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부 간 의 행 복 2002-01-14 17:28:02 read : 218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룻기 1:16-18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인간 관계를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거의 다 인간 관계에서 형성이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 지도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장성해서 결혼한 후에는 부부의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면서 이해하고 돕고 살아갑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부모와 부부의 관계로 일생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관계를 잘 조화하면서 살 때 그 사람은 행복하고 한없이 만족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나를 낳아준 부모만으로 됩니다. 그러나 결혼하게 되면 부모가 또 나에게 관계가 형성됩니다. 여자들은 시부모가 있고 남자에게는 장모와 장인이 있게 됩니다. 결혼해서 여자들은 시부모를 자기 부모로 모시고 살아야 되는 과제가 있고 남자들은 자기 아내의 부모님을 자기 부모로 모시고 살아야 되는 과제가 있습니다. 이 관계를 잘 조화하면서 살 때 그 사람은 인간 관계에서 승리한 사람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이 역사를 보면 동서양 어느 곳이든지 고부간의 관계는 항상 긴장 관계였습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요람을 흔들지만 시어머니는 아들의 가정을 흔들어버린다."
서양이나 한국이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굉장히 어려운 관계였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낙원을 이뤘던 것은 그 에덴 동산에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부의 긴장관계를 고부의 전쟁이라고 말해오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나라의 고부관계는 거의 부정적이었습니다. 독한 시어머니에게서 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들의 한맺힌 일화가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국 가정의 역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과 긴장의 악순환이었고, 이런 연속석상에서 한국의 고부간의 갈등이 결국 역사의 갈등으로 빚어졌습니다. 그래서 왕궁의 고부간의 갈등이 한국 역사 전체를 흔들어 놓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좁은 울 안에서 두 여인들의 싸움이 완전히 역사를 어둡게 만들어갔던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추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맺더라
외나무 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 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어머니들이 당당한 시대에는 며느리들이 수난을 겪고 한맺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반대로 시어머니들이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독한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구박하고 또 학대함으로 자살하는 시어머니가 속출하고, 또 가정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며느리에게 맞아서 멍드는 시어머니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관악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느날 밤에 한 할머니가 봇짐 하나를 들고 지하실로 들어왔습니다. 제게 기도를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을 얘기합니다. 이 분이 이북에서 월남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유복자 아들을 잘 길러서 이 아들이 서울상대를 나왔습니다. 이 아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얼마 있다가 서울 명문대를 나온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이 할머니가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데 며느리가 아들이 출근만 하면 시어머니를 마구 부려먹습니다. 시장 보는 일, 빨래하는 일, 청소하는 일, 그리고 일 시켜가지고 잘못하면 꼬집고, 때립니다. 이렇게 이 할머니가 며느리한테 맞기를 수십년, 이렇게 살아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던지 그날은 괴나리 봇짐을 하나 싸서 집을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집을 나와보니까 막상 갈 곳도 없고 하니까 교회로 왔는데 제가 아들에게 얘기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는 금실이 좋은데 이 사실을 아들이 알면 부부 사이에 금이 생길까봐 얘기 안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둘이 잘 사는 것이 좋지, 또 아이들도 있는데 되겠느냐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습니다. 세상에 각박한 사람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준 한 이야기가 있으니 나오미와 룻의 얘기입니다. 세계 역사상 이와같이 아름답고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는 인간관계는 찾아보기 드뭅니다.
나오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자기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모압 땅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모압 땅에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거기에서 두 아들이 죽으므로 며느리들이 청상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들을 다 두고 혼자 고향 땅으로 가려고 할 때 룻이 머나먼 길을 따라 나섭니다. 그러면서 룻이 자기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6-17절)
참으로 행복한 시어머니와 행복한 며느리입니다. 아마 시어머니들은 이런 며느리를 만난다면 그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를 이런 관계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처럼 들립니다. '시어머니를 떠나지 아니하고 시어머니 가시는 곳에 따르겠습니다. 낯설고, 물설고, 산선 이방 땅이지만 어머니 계시면 나도 함께 살겠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룻은 효성을 다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고백을 들으면서 이 고백은 고부간 뿐만 아니라 부부간에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보, 당신 가는 곳에 내 어디든지 갈 것이며 당신 머무는 곳에 내가 어디든지 머물겠나이다. 당신 죽는 곳에 나도 거기 죽어 당신 천국에 가는 곳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니 내가 죽는 것 외에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첫째, 인격적인 만남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8절)
여기 '선대'라는 말은 존경과 공경을 겸했다는 말입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며느리가 내 집에 들어올 때 며느리를 하녀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창조한 한 인격이 내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격자로 영접을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영접해야 됩니다. 무조건 내 집에 맞추라는 것보다도 그 사람의 인격을 이해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적대감을 가지거나 시기나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또 결혼한 후에는 시어머니가 아들 집에 드나들면서 공연히 잔소리 하면 안됩니다. 일단 결혼하면 독립적인 한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 며느리에 대한 인격적 존경을 가지고 대해야 됩니다. 그 집에 가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 집에서 며느리가 어떻게 살든지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공연히 참견하면 며느리가 싫어합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완벽한 성격의 부모들이 자녀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식이 결혼하면 그때부터는 부모의 간섭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존경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어떤 사람도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고, 부족이 있습니다. 자기와도 안맞습니다. 각각 개성이 있으니까요.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그 개성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고부간에 좋은 관계로 천당에 갑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순종은 결혼 전에 하는 효도입니다. 결혼 후에는 공경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결혼 전에는 혈육의 부모에게 반항하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것이 효도요, 결혼 후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효도인데 이때는 아들이 부모에게 공경하는 것보다 며느리들이 공경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효도라는 것은 결국 자부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아들은 덤으로 효도가 되는 것이고 자부가 효도를 안하면 자식은 불효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후의 효도는 아들에 관계된 것이 아니고 자부에 관계된 것입니다.
