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은혜의 강가로 가기 위하여 2002-01-29 12:58:56 read : 2469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19:65~72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善待)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誡命)을 믿었사오니 명철(明哲)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律例)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脂肪)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苦難)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법이 내게는 천천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다 같은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스포츠, 학문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로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거기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탁구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탁구를 즐겨 치지만, 그 실력과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유학 시절에 만난 한 형제가 탁구를 참 잘 쳤어요. 특별히 선수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탁구장에서 살아서 그렇거나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탁구를 웬만큼 잘 치는 사람도 그 사람에게 10점을 따는 걸 못 봤어요. 하여튼 탁월한 운동신경과 아울러 연습을 통해 탁구를 굉장히 잘 쳤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저 형제는 국가대표를 해도 될 뻔했다. 왜 저 정도로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대표를 안 했을까? 참 불운하다" 이렇게 늘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국가대표선수가 저희 교회에 왔습니다. 국가대표선수를 한 달 전에 은퇴를 하고 미국 여행을 하다가 어떻게 해서 우리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게 되었는데, 그 사람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성도들이 "야! 시합 한번 시켜보자!" 고 했어요. 그런데 이 대표선수가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마지막에 제가 협박과 회유를 하면서 "질까봐 그러시나 본데 이미 은퇴도 하셨으니까 괜찮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어요. 저희 교회에는 체육관이 있어서, 온 성도들이 다 둘러앉은 가운데 시합이 시작되었어요. 결과가 21:1로 국가대표선수가 이겼죠. 그 한 점도 굉장히 어렵게 따냈어요. 15:0인가 되었을 때, 이판사판으로 때린 것이 탁구대 끝에 맞아서 한 점을 겨우 따냈어요. 제가 그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꼈어요. "야! 프로선수란 정말 대단하구나!" 프로 선수는 실수가 없어요. 대개 우리가 TV를 보면 프로끼리 시합하니까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아마추어하고 붙여놓으니까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피아노도 마찬가집니다. 요즘 거리를 나가보면 널린 게 피아노학원입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피아노를 다 잘 치는 것 같지만, 그 피아노 실력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손가락만 빨리 치면 그냥 잘 친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천양지차(天壤之差)예요. 저의 집사람이 피아노 전공을 할 때, 한동일 교수님께 맨 처음 배웠는데, 그때 제가 따라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빠른 부분을 못치는 게 아니에요. 나도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린 부분을 못치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하는 거예요. 우리 집사람이 하도 못 치니까, 한동일 교수가 저의 집사람을 피아노 앞에서 내려 오라고 하시고 직접 치셨어요. 그런데 저같이 피아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송장이 치는 것과 살아있는 사람이 치는 것 같은 차이를 느꼈어요. 제가 집에 와서 솔직하게 "여보, 당신이 치는 건 꼭 송장이 치는 것 같더라. 어찌 그걸 그리 못 쳐. 나도 치겠던데..." 그 느린 부분 때문에 집사람이 몇 년을 고민하더라고요. 프로와 아마추어와의 차이 여기서 나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다 똑같이 교회 나오고, 다 똑같이 예배드리고, 다 똑같이 성경 공부하지만, 그 신앙의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두 영안 교회에 나와서 다른 성도들과 같이 늘 예배드린다고 해서, 여러분의 신앙이 다른 사람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신앙의 수준의 차이가 엄청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이제 막 테니스에 입문해서 라켓 쥐는 법, 그립을 배우는 사람과, 세계적인 테니스선수 피러 샘프라스와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그러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한다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에요.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얕은 물가에서 늘 찰싹거리기만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부른 이 찬송가가 그런 찬송가 아닙니까? 이 작곡가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자신이 한때 얕은 물가에서 10년, 20년 신앙생활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모르고, 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신앙의 ABC만 되풀이 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찬송가를 작사하기를 우리 이제 얕은 물가에서 찰싹거리는 짓은 그만두고, 깊은 은혜의 강가에 우리의 몸을 던지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강가에 우리의 몸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얕은 물가에서 찰싹거리는 짓은 그만두고, 하나님의 은혜의 강가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본문에서 이 시편기자는 이 부분을 굉장히 신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강가로 나가기 위해선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최고의 선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선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고 얘기합니다. 무엇이 가장 선한 것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사실 이것은 시편기자의 얘기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이 굉장히 이상해요.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라고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기도한 내용은, 최고의 선(善)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이 왜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는 첫 단계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히브리 알파벳 아홉 번 째 글자인 '테스'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그 중에 중요한 단어는 '토브'입니다. 토브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선(善)'이고, 영어로는 '굿(Good)'입니다. 오늘 시편에 6번이나 등장해요. 사실 이 '선(善)'이라고 하는 단어는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인데, 구약성경에서 741번이나 등장해요. 오늘 이 시편기자가 말하는 선(善)을 알아보기 이전에, 먼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善)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좋다', '선하다'라고 하는 단어들은, 주로 물질적인 것을 좋다고 할 때 많이 쓰였어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시면서, 첫날 창조를 끝내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좋았더라' 그것이 '토브'이며 오늘 여기에 쓰인 단어와 같아요.
