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앞에 서 있습니까? 2002-01-30 13:41:53 read : 286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출애굽기 32 : 1-14 (2001년 6월 10일 주일 낮 설교)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 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출 32: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 32: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출 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출 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출 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 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출 32: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출 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지도력의 원칙 ' (The Power Principle) 이라고 하는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블래인 리(Blaine Lee)라고 하는 교수님이 쓰신 것인 데요, 이분은 그 유명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코비 박사가 경영하는 코비 리더쉽 센터의 부회장으로 있는 분입니다. 많은 연구와 경험 속에서 그는 지도력의 원칙에 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있습니다. 그는 지도력에 대해서 세 가지로 분류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가 강압적 지도력(코우 얼시브 파워(Coercive Power)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제적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명령에 따르게 하는 그러한 지도력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거 하면 세무사찰을 한다, 혹은 벌금을 물린다, 혹은 이렇게 하면 형무소에 간다, 이렇게 해서 협박입니다. 강압적으로 억지에 못 견뎌서 내 뜻에 따라오게 하는 지도력이 있습니다. 주로 독재자들이 그랬고 오늘도 이러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순종은 합니다. 하지만은 마음속에서는 계속 반항만 누적되는 겁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터져 나가고 맙니다. 우리 어른들이 자녀들에게도 한번 큰소리 꽝 칩니다 만은 이게 교육이 되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말을 듣는 것 같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반항심이 생깁니다. 자 이런 강압적 지도력이 있고 또 하나는 실리적 지도력 (유틸리티 파워(Utility Power)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면 네게 유익할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또 나 하라는 대로하면 보너스도 주고, 승진도 시켜주고 그래서 이제 보상을 많이 주겠다 하는 이런 것으로 상대방을 유도합니다.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한 손에는 채찍, 한 손에는 당근 들고서 말을 들으면 당근을 주고 듣지 않으면 채찍을 하면서 훈련을 하는데 그와 같은 지도력을 실리적 지도력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사실 알고 보면 어느 순간에 가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바람직한 리더쉽이 아닙니다. 그런가하면 세 번째는 원칙중심의 지도력 "프린시플 센터드 파워 (Principle-centered Power)"라는 게 있습니다. 참 이 대목이 우리를 크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원칙 중심의. 내게 이롭고 해롭고가 아닙니다. 저 지도자가 원칙대로 경영하고 원칙적인 삶을 사니까 내게 유익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저에게 텔레비전 프로 중에 좋아하는 프로가 있습니다. 스포츠 프로입니다. 야구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배구나 농구를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기든 지든 원칙에 의해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를 바라지만 져도 그것은 할말이 없습니다. 왜 그래도 원칙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정치 논리 경제 논리는 듣기가 싫습니다. 원칙이 없습니다. 다수가 힘이고, 조작된 여론과 진실이 아닌 어떤 음모들에 의해서 전개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싫어요.
내게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 이가 있느냐 해로움이 있느냐 이런 얄팍한 계산 가지고는 지도력이 지도력 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오랜 동안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도자는 그 자신이 먼저 원칙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도력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변함 없는 지도력의 원칙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할 때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지도력에 대해서 매우 아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명예를 얻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신앙적 원칙을 훼손하고, 진리를 거스리며 행동했습니까? 지금, 퇴임한 후에도 기독교의 정신인 참된 샬롬을 이루지 못하고 반목과 대립의 적대적 감정을 가는 곳곳마다 일으키고 있습니다. 반면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보십시오. 재임 시절에 아주 인기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왜? 강력한 미국을 건설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강력한 미국이라는 야망보다는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적 양심을 실현하고 싶은 지도력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재임 시절에 한번도 주일학교의 교사를 거스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기독교적인 신앙과 양심을 가지고 자신의 야망과 소원을 위해서 살지 않고 대의를 위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서 지금도 세계 각국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두 지도자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두 지도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요, 하나는 그의 형인 아론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한 지도자입니다. 아론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안식 속에 살아가도록 하는 대 제사장인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한 나라의 공동체를 바르게 세워가기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둘이 누구와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계시를 듣고 그대로 순종하며 백성들을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모세는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이스라엘을 향한 놀라운 비전과 계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0주야를 금식하면서 말입니다. (출24 :18)
