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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낮추시고
    2002-01-14 17:39:15   read : 221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립보서 2:5-8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일생동안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자기를 낮추시고 사신 생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낮추시는 겸손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땅 위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천한 인간의 세계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높은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천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에서 나지 않으시고 여관방 하나를 얻지 못한채 짐승의 구유에서 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지극히 낮은 자로 낮아지시므로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일생을 낮은 자로 사셨습니다. 그는 부요한 삶을 살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로, 낮은 자로 사셨고 그는 어부나 농부들과 어울리시면서 항상 낮은 자들과 사귀며 살았습니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되었던 세리들, 그리고 창기들과 더불어 교제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저는 죄인들과 함께 밥상에 앉아 먹는다"라고 비난도 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낮은 자와 교제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죽을 때에도 강도가 좌우편에 함께 달려 죽으므로 죄인들 곁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로 나시고, 자기를 낮추고 사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살으셔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높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위대한 겸비요, 겸손이었던 것입니다.

    첫째, 하늘에 속한 자는 자기를 낮추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심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높은 인격을 소유한 자만이 자기를 낮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내 몸에 지닐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낮아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높은 산봉우리는 깍아내릴 수 있습니다. 또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곳은 더 낮출 수가 없습니다. 땅의 것은 낮출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것만 낮아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겸비하게 낮추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자요, 자기를 낮출 수 없는 사람은 땅에 속한 자입니다.
    혹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까? 물질적인 부요의 교만, 배움에 있어서 학력의 교만, 인물의 교만, 사회적인 신분의 교만이 올 때 '아, 내가 땅에 속한 자구나! 그래서 낮은 자이기 때문에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십시오. 하늘의 영성을 담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높아질 것이 없습니다. 하늘을 품에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낮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땅에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낮은 자요, 땅에 속한 자요, 낮출 수 있다고 하는 이것은 하늘에 속한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몸에서 볼 수 있는 자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우리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낮추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을 절대적인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선교사로서 인도에 와서 한생을 바친 윌리엄 케리는 1761년 그의 생을 마치면서 자신의 장례식 때 시편 51편 1절 말씀으로 임종예배를 드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그리고 그의 유언에 따라 쓴 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윌리엄 캐리 1761년생, 죄 많고, 약하고, 능력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휼하신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그는 평생동안 '나는 벌레다'라는 겸손한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겸손'(Humility)는 낮은 것을 뜻하는 라틴어 Humilis(땅바닥에 엎디는), 땅(Humus) 이라는 영어의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인간은 먼지요,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티끌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제자 가운데 맛세오라는 형제가 있습니다. 어느날 성 프랜시스와 맛세오가 함께 영광스러운 기도원에 있는데 맛세오가 성 프랜시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여 당신이여 당신이여" 이렇게 자꾸 하니까 성 프랜시스가 묻습니다. "거 무슨 말인고?" 그때 맛세오가 이렇게 말합니다. "성 프랜시스코 형제여, 당신은 인물이 미남도 아니고,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데 어찌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이여' 하면서 따르고, '당신이여' 하면서 보고싶어 하고,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 합니까?" 이 말을 들은 프랜시스코는 하늘을 우러러 잠잠히 한참 있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는 순간에 입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유명한 성 프랜시스가 맛세오라고 하는 형제와 함께 어느날 영광스러운 기도원에 있는데 맛세오라고 하는 형제가 묻습니다. "당신이여 당신이여 당신이여" 이렇게 자꾸 하니까 성 프랜시스가 묻습니다. "거 무슨 말인고?" 그때 맛세오가 이렇게 말합니다. "성 프랜시스코 형제여, 그대는 인물이 미남도 아니고 그대는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는 귀족의 아들도 아닌데 어찌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이여' 하면서 따르고, '당신이여' 하면서 보고싶어 하고,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따르는 것이옵니까?" 이 말을 들은 프랜시스코는 하늘을 우러러 잠잠히 한참 있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하는 순간에 입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맛세오 형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가장 죄많은 사람을 하나 찾았지 하나님께서 가장 불쌍한 한 약한 자를 찾고 있었지. 하나님께서 불쌍하고 죄 많고 가련한 한 사람을 택하여 그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그가 바로 나였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죄많은 자에게, 가장 약한 자에게 주시는 그 은혜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지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려고 따르는거야" 그때 맛세오 형제는 "오 형제여! 당신의 겸손을 이제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담을 수 있는 비밀,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마치 계곡에 깊은 물이 흐르듯, 낮은 곳에 하늘의 이슬이 많이 내리듯 자기 자신을 낮춘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많이 담으셔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로기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겸비하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때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공부 좀 해서 학위가 올라가면 교만해집니다. 이때 자기가 교만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는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때 교만한 생각이 들려고 할 때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어떤 때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어떤 소홀함이 있어서 죄책이 올 때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무릎을 꿇고 "주여,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또 산길을 걷다가도 주의 책망이 나에게 임하면 무릎을 꿇고 "주여, 용서하소서. 이 종을 낮아지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한 수도원에 성 이냐시오 로욜라라는 성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도원생들에게 세 가지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첫째, 필요한 겸손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구원의 겸손이요, 둘째, 완전한 겸손은 적은 죄라도 범치 않으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것이요, 셋째, 최고의 겸손은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가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자신이 더 낮아지기를 원하는 것이요.
