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네 어머니라 2002-01-30 12:47:34 read : 2760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 복음 19 : 25-27 ( 2001년 5월 13일 )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동화 작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음니다만은 정채봉 선생께서는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시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가 쓴 어머니에 대한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도 하고, 젖가슴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중 딱 한가지만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마음의 고향을 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채봉 선생님의 시입니다.
가정의 결속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이라고 하는 책에서 근대와 현대를 구별하는 특징은 전통적 결속의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결속의 단절. 전통적 결속이란 가정을 말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또, 손자 손녀 이어가는 전통적 결속, 그것이 양심이요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힘이요 그것이 질서인데 말입니다. 또 성경대로 말하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인데 이것이 파괴되어간다는 것이죠.
이렇게 전통적 결속이 단절되면서 사람은 모두 개인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개인주의에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요즘 부모를 공경하라. 효도하라,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라 하는 설교를 하면 인기가 별로 업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전통적 결속의 단절은 그 결과 잃어버린 게 너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첫째가 안정감입니다. (Security.) 우리 마음의 안정이 없습니다. 좋은 집에 살아도 돈이 많아도 지위가 있어도, 성공하면 불안하고 실패하면 불만하고, 안정이 없어요. 그 이유는 바로 가정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인간의 삶의 지향과 의미를 제공하는 이정표를 잃어버렸어요.
부모님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거기서 이정표를 찾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사는 거죠. 어제 김영호 집사님 따님의 결혼 주례를 위해서 서울에 성도님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지난주에 딸 시집보낸 곽옥순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 시아버지 될 분이 장로님이신 데 한번도 출근 시간 퇴근 시간을 어긴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지극히 가정적'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열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내 삶을 다 맡겨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 그 가정은 삶의 이정표가 있는 가정이구나. 괜찮은 가정이구나. 우리 수정이는 시집 잘 갔구나. 부모님은 우리의 삶에 가치 기준을 제공합니다. 왜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속에 가치의 기준이 있었는데 이게 무너지고 나니까 표류되는 것이죠. 가치관이 표류됩니다. 이정표가 없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전통적 가정의 결속의 단절은 내적 고향을 상실했다, 라고 말합니다. 내적 고향, 마음의 고향이 없어요. 어머니는 누가 뭐래도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가정 사역을 하시는 송길원 목사님께서 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공항에 가서는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 아들을 축복하고, 손을 흔들어 환송하고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당당한 모습으로 뒤돌아왔습니다. 오면서 송목사님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 어머니 찬이가 떠났어요." 그 때 어머니께서 목사님에게 한마디 던집니다. 다 큰아들인데 " 아가 " 라고 부릅니다. '아가' 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이 표준말이 아니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어머니의 말속에는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의 말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안식이 있습니다. 위로가 있고 쉼이 있습니다. 왜요 아버지, 어머니는 내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분들이 정치가가 아니랍니다. 학자도 아니랍니다. 경제가가 지배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합니다. CEO가 지배한다. Chief Executive Officer, 이 CEO가 모든 분야에서 이 세상을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CEO들을, 이 중요한 분들을 연구해 보니까 이분들은 대부분 좋은 가정을 가지고 있어요. 어렸을 때 자라온 환경에 대하여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특별히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성공하고 이 사람들에게 창작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 발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회학적 결론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정이 축복된 가정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좋은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공경하며 살고, 순종하며 사는 것, 이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때 홀로 남는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는 효성이 지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 여자여 아들이니이다. "
주님은 이제 세상을 떠납니다. 주님이 떠나면 홀로 남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처녀의 몸으로 아들이 잉태하는 것을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리아는 그 비밀을 알았기에 참아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주님을 멀리했어도, 제자들이 주님을 떠났어도 마지막까지 주님 곁에 남아 있었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의 죽음을 기다리며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고, 나를 이해하셨고 나의 고통을 함께 담당하셨던 어머니 --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홀로 남아 있을 어머니--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았기에 어쩌면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접해 드리지 못한 아픔이 예수님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옆에 가리키면서 말씀합니다.
" 어머니 아들이니이다. " 어머니 보십시오. 저 요한이 이제 당신의 아들입니다. 요한이 당신을 모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요한 에게도 말을 합니다. " 요한아 보라 네 어머니란다. "
그 때부터 요한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90세가 되기까지 장수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15세에서 18세 정도가 될 때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을 때에 그녀도 이 나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예수님의 나이 차이는 많아야 18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3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때 마리아의 나이는 50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후 마리아가 90세까지 살았다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마리아는 40년이나 살았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요한의 나이가 20대 라고 한다면 6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노인을 모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요한은 자신의 청춘을 오직 할머니를 모시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평소에 요한은 자기를 가리켜 스스로 "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 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더 큰 야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할머니 앞에서 그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을 때에 그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다른 제자들의 눈부신 사역의 열매들의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얼마나 그 자신이 처량했겠습니까?