드디어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받은 모세는 환희와 감격과 기쁨의 모습으로 하산하려 할 그 때 산 아래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축복할 대 제사장 아론이 백성들의 함성을 듣고 그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이야말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위기
이스라엘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부르셔서 여호수아에 이르러 사역을 마칠 때까지 이스라엘의 최대의 위기는 바로 오늘 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멸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대노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한 것으로 인하여 받은 벌도 이렇게까지 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다 진멸 할 만큼 하나님이 대노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의 위기 사건은 그 백성의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적인 요인에 있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도 이런 위기는 없었습니다. 고통스럽기는 하였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로 인하여 그들은 번성하였습니다. 애굽의 문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문제, 사람의 문제, 주거의 문제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위기는 우상숭배의 문제로부터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폐위기는 우상숭배의 문제였음을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이 망할 때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나라를 잃고 백성들이 살육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가난과 기근과 온역을 만날 때가 언제였습니까? 섬겨야 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섬기지 말아야 할 우상을 섬길 때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우상 숭배 때문이고 남쪽 유다가 망한 것도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북쪽 나라는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론처럼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아합왕 때 우상숭배의 극치를 이루는데 두로와 시돈에 엣바알 제사장의 딸인 이세벨이라고 하는 여자를 아합이 자기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 여자가 들어올 때에 우상을 가지고 왔는데, 이 우상들의 크기는, 밀곰이나 아스다롯이나 바알같은 것을 보면 보잘것없어요. 정말 주먹에 한 4분의 일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들어와서 결국 그 나라를 망치는 거예요.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섬김으로 망하게 된 것입니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고 붙들고 있는 우상적 요소들 그것들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사주팔자 볼 수 있지 뭐 하고 붙듭니다. 궁합 뭐 한 번 볼 수 있지 뭐 하고 붙듭니다. 친구 따라서 한 번 춤 한 번 출 수 있지 뭐 하며 술집에 가서 춤을 춥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보잘 것 없는 것들을 통해서 사단은 역사 한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합이 최고로 잘 살 때에 번영할 때에 옛 바알의 딸을 데려와서 그 여자가 가져온 조그만 우상이 나라를 덮기 시작하고 궁중을 덮어서 결국은 아합이 우상 숭배하게 되고 궁중에다가 큰 바알의 당을 짓고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일순간에 우상 숭배가 퍼져서 나중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제사장은 하나밖에 없고 바알과 아스다롯 제사장은 8백 5십 명이 갈멜산에서 싸움이 붙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여자 하나가 문제예요. 그 하나로 인하여 결국에는 남편도 비참하게 전쟁에서 죽지요. 자기도 비참하게 죽어서 개들이 시체를 핥지요. 아들 다 죽지요 수많은 아들들 다 칼에 죽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세벨의 딸이 나중에 남쪽 유다의 여호사밧의 며느리로 가서 그 나라도 결국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 망하게 하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내 몸에 어떤 것이든지 우상이 될 만한 것은 다 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상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됩니다. 절대로 만들어서도 안되고 물론 절하거나 섬겨서도 안되고 가까이 하거나 사귀지도 말아야 하고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사귀어서도 안됩니다. 내 가족 가운데 누구든지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경은 불쌍히 여기지 말고 반드시 죽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6-9절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만약에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네 부인이라도, 아니 네 자녀일지라도, 형제간일지라도, 생명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라도 우상 숭배하면 불쌍히 보지도 말고 덮어 주어서 숨길 생각도 하지말고 애석하게 여기지도 말고 반드시 죽이라는 거예요.
왜? 이것은 너와 네 민족이 망하는 길이라는 거예요. 출애굽기 20 : 4절을 보시면 3, 4대까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이 뭡니까? 우상 숭배에서 빠져 나올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사귀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고 우상 숭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대적이 우리를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밑으로 가만히 들어오는 이 우상이 이스라엘을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뭄으로 인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현상들을 볼 때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가뭄의 단비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저는 이 가뭄을 보면서 왜 하나님이 이 장마철에 단비를 주지 않는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민족들이 너무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습니다. 각급 학교에 단군 상이 설치되고, 공원에도 설치됩니다. 그것을 반대하던 목사님을 감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목사님이 6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속인들이 자그만치 5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장대 꽂아놓고 무속 행위를 하곤 하였는데 지금은 모든 메스컴들이 그것을 미화해서 방영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최고급호텔인 신라호텔의 로비에서 버젓이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축복의 징조가 아닙니다.