    겸손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의 첩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버리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를 찾아오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둘째, 겸손은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사랑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남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낮아지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입니다. 사람이 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나 때문에 그 사람이 높아진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곁으로 다 가까이 올 것입니다. 나만 만나면 그 사람이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를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자네를 만나면 살 맛이 나네. 자네만 만나면 내가 높아지거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높여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구유의 천한 자리에 나셨습니까? "어떤 아이라도 나 보다는 출신이 좋다" 이것을 저들에게 이루기 위하여, 어떤 사람도 자기 신분에 대하여 열등의식을 가질 때 "나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너는 괜찮아", 어떤 인물의 열등의식을 가진 자에게 "너 인물 때문에 고민하느냐 나는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이 못생긴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났지", 학력 때문에 고민하는 자에게 "나는 배운 것이 없다." 가난 때문에 낙심하고 괴로워하는 자에게 "나는 가난해서 머리둘 곳이 없었지"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낮은 것을 다 스스로 한몸에 담아 예수를 만나는 사람마다 다 높아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깁니다. 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베드로로부터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다 씻기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겸손의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고 허리를 굽혔으며 자기를 발 밑으로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발 보다 더 낮아져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주시니 이것이 바로 자기를 낮추시고 남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신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의 발을 씻깁니까? 발은 우리 육체 중에서 가장 낮은 지체입니다. 그런데 발을 씻어 높여주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높이는 것입니다. 유대 땅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사람들이 샌달이라는 구두를 신고 다닙니다. 그래서 저들의 발은 항상 먼지 투성이었습니다. 이 더러운 발을 깨끗이 씻으므로 몸 전체를 깨끗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닦는데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지체 중에서 발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손은 악수하면서 알고, 눈은 쳐다보면서 알고, 상체는 한 눈에 보이니까 다 알아주지만 발은 양말 속에, 구두 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으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발은 더러운 곳을 밟고 다니는 허물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먼지낀 발을 씻어줌으로 의롭게 했습니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를 다해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지체인 발을 높여주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가정에 돌아가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상식이 부족하고 교양이 없을지라도 시어머니를 높여주십시오. 그러므로 말미암아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라는 사실을 우러러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그 발밑에 있을지라도 내가 발밑의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탐정리 섬에서 출생한 이자익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항상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배가 고파서 친척집에 가서 머슴을 살지만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곡창지대인 김제에 와서 어느 부자집을 찾아가 '밥만 먹여주면 머슴이 되겠다'고 사정했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겨 그 집 마부로 머슴을 살게 했습니다.
    그 즈음 미국 남장로교의 최의덕이라는 선교사가 김제에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이 분이 마방을 드나들면서 이자익 청년을 전도하고 주인 가족도 함께 전도해서 이 사람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식한 이자익은 주인 아들이 독방에서 한문자 읽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암송하면서 한문자를 배웠습니다.
    최의덕 선교사의 전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금산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주인 조덕삼과 머슴 이자익을 교회 영수로 함께 임명을 했습니다. 최의덕 선교사는 선교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주일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되자 이자익 청년을 조사로 임명하여 설교를 맡아 하게 했습니다. 그때 조덕삼 영수는 "우리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일꾼이 교회의 조사가 된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하면서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단하에서 그 설교를 들으면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1908년에 금산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는데 조덕삼과 이자익이 나란히 장로 후보로 나왔습니다. 투표 결과 이자익 영수는 장로로 피택되고 조덕삼 영수는 떨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 결과를 놓고 웅성거렸습니다. 그때 조덕삼 영수가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교우들, 참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교회에 봉사하기 어려운데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선출하여 일하게 하였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교회를 잘 섬깁시다." 1년 후에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자익 장로는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고 한국 장로교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머슴인 이자익 목사를 잘 받들어 섬겼던 조덕삼 장로는 집안 대대로 하나님께 크게 세움을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너희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각각 낫게 여기라"(빌 2:3). 우리는 자기를 낮추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 12:16)

    셋째, 자기를 낮추므로 자기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잠언서의 구절 구절의 교훈이 교만한 자의 멸망을 예언하고, 겸손한 자의 존경과 영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습니다. 겸손한 자는 칭찬을 받습니다. 겸손한 자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합니다. 겸손한 자는 자기 자리가 안전합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나무가 다 바람에 넘어져서 누워 있습니다. 바람에 맞아서 크지를 못합니다. 낮은 곳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높이는 것이 있고 사람이 높이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는 하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자는 사람들이 그를 높여줍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는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은혜가 됩니다.
    유명한 디엘 무디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하며,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오직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자 자기를 비웠고,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자신을 낮추므로 나타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듯이 나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을 때 예수님 겸손이 내 겸손이요,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나의 낮아지심이요, 예수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됩니다. 자신을 낮추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는 평화를, 나 자신은 위대한 인격을 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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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없이 살자
    온유하게 살자
    정직하게 살자
    자원하는 심령의 복
    주일성수를 잘하면 장수한다
    건강하게 살자
    풍성한 삶을 예언하라
    온전한 믿음 온전한 축복
    웃 으 며 살 자
    상처받은 자의 치유
    살 리 는 사 람
    신부여 행복하라
    염 려 하 지 말 라
    인생의 겨울이 오기전에
    은 혜 로 운 축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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