며느리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위도 장인과 장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며느리가 부모에게 공경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지 사위가 장인과 장모에게 공경하는 것은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부간의 관계, 사위와 처갓집의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만남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존중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 공경하는 삶입니다.
시어머니 공경을 위한 십계명이 있습니다.
① 시어머니 앞에 공손하라.
② 시어머니 말씀을 예로 받으라.
③ 시댁 흉을 보지 말라.
④ 시어머니 생신을 잘 기억하라.
⑤ 친정 어머니처럼 다정하라.
⑥ 남편을 흉보지 말라.
⑦ 시누이와 사이좋게 지내라.
⑧ 살림을 검소하게 하라.
⑨ 정들도록 노력하라.
⑩ 용돈을 현찰로 드려라.
나이드신 부모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찰로 용돈을 주는 것 51%, 자주 대화하는 것 20%, 편안하게 하는 것 6%, 선물 사오는 것이 3%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이 용돈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때 며느리가 드리도록 해야지 남편이 비자금을 가지고 모르게 주면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둘째, 섬김의 만남
마음에 그리스도의 섬김의 고백을 가져야 됩니다. '어떻게든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야지, 내 며느리를 행복하게 해야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 때 그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넘쳐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9절)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룻 3:1)
'남편의 집에서, 안식할 곳'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네가 어떻게 홀로 살겠느냐 배우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지'이 말입니다. 홀로 된 청상의 여인 자부에 대하여 미래를 염려해주는 시어머니, 이것이 바로 서로의 행복을 격려하는 자세입니다. '며느리가 외롭게 살아서는 안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이것이 시어머니의 착한 마음입니다.
나오미는 룻을 착한 며느리로 소문을 내기 시작합니다. 나오미는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 자랑을 했습니다. 지방 유지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보아스의 눈에 호감을 주어 둘이 결혼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의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땅에서 시어머니 자랑하는 며느리는 최고의 성숙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며느리를 자랑하는 시어머니 아주 착한 어머니입니다. 좋다고 자랑해야 됩니다. 앉으면 흉보면서 눈 흘기면 안됩니다. 이것은 인격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입니다. 사석이나 공석에서 남의 흉을 보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풀어 준 사랑은 감동적인 헌신입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쉼을 나누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온유와 겸손에서 솟아오르는 섬김의 마음입니다.
롯은 시어머니의 필요한 것을 공급했습니다. 먹을 양식도 없고, 재산도 없는 가난한 시어머니를 봉양하려고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다가 그것으로 양식을 삼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자세는 축복받는 믿음입니다.
셋째, 어머니와 딸의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정적으로 만나야 되는데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부를 때 반드시 '시'자를 빼고 '어머니'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를 때 '딸아, 아가' 이렇게 불러야 합니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11절),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12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16절)
여기보면 나오미는 자기 자부를 부를 때 "내 딸아" 이렇게 부릅니다. 며느리인 룻은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그럽니다. 자부를 딸로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어머니처럼 생각해야 됩니다.
미국의 어느 크리스챤 며느리가 쓴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나의 어머님 시어머님!
사람들은 당신을 시어머니라 부르라 하지만
나는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리이다.
