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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매체시대의 설교
    2002-01-04 00:26:09   read : 2539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변화의 물결 속에 제기되는 질문들



    지금 기독교는 범교단적으로 CATV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대중매체와 신앙과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온 이들이 있지만, TV화면을 통하여 장엄한 예배장면이 안방에까지 들어오고, 감동적인 설교자의 설교를 가정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한국교회 앞에 열려 졌을 때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교회에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한국교회 앞에 열려 졌을 때에 이 문제는 더욱 시각해질 것이다.

    교회에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안 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수많은 대중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으며,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고 양육이 된다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성전 중심의 신앙으로 양육되어 왔으며, 교역자들중 대부분은 앞으로도 성전 중심 신앙을 강조하고 가르칠 것이다. 그런데 자기 교회 성가대보다도 더 멋진 찬양을 하고, 더 장엄하며, 더 은혜스런 예배가 자기 집 안방에서 진행되고 있는데도 성전중심신앙을 강조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 성도들 가운데 상당수의 성도들이 라디오의 채널을 기독교방송이나 극동방송에 고정시켜 놓고 전파를 통해서 들려 오는 설교들을 하루에도 7-8편씩 듣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는 성도들의 간증을 듣고 있다. 계속해서 우리 앞에 찾아오는 기독교 신문과 신앙잡지들은 훌륭한 설교의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게다가 끊임없이 개발되고있는 컴퓨터화면에서도 설교들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려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은 '우리교회 목사님의 설교보다 더 멋있는 설교들을 날마다 접할 수 있는데 꼭 교회에 나가 우리 목사님이 설교를 들어야 합니까?', '방송설교를 듣고 은혜받는 것이 졸리운 우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어요?', '방송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은혜받는 것이 서로 싸우고, 자존심대결을 하고 있는 우리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앞으로 한국교회는 선진 서구교회와 그 뒤를 따라가는 미국교회와 같이 예배당 건물만 크게 지어놓고 텅텅비어 있는 성전을 바라보며 탄식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





    시정되어야 할 몇가지 오해들



    우리 앞에 열려지는 새 시대에 대처하여 우리의 설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몇가지 설교에 대한 편견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심리주의적 오해

    우리가 도전해야 할 첫번째 편견은 심리적인 감정이 우리의 인격변화와 하나님 신앙의 성장에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이다. 감정은 우리의 정신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보다도 먼저 우리의 심리적인 만족감이나 감동을 생각하는 것은 심리주의(Psychologism)에 빠진 한가지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감정적인 포만감을 "은혜받았다"는 말로 표현하며, 그리고 끊임없이 소위 그 "은혜스러운"설교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말하면 "은혜스러운" 설교가 우리의 신앙을 성장케 하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의 근본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그것이 은혜스럽게 선포되든 그렇지 안든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여 역사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그 설교가 은혜스러우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느냐? 이다.



    설교와 설교자의 분리

    우리가 도전해야 할 두번째 편견은 설교가 믿음의 사건을 일으키며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함양하는데 가장 결정적이라는 생각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하나님의 성령은 설교(즉 말씀의 선포)하는 곳에 임재하여 신앙을 창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창조하신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며, 현대신학자들이라고 다름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장이 많은 경우에 설교자와 설교를 분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설교자와 설교를 분명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3-14). 바울은 전파하는 자의 전파하는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믿음을 얻어 구원받는 다고 가르친다. 말씀선포는 선포하는 자와 함께 있다. 들려지는 말씀과 전파하는 자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둘을 함께 생각한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의 1차적인 강조점은 설교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어떠해야 함을 가르치는 데에 있다. 말씀선포는 선포되는 말씀과 말씀을 선포하는 자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매체는 기본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자와 관계없이 선포되는 말씀을 생각하며, 따라서 인격 없는 말씀을 받으므로 그 말씀이 듣는자의 지식과 감정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지 모르나 인격변화와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는 신앙성숙으로 인도하는데는 부족하다.



