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說敎"(sermo)라는 말은 라틴어의"談話"(sermo)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근대적인 의미는 교회의 禮拜의 중심이 되는, 形式을 갖춘 연설(formaladdress)로 이해되고 있다. 牧會學的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설교는 "기독교의 예배를 목적하여 모인 정규적인 集會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교훈하도록 꾸며진 공적 談話의 근본적인 원리를 가르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설교는 종교적인 모임에서 주어지는 형식을 갖춘 演說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적인 진리와 人間的인 식견의 차이를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은 과거 敎會史 가운데서 가장 파괴적인 악마의 한 역사였다. 아마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절대적인 분열은 철학적인 사색에서 시작되고 成長했다고 볼 수 있다. 정의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 하고 융화될 수 없는 것과 서로 교제하려는 경향이 근대 개신교위 分列의 대부분의 요인이 된 것이다. 죄의 기원이나 악마의 기원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가장 흥미있고 매혹적인 논제였다. 예수는 죄에 관하여 말할 때에는 언제나 죄와 악마를 기존 사실로 인정하고 그 치료에 대한 말씀만 하고 있다. 剛斷의 機能을 가장 잘 성취하려고 하면 예수의 방법에 가장 가까이 따라가면 될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은 약23분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에는 사상의 집중이 힘들다는 점과 비록 설교가 흥미있는 것이라 하더라고 일정한 시간을 초과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것이다.
펠푸 박사의 정의 가운데 마지막 한가지 언급이 바로 설교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설교는 "說得을 目的"으로 하는 담화이다. 비넷(Vinet) 교수도 역시 더욱 분명하고 의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설명하고, 그 진리를 용납하는 자들에게는 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실 때 가르쳐 주신 말씀 全破의 目的과 아주 일치하고 있다. (마28:19,20)
說敎는 결코 종교의 일반적인 토론이나 성경에 있는 가벼운 야화나 풍자의 성질만이 아니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說敎는 주제의 가치에 따라 분명하고 정확한 명제가 제한되어야 하고 사상의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2장 설 교 개 요
설교의 計劃 혹은 흔히 말하는 설교의 개요(outline)는 줄거리 혹은 축소라는 뜻인데 그것은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축소시켜 줄거리를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요는 언제나 그 내용의 槪念이 쉽게 이해되고 기억될 수 있겠끔 일정한 형식과 언어로서 표현되어져야 한다. 가장 최선의 개요는 그가 전개 할려는 사상을 가장 쉽게 제시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잘 다듬어진 언어로 표현되어 져야 한다.
형식을 갖춘 개요를 무시해야 정신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은 態度를 갖는데는 아마도 어려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설교자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너무 조심스럽게 準備하게 되면 說敎 가운데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기회와 能力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잘못된 이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이미 剛斷에 올라서서 기다리는 성령의 역사 이상으로 성령의 안내하심을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은 그들의 가장 조심스런 준비 가운데서, 그리고 가장 명확한 개요 가운데서, 훌륭한 설교가 탄생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사실 훌륭한 설교 개요는 이것을 준비할 만한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마음의 특성이 필요하며 성령과 합일한 명상적인 기질도 필요한 것이다.
짧은 메모만으로도 능숙한 걸교를 한다든지 성공적인 설교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는데 그것은 설교 槪要를 미리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설교자가 그 주제에 대해 상당한 知識과 見聞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좋을 것이다. 설교학(homiletics)의 어떤 원리에서도 설교자가 설교할 때마다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보증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좋은 설교 개요의 가치는 과대 평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의 사상을 조직화 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그의 최선으로 말 할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설교자의 언어 表現을 정확하게 하고 뚜렷한 목적을 밝히는데 도와주며 그의 메시지를 정상적으로 전개하고 설명하게 해 주며 이같은 준비된 마음을 갖는 것은 자기의 설교의 영향력 만큼 자기 자신에게 설교하는 기쁨을 무한히 증가시켜 주기도 한다.
펠푸(Phelps)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설교 개요는 일곱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했다. 즉 본문(text), 해설(explanation), 서론(introduction), 명제(proposition), 대지들(dovisions), 전개(development), 및 결론(conclusion)이라는 것이다.
