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각성이 필요한 때다 2002-01-14 11:18:36 read : 234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로마서 13:11~14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정신이 번쩍 드는 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매년 한번씩 겪는 연말의 충격이 아닌가 합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을 쳐다보면서 또는 이제 하루 남은 한 해를 생각하면서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내 나이가 벌써 몇 살이지? 정말 너무 빠르다.' 하는 독백을 마음 속에 주고 받으며 충격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합니다.
시인 이해인이 쓴 시구 가운데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12월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말에 연말이 되면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말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호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시점에서 내가 그 동안 잘 살았는지, 영적으론 건강한지, 혹 하나님 앞에 부끄럽진 않은지, 취해야 될 것과 버려야 될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선 여기에 직접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본문 자체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영적으로 말하면 한밤중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온통 자기 자신, 돈, 쾌락에만 쏠린 한밤중의 상태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이 쌓느냐, 어떻게 하면 많이 즐기느냐.'가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영적으로 한밤중에 사는 사람들이 범하는 죄와 그들이 추구하는 나쁜 것들을 6가지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방탕입니다. 방탕은 글자 그대로 밤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추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압니다. 바로 술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술 취함은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병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술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주를 수입하는 국가'라는 악명 높은 별명을 얻은 지도 이미 오래 전입니다. 술 취하는 것을 이해하거나 동정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술을 끊지 못하고 점점 취해 만 갑니다.
그 다음은 음란입니다. 음란은 금지된 침상에 오르는 악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10대라고 거룩합니까? 10대, 30대, 50대 구별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럽고 악한 짓을 공공연히 하는지 모릅니다. 배웠든 안 배웠든 상관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음란에 눈이 충혈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호색이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요즘 TV에서 신물 나게 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호색입니다.
이런 죄악들이 공공연히 저질러지고 있는 세상을 일컬어 하나님께서는 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악의 밤은 깊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여명의 빛이 뒤따라 옵니다. 이것은 영적인 진리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가까이 왔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구원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요즘 신문 보도 기사를 보면 경찰들이 주로 새벽 3시에 음주운전 단속을 나간다고 합니다. 그 때쯤 술 취한 사람들이 귀가하려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왜 새벽 3시 이후에 난장판이 벌어집니까? 새벽이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옵니다. 우리에게 이런 어두운 밤을 보내는 아픔이 있지만, 그 반면에 구원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이 구원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시점에서 구원을 말할 때는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를 믿고 중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또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받았지만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종적인 구원을 향해 가고 있는 노상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또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미래의 시점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미래에 있습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리고 재림과 함께 우리에게 나타날 엄청난 영화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몸으로 다시 갈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신령한 몸으로 바뀝니다.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사는 축복의 새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구원은 예수님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하나님 나라로 새 몸을 입고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엄청나고도 황홀한 영화가 지금 우리 앞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이렇게 어둡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어두워도 결국 이 어두움이 우리의 구원을 빨리 단축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 정욕의 잠을 자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시기하고, 쟁투하면서 정신 없이 밤거리를 헤매는 인생을 사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의 수신자는 술 먹고 비틀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닌 예수 잘 믿는다고 소문난 로마 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곧 교회를 다니는 우리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깊은 정욕의 잠에 빠진 자는 없을지라도, 이 어두운 밤의 영향을 받아 모호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주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옷을 입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정욕의 옷을 입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는지, 정욕의 옷을 입었는지,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인지, 조는 사람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운 이중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바울이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정욕적인 생활을 하지 않아."라며 나와 관계없는 말씀으로 보지 말고, 혹시 나도 세상의 영향을 받아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정욕의 잠을 자고 있진 않은지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옷이 없어서 주일날 이상한 차림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령 양복 저고리에 한복 바지를 받쳐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사람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봤습니다. 양복 바지에 한복 저고리를 입고 나오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한복 바지에 양복 저고리를 입고 나오는 사람은 가끔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어정쩡하면 안됩니다. 한복이면 한복이고, 양복이면 양복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면 그리스도 사람답게, 정욕으로 옷을 입었으면 아예 세상 사람답게 생활해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으로 신앙생활하면 안 됨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똑같은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또한 예수 믿는 우리 모두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세를 놓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두운 밤이 짙어가는 시간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뜻밖에 임할 수 있으므로 "술 취하지 말라. 방탕하지 말라.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재미있게 사는데 마음이 자꾸 끌려갑니까? 돈을 쌓는데 신경을 곤두세웁니까? 그렇다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는 드릴지 몰라도 잘못하면 잠을 자거나 졸 수 있습니다. 정욕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돌아봅시다. 만에 하나라도 나에게 이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만 사랑합니까?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자신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본문이 주는 직접적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로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간접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본문의 원래 뜻은 아니지만 본문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여러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면서 연달아 깨닫게 되는 진리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저는 간접적인 메시지라고 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평범하게 반복하면서 보낸 365일을 돌아봅시다.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었는지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는 사람처럼 한 해를 보냈는지, 혹은 깨어있는 사람처럼 한 해를 보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각성은 소망있는 미래를 꽃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세네 가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즉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는지 한 해를 돌아보자는 말입니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짧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욥기서 14장 1, 2절을 보면 얼마나 실감나게 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이 인생을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짧다. 빠르다. 괴롭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생을 잠깐 살다 가면서 '세월아, 네 월아' 하며 적당히 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스위스에 있는 한 유식한 노인이 컴퓨터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 80년을 분석해 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80년 가운데 잠자는데 26년, 먹고 마시고 식사하는 데 6년, 사람을 기다리며 약속을 지키는 데 5년,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는 데 21년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소하게 들어가는 시간들을 계산하고 나자 실제로 '내 시간이다. 정말 가치 있고 보람되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80년 가운데 2년이나 2일도 아닌 46시간 밖에 안 남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빠르고 짧은 인생이기에 우리가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서 관심사와 집중하는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논어라는 책을 성경처럼 읽진 않지만 그 책도 성인이 쓴 지혜의 글이기에 가끔 들어야 될 말씀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10대 중반부터는 '지학'(志學)이라 하여 학문에 뜻을 두고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20대가 되면 '약관'(弱冠)이라고 하는데 어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시기이므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데 집중해야 된다고 합니다. 30대는 '이립'(而立)이라 하여 자기 전문영역에 기초를 열심히 닦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꿈을 가져야 된다고 합니다. 40대는 '불혹'(不惑)이라 해서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됩니다. 이때는 자기 얼굴을 책임질 수가 있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얼굴 값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50대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해서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로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통합, 조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합니다. 60대는 '이순'(耳順)이라고 하여 모든 면에서 원숙한 자리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이 때는 자기를 이을 후배를 양성하고 세우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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