    설교와 신앙공동체의 분리

    우리가 도전해야 할 세번째 편견은 설교와 신앙 공동체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하나님은 설교의 권한을 공동체에 위임하였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특별히 훈련받고 교회에 의하여 구별된 소수의 안수교역자(목사)들에게 설교를 위임하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위임을 받은 교역자요, 교회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해서 설교하는 책임을 부여 받았다. 즉 설교가 설교되는 것은 신앙 공동체의 맥락에서이다.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 설교만 분리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것은 우리에게 지식습득이나 정보발견이나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기독교 신앙의 성숙과 기독교적 인격변화에는 크게 도움을 줄 수 없다. 그 이유는 설교가 설교되는 것은 설교자를 위임한 공동체의 맥락안에서 이기 때문이다.



    설교와 예배공동체와의 분리

    네번째 도전해야 할 문제는 설교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배는 현존하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바로 그 자리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면 설교하는 자리가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일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언제든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단독자로서 하나님앞에 서 있는 것을 예배라고 하기는 어렵다.
    설교의 테이프를 듣고 있는 순간, 인쇄된 설교를 읽고 있는 순간, 또는 TV방송을 통해 안방에 전달되는 메시지를 듣는 것을 예배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단독자의 행위요, 단독자의 훈련이라고 할 수 는 있으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나 설교들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논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성장에 기여할 수는 있으나 중대한 역할을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한 설교의 가능성과 제한성



    그렇다면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설교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대중매체로 전달되는 설교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말씀선포를 위임받은 인격자인 목사와 분리되고, 신앙공동체와 예배하는 공동체의 맥락을 떠나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설교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설교를 통해서도 성령께서 임재하실 수 있고 구원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듣는 이들은 성경의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아 지성적으로 성장하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구약과 신약을 비유로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다같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구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하여 전달하는 말씀이지만 신약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들어 오셔서 전달하는 말씀이다. 구약은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신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언어로 들려질 때에라도 육신을 입은 말씀이신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구약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그림자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말씀이다.

    대중매체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전달하는 자와 분리되어 말씀 그 자체가 언어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되며,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와 분리되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말씀과 같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메시지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진리의 말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달하는 설교자, 예배드리는 공동체, 설교를 위임받고 설교자를 위임하는 신앙공동체와 함께 들려오는 설교의 말씀은 신약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인 것을 확신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세운 설교자, 예배드리는 공동체, 그리고 설교자를 위임하는 신앙공동체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이 역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전달하는 인격자와 공동체가 함께 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과 신앙성숙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메시지들은 그 자체에 구원의 능력과 신앙성숙의 능력이 있을지라도, 구약이 신약안에서만 그 참된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받듯이, 이 메시지들은 예배드리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설교를 하나님께 위임받고 설교자를 위임하여 세우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세운 설교자들과의 만남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매체시대의 설교



    이제 우리는 오늘과 같은 다매체시대에 설교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로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말씀의 보완작용의 기능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구약이 신약안에서 그 의미와 기능을 발견하는 것과 같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말씀은 예배 공동체 안에서 설교자를 통하여 전달되는 설교의 말씀의 보완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소평가해서 안되지만 동시에 신앙공동체와 분리된 말씀의 제한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한 몽학선생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몽학선생은 사람들을 진정한 스승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몽학선생의 기능은 두가지다(갈3:24). 하나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일을 담당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들을 교육시키며,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말씀은 이 두가지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신앙공동체로부터 설교를 위임받은 설교자들은 대중매체가 아무리 발전하고, 대중매체의 역할이 아무리 증대되더라도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과 신앙의 성숙은 예배드리는 공동체 속에서 전달되는 설교자의 설교를 통하여 일어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설교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설교가 우리의 심리적인 만족을 줄 수 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설교가 우리의 신앙성숙에 유익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설교가 어떠한 감동을 나에게 주었느냐 보다는 얼마나 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설교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만족이나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설교라고 할지라도 충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가 중요하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들려오는 메시지들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의 설교보다 더 감동스럽다고하여 그 때문에 고민할 것이 아니다. 예배 드리는 공동체의 맥락이 하나님의 현존의 장이요,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도 하나님의 이미지의 장이요, 그가 선포하는 설교도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역사의 장이라면, 예배드리는 공동체의 목사의 설교는 그 자체로서 구원과 성숙의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매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복음증거의 기회를 만들되 그 제한성과 가능성을 이해하며, 예배드리는 공동체속에서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에 의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부여받아야 할 것이다. 신앙공동체의 위임을 받은 목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독특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오성춘(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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