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처음 시작되는 날 2002-01-29 13:07:11 read : 232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라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교회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길거리에 지나가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붙잡고 교회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딱딱한 의식을 행하는 종교적인 집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 IMF 체제에서 노래를 하고 다니니,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요. 어떤 사람은 좋은 구호 단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교인들이 남을 돕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가진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남모르게 돕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겁이 많고, 지식이 모자라서, 목사에게 속아서 현혹되어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옭아 매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잘못된 평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가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올바른 기능을 한다면, 교회처럼 중요한 기관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교회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수많은 진리가 있는 것 같아도 모두가 멸망길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신 오직 하나의 진리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진리의 터전과 기둥이 무엇인가?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두 개의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1장 23절을 보세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살아있는 기관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상징은 빌딩입니다. 2장 20절에서 22절을 보세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것이 빌딩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몸과 빌딩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격체가 거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빌딩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몸은 영혼이 거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동시에, 이 땅에 예수님이 친히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십니다.
몸은 언제 생겼는가?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셨는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모든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 본문은 그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교회가 탄생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을 보면, 오순절 날에 교회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날이 교회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뜻에 의해 탄생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 교회는 빌딩이라고 얘기합니다. 빌딩을 짓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터가 필요합니다. 무형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한 터를 만드셨는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만드셨다고 합니다. 터가 두 개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원어에는 하나입니다. 그저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셨다고 얘기합니다.
열두 사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열두 사도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의 터를 사용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마지막 날에 하늘에서 하나님이 새로 만드신 성(城)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거기에 열두 대문이 있어요. 대문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성(城)은 열두 성벽으로 되어 있어요. 각 성벽에 기초가 놓여 있는데, 그 기초의 이름이 열두 사도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은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를 세우실 때에 사도들을 그 터로 사용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열두 사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열두 사도들이 훌륭하고 인격적으로 완벽해서 그렇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 가운데 한사람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가서 목매어 자살한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웠을까요? 이 해답은 지난주에 공부한 1장 후반부에 있습니다. 교회를 탄생시키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일을 행하셨어요. 그것은 열두 사도의 부족한 수를 채우는 것이었어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기 원하셨어요. 120명이 모인 가운데 제자의 자격을 두 가지로 제한했어요.
첫 번째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같이 따라다닌 사람이고, 두번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120명 가운데두 사람이 나왔어요. 요셉과 맛디아입니다. 두 사람 중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열두 사도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말로 해석되어집니다. 열두 사도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직접 본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교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세상의 지혜를 전파하는 곳이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하심의 진리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의 교회를 이 땅에 만드시기 전에, 먼저 열두 사도의 터를 마련하셨던 겁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이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교회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믿는 자의 무리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 교회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복음의 터 위에 당신의 신앙을 쌓으셨습니까? 당신이 교인이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긴 했지만,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데,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이 달려야 할 그 십자가에 대신 달려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인격적으로 믿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을 지으신 예수님을 마음을 열고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제 당신을 제 인생의 주인과 구주로 모시겠습니다" 라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고백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없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중요한 터전이 없는 교인들이 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유교, 불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교회는 사회 사업을 가르칩니다. 구제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래 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사회 사업 기관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어떤 교회는 화려한 예식을 행합니다. 어떤 교회는 병자를 고친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정작 터를 삼아야 할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이 빠져 있는 겁니다.
교회는 수십 년씩 다녔고, 자신이 모태 신앙임을 주장하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터조차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을 돌아보시고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어떤 이는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는 선지자라 하더군요" 하고 대답했어요.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당신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그 때 예수님이 너무 기뻐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천주교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하나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교황 제도를 둔 겁니다. 교황은 바로 베드로입니다. 교황이 되는 그 순간 그는 죄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 '반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중성명사를 썼어요. 베드로를 지칭했다면 남성 명사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1.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누구라도 이 고백을 하지 않은 자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인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나와 앉아 있지만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진정 교회이십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이십니까?
이 말씀 이후에 사도행전 2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장은 교회가 탄생할 그 당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장에는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이 오순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바로 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여러분, 생일날에 잔치를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처음 태어난 날은 얼마나 기쁜 날이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탄생시킨 날에 위대한 기적을 행하십니다. 첫 번째는 바람 같은 것이 임했고, 두 번째는 불같은 것이 임했고, 세 번째는 방언이 터졌어요.
