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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대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2002-01-29 13:10:26   read : 254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2:37~41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올바른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눈을 가졌다고 다 똑같은 것을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을 많이 느꼈어요. 아내와 저에게 똑같은 아이인데 아내가 더 많이 알아듣고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웅얼거리면 어머니가 다 알아듣고 통역을 하잖아요. 저도 사랑의 아버지가 되어 보려고, 아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잘 안되더군요. 그런데 아내는 기저귀가 젖었는지 배가 고픈지 귀신같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내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예수님께서 단수, 즉 한쪽의 눈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의 눈을 얘기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고 안목을 얘기한 것 같습니다. 영적인 눈을 얘기한 것이고, 인생을 올바로 보는 능력이 있으면 온 인생이 밝아질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올바른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보면 두 가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세계요, 또 한 가지는 사탄의 세계입니다. 생명과 영생과 평안의 세계가 있는 반면, 파멸과 죽음과 죄악의 세계가 나란히 이 세상에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영(靈)의 눈을 가진 자에게 이 두 가지 세계는 확실히 보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세계를 모두 보고 계십니까?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기 전에 너희가 살았던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평범한 삶을 통해 볼 때, 위의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너희가 일전에 심장마비와 뇌출혈로 죽었던 것을 내가살려냈도다" 이렇게 말씀해야 타당하지요. 그런데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한번도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이 죽음의 세계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사탄의 노예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세계와 사탄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3절을 보세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는 우리는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실 때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보내셨기에,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그 분의 뜻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만을 채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대해서 수없이 얘기를 합니다.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눈이 밝아져 이 두 세계를 발견하고 사탄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 그것을 성경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옮겨가는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설교 마지막에 수천 명의 백성들 앞에서, 그의 마음을 쏟아 권면합니다. 40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성경에서 구원을 얘기할 때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혼돈하면 성경을 올바로 읽을 수가 없습니다.

    1) 종국적인 구원 :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때 우리는 죄와 상관이 없게 됩니다. 완전히 거룩한 자로 됩니다. '미래적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구원은 지금 현재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남아있을 때 우리에게 해당되는 구원은 신분적인 구원과 과정적인 구원입니다.

    2) 신분적인 구원 : 쉽게 얘기하면 사탄의 세계에 속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세계로 소속을 옮기는 겁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내 호적이 사탄의 집에서 파져서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집니다. 이것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구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 과정적인 구원 : 성화적인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간 사람들이 이 땅을 위해 살지 않고, 사탄의 종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입적한 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고 나서 날마다 이루어져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적인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구원받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서,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으로 날마다 드리고 있습니까? 이 두 가지 구원을 염두에 두시고,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37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 본문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마음이 찔리다"는 어떤 뜻일까요? 성경 곳곳에 보면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역할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히브리어 4장 12, 13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크게 두 가지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소설이 아니며, 고대의 문서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움직임과 능력이 어떠하며, 그 역할에 대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표현해 주십니다. 예리한 칼로 종이를 잘라 보셨습니까? 칼이 예리하면 10장이 넘는 종이도 두부 자르듯 똑바로 자를 수 있습니다. 칼이 무디면 한번에 다 잘라지지도 않고 지저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면도날보다도 더 예리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물건을 자를 수는 있지만, 우리의 마음을 자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자를 수 있는 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얘기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한다고 하니까, 관절염 고친다고 하나님께 가지말고 자기에게 오라는 기도원 원장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몸을 치료하는 능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죄까지 다 드러내어서 그 죄를 수술해 주신다는 겁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끊임없이 자기를 숨기는 존재입니다. 속에는 온갖 탐욕과 정욕과 더러운 것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환한 미소와 거룩함으로 남 앞에 나섭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얼마나 고민하는지 모릅니다. 토요일 밤이 괴로운 이유는, 제가 오늘 거룩한 모습으로 이곳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죄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정결케 하고 이 자리에 서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혼의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변장하여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기를 좋아하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다 토로할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너무나 숨겨진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은, 그 말씀을 올바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내 마음 속 깊이 감추어졌던 더러운 것, 죄악된 것들을 나타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을 드러내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네 가지 밭에다 비유해 주셨습니다.

    1) 길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길가와 같이 작정합니다. 요즘 가야로 포장공사가 한창입니다. 콘크리트는 굉장히 단단합니다. 옛날에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없었어요. 그 당시 가장 단단한 땅은 길이었어요. 진흙 밭을 사람들이 밟고 다닙니다. 비가 옵니다. 또 밟습니다. 10년, 20년이 흐른 후 그 길은 아스팔트와 같이 단단해 집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 능력이 있지만, 길가와 같이 마음먹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소용도 없이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새가 와서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오늘 교회 안에 그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 돌짝밭입니다.

    위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이 뿌리를 약간 내리려고 하니까 돌들이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습니다. 때론 감동 받아서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3) 가시밭을 말씀하십니다.

