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2002-01-31 22:50:10 read : 156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중국공산당의 사영기업주 영입 가속화… 농민·노동자들은 빈곤층 전락
사진/ 베이징의 빈민가. 도시로 유입된 농민들은 대부분 빈곤의 수렁에서 헤메고 있다.(SYGMA)
“어제 고향에서 친구가 목을 매 자살했어요. 도시로 나간 남편은 연락도 없고, 두딸만 남겨두고 목을 맨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농촌에선 한해에 농약을 먹거나 목을 매거나 할복으로 삶을 끝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중국 허난성 난양 출신인 장모씨(28·여)가 쏟아낸 농촌의 비참함은 곧 두 줄기의 눈물로 이어졌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과 달리,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로 바뀌면서 농민들에게 미래는 암흑으로 다가왔다.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박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95년 농촌을 떠나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온 그의 삶은 현재 중국 노동자·농민의 현주소이다.
농촌을 떠나 공장을 전전해도…
장씨의 현재 사회적 지위는 도시 빈민자다. 난양에서 땅콩농사를 짓고 살았던 그는 농한기에도 가내 수공업으로 카펫을 짰다.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된 노동은 잠자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1년 수입은 1천위안(약 15만원)에도 못 미쳤다. 새 옷을 입어본 적도 없고 설날(春節)이 아니고는 배불리 먹어본 적도 없다. 그는 고향을 떠난 뒤 땅콩을 먹지 않는다. 1년 내내 밀가루 빵과 땅콩만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95년 고향을 떠나 광저우로 돈벌이에 나섰다. 그곳에서 문화용품 공장에 취직을 했다. 물론 농촌에서보다는 손에 쥐는 돈이 많았다. 처음 3개월 동안 그가 받은 임금은 하루 8시간 노동, 1개월에 190위안이었다. 3개월 이후 야간작업까지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다. 그 덕에 임금은 1개월에 1천위안으로 올랐지만 수면부족과 심한 피로로 병을 얻어 1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동갑내기와 결혼을 한 그는 곧 딸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어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다. 농촌 초등학교 1년 학비는 150위안(2만5천원) 정도. 농사를 지어선 이 학비를 마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딸아이는 친척 집에 맡겨놓고 남편과 함께 베이징행 열차를 탔다. 현재 베이징 생활 3년이 지났다. 그의 남편은 이삿짐센터 인부, 신문팔이, 식당 청소 등 험한 일은 다 거쳤다. 그리고 지금 식당 주방에서 보조를 하고 있다. 그는 식당에서 그릇을 닦다가 지금은 외국인 가정에서 보모를 하며 한달에 700위안(10만원)을 받는다. 그나마 장씨는 운이 좋은 경우이다. 일반 중국인 가정의 보모는 대도시에서도 한달 월급이 300위안(4만5천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대도시에 나와 있어도 아이의 학비를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은 전혀 없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돈이 모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생활비는 도시 빈민들의 임금을 모두 빼앗아간다. 베이징에는 이같이 농촌을 떠나 공장을 전전하다 도시의 극빈자층을 이루는 지방 사람들이 순수 베이징 인구를 넘어선다.
지난해 7월1일 중국공산당 80주년 기념식에서 장쩌민 당 총서기는 “여전히 노동자·농민은 중국의 생산력 발전의 기본 역량”이라며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 연설은 실제 노동자·농민들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국가연구기관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중국사회과학원은 지난해 연말 중국사회를 ‘5종류의 사회지위 등급’과 ‘10대 계층’으로 분류해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노동 계층이 사회 최하층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5종류의 사회지위 등급은 사회상층, 중상층, 중중층, 중하층, 하층 등으로 분류됐다. 이 5등급에 따라 10대 계층이 분류된다. 국가 및 사회관리 계층, 경영자 계층, 사영기업주 계층, 농업노동 계층, 도시무산자 계층, 실업 계층, 반실업 계층 등으로 나뉜다. 과거 지도계급으로 인식되었던 노동자·농민이 새로운 등급 구분에선 40% 이상이 중하층에 속해 있으며, 10%는 하층에 속해 있다. 중상층은 단지 1%에 불과했다.
