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한 자들의 할 일 2002-01-29 13:08:15 read : 2351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2:14~2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은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요즘 나토군의 오폭(誤爆) 사건이 세계의 관심사입니다. 오폭(誤爆)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중국 대사관의 4명 때문에 더욱 세계가 들썩거립니다. 그래서 한국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계속 긴장상태가 되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폭(誤爆)으로 죽었는데 4명 죽은 것 가지고 왜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죽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죽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중국의 대사관에서 죽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대사관'이란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신체에 비유하면 얼굴과 같은 곳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중국의 뺨을 갈긴 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편지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사관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체의 다른 부분은 의복으로 다 가리지만 얼굴은 가리지 않습니다.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리고 다니는 사람 보았습니까? 얼굴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헬라어에 보면 '화장'을 '코스모스(우주)'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질서'입니다. 화장은 질서를 잡는 작업인 것입니다. 까맣게 할 곳을 까맣게 하고 하얗게 할 곳을 하얗게 하면서 질서를 잡는 겁니다. 요즘은 아예 재시공을 하더군요. 뽑고 그리고 난립니다. 어쨌든 저는 여자들이 화장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이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잘 생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아주 착하고 예의 바르다고 얘기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고 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고 침을 흘리고 잔 표시를 내고 돌아다닌다고 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정결하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그 사람과 교제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저도 저희 집사람에게 10분 정도 일찍 일어나서 꾸미고 나타나라고 부탁합니다. 여자 분들은 먼저 일어나셔야 합니다.
성경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에 대해 똑같은 맥락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는,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는 하나님의 얼굴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얼굴이란 단어를 가리킨 것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단어를 수없이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다. 즉, 대사관이다. 내가 너희를 세상의 대사관으로 보내었노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이 모든 얘기들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싫든 좋든 하나님의 얼굴 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한국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깊이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겉으로는 부흥하고 성장했지만, 과연 그 동안 세상에 하나님의 모습을 올바로 보여 주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실패한 여러 부분 가운데서, 오늘 본문과 관계가 있는 한가지는, 성령 하나님과 성령 충만에 관한 모습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성령 충만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연합기독교회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가운데 한 질문이 "여러분은 성령, 성령 충만하면 어떤 것이 연상됩니까?"였는데, 1위는 아우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위는 광란, 3위는 소란, 4위는 신비한 체험, 5위는 일시적 흥분, 그 다음으로 군중 심리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이런 성령을 당신도 받고 이런 체험을 하고 싶습니까?"였는데, 대답은 "절대 아니다" 로 나타났습니다. 이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런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성령을 주시긴 주시되 조금만 주십시오! 절대 성령 충만하게 하지는 말아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제 주위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볼 때,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집에 가면 밥주걱으로 애들 뺨을 때립니다. 그리고는 역에 가서 전도한답시고 띠 두르고 전단지 나눠 주면서 확성기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소리 지르고 집에 와서, 그 날 밤에 남편하고 한판 싸우고 남편을 내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다 저렇게 이상하게 되나보다. 하나님, 성령을 조금만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뼈아픈 현실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 교회시대, 성령시대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에 대해 한국 교회는 세상에 올바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어요. 이 거룩한 재산인 성령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이 혐오하는 자가 되었어요. 성령 충만하면 저렇게 이상하게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이상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이상한 분이십니까? 성령 하나님이 광기가 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얼굴 노릇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하나님께서는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교회가 탄생하는 그 날, 교회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몇 가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주위에 모였던 사람들이 너무 놀랐습니다. "야! 신기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3절에 "아니다, 저들이 미쳤다, 술이 취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서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설교가 20%를 차지하고 있어요. 스데반의 설교까지 합치면 사도행전의 1/4 이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분연히 일어나 두 가지를 설교합니다. 한 가지는 부정적인 설교요, 나머지 한 가지는 긍정적인 설교입니다. "오늘 너희들이 본 것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러이러한 것이 아니다"와 "그러한 것이 아니고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고 긍정으로 두 기둥을 세웁니다. 먼저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 살펴봅시다.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15절)
