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먹으라 2002-01-14 17:22:02 read : 2015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데살로니가후서 3:6-12
사람이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평범한 진리입니다.
첫 번째는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할 일을 가지고 일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고 또 행복한 사람입니다. 일하면서 즐거움을 얻고 일하면서 기쁨을 얻는 사람은 참으로 살맛나는 사람입니다.
중국의 왕양명은 인생이 사는데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육체적 고통(배고프고 춥고 병들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고통, 마음속에 번민하는 고통, 한가로운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 일 없는 고통은 삶의 의미를 잃는 고통으로 존재적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해야 되지만 자기 삶에 있어서 '이것은 가치있는 일이고 의미있는 일이다' 이것을 느끼면서 살 때 그 보람이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의욕,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환난이나 역경 속에서도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할 일이 있어야 되고, 보람이 있어야 되고, 미래의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조건은 할 일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있어야 거기에서 보람을 얻고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병들고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병들면 세상이 괴롭습니다. 병들면 삶의 의욕을 상실합니다. 건강은 행복의 첫째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전 존재를 바쳐 사랑할 대상을 찾았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불행해서 우는 사람 가운데 사랑받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고 할 일이 있고 건강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과, 일과, 건강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할 일이 있고 일하면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하는 것은 곧 생명의 원리요 행복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생명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둘째, 일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병든 자는 일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일한다는 것은 존재 가치의 인정입니다.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신성한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하고 사는 것을 불행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고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높은 신분이요, 일은 노예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고는 봉건주의 세계관이요, 동양의 잘못된 선비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할 일을 주시고 또 일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교회나 사회나 일하지 않는 사람은 말썽이고 문제가 많습니다.
정신 세계를 신성시하고 물질적인 세계를 천대시 하는 이원론적 헬라 사상이 있습니다. 이 사상이 교회 안에 스며들어 일하지 않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금욕과 고행이 거룩한 경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다가 종말사상이 결부되니 일하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걸식 수도자들이 늘어가고 걸식 전도자들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비난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주님께서 곧 재림한다고 주장하면서 전혀 일도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책망하는 말씀으로 "너희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했습니다.
당시 규모없이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장 다시 오실 것이라 생각하여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3:11)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2:2) 자신의 생계를 남에게 의존하고(3:12)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으면 굶으라는 말이요 죽으라는 말입니다. 더 심한 말은 일하지 않으려면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일하지 않고 살려는 사람은 남의 짐이 됩니다. 내가 일하지 않았으니 결국 남의 것을 먹는 사람이요 더 심한 표현은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일하고 먹는 것은 선한 사람입니다. 남의 것을 노력없이 먹으려는 것은 양심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일하지 않고 먹으면 남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문제입니다. 내가 일하지 않고 먹으니 일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부조리한 사회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상대하지 말라 또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교회에서 떠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라는 말은 일하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밥값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나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도 큰 은혜요, 큰 축복입니다.
탈무드에 "자녀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것과 일하고 먹는 것은 먹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사람은 밥맛이 없고 살맛이 없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사람은 삶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사람은 가치와 창조가 없습니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양심이 바르지 못합니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사람은 은혜를 모릅니다.
교회나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말썽도 많고 문제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하면서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잘 살게 하고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교회나 일반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자를 찾으시고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일을 하면 일을 통해서 먹는 양식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일이 일용할 양식을 주는 것이지만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양식을 주는 신비한 비밀이 있습니다.
일하고 꼭 먹어야 할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을 먹고 살아야 다른 세계를 살 수 있습니다.
첫째, 일하고 살맛을 얻어야 먹어야 합니다.
일하고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때 밥맛을 줍니다. 밥맛이 나야 살맛이 나고 살맛이 나야 밥맛이 납니다. 사람의 먹고 싶은 본능은 생존의 욕구입니다.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먹고 싶은 욕구는 건강한 증거입니다. 식욕을 잃으면 병든 체질이요, 삶의 의욕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밥맛을 가지고 먹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큰 복입니다.
고급 음식이 있어도 밥맛이 없으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밥맛이 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삽니다. 또 일한 사람에게는 잠을 달게 자게 하십니다. 낮에는 빈둥거리고 놀고 낮잠이나 자고 시간 보낸 사람에게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고통을 줍니다. 그러므로 낮에 열심히 일한 사람은 잠을 달게 합니다. 잠을 깊이 자는 자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운동을 하므로 건강하게 하십니다. 경상도 시골 마을에 90세 넘게 장수하는 장수촌이 있습니다. 연구해 본 결과 특별한 보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체력 단련하는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하므로 체력 운동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밀림의 성자로 존경을 받았던 슈바이처 박사는 일생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한 성자였습니다. 그는 95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건강하게 활동하셨습니다. 기자는 건강하게 사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할 일이 바쁜 사람은 병들 시간도 없다. 모든 병에 대한 효과적인 약은 그가 할 일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병을 고칠 약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일하는 사람은 육체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일은 밥맛을 주고 밥맛은 건강을 줍니다.
여자들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무일도 안하고 누워서 빈둥거리며 사는 게으른 여인에게 건강하게 해 줄 약은 없습니다. 약 중에 최고의 보약은 일하는 보약입니다. 가만히 보면 작 할 일은 남에게 맡기고 화장대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 많습니다. 돈이 있건 없건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세계 보건기구에서 펴낸 보고서에 보면 놀고 있을 때에 체력이 더 소모되고 일할 때는 일한 만큼의 필요한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노는 사람이 빨리 늙어 죽는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쉬기를 좋아하고 눕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눕게 만들어 주고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활동을 싫어하면 아주 쉬게 만들고 숨을 끊어주십니다.
