찾아가 봅니다. '무슨 일을 하면 내가 위로를 받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얘기합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때론 마음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 찾아 올 때가 있고, 질병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에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에요.

    엘리야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의 선지자였어요. 바알 선지자 800명과 대결해서 갈멜산에서 이겼어요. 바알 선지자 팔백 명이 하루 종일 기도해도 바알신이 응답하지 않았는데, 엘리야가 한번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갈멜산 꼭대기를 다 태웠어요. 그렇게 믿음의 승리를 하고 나서 엘리야는 곧바로 낙심에 빠졌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어느 정도로 낙심했어요? 로뎀나무 밑에서 "하나님! 나를 죽여주세요!" 여러분 이것이 사실이에요. 저도 때론 경험해요. 어느 날은 설교가 굉장히 잘 나와요.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집에 갔는데, 제 마음이 왠지 모르게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낙심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거예요.

    엘리야가 낙심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승리한 다음에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세벨이라는 한 여자가 엘리야를 협박했거든요.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우리 선지자들이 당한 것처럼 내가 너를 죽이리라"고 말했어요.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손톱 들고 달려든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엘리야의 그 마음이 이세벨의 한마디 말에 낙심이 된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위로하셨나요? 능력 가운데서 임하셨던 하나님! 그 능력으로 위로하셨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풍 속에서 위로하지 않으시고, 지진 속에서 위로하지 않으시고, 불 가운데서 위로하지 않으셨어요. 그 모든 것이 다 지나간 다음에, 그 뒤에 세미한 음성이 있었어요. "엘리야야! 네가 왜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엘리야를 위로하셨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아니요, 사업이 흔들릴 때 그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만이 우리에게 위로가 아니요, 우리의 참 위로는 우리 마음속에 들려오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 속에 위로를 한번 받아 보세요.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정근아!" 내 이름 석자만 불러주셔도 나에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오늘 시편기자는 그것을 알았어요. 그것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50절과 52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 속에 위로를 받으시는 신앙인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주의 가르침을 삶의 기쁨으로 삼는 모습

    두 번째 성숙한 신앙인은 언제나 주의 가르침을 삶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첫 번째는 주의 가르침을 삶의 위로로 삼고, 두 번째는 모습은 주의 가르침을 삶의 기쁨으로 삼아요. 5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이 구절은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해석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고민했어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이상한 단어가 하나 등장해요.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집 중에서 나그네 집이 따로 있는가?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들어서 '나그네 된 집'을 '우리의 육신'이라고 해석합니다. 신약 성경에도 보면 우리 육신을 장막에 비유하고 있고, 천국에 가서 우리가 받을 몸을 영원한 주택에 비유했어요. 여러분, 고린도후서 5장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다 나그네 된 집에서 살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도 집수리해서 먹고 사시는 분이 굉장히 많이 나오십니다. 의사 분들 말입니다. 나그네 집수리해서 먹고 사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텐트에 창문이 있듯이, 창문을 수리하는 안과 의사, 텐트의 기둥을 수리해서 먹고 사는 정형외과 의사 등, 이들은 다 집수리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집'이라는 것은 아무리 수리를 해도 잠깐 좋아지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다 장막과 같이 허물어져요. 왜요? 나그네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몸으로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닌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이 집에다 두면, "이 집이 얼마나 좋으냐! 내 집이 너무 멋있구나!" 그럴 때는 기쁘지만 이빨이 하나 달아나고,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나고, 머리가 자꾸 빠집니다. 우리의 몸은 다 이지러진다 말이에요. 그럴 땐 기쁨이 없어요. 무엇이 우리의 기쁨인가? 오늘 시편기자는 얘기합니다. 이렇게 낡아져 가는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말씀, 주의 가르침 때문에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이 노래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신앙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해요.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왜 즐거워요?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내가 다시 살 것이라는 그 말씀 때문에, 내가 언젠가는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약속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그들은 감옥에 갇혔어요. 도둑질해서 갇힌 게 아니라,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어요. 그런데 그냥 갇힌 것이 아니에요. 감옥에서 매를 많이 맞았어요. 다 찢기고 온몸이 멍들고, 정말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그 환경에서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했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노래했습니다. 찬양했어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주의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으로 주님과 교제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에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무엇을 기쁨으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콧노래가 터집니까? 어떤 사람은 술 한잔하면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복권에 당첨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더 넓은 주택을 구입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성공을 하면 기분이 좋습니까? 노래가 나오시나요? 그러나 참된 신앙인의 모습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내 몸이 병들어도, 내 사업이 힘들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으로 찬양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미국의 한 잡지를 보니까, 현대 사람들은 무엇을 기쁨으로 삼고 사는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다음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기 원하면, 이발을 하세요. 일주일을 기쁘게 살기 원하면, 양복을 사 입으세요. 한 달을 기쁘게 살기 원하면, 차를 구입하세요.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자동차 할부금 때문에 원망스러울 거예요. 6개월을 기쁘게 살려면, 집을 구입하세요. 일년을 기쁘게 살기 원하면, 새 배우자를 구하세요" 왜 이것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거예요. 저것만 있으면 내 인생이 기쁘고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그것을 가지고 나면 싫증을 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살아가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지쳐있을 때에, 우리 마음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찬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 그 증거로, 대부분의 찬송가들이 기쁠 때 작곡된 것이 아니에요. 그 찬송가 작곡가들이 가장 어려울 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와 같은 찬송가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노래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주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는 모습