그러나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하는 것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것은 그가 주인으로 모신 주님의 명령이었고, 자신은 주님의 도구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들이 바뀌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딸 가진 부모님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 공경에 대한 명령은 바로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시대가 변한다고 회피할 문제가 아닙니다.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성경 어디를 보아도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순종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 그가 어찌 다른 제자들처럼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왕성한 사역을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주님이 부탁한 말씀을 순종합니다. " 보라 네 어머니다. " 그래서 그는 40년 동안 마리아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이 진 십자가의 멍에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 그것은 멍에 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픈 부모님이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할 때 그는 부모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 그 한가지로 다른 것을 거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멍에입니다. 형제 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를 귀히 여기십시오. 누가 뭐래도 모시고 있는 사람은 효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셔 보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압니다. 모시지 않은 사람들 괜히 밖에서 이래라 저래라 그러는데 아닙니다. 모신 사람은 힘이 들고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시고 있는 분들에게 잘해 드려야 합니다. ' 형님 참 고생하시네요. 형님의 수고를 압니다. 동생 고생하고 있는 것 알고 있네, 내가 모시지 못해서 부끄럽고 만 ---'
부모님 모시고 있는 형제를 고맙게 알고 귀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 효자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우는 사람이고, 불효자는 돌아가신 다음에 우는 사람이다. "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모시면서 웁니다. 마음이 아파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어머니 사랑 깨달아서 울고--그래서 모신 사람은 효자입니다. 그런데 모시지 않고 봉양하지 않은 사람은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 어머니 생각하고 후회하며 웁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돌아가신 다음에 철이 들어 그 때 후회하고 있는 불효자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 모시는 것 십자가의 멍에입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
40년의 청춘을 어머니 모시는 것으로 보낸 요한은 그것으로 인생이 다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요한은 힘없고 연약한 한 여인을 어머니로 모시고 봉양하면서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한이 받은 축복
요한이 기록한 요한 복음과 요한 일이삼서를 보면 요한이 얼마나 마음이 너그럽고 사랑이 깊은 사도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처음부터 그런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성질이 급했든지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친절에 대해서 격노하면서 " 주여 우리가 하늘로서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간청하였습니다.
내편이 아니면 배척하는 편협한 사람,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은 마음이 옹졸하고 너그럽지 못해서 제자가 아닌 어떤 사람이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고 자랑스럽게 예수님에게 고하기를 "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함으로 우리가 금하였나이다. "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해서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옹졸하고 너그럽지 못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가하면 요한은 세속적인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이렇게 간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 주님!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
그런데 그는 백발이 성성하여져서 훗날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 눈물을 흘리며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노 사도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도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슴이 숙연해지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이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을 때 제자들의 등에 업혀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까지 왔는데 그 때도 무거운 입을 열어 " 소자야 서로 사랑하라."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성도들은 감동을 받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로 성숙되어 갔다고 합니다.
요한이 어머니를 모시고 봉양함을 통해서 인내와 겸손과 인내와 순종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축복이 어찌 크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모시고 있는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여인 중에 가장 존 귀히 여김을 받는 여인 마리아가 아닙니까? 마리아 그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 요한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얼마나 축복하였겠습니까? 요한은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얻었고,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면서 마음이 평안했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마음이 부유했고, 어머니의 축복을 받으면서 마음에 희락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있으면 그것이 양약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보약은 없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 그것은 축복입니다. 봉양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섬김을 배우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이야말로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요한에게 이것은 더할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링컨이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을 하나님은 한 가지도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셨다. "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동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링컨에게 읽어주고 자기고 읽으면서 신앙을 심어주었습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유언을 했습니다. 그 후에 계모가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다행히도 새로 들어온 어머니도 링컨에게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빈곤함 속에서도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씀과 기도와 가르침이 링컨으로 하여금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어머니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말씀 속에는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잠언에 아주 귀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잠언 4 : 1절입니다.
잠 4: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 4: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고려장이라는 게 있지 않았어요? 고려 때 있었답니다. 나이 많은 어른들을 귀찮으니까, 또 식량도 모자라니까 이렇게 옛날 어른들을 저 깊은 산에다가 내버렸어요. 고려장을 치르려고 지게에다가 어머니를 실어 가지고 돌아오지 못할 깊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계속 주위에 나뭇가지를 꺾더랍니다. 꺾어서 던지고, 나뭇가지를 또 꺾어 던지고, 계속 꺾으니까 "어머니 왜 그러세요? 왜 자꾸 나뭇가지를 꺾으세요?" "너무 산이 깊어서 나가 길을 잃고 집에 못 돌아 갈까봐 나는 여기서 죽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을 헤매지 않도록 내가 표시를 해 놓는 것이다." 아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그래 그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와서 잘 모셨다, 그런 얘기예요. 그래서 고려장이 없어졌답니다. 자기는 자기를 내버리고 가는 자식의 길을 인도하겠다고 하는 그 어머니. 이게 바로 어머니의 본심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사랑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의 말씀 속에 삶의 지혜가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과 남모르는 은밀한 교제를 넓혀갔고 힘없고 연약한 한 여인을 봉양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경험했고, 어머니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요한의 마리아에 대한 봉양이 끝났을 때 주님은 이미 노인이 된 요한에게 요한 복음과 요한 일, 이, 삼서를 쓰게 하셨고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쓰게 함으로 성경을 완성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성질이 급하고, 옹졸하고, 세상 적인 야망이 가장 강하였던 그가 그토록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고, 온전한 인격의 사람이 되었으며 성경을 완성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어머니를 모시고 봉양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십시오. 섬기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십시오. 그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걸작의 인생으로 빚어갈 것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하겠습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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