제 삼 시는 오전 9시를 가리킵니다.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일어나자마자 술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이 아침 9시니까 술이 취할 리가 없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16절을 보세요.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This is ~, 이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하면서 바로 요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기원전 830년 전에 "앞으로 놀라운 시대가 열릴텐데, 그 시대를 너희들이 어떻게 알아보느냐, 그 시대가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얘기했어요. 그 가운데 가장 신기한 것은 방언이었습니다. 오늘날 "랄랄랄" 하고 연습해서 얻는 그런 방언이 아니라, 한국말로 설교해도 여기 앉아 계신 미국 사람들이 바로 영어로 알아듣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런 현상을 보거든 내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줄 알아라! 그 시대는 참으로 놀라운 시대이다. 내가 그 시대에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이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한 단어를 바꾸었어요.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요엘서에 보면 '그 후에' 라고 되어 있어요. '그 후에'란 '메시아가 이 땅에 오고 난 후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말세'로 바꾼 겁니다. 그렇다면 말세는 언제일까요? 성경적인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보통의 시간적인 개념과 상관이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그때에 이미 말세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세는 언제 끝나는가? 요엘서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한번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 날 말세는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간 세대에 살고 있어요. 말세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말세에 살았고, 저와 여러분도 말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 성령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창립하시던 그 오순절 사건과 주님께서 장차 이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사이에, 하나님은 놀라운 시대를 여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시대는 바로 성령님과 관련된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령을 어떻게 주시는가? 오늘 말씀 가운데 그 몇 가지 특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이 단어가 중요한데 이것은 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주시는데, 그 방법이 풍부하게 주시겠다는 겁니다. 조금씩 주시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 같이 부어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영원히 부어 주시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어주신 것은 다시 담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는 성령 하나님을 주셨다가 다시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게서 성신을 거두어 가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죄를 범해도 그 성령 하나님은 내게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것을 조직신학적인 용어로 '성령의 내재하심(In dwelling of the Holy Spirit)' 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셨습니다. 엘리에게서 떠나셨던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특별한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그 후에 자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원어에 보면 이것은 아들과 딸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나오고, 남종과 여종이 나옵니다. 이 말은 성령을 보편적으로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여기에 벌어질 것을,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 기원전 830년 전에 예언해 주셨던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 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게 될 중요한 일 몇 가지를, 본문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성령 충만한 자의 모습은 어떠한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한국 사람들은 '예언'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한국말로 표현하기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의미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예언'에 대해, 미래의 막연한 일을 먼저 얘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예언'하면 바로 '점쟁이'와 연결 시켜버립니다. 점쟁이와 예언자의 한가지 다른 점을, 예언자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약간 더 많이 알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하루는 집에 있는데 기도원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원장님이 내려와서 예배를 봐 주시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한참 예배를 보더니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 이 집에 올 봄에 꽃이 피겠구먼!" 제 속으로, 봄에 꽃이 피지 꽃이 지냐 하는 마음이 들면서 반감이 일었어요. "그게 무슨 소린지?" 어머니가 물었더니, 봄에 누나가 시집을 가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웬 걸요? 저희 누나는 그로부터 5년 후 가을에 결혼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모두 예언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의 막연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들을 얘기했어요. 예언자의 사명은 두 가지였어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미래에 역사 하실 일들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서론에 해당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너희들은 오늘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나님이 장차 심판의 칼을 들고 계시니까 너희는 지금 회개해야 된다" 이것이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핵심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들은 예언을 말씀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살펴보면, 이사야, 다니엘, 에스겔 등,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기도할 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성령 충만한 사람인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미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미신을 믿는 목적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한 가지 방법은 열심입니다. 지성과 정성,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면서 빌고 또 빕니다. 거기엔 신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저의 아파트 앞에 그렌저 승용차를 뽑아 놓고, 스님이 서 계시고 부부가 나와서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돼지머리가 놓여 있어요. "오, 신이여! 가르쳐 주옵소서. 이 그렌저 승용차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디를 가야 합니까? 당신의 뜻을 계시하옵소서!"하고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사고나지 말게 해 달라는 겁니다. 그 다음은 주문과 의식입니다. 열려라 참깨! 수리수리 마수리! 그 뜻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세계대백과 사전을 찾아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 아무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문일 뿐입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의 뜻을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은 나 자신의 유익입니다.