    성숙한 신앙인은 언제나 주의 가르침 속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두 번째 주의 가르침을 삶의 기쁨으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은 주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55절을 우리 다같이 봅시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여기도 굉장히 어려운 단어가 하나 나와요. 뭘까요? '밤에' 왜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했을까? 시편기자가 도둑 출신도 아니고, 이 해석이 어려워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것은 항상 찬양한다는 얘기다. 항상 주의 말씀을 지켰다는 얘기다. 낮에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지켰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내가 주의 법을 아무도 안 볼 때에도 지켰나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저는 이 말씀을 선택합니다. 아무도 안 볼 때, 홀로 있을 때,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에요.

    사람이 볼 때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미국의 빌 하이벨스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이런 책을 썼어요. 그 책제목이 너무 좋아서 사서 읽었는데요. 제목이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홀로 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교회 있을 때 말고, 예배드릴 때 말고, 설교할 때 말고, 여러분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당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불러 모으는데,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이렇게 얘기해요. 나다나엘이 오자마자 "아!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마음속에 간사함이 없도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저를 아세요? 저는 처음 만나는데……." 그때 예수님이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하셨더니, 나다나엘이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며 예수님을 좇아갔어요. 무슨 얘기입니까? 아마도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나 봐요. 묵상하고 있었던 가 봅니다. 그것이 그의 습관이었던가 봐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혼자서 쾌락을 생각한 것이 아니요, 음탕한 생각한 게 아니요, 재물만을 생각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날도 무화과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이 혼자서 묵상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다나엘 머리 속에 든 생각을 아셨어요. 그래서 나다나엘이 놀라서 "당신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당신을 좇아가겠습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있을 때 당신은 누구십니까? 홀로 있을 때, 밤에 아무도 안 볼 때의 삶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삶보다 가정에서의 삶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겁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홀로 있을 때의 삶이에요. 공중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기도입니다. 교회에 드리는 헌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돈사용이에요.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머지 십 분의 구를 어디에 쓰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는가? 아니면 쾌락을 위해 쓰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기보다 돈을 더 믿기 때문에 그 돈을 이 땅에 꼭꼭 쌓아만 두는가? 교회에서의 헌신보다 개인적인 헌신이 중요하며 교회에서의 예배보다 개인적인 예배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신앙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사는가? 밤에 아무도 안 볼 때, 혼자 있을 때, 주의 말씀을 지켜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 깊이 받으십시오. 시편기자가 고백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참 신앙인의 모습은 아주 간단합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에서 위로를 찾고, 주의 말씀에서 참 기쁨과 노래를 얻어내며, 주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는 자입니다. 아무도 안 볼 때에도 주의 말씀을 지키는 거예요. 이렇게 고백한 다음에 시편기자는 마지막 결론을 내립니다. 56절 다같이 읽어봅시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의 재산입니까? 여러분의 재산이 얼마인가 하나님 앞에 계산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지킨 것, 정말 내 말 속에서 위로를 찾고, 내 말 속에서 기쁨을 얻고, 내 말을 아무도 안 볼 때 너희가 지킨 것, 그것이 너희의 진정한 재산이니라!"

    오늘 제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앞의 재산은 얼마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통장을 자랑합니다. 땅을 자랑하고, 아파트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전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단 하나, 주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킨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그 노력, 그 애씀, 그 헌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저금통장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 되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언젠가 가지고 사는, 귀한 영안 성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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