가뭄이라는 현실을 보면서 먼저 우리는 이기심의 우상, 탐욕의 우상, 자기 중심주의의 우상들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대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가뭄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지만 북한에는 천년만에 찾아온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들이 당할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가뭄이 없을 때도 수 십 만 명이 굶어죽었는데 가뭄으로 인하여 올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까? 아마 역사상 최고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게 될 것을 능히 예상을 해봅니다. 2년 전에 중국에 갔을 때 두만강 접경지역을 가보았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기후일 것 같은데 중국에 자라는 옥수수는 잘 자라는데 저 북한 땅에 있는 옥수수는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묵상하면서 한가지 성령께서 저에게 섬광처럼 깨닫게 한 것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죄 값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하는 저주는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죄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상숭배는 저주와 기근과 죽음을 가져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경외함으로 모든 우상으로부터 해방을 받으시고, 영적으로 무장해서 우상의 세력들을 결박함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아론에 의해서 출애굽 이후 이처럼 무서운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위기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진멸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것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군중 앞에 서 있는 아론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며, 저주의 근원인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된 결정적 원인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아론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고 군중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가로되--"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장엄한 비전과 환상을 받고 있을 때 아론은 하나님 대신에 군중 앞에서 군중들의 사악한 음성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최대의 위기인 우상 숭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은 군중들을 통해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여론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습니다. 정의를 내세운 분노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찾아오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거기에서 신앙생활의 축복이 있습니다. 능력과. 생동감이 회복됩니다.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은 홀로 있는 모세를 부르시고 찾아오시고 말씀하여주셨습니다. 두려움에 빠져서 얍복강 가에 홀로 있던 야곱에게 주님은 찾아오시고 말씀하여주셨습니다. 그를 축복하여 이스라엘이라고 그의 존재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바울은 네로 황제 앞에서 신문을 받을 때 "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 (딤후 4 :16)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홀로 였습니다. 그러나 당당하였습니다. 권세가 있었습니다.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홀로 였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갈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군중 앞에 서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군중들의 종이 됩니다. 그리고 그 군중의 배후에서 역사 하는 사단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한 주간의 삶 가운데 얼마나 주님 앞에 계신 시간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으면 말씀을 들어도 감각이 없고 말씀을 읽어도 뜨거움이 없습니다. 대신 너무 너무 바쁩니다. 예배를 드릴 시간조차도 잃어버릴 만큼 바쁩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합니다. 결과를 너무 집착하며 삽니다. 그래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살고, 진리를 잃어버린 채 삽니다. 그래서 경박하고, 조급하기도 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삽니다. 쉽게 뜨거워졌다고 쉽게 식습니다. 거기에 무슨 열매가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과 율례를 다 준행 하겠다고 얼마나 큰 소리로 고백을 했는지 모릅니다. (출24 :3) 그렇게 고백한지 불과 40일하고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고백과 결심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팔순이 넘은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40일간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기간이었겠습니까? 그 세밀하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 앞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을 텐데 아래에서는 기다리고 있는 모세가 더디다고 참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드디어 하나님을 급조합니다. 그리고 그 신이 우리를 인도해낸 신이라 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은 축제를 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찌 불법한 백성들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까? 그들을 모조리 진멸 할 것을 모세에게 명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세
하나님의 산에서 금식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모세가 이제는 패역한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에 호소하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도록 기도합니다. ' 하나님! 만일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진멸 하면 애굽 사람들이 이 곳에서 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인도하였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 그는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백성들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며 주님을 설득합니다.
"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그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자손을 번성하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이 땅을 그들과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지 않았습니까? " 이렇게 주님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의 말씀을 걸고 주님을 설득할 때 주님은 그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명예보다도 주님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신은 주님의 거룩한 책에서 지워져도 민족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면 원한다고 할 만큼 주님의 명예와 주님의 백성들을 더 소중히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1860년경에 태어날 때는 노예의 자식으로 자신의 생년월일조차 알지 못한 채 태어났다가 1940년 죽을 때는 미국의 흑인과 백인을 망라해서 전 미국인의 존경을 받았던 최초의 흑인이 있었습니다. 조지 와싱턴 카바 박사입니다. 미국 최초의 계몽가였고, 농학자였고, 최고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한 때 미국 남부는 면화 재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면화는 그 땅속에서 있는 질소를 잡아먹기 때문에 땅이 황폐해집니다. 그러면 이 면화를 재배하기 위해 새로운 땅을 개간하면 그 땅은 또 못쓰게 됩니다.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카버 박사가 질소가 없어진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콩재배도 잘될 뿐 아니라 땅도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유에 따라 면화 대신에 땅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땅콩을 심었더니 정말 카바 박사의 말대로 땅콩도 풍년이 들었고 땅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더니처럼 쌓여 있는 땅콩을 처분할 길이 없었습니다. 땅콩 때문에 또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카버 박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자기 말을 듣고 수없이 많은 남부 사람들이 땅콩을 심었는데 그들이 땅콩 때문에 고통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그 당시 그는 자신의 심정을 그의 전기 속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이 괴로워서 10월 어느 날 새벽 해뜨기 전에 산 속으로 들어가서 거닐다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 오 하나님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 ' 너는 너의 작은 소견을 가지고 너무 큰 것을 알려 하지말고 네게 알맞은 것을 물어 보아라. "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을 무엇에 쓰시려고 세상에 두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아직도 내가 감당치 못할 것을 질문하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고 네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을 말해 보려무나 .' 나는 너무나 엄숙해졌습니다. 한 참만에 나는 마지막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 하나님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땅콩을 만드셨습니까? '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됐다. 너는 땅콩을 한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하여라 .' "
산에서 올라온 카버 박사는 땅 콩을 한줌 들고 자신의 실험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 땅콩 구두약,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등 무려 105가지 식용 품과 200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미국의 남부경제가 살아났습니다. 흑인이고 백인이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크는 커다란 문제 앞에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변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 앞에 서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 앞에 서 있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회복하며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