무엇이 좋았습니까?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한 물질 세계가 좋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에 있는 성도들은, 물질적으로 축복 받은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단적인 예가 신명기서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6장 18절을 보세요.
여호와에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땅'이에요. 바로 '선한 땅'입니다. '토브'가 쓰였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계명을 지켜 순종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아름다운 땅을 얻을 것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물질생활에 축복을 얻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토브! 하나님이 우리를 선대해 주세요. 어떻게요?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게 대해 주심은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신명기 30장 9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에서도 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네게 선을 베푸시되', '복을 주시되'에서 '선'과 '복'에 쓰인 단어가 '토브' 입니다.
" 너희에게 선하게 대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하게 대하시고, 복을 주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산물이 많게 되고, 우리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내 몸이 건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구약에 쓰인 '토브' 곧, 선함의 의미입니다.
점진적인 계시
오늘은 여러분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배우고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해석할 때 한가지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점진적인 계시'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해석방법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Progressive Revelation!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진리를 계시하실 때 한꺼번에 모두 펼쳐 보이신 게 아니라, 중요한 교리일수록 점차적으로 가르치셨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을 보면, 창세기에서 조금 희미하게 가르치시고, 그 다음 신명기에서 조금 더 가르쳐 주시고, 시편에 가서 조금 더 확실하게 가르치시고, 신약에 와서 완벽하게 가르치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점진적인 계시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은 교육방법으로 많이 쓰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막 들어간 어린이에게 방정식과 기하학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먼저 1 학년에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더하기, 빼기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 다음 구구단을 가르치고, 그 다음 중학교 들어가면 방정식을 가르치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한꺼번에 가르치면 우리가 못 알아들으니까, 먼저 우리에게 덧셈을 가르치신 거예요. 그 다음 좀더 어려운 것을, 그 다음 하나님이 가르치고 싶어하는 진리를 신약에 와서 환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점차적으로 가르치신 거예요. 이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목사님들 사이에, 그리고 교회에 혼란이 있어요.
어떤 목사님은 창세기를 보고,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복 받은 사람은 자녀가 잘 되어야 하고, 우리 몸이 건강해야 하고, 이 땅에서 부자가 되야 한다. 그러면 왜 건강을 잃었느냐? 왜 재물을 잃고 사업이 흔들렸느냐? 불순종했기 때문이야! 신명기에 기록되어있잖아!" 그런데 또 다른 목사님은 그렇게 안 가르쳐요. "제자들을 봐라! 예수님이 돈벌었냐?" 이렇게 되면, 어느 것이 맞는 거예요? 왜 혼란스럽습니까? 그것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아니하고 한쪽을 가르쳐서 그래요. 점진적인 계시!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善)에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 이 선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모세 오경에서는 무엇을 강조하셨는가? "얘들아 내가 말하는 축복이 무엇인지 아니? 내가 너희를 선하게 대하는 증거가 뭔지 아니? 너희 자녀가 잘되고, 너희가 건강하고, 너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아름다운 땅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예요. 처음 그림입니다. 여러분이 그것만 가지고 선(善)을 해석하신다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혼돈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인가요?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입니까? 자녀의 축복일까요? 건강일까요? 사업의 축복일까요? 이 모세 오경을 기록하고 난 이후, 천년 후에 시편을 쓴 이 시편기자는 그 질문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최고로 선한 게 아니에요. 오늘 시편기자가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축복과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요, 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65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주의 종을 선대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67절에 보면 이 시편기자가 고난을 당했어요. 주님께서 시편기자를 선대한 내용이 68절에 나와요.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님, 당신은 선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주님 제게 선을 행하시옵소서. 저를 축복하시옵소서" 그 축복의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내가 하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시편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세요. 교인들이 추구하는 가장 큰 축복과 가장 큰 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땅에서의 복이에요. 누가 이 영안 교회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줄 아십니까? 장수하고 건강하고 자녀가 잘되고 돈 많이 번 사람! 이런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진정 복을 받은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그렇게 믿는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의 강가 근처에도 못 간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예요.