사도행전 2장에 대해 성도들이 오해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교회에서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 2장을 근거로 해서 "당신 성령 받았는가?" 하고 묻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구원받은 것 따로, 성령 받는 것 따로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당신 구원받았소?" "예" "그러면 성령 받았소?" "예" "증거를 대 보시오" 라고 합니다. 머뭇머뭇하면 "당신 방언 하시오?" "못합니다" "에이, 아직 성령 받은 것 아니야!" 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성령 받고 방언 받으려면 안수 받아야 합니다. 요즘은 방언 3주 속성코스까지 등장했습니다. 학원비만 내면 방언을 받습니다. 어떻게 가르치는가? "할렐루야 ~~~~~"를 계속하다 보면 혀가 꼬여서 방언이 터진다는 겁니다.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교회를 탄생시킬 때 하나님은 누구를 보내셨는가?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어요.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셨어요. 그렇다면 사도행전 2장이 기록되기 전에는 이 땅에 성령님이 안 계셨을까요?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이전에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날 오셨다고 할까요? 구약에도 성령님이 활동하셨고, 창세기에도 흑암 위에서 운행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그 날 오셨다고 할까요? 이 말을 잘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 알아 듣기 때문에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겁니다. 성령님이 오순절에 오셨다는 의미는, 과거에 성령님이 안 계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에도 계셨지만 이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이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특별한 모습으로 이 땅에 임하셨다는 겁니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과거에 역사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셨지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에 오셨어요. 그렇다면 BC 4000년 전에는 예수님이 안 계셨는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 날 오셨다고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일하시고 떠나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떠나셔서 지금 여기 안 계십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십니다. 이 곳에 예수님이 계신 줄 믿습니까? 예, 계십니다. 그런데 왜 떠나셨나요?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오셨다는 말씀은 그 전에 계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특별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돌아가셨다는 말씀은 그 임무를 마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특별한 임무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속죄양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고 떠나셨다는 겁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실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람과 불이 임했고 사람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졌어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도 기적이 일어났나요? 예, 적어도 세 가지 기적이 일어났어요. 하늘에 이상한 별이 떴는데, 점성가들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별이었어요. 천문학자들이 유대 땅에 왕이 태어난 것을 알 정도로 이상한 별이었어요. 목자들이 양을 치는데 천사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동정녀(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처녀의 몸)를 통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어요.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고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한번 만드셨지 여러 번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만드실 때에 왜 바람과 불과 방언을 사용하셨을까요? 저는 모든 믿는 자들이 바람과 불과 방언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땅의 교회의 성격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세 가지 기적을 사용하신 줄 믿습니다. 이 세 가지를 공부하며,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의 성격을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이 활동하는 곳이어야 한다
2절을 보세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보통 바람은 옆에서 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위에서 불어닥쳤습니다. 바람은 머물 수가없어요. 그런데 오순절의 그 바람은 방안에 가득 머물러 있었어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중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것 외에 다른 그 어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바람은 종종 "능력, Power" 등으로 해석되었어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중생을 설명하십니다.
"네가 거듭나야 한다"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제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까?"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두 번 태어나야 된다"고 하십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네가 바람을 느끼지 않느냐! 그와 같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은 것이다!"
성령님을 바람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만지지 못하지만 증명하지 못하지만 바람은 있어요.
바람의 능력을 아십니까? 저는 이전에 텍사스에 살았기 때문에 터네이도를 조심하라는 교육을 아주 많이 받았어요. 고속도로를 가다가 터네이도가 오면 재빨리 다리 밑으로 숨어야 합니다. 차를 버리고 다리의 제일 밑에까지 바람이 안 닿는 곳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차가 비행기가 됩니다. 그 바람이 얼마나 센지 차를 감아 올립니다. 그리고 그 차를 공중에서 빙빙 돌립니다. 소가 공중에 떠서 날아다니고, 집이 완전히 부서집니다. 이번에도 이 터네이도 때문에 미국에서 50명 정도가 죽었어요. 그런데 그 바람을 볼 수 있습니까? 보여야 피하지요. 만져져야 확신을 하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바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교회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역사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증명할 수는 없어요. 바람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장소, 그곳이 교회입니다. 도저히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가 됩니다.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변화가 됩니다. 바람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 받고, 나쁜 습관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습니다. 이런 곳이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는 날마다 술 먹고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부인을 때리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곳에 찾아와 좋은 남편이 되고, 자녀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그 능력, 이것이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계십니까?