가장 최선의 설교자의 계획이 서로 부합될 때 비로서 가장 최선의 설교가 가능하며,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에 있어서나 실용적인 방법에 있어서나 청중의 마음 속에 오래 보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문제에 대한 결론적인 견해로서 좋은 결교 개요의 형식은 主題(theme), 本文(text), 序論(introduction), 大地들(dovisions), 전개(development), 그리고 結論(conclusion), 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 3 장 주 제
說敎 개요의 제일 첫부분이 主題(theme)이다. 주제는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어휘가 여럿이 이 있기 때문에 본장에서는 그들 사이의 구별과 독특한 의미에 대해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설교의 으뜸이 되는 논제를 제목(subject)이라 일컫는다. 이와 같이 제목과 주제가 결정되면 이 주제를 어떤 특별한 방향으로 끌고갈 것이며 뚜렷한 목적을 가질 것인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믿음의 冒險"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이야 말로 우리 크리스챤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라고 뜻을 풀이하고 목적을 제시 할 수 있다.
說敎자의 주제가 결정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說敎의 방향과 성격은 여러면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두 사람이 똑같을 수 없듯이 說敎에 있어 똑같은 주제(theme)를 가졌다고 하더라고 사람마다 그 재료들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들의 개성과 강조점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주제가 같다고 같은 설교가 될리 없다.
설교자의 주제를 決定하는 絶對的인 여향이 있다면 아마도 그가 이해하고 있는 회중(교인)들의 필요(needs)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說敎자는 교인들의 問題를 다루게 될때 과장해서는 안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서 보다 만족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시해 줌으로 자기 처지에 대한 새롭고 더 높은 해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고 특수한 敎人들의 심미적이고 도의적인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말씀의 부분적이고 偏見的인 껍질을 먹이지 않는다면 說敎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치료자가 되는 것이다.
說敎者는 그의 說敎를 준비하는 가운데 언제나 사람들의 필요를 고려해야 하며 마치 예수님이 무거운 짐진자들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하여 어떠한 곳에 수고하고 무거은 멍에가 있는가를 알고 그대로 행하였듯이 항상 설교자의 마음은 사람들의 생활과 호흡하고 있어야 한다.
다음 중요한 영향은 說敎者 자신들의 氣質(temperament)이라 할 수 있다.
설교가 그 특성에 있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설교자의 기질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제 選擇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다른 하나의 실제적인 요소는 설교자의 經驗(experience)이다. 主題를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宗敎的 眞理에 대한 설교자 자신의 槪念의 문제다.
좋은 주제는 또한 뚜렷한 目的을 가져야 한다. 설교자는 그의 제목(subject)에 관한 論證을 할뿐 아니라 그 목적과 中心點을 밝혀 주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보통 명제(proposition)에서 밝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命題는 說敎의 目的을 밝히는데 있어서 한 文章의 뚜렷한 진술로서도 가능하다.
좋은 주제의 마지막 특성은 그 형식에 있어 긍정적이고 적극성을 띄우라는 것이다. 이런 주제를 취급하는 설교자는 상당한 논리적인 방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說敎의 主題와 材料들을 發見하는데 다른 하나의 유용한 方法은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發見하는 것이다. 예리한 관찰력은 無窮無盡한 화제의 재료를 개발하며 이것은 우리의 모든 生活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이다.
설교에 특별한 關心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제목 그 자체가 흥미있는 주제를 갖는 방법이다. 특별한 時機와 場所에 따라 특이한 제목을 갖는 것인데 예를 들면 "용서할 수 없는 죄악", "신성한 청종", "재림", "安息日", "義人의 죽음", 과 같은 특정한 目的을 가진 主題이다. 그러나 說敎의 題目에 세속적이거나 성스럽지 못한 표제를 붙이게 되면 宗敎的인 신성함을 잃게 되고 강단의 위엄을 감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제 4 장 본 문
說敎의 역사 가운데 가장 특이하고 關心있는 사실 중의 하나는 모든 설교자가 본문(text)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初代敎會의 회중들은 주로 예수와 그의 사도들의 말씀에 根據하여 討論도 하고 勸勉도 받았다. 종교개혁 당시 신교에서는 민둥들에게 성서의 가치를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성경을 열심히 읽었으며 성경의 본문을 통한 설교가 제도적으로 소개되어 오늘날까지 禮拜와 설교의 양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와 같은 제도적인 양식이 다소 무너지는 경향을 보게된다. 이것은 오늘날 강단(pulpit)의 機能이 다소 變化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사용을 생략하는 다른 하나의 京鄕은 題目 說敎(topical preaching)의 경향 때문이다. 초기 敎會 시대에는 설교의 제목(subjects)글을 알릴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끌게해야 하고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매혹적인 제목(topics)들이 여려가지 方法으로 광고되거나 선전되고 있다.