끝 안 보이는 ‘실업대란’
사진/ 농민 자녀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민은 1999년 전체 노동인구의 44%로 줄어들었다.(SYGMA)
사회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상반기 농민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이 1063위안으로 2000년에 비해 50위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농산물 가격의 하락 등에 비춰볼 때 농민의 순수입은 훨씬 줄어든 셈이다. 농촌 자녀의 교육비 지출 내역을 보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비가 3만5천위안에서 5만위안 수준, 대학을 보낼 경우 4만위안에서 5만위안선이다. 농촌의 열악한 수입구조 아래서 농민 자녀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에선 일부 농촌지역 자녀의 학비를 중학교의 경우 연 115위안을, 초등학교의 경우 60위안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여전히 정책적으로 농민들에게 일정 토지를 30년 동안 무상임대해주고 있지만, 그 땅이 농민들에겐 결코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토지를 방치하고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이다. 1978년 전체 노동인구의 70%를 차지하던 농민들이 1999년에는 44%로 줄어들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는 해마다 늘어가고 동시에 노동실업 인구도 해마다 늘어간다. 2001년 중국노동통계연감에 따르면 2000년 중국 전체 노동자는 1억1259만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국유기업 노동자가 7878만명, 중소도시기업 노동자가 1447만명, 외국합작기업 노동자가 1934만명, 사영기업 노동자가 2011만명, 개인상업 노동자가 5070만명이다. 이들 노동자 가운데 공무원, 전문기술인, 관리자 등은 소수에 불과하며 육체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다수가 이농 출신이고 교육수준이 낮으며 고급노동자들과의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비교적 나이가 많거나 여성인 노동자들은 대량 실업예상군에 속한다. 지난해 6월 말 전국 실업노동자는 3천만명을 넘어섰다. 경쟁력을 상실한 국유기업은 해마다 수백만명의 실업자를 쏟아낸다. 이들 가운데 80%는 다시 재취업 교육기관에 문을 두드리지만 취업률이 높을 리가 없다.
이처럼 노동자·농민 계층의 사회적 지위가 끊임없이 하락하는 데 반해 ‘사영기업주’ 계층은 중국 경제발전의 일등 공신으로 추대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의 통계에 따르면 사영기업주의 숫자가 425만5천명으로 집계됐고, 이들이 보유한 자본총액이 1조5495억원에 달했다. 사영기업주들은 대부분 당정기관, 국유기업, 과학연구기관 행정간부, 고급지식인, 해외유학파 출신들이다. 특이한 사실은 사영기업주의 21.6%가 중국공산당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해 7월1일 중국공산당 80주년 기념식에서 장쩌민 당 총서기가 자본가의 입당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 총서기의 발언은 곧 사영기업주의 입당을 공산당헌에 명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재산 긁어모으는 ‘특수 국민’
장 총서기는 기념식 연설에서 “개혁개방 이후 사영기업주 계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성실한 노동과 합법적 경영으로 사회주의 생산력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며 “그들은 중국식 사회주의 사업의 건설자이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는 공산당 가입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사영기업주는 신생 자본가가 아니며 노동자·농민·지식인과 똑같은 사회계층의 일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사영기업주에 대한 분석을 억지춘향격으로 맞추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사실 일부에서는 이들을 ‘특수 국민’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은행 대출을 받아 고급 승용차를 굴리고 술집에 드나드는 등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부류로 비판을 받는다. 한편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리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등 사회 분위기를 흐리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게다가 지방 관리의 비호 아래 불법적으로 재산을 모으고, 폭력조직을 조직하는 등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경제적 지위로 볼 때 중국의 노동자·농민을 최하층 계층으로, 사영기업주를 최상층으로 구분하는 것은 중국인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공유재산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공산당에서 엄청난 사유재산을 소유한 한편, 사회 물의까지 일으키고 있는 사영기업주를 어떻게 공식적으로 공산당 입당을 허용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는다.
베이징=황훈영 통신원 kkccjj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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