이전에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저는 가끔 토요일이 되면 주일이 다가오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제가 말씀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쉽게 성도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이 말씀을 한다고 그들의 삶이 정말 변화되겠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다!" 저는 그 말씀 믿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수많은 성도들 중에서 1년에 20명도 제대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큰 것이 얼마나 불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여러분을 치유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교인이며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3. 거룩함의 열망을 품은 자들이 모인 곳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활동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3절을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라
불이 아니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불이 동그랗게 피는 것이 아니라 불꽃이 삐죽삐죽 합니다. 그것을 '불의 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불이 아니라 마치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떨기나무를 보고 있을 때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십니다. 보통의 나무에 불이 붙으면 20초 정도 타다가 사라지는데 모세가 바라본 그 떨기나무는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신기해서 가까이 갔더니, 하나님이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 백성을 구원하라!"
구약성경에서 불은 정결함을 상징했어요. 불은 더러운 것을 태워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태워서 드립니다. 그 의미는 완벽하게 깨끗하게 해서 드려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순절에 교회를 세우실 때, 왜 불의 혀 같은 것을 임하도록 하셨는가? 그것은 교회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교회는 깨끗한 곳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 교인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한가지 특징이 여러분 안에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은 깨끗하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내가 비록 어제는 죄를 지었고, 지난 밤에도 실패했지만, 정말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은 그 마음 안에 깨끗케 되려는 소원이 있는 겁니다. 이 열망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닐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얘기하기를,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원어로 보면 그 말이 분명해 집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 구절에서 현재 시제형을 썼습니다. 이 말은 죄는 죄인데, 반복적인 죄를 말합니다. 습관적인 죄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은 과거의 죄를 청산하지 않고, 여전히 부정직한 짓을 행하면 그는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깨끗하고 싶은 열망이 생겨 나기 때문입니다.
D.L 무디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가다가 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어요. 그 후 뉴욕거리를 지나가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어요.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 깨끗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붙잡힌 한 사람이 없어서 고통 당하고 있다!"
그 말씀이 가슴에 심겼어요. 무디 자서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집까지 가지 못하고, 주위에 있는 친구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방 하나만 빌려 달라고 했어요. 그 방안에 들어가서 D.L 무디가 통곡을 하며 엎드립니다.
"하나님, 저를 정결케 해 주십시오! 제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배운 것 없는 구두수선공인 D.L 무디를 들어 그 혼란스러웠던 미국을 바꾸셨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그리스도의 몸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거룩함을 향한 열망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에 2,30년 다니고도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영안 교회의 예배당은 교회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안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 각자의 마음속에 거룩함을 추구하고 깨끗함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의 가정을 거룩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직장을 부정이 없는 곳으로, 우리의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4. 메시지를 증거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자들이 모인 곳이다
세 번째 기적이 방언입니다. 방언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습니다. 10, 20년 전에는 부흥회때 방언을 받게 하려고 했어요. 저도 명색이 전도사인데 방언도 못하나 해서 열등감을 느끼며 안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저는 아직도 방언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원에 가정부를 데리고 가서 가정부는 방언을 받고 주인은 못 받았어요. 그러면 "아!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가정부에게도 주시는 방언을 왜 나한테는 안 주시나요!" 라고 울부짖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방언이 무엇입니까? "랄라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언어입니까? 아닙니다. 그 곳엔 120여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수십 개국의 사람들이 모였어요.
예를 들어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언어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설교하는 말씀이 동시통역도 없는데,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기 나라말로 다 알아듣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인에게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영어가 탁 터져 버리는 겁니다. 평소에 제가 못하는 외국말들이 터지는 겁니다. 오늘날 이런 방언 하는 사람 보았어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은 적어도 이런 방언이었어요.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습니까? 거기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는 겁니다. 복음 증거 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사건을 바벨탑이 회복된 사건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 졌는데, 이 날만큼은 원활한 의사 소통을 했어요.
의사 소통을 해서 어떤 말을 했을까요? "그래, 녹용이 몸에 좋아!" "어제 얼마 벌었어?" 그런 얘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11절을 보세요.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어요. 그 큰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놀라운 일,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일을 말하게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교회는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곳인 줄 믿습니다. "내가 증인이 되겠나이다! 내가 복음을 받았으니 죽어져 가는 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나이다!" 그렇게 증인이 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증인으로 만들어 능력을 부어주시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수많은 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셨습니까? 교회의 일원이 되셨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계신가요?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고 계신가요? 주의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리고 복음 위에 여러분의 신앙을 건축하고 계신가요? 오늘날의 이 세대는 교회만이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몸만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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