오래 살기를 원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면 부지런하십시오. 정신병원에 가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많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여자 중에는 자녀가 다섯 이상인 어머니는 환자가 없답니다. 자녀들 돌보느라 바빠서 정신병원에 올 겨를이 없습니다. 독신이든가 아니면 아들 하나 둔 어머니들이 정신 병원에 많이 옵니다. 그것은 한가하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바빠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합니다.
사람의 몸이란 놀게 되면 점점 약해지고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은 부지런한 자의 것입니다. 힘도 일해야 솟아납니다. 힘이 있어서 일하기 보다 일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일해야 건강하고 일해야 장수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일하고 즐거움을 먹어야 합니다.
즐겁게 일하는 자에게 행복을 주십니다. 일하고 돈을 먹으려고 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일은 즐겁게 하고 즐거움을 창조해 가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고통입니다.
평생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씻고 설거지하고 세탁을 합니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한기라도 외식하면 좋아합니다. 남편이 출장 간다고 하면 해방되었다고 좋아합니다. 이런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가니 이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일이란 즐겁게 하면 직업이 되고 억지로 하면 노동이 됩니다.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은 피곤하고 괴로운 노동이요, 노동판에 나아가는 자는 하루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들고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일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도 즐겁게 하는 운동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하는 운동은 오히려 건강을 해롭게 합니다. 먹는 것도 즐겁게 먹고, 생각도 즐겁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때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일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겁다고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하는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먹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때 위대한 화가가 됩니다. 이들은 가난해도 좋습니다. 돈을 못벌어도 좋습니다. 이미 즐거움으로 행복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침으로 즐거움을 먹어야 합니다. 자기가 살아온 생을 돈으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퇴직금 받으려고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리빙스턴의 고백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아프리카 선교에서 희생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생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인생은 짧은 나그네들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자기 하는 일에 즐거움을 먹고 날마다 행복하십시오.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고 불행하다 슬퍼하지 말고 살아서 이 세상을 보는 것 하나만으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하나의 믿음으로 즐거워하세요.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날 때까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세요. 하루 하루 내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세요.
발명왕 에디슨은 식사 시간을 잊어버리고 평생을 연구실에서 연구하는데 열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평생 일을 하였지만 "나는 일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즐겼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미치고 즐거움에 넘쳤기에 노동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일에서 즐거움을 먹어야 합니다. 재벌 아버지가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돈을 벌면서 얻은 행복감은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려준 유산으로 물질은 받을 수 있으나 행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면서 깨닫고 즐기는 마음은 행복을 줍니다. 땀 흘려서 돈을 벌어야 소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공짜로 얻는 것은 기쁨도, 행복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일하고 즐거움을 먹고 행복의 열매를 먹어야 합니다. 일하고 즐거움을 먹지 못하면 노동자의 쓴맛을 먹는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셋째, 일하고 하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묻되 "하늘 양식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니라"(요 6:27-29)
이는 그리스도가 주는 양식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은 바로 그리스도가 주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일하고 밥 먹는 양식만 얻으면 밥벌이나 노동자가 되고 일하고, 즐거움을 먹으면 직업인이 되고, 일하고 하늘 양식을 먹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양식을 인자가 주리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일하고 양식을 하나님에게서 받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의 일을 하면 주인으로부터 양식을 얻을 것이요, 내일처럼 사명감에서 하면 즐거움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양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양식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예수를 믿는 구원에 근거해서 모든 일이 믿음으로 되어야 합니다.
일하고 보람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은혜를 먹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으며 하늘 양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일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 일의 소명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에 대하여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최상의 긍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나에게만 신뢰하고 신뢰하고 맡겨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질 때 성직이 되는 것입니다.
3월 4일 발생한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 김기석씨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씨와 전북 원광대 선후배 사이인 김모씨는 지난달 1-16일 김씨로부터 받은 E메일 3통을 6일 공개했습니다. 김 소방교는 지난 11일 보낸 E메일에서 "내 직업이 직업 중에서 최고로 좋은 직업"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의사의 역할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자신을 내던지며 구하지는 않는다"며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내 한 목숨 선선하게 내던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 않는가"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씨는 이어 "나의 직업을 하나의 성직으로 여긴다"며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런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고 남다르게 동료의식이 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는 보람을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초대교회 당시 노예들은 주인을 위해서 짐승처럼 살아갔습니다. 노예는 일생동안 일을 하지만 일의 대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너희들은 주인을 위해 일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일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노예는 이제 노예가 아닙니다. 비록 신분은 노예이지만 그의 소속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토록 불평스럽게 일하던 노예들이 은혜의 말씀을 먹으니 그 얼굴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순종하고 패역한 종들이 이제는 유순한 양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종들이 주인을 하나님께 하듯 섬기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렇게 수군거리고 불평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볼 때 주인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일할 때 회사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을 섬기듯 하고 일을 하나님의 일을 하듯 하면 그 자리는 성직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받은 인격으로 주인을 섬기고 있다면 하늘에서 파송된 천사로 일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시킨 일이 됩니다. 그리고 삯을 주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 삯이 곧 하늘 양식을 먹는 것이요, 그 목적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칭찬도, 상도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혹독하게 때리고 천대할지라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혹한 주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요,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별세의 은혜요, 별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