    제법 뿌리가 내려가고 싹이 나고 줄기가 납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죽고 맙니다. 말씀을 잘 받은 것 같고, 성경공부도 잘 했습니다. 새가족 5주 성경공부도 마쳤어요. 영안 교회에 등록도 했어요. 그러나 이 세상에 대한 염려와 물질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세계보다는 사탄의 세계, 쾌락의 세계, 죄악의 세계를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 버리는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 옥토입니다.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이 내 마음의 그늘진 곳을 드러낼 때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오! 하나님, 저를 맡깁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을 예수님은 옥토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기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었다고 성경은 증언해 줍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마음에 찔려 마음 문을 열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하나님 말씀이 역사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목사님들끼리 모이면 여러분이 모르는 농담들을 많이 합니다. 설교를 듣는 청중의 종류를 몇 가지로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가자미형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자미눈이라고 합니다. '좌광우도' 눈알이 왼쪽이면 광어, 오른쪽이면 도다리입니다. 하여튼 가자미는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어요. 태어날 때는 똑바로 되어 있는데, 자라면서 바뀌는 겁니다. 값이 차이가 납니다. 광어는 싸고 도다리는 좀더 비쌉니다. 가자미형은 설교를 들으면 "저놈의 남편이 혹시 조는 거 아냐? 이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자신에게 적용은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다음, 불독형이 있습니다. 불독은 마주치면 싸우려고 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 "아이구, 저 목사가 또 날 치는구나!"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설교 마치고 나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목사님, 어떻게 지난주에 이런 일이 있었던 걸 아셨어요?" 좋게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불평을 털어놓는 겁니다. 왜 자기 얘기를 설교 시간에 인용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 앞에서 얘기하지만, 설교할 때 어느 누구를 의식해서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설교를 하고 나면 어떤 경우엔 열 명 가까이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 나를 향한 말씀이구나!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사용해서 지난 주간에 있었던 나의 잘못을 지적하시는구나. 주님, 제 삶을 수술하고 계시는군요. 아버지 하나님, 제 마음을 엽니다! 제 마음을 옥토로 만들겠습니다!" 하고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나요? 사탄의 세계에서 하나님 세계로 옮겨간 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날마다 자기의 삶을 성화시켜 나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으로 남은 평생에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구원받고 신앙이 자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나를 맡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37절을 보세요.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누가는 수천 명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후의 그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기록합니다. 한가지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마음속 깊이 박힐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에 찔림 당한 후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어찌할꼬'의 자세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자기가 취사선택합니다. 너무나 많은 말씀을 들어서 지식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기분에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생각이 맞지 않으면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하나의 공연이 되어 버립니다. 가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분이 있어요. "목사님, 오늘 설교 따봉이에요. 따봉!" 오늘 공연 좋았다는 거죠. 그 말만 하겠습니까? 밖으로 표현은 못해도 "목사님, 오늘 설교는 죽 쒔어요!" 라고 하겠죠. 설교가 탤런트가 연기하듯 되어 버렸어요. "야! 설교 잘한다" "저 목사님, 설교 준비 안 하셨나 보구나!"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의 수천 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반응을 보였어요. 자신들의 속을 하나님 말씀으로 들여다본 이후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기를 원했던 겁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1:1로 만난 자들은 이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이사야가 그러했습니다. 나라가 위기 가운데 빠졌어요.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어요. 나라가 문제인줄 알았더니,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 자기의 영혼이 문제임을 깨닫고 "오라,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맡기는 역사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 가운데 가장 높은 스랍을 보내주셔서 그의 죄를 먼저 정결케 해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한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녀서 친구같이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능력이 많은 선지자인줄 알았어요. 그러나 평생을 어부로 자란 자기도 모르는 한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얘기합니다. 순종해서 던졌더니 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순간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깨달았어요. 그 분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더러움을 본 것입니다. 그 날 베드로는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울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의로운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기 위해 그 날도 면허장을 얻어 다메섹으로 성도들을 잡으러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취며 사울은 눈이 멀어 버렸어요. 당황한 나머지 말에서 떨어져서 그는 부르짖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 다음 사울이 한 말은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당신이 말씀하옵소서. 말씀하는 대로 제가 순종하겠나이다!" 사울은 그 순간 하나님 말씀 앞에 자기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뿐 아니라 그의 일생을 맡긴 자 된 줄 믿습니다.