나의 사랑인 남편의 생명의 시작을 가능케 하신 당신,
당신은 그에게 처음으로 기도와 찬양을 가르치신 어머니,
당신은 그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가르친 어머니,
그이가 피곤하여 잠들었을 때 그이는 당신의 품 안에서 안식을 청했으며
그이가 넘어졌을 때 당신의 손안에서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당신은 그이가 잘할 수 있도록 언제나 그의 곁에 머물러 계셨으니
당신은 그이가 위를 쳐다보고 살 수 있도록 무릎을 꿇으셨으니
그이가 내 사랑하는 임이 될 수 있도록 도우신 그 큰 사랑에
나는 누구보다 빚진 자이오니
나는 그이와 함께 당신을 영원히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리이다.
나오미는 룻을 딸처럼 생각했고 룻은 나오미를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우리가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늘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어머니, 음식은 어떻게 만드나요. 어머니 조미료는 어떻게 치나요. 어머니는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나요."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고부간에 옛날로 돌아가서 "어머니도 고부간의 갈등이 있었는지요." 그런 얘기들을 자꾸 질문하면서 대화를 유도해 가야 합니다. 이것이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지혜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이런 관계가 형성될 때 허물이 다 덮어집니다. 며느리는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남남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물입니다. 그러나 딸로 정을 들여버리면 허물이 싹 덮어집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로 일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사도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의 발을 씻기고 와서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은 자기는 남편이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에 남편의 발을 씻길 수 없어서 '누구의 발을 씻기나' 기도 하다가 며느리의 발을 씻겨야 되겠다는 감동이 와서 며느리의 발을 씻겼다고 하면서 며느리의 발을 씻긴 얘기를 했습니다. 이 권사님이 며느리 집을 찾아갔습니다. "딸아, 내가 오늘 네 발을 좀 씻겨야 되겠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내가 숙제를 좀 하려고 그런다." "숙제 하려고 그러세요?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며느리가 숙제 당번이 되어서 발을 씻는다고는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발을 씻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시어머니가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자부의 발을 담그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딸이 우리집에 와서 새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낯설고 힘들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아들과 함께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 발이 복되어 가는 곳마다 평화의 사도가 되게 하옵소서." 너무 간절히 기도하면서 발을 닦으니까 눈물이 발등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자부는 시어머님이 숙제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하늘을 담아 자기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기도를 하니까 시어머니의 기도에 감동을 받아서 자기도 울었습니다. 이 권사님이 눈물 흘리면서 발을 씻기고 나니까 그 자부가 하는 말이 "어머니, 나도 어머니 발을 씻기겠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래라" 해가지고 발을 씻기는데 자부가 어렸을 때부터 조실부모 해서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시어머니가 그렇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주니까 너무 감동해가지고 엉엉 울면서 어머니 품에 어린 아이마냥 안겨서 '어머니' 하고 울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이 자부를 꼭 껴안고 "평생에 이대로 살자 이 마음으로 살자 룻과 나오미와 같이 살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넷째, 신비의 만남
나오미와 룻의 관계는 신비의 만남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초월했습니다. 하늘의 관계를 보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정을 나누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 주면서 결국 신비의 만남으로 하나님의 큰 섭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죽는 곳에 나도 죽겠습니다." 이런 관계로 살아서 하늘나라에 가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룻은 시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았고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은혜를 받는 계시자로 본 것입니다.
롯은 이방 여인으로서 보아스를 만나 결국 다윗왕의 할머니가 되었고,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쓰임받은 위대한 여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칭찬받고 상받을 일입니다. 서로의 만남이 신비의 만남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저에게 충격으로 남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권사님이 계셨는데 자부가 교회를 안나와요. 그래서 전도를 갔습니다. 서로 대화하는 중에 그 자부가 한마디를 합니다. "목사님, 나 시어머니 교회에 있으면 교회에 안갑니다. 시어머니가 가시는 곳이 천당이라면 나는 천당 안갑니다. 지옥 갑니다." "왜 그러는데요." "시어머니가 이 땅에서 함께 사는 것도 지겨운데 어떻게 천국까지 가서 살겠습니까 시어머니 안계신 곳에 가야 편하지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어머니 계신 곳에 나 가겠습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은혜를 베푸십시오. "너 있는 곳에 나도 가겠다"고 할 정도로 시어머니를 감동시키십시오. 부모님에게 불효했습니까 지금 시어머니가 살아계시지 아니하고 천국에 가셨습니까 살아생전에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시고 시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십시오.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불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님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내 심령이 치유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간 룻과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하늘이 보낸 만남이니 하늘도, 땅도 기뻐하는 신비의 만남이었습니다.
떨어져 살아도 부담스럽게 생각되는데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모신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을 모시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시부모를 나의 부모로 모시는 믿음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는 신앙고백이 됩니다. 남편과 한 몸을 이루는 관계가 시부모를 나의 부모로 고백할 때 온전해집니다. 여기서 천국도 나의 천국이요, 하나님도 나의 하나님이 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