우리 교회에서 가장 많은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땅에서의 선한 것들이에요. 이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선(善)이요, 좋은 것의 개념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 교회의 비극임을 아십니까? 우리의 선(善)의 개념이 여기 머무르는 한,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 주님을 믿은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善)의 개념을 가진 영(靈)적 어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젖병을 빨고 있는 어른과 같은 거예요. 갓난아이에게 최고의 선(善)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젖병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질문해 보세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젖병이 여전히 가장 좋은 것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어른이 되었는데도 젖이 너무나 좋아서 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음식이 필요 없고, 젖병 하나만 필요하다면, 여러분에게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치아를 모두 잃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씹어야 이가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건강 문제가 심각해 질 겁니다. 위(胃)와 장(臟)은 아이와 같이 작아지고, 수명은 매우 짧아져서 일찍 죽을 겁니다.
갓난아이일 때 가장 좋은 것이 어른 시절에 가장 좋은 게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해요. 이 땅의 물질적인 축복은 젖병과 같은 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 좋은 것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앙이 깊은 은혜의 강가에 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길 원한다면 좋은 것에 대한 분별력이 생겨야 하며, 좋은 것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 주님을 믿은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 땅의 축복만을 간구하고, 이 땅의 축복만이 가장 좋은 것으로 삼고 살아가는 영적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이 점진적인 계시에 의해 완성된 신약에서 복 받는 사람을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라 하셨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평안이 있는 자가 복 받은 자여야 하는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하셨어요. 여기 어디에도 건강한 자, 자녀가 잘되는 자, 사업이 잘되는 자, 성공한 자라는 개념이 조금도 없는 것을 아시나요? 이것이 신약에서의 완성된 복이었어요. 요한의 제자들의 삶을 보세요. 그들이 우리가 말하는 복을 받았습니까? 장수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다 일찍 죽었어요. 목이 잘려 죽고, 톱에 잘려 죽고, 불에 타 죽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자녀가 잘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재물 하나 모은 게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복 받은 자요, 그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을 이 땅에서 가졌던 자라고요. 그런데 그들은 그 고생 가운데서도 기뻐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좋은 것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것이었습니다.
깊은 은혜의 강가로 나아가길 원하십니까? 당신에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의 소원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 왜 신앙생활 하시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소원을 여전히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 오래 살아야 할텐데, 자녀가 잘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할텐데......' 등등 교회에 와서도 똑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에요. 옛날에는 불상 앞에서 빌었지만 이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비는 것만 다릅니다. 여러분,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영안 성도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좋은 것, 즉 주님의 제자로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소원하는, 살아있는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해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믿어야 우리가 깊은 은혜의 강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제자가 되어 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그 지고지선(至高至善)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참으로 놀랍게도 이 하나님의 지고지선에(至高至善)에 이르는 문은 다름 아닌 고난이라고 시편기자는 얘기합니다. 67절과 71절을 보세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지금 시편기자는 자신이 어떻게 이 최고의 선(善)을 분별하고, 이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간증하고 있는 거예요.
67절에서 시편기자는 두 가지를 크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입니다. 시편기자가 전에는 그릇 행하였어요. 그러나 이젠 주의 법을 지킨다고 합니다. 확연히 대조된 삶을 시편기자가 살게 되었어요. 과거에는 그릇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주의 법을 지키게 되었어요.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고난 당했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대조가 70절에 나옵니다.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대조가 나오는데 '마음이 살쪄 지방으로 덮여 있는 사람'과 '주의 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살쪄 지방으로 덮여 있는 사람이란 말은, 재미있는 표현인데 감각이 없다는 거예요. 이 표현은, 신앙생활을 하긴 하는데, 그 마음이 이 땅의 좋은 것들(건강과 물질의 축복과 돈과 직장의 성공 등등)로 영혼이 가득 덮여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조하고 있는 거예요. 살찐 지방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모르는 자요, 마음의 지방이 벗겨진 자는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예요. 지방이 벗겨진 자는 바로 주의 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무슨 얘기를 합니까? 마음의 지방은 고난이 와야만 벗겨진다고 합니다. 이 시편기자가 하는 하고 있는 얘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마음에 지방이 꽉 덮여 있었어요. 이 세상의 물질과 땅의 축복이 제일인 줄 알고 살아왔어요. 그래서 마음의 지방이 가득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좋은 것을 보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난이란 것이 닥쳐왔어요. 그 고난 중에 자신이 좋게 여기고 자신이 축복이라 여기던, 건강과 사업과 물질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어요. 그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시편기자의 눈에 한가지 참으로 좋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선(善),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이 보인 줄로 믿습니다. 이 최고의 선(善)을 보고 난 다음에 시편기자는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어요? 고난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찰스 콜슨(척 콜슨)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 사람은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의 보좌관이었어요. 그는 젋은 나이에 수석 보좌관에 앉았고, 명철하기로 소문이 났고,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보좌관이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저 사람은 언젠가는 큰 일을 하고 말 사람이다. 