    "주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내 어디 가리이까!"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임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주여,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합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여! 제가 당신 앞에 제 인생을 맡겨 드립니다.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세상에 단 하나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 말씀 앞에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맡겨보지 않겠습니까? 이 문서화된 하나님 말씀이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음성으로 여러분의 가슴에 와 박힐 때,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할아버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평양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입니다. 저희 할아버님은 말씀을 그렇게 잘하는 분이 아니셨어요. 똑같은 복음 한마디를 들고 설교했을 때 그 온 동네에 참회개가 일어났다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하나님 말씀을 접하고 있어요. 라디오, 테이프, TV 등을 통해서, 수많은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은 길가가 내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기도합시다. "주여, 제 마음을 갈아엎어 주시옵소서! 옥토로 만들어 주옵소서! 작은 어린아이의 음성 하나를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마음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저녁놀을 보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바다를 보고 있어도 주님은 말씀하세요. 저는 그런 것을 너무나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부산을 좋아합니다. 해가 질 때 바다나 산에 나가면 하나님이 얼마나 말씀을 많이 주시는지 모릅니다. 산보하러 나갔다가 무릎을 꿇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수건을 온통 적시고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 앞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바꾸라

    38절과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죄 사함을 받게 되고 깨끗하게 되고 구원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건은 단 하나, 회개하고 침례 받는 것입니다.

    회개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후회로 생각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그리그의 회개란 말은 너무도 정확해서 아무도 오해할 필요가 없어요. 그것은 내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겁니다. 과거에는 이런 태도로 살았는데 오늘 이 순간 회개하고 나서 내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겁니다. 내 생의 방향을 동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트는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무엇을 하여야 구원받습니까? 무조건 마음을 튼다고 됩니까? 누구에 대해 마음을 트는 것이 회개입니까? 37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 말씀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어요.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세 가지를 설교했습니다. 무엇에 대해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단순히 정치가, 혁명가,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을 지으셨는데, 우리가 죄악의 길로 달려가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께 못 박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로마 군병과 서기관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설교하기를 "너희가! 바로 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라고 설교하자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렸던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회개가 필요합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오! 아버지 하나님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마땅히 거기에 달려야 되는데 왜 죄 없는 당신이 달리셨습니까! 주님, 바로 저의 죄 때문이군요. 제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았군요!" 이 사실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갇히지 않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얘기합니다. 이 세상을 예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을 누가 심판하실 것인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가운데 성자 하나님,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구멍난 못 자국과 옆구리 상처를 입으시고 심판석에 앉아서, 당신을 심판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바꾸라고 얘기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오! 주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제가 마음을 열고 회개합니다. 교만해서 하나님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 땅의 돈만 위해 살았습니다.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주여! 제 마음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저를 받아 주옵소서!" 이것이 회개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한' 이라는 단어를 연구해 보면 문자적인 뜻은 '구부러진 것'을 의미합니다. 비비꼬이거나 비틀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지금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비틀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 '부정직한 세상'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교활하고 거짓 투성이 세상이라는 겁니다. 따로 이 세대가 패역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뉴스 5분만 들어보면 이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것입니다.

    한때 세 여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여인은 한 교회에 출석하는 집사요, 권사였습니다. 교회에 나와 앉아 예배드리는 그들이, 복음을 받았다고 집사 직분을 받은 그들이, 서로 고소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단 한사람도 정직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패역해졌는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 얘기할 것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린 자들이 사업장에 나가서 거짓말합니다. 가정에서 아내, 남편에게 거짓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오늘 이 구원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구원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화적인 구원이 남은 생애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겁니다.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리아라는 엄마와 크리스틴이라는 16세 된 딸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모녀끼리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수가 없어서 아주 많은 고생을 하며 가난하게 변두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사춘기가 되자,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나서 언젠가는 저 도시로 나갈 거야, 엄마!" 그러자 마리아가 말립니다. "어른이 되어서 나가야 해. 네 나이에 나가면 네가 돈을 벌 수 있을 줄 아니? 많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어. 나가지 마!"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딸의 방문을 열어 보니, 방이 비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드디어 그녀의 딸이 가출한 사실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 딸은 대도시인 리오 데 자네이로에 나갔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급히 자기 가방을 꾸립니다. 여행 준비를 다 마치고, 버스를 타고서 마지막으로 사진관에 들렀습니다. 자기의 증명사진을 찍고 그 흑백사진을 수 백장 인화해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딸이 있을 법한 곳으로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진을 부칩니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바에 들어가서 화장실 거울, 온 시내의 게시판과, 볼 만한 곳에는 모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크리스틴은 집에서 들고 온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흘동안 굶어서 배는 고프고, 감지 못한 머리는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회의에 빠져, 허름한 2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내려오는 그 순간, 크리스틴은 게시판에 붙은 조그만 사진을 보게 됩니다. 매우 낯익은 사진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그 사진을 뗐더니, 사진 뒤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틴! 내가 너를 너무도 사랑한다. 네가 그동안 무슨 일을 했던지, 그리고 지금 네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제발 돌아오기만 해라! 엄마가." 그 날 저녁, 그 딸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얘기는 실화입니다.

    참 구원이란 무엇인지 아십니까? Coming home!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아버지, 당신이 날 만드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귀한 존재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돈만 벌고 죄만 짓고 사탄의 종노릇하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로 이 땅에 목적이 있어서 저를 보내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제 맘을 바꿉니다. 제가 당신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얘야! 네가 어떤 일을 행했던지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네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던지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돌아오기만 해 다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돌아가 구원 얻는 하나님의 놀라운 백성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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