여러분은 왜 성령 충만을 구하십니까?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정말 주의 뜻을 사모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간절히 원해서, 성령 충만을 갈급해 하고 계십니까? 내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를 대학 입학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기 위한 은사를 받기 위해, 나의 황홀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갈급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한국 교회는 이런 면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서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바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2:11~16)
사도 바울은 자기들이 성령 충만한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멸망의 구렁텅이로 질주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심령을 아는 자가 없단 말입니다. 누가 그들을 깨우치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러한 성령 충만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녀와 아내에게 가르치고 친구와 이웃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령 충만한가를 간단히 체크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내 자녀와 가족,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전파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 비전을 가진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요엘서에는 '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쉬운 말로 바꾸면 '비전'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들은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비전을 정의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우리의 마음에 받는 것입니다. '환상'이라고 하니까 성령 충만한 자들은 망령된 꿈을 꾼다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긴 꾸는데, 비전을 가지긴 가지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내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세요. 비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습니까? 모두가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쾌락이 그들의 우상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즐기고, 재물을 모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비전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에 담지 못했어요. 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합니까? 재물을 더 모으기 위해, 축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비전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강하게 부어 주셔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에 가진 것을 나도 갖게 된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약 200여 년 전, 한 무명의 청소년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17세 때 수많은 청소년이 타락하고, 출세를 위해 명문대학을 가고 있는 그때에 영국에서 살고 있던 이 청년이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어느 날 설교 시간에 저 넓은 중국대륙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에 불탔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 나라의 가난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하루에 두끼를 먹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렇게 풍족하게 먹고 있는데 어떻게 선교사로 가겠는가 반성하며, 그도 하루에 두끼 먹는 것을 훈련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그의 체중은 10Kg이 줄었어요. 중국에는 차(car)가 흔치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16Km씩 매일 아침 구보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훈련했습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그가 가졌기 때문입니다. 17세 청년의 비전으로 말미암아 중국에 놀라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요? 하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잠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비전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나요?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광부에게 아들이 있었어요. 너무나 배가 고팠어요. 때로 구걸을 했어요. 그러나 그는 매일 찬송을 했어요. 이런 찬송입니다. "가난 너머에 찬란한 미래, 오! 가난의 너머에 내 찬란한 미래가 있네!"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비전을 싹틔웠습니다. 아버지가 광부였으니 그 가정이 얼마나 가난했을까요! 그런데 그 동네의 한 중년신사가 그의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년신사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젖어 있다가 그 소년에게 와서 "네가 내 아들이 되어주겠니? 내가 너를 위해 모든 학비를 대 주겠다" 그 날 이후 그 소년은 가난을 떨쳐버리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마음 안에 있는 비전을 품고 그 가난 안에서도 찬양을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신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시대를 구원한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를 통해 역사 하시는가? 비전을 가진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를 찾고 계십니다.한 미국 땅 뒷동산에 네 명의 젊은이가 모여 있었어요. 타락하는 미국을 바라보며 슬퍼하며 "주여, 미국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 동네를 주옵소서!" 네 명이 모여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의 시야가 세계로 넓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한 젊은이를 들어서 세계를 변화시키셨습니다. 네비게이토의 창시자 도슨 트로트맨입니다. 그 날 거기에 있었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시끄럽게 남에게 광기를 보이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심는 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바라보며 안타까워서 주님의 비전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 나를 드립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찾으십니다.
당신은 비전이 있으십니까? 누군가 종이를 한 장 주며 당신의 비전을 물으면, 평생을 통해 이 일만은 꼭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쓰시겠습니까? 10억 통장, 50평 아파트, 자녀의 대성공인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예레미야는 민족을 구했어요. 다니엘, 에스겔은 그 타락한 민족을 구했어요.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비전이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3. 소망 속에서 산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세 가지를 한가지로 묶는 학자들도 많지만 분리해서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저는 후자의 해석을 따라서 말씀드립니다. '꿈을 꾼다'는 말은 소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늙은이'는 누구를 지칭할까요? 저희 아버님이 올해 83세입니다. 숙부님이 77세입니다. 숙부님은 아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자주 찾아뵙습니다.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지에 대해 집사람과 많은 얘기를 합니다. 건강도 나빠지고 할 일도 없어집니다. 숙부님은 평생을 목회를 하다가 하실 일이 없으니 저만 가면 부흥회를 하시는 겁니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숙부님 말씀을 들어줍니까?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으로 위로를 많이 드립니다.
그 교회가 성령 충만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에 계신 어른들이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를 보면, 그 교회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늙는 것을 누가 막습니까? 전도서에 보면, 맷돌질을 하지 못하게 되고 창문은 뿌옇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게 되면 내 몸은 비록 늙더라도, 늙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소망을 갖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청년 때 부르지 않으시고 인생이 끝날 즈음인 80세에 불러서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하셨던 겁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갈렙에게 누가 헤브론을 차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젊은이들이 다 겁이 나서 그 강한 헤브론 성을 차지하기를 꺼려했을 때, 갈렙이 나이 85세에 나와서 "내가 그 성을 차지하겠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가 소망이 있는 자인 줄 믿습니다.
저는 저희 할아버지가 80세 되던 해부터 평생 같이 살았습니다. 6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어릴 때 생각에도, 사람이 나이 많아 늙으면 인생이 점점 비참해질텐데,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사시는지, 새벽에 일어나면 발부터 씻으시고, 극동방송 설교를 들으시고, 성경을 보시다가 감격이 되면 저를 불러서 설교를 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같은 설교, 오랜 설교를 듣는데는 도가 텄어요. 그분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목사의 인생이 저런 것이라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제가 있게 된 연유입니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한 불행한 소년이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평생을 어머니와 다락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다락방이 얼마나 작은지 아시지요?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인생과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소망을 불어넣어 주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날마다 아침이면 간절한 글을 썼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내 자신에게 소망을 불어넣어 주고, 나와 같은 불행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가 바로 안데르센입니다. 그는 동화를 통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충만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습을 오늘 이 말씀에 조명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와 이웃에게 부지런히 전파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 심장 한가운데 간직하고 살아가십니까? 이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아름다운 주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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