후임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고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요. 그러나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국회의원 도청사건)에 가담했어요. 그래서 그는 하루아침에 감옥에 가게 되었어요.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만 당했지만, 그는 감옥에 들어갔어요.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소망을 키워왔고, 굉장한 위치에 올랐지만,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자기 인생을 비관하고 낙심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어요. 그때 국회위원 중 세 사람이 그를 전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끊임없이 그를 찾아가 복음을 전했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세 사람 중 한 분이, 어느 날 법전을 읽다가 감옥에 있는 사람 대신 자기가 감옥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대신 감옥에 살려고 신청서를 냈어요. 그런데 이 신청서가 거절당했어요. 이유는 찰스 콜슨 보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척 콜슨도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이 노인이 찾아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그의 삶이 바뀝니다. 그는 감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빨래를 대신 해 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워낙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까 감방동료들이 처음에는 오해했어요. "저 놈이 보석으로 풀려 나가려고 수를 쓰는구나"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계속 빨래를 해 줍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회를 인도하는데, 그 감옥에서 사람들이 가득 차게 모였어요. 얼마 후 형량을 다 채우고 나와서 쓴 책이 유명한 'Born Again : 거듭나기'라는 책입니다. 그는 그 이후 '교도소 선교회'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만들어서 전 미국에 있는 죄수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데 헌신합니다. 얼마 후 그는 드디어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후 유명한 잡지에서 그를 이렇게 평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건전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 척 콜슨!"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 "평생동안 집안에서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비로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노라!" 그리고 그는 지금도 전 미국을 다니며 전도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척 콜슨에게 이런 변화가 왔을까요? 그건 다름 아니라 고난이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고난을 당하기 전에, 그는 오직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란 권력으로 높이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그는 드디어 그의 눈꺼풀이 벗겨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최고의 선(善),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 유익한 것, 하나님의 축복이 뭔지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 땅의 축복의 문이 닫힐 때 비로소 하늘의 창이 열리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믿는 자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기자는 이것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율례를 지키나이다" 고난을 당할 때는 괴로웠지만, 당하고 보니 그것이 자신에게 너무 큰 유익이 되었어요. 그 고난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어요. 여러분에게 이러한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 시편을 통해 저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권유를 하고 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1) 깊은 은혜의 강가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ABC를 버리십시오. 정말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이제 소원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십시오. 최고의 선(善)을 발견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잘 사느냐에 관계없이,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고, 해가 거듭될수록 내 인격이 변화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 믿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인줄 믿습니다. 마음에 이 소원을 품으십시다. "주님, 제가 얕은 물가에서 찰싹거리길 원치 않습니다. 이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기를 원합니다. 저를 강권하셔서 은혜의 강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 여러분의 영혼의 창을 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의 집으로 생각해 보세요. 배우자의 창, 자녀의 창, 사업의 창, 건강의 창들이 있어요.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들을 닫아버리는 날이 있습니다. 배우자를 일찍 데려가 버리고, 자녀를 일찍 데려가 버립니다. 사업이 무너져 내립니다. 건강을 잃습니다. 이런 인생의 모든 창들이 닫힐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 땅의 창들을 왜 닫으시는가? 하늘의 창을 여시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여러분 마음과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창을 여십시오.
영안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저 하늘을 바라봅시다! 저 축복을 바라봅시다. 참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71절을 보세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것이 여러분의 간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왜냐하면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최고의 선(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실직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고, 건강을 잃은 것이 내게 유익이고, 재물을 손해본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 배우자를 먼저 보낸 것이 내게 유익이라." 왜냐하면 이로 인하여 참 하나님의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법도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할 수 있는 자는 72절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입의법이 내게는 천천금은보다 승하나이다
어떻게 우리가 저 깊은 은혜의 강가에 나갈 수 있을까요? 최고의 선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선에 이르는 고난이 찾아올 때 여러분의 영혼의 창을 여십시오.
성도 여러분! 언제까지 우리가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우리 교회에 은혜의 강물이 흘러 들었으면 좋겠어요. 복음이 무엇인지 머리로 아는 자가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자들! 단칸방에 살아도 너무너무 행복하게 사는 자들! 이 땅의 축복은 이제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성도들이 여기에 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오늘날 이런 교회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자기의 재물을 꼽쳐두고 있어요. 하나님의 사업을 하자고 해도, 내 것, 내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하고 난 다음에 사치품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힘을 잃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의 강가로 이 시간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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