근대의 강단이 비록 本文 사용을 소홀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설교자는 본분을 우용하게 사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본문을 사용하는 것이 說敎의 전개나 효과에 있어 어떤 유익이 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은 진리의 根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本文을 사용하면 설교자의 메시지에 권위를 둔다는 점이다. 다른 한가지의 유익은 聖經本文의 대부분이 메시지의 효과적인 목적을 위한 영적인 眞理를 表現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문의 어떤것은 說敎의 내용을 다 잊어버린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명료하고 韻律的인 미와 여운을 주는 생기있는 주제를 제공하는 것이 있다.
本文 사용을 장려하는 다른 하나의 가치는 說敎의 메시지를 기억나게 하고 연상하게 하는데 본문이 큰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자의 입장에서 보더라고 본문(text)을 사용하게 되면 說敎學的인 유익이 있다. 본문은 흔히 설교 주제를 쉬운 방법으로 說明함으로 설교의 序論을 장식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다.
本文이 說敎에 있어서 序論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설교전개에 있어서도 크게 도움을 준다 본문은 설교 목적의 方向을 제시해 주며 전개해 나가야 할 영역과 범위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본문 사용의 가장 큰 유익점이 있다면 아마도 청중들에게 성경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聖經本文을 택하는 데는 상당한 식별력이 있어야 한다. 내용은 비슷할지라도 모든 말씀은 다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꼭 같은 용도로 쓰여질 수 없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本文은 적어도 3가지 特性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文學的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훌륭한 본문은 단순한 문학적인 형식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야 한다. 어떤 본문은 특별한 경우에 사용하게 되면 특별히 가치가 잇는 本文들도 있다. 때와 用度에 따라 적절히 본문을 사용할 줄 아는 설교자는 이미 설교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항상 聖經을 읽으며 말씀에 포함된 靈的인 意味의 깊이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說敎를 위한 훌륭한 本文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自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훌륭한 본문을 찾아볼때 만큼 큰 기쁨을 느낄때가 다시 없다.
제 5 장 서 론
설교 구조의 기본적인 부분을 논의할 때 "序論"이라는 부분에는 대지(main divisions)나 혹은 主題에 대한 本論이 시작되기 전의 모든 요소들이 이 서론에 포함되어 진다고 하였다.
序論을 작성하고 準備하는 실제적인 方法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서론(introduction)의 목적에 主義를 기우려 보아야 할 것같다. 왜냐하면 목적을 분명히 함으로 앞으로 서론 作成 方法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대체로 설교에 있어서 서론이 목적하고 있는 것을 셋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주의를 끌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目的은 關心을 開發하는 것이다.
序論에서 이루어져야 할 마지막 목적은 분위기를 조상하고 집중시키는 일이다. 이모든 요소들은 예배의 一般的인 분위기를 트결한 무드로 이끌어가게 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다.
序論을 構成하고 準備하는 方法에 대해서 생각해 버겠다. 먼저 本文을 중심으로 설교를 해야할 것인지 題目을 중심으로 하는 說敎를 해야 할 것인지를 決定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 서론부터 構成해 나가면 된다.
서론의 첫부분으로서 解說(explanation)을 끝마쳤음으로 다음 단계인 서론 가운데 있는 서론(소서론)을 생각해 보자. 서론의 세번째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부분을 명제(proposition)라고 칭한다. 序論의 問題를 마치기 전에 本文에 대한 한가지 부언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문을 중심으로 한 서론을 생각해 볼때 한가지는 문맥의 배경에서 발췌한 것이고, 또 한가지는 文脈과 상관없이 本文 자체의 진리성으로서 취급하였다. 가끔 본문은 서론을 구성하는데 아무런 도웁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잇다. 서론은 단순히 본문이나 성경에서 발견되어지지 않는 사실로서도 흔히 구상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제목을 중심으로 한 서론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題目 중심의 설교가 흔히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으로서 명확하고 뚜렷한 감명을 줄 수 없는 것이라도 제목을 통해 깊은 감명과 결과를 갖게 하는경우가 많이 있다.
서론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가? 설교의 서론아라면 正規적으로 5분을 넘어서는 안된다. 서론에서 겨냥한 목표가 成就되었을 때에는 주제에 대한 本論을 敢行하는데 조금도 肢體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 6 장 대 지
說敎의 主題를 펼치고 論證하는 부분을 本論 혹은 대지라고 一般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대지는 사실 전 說敎의 줄거리나 축소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줄거리나 要約을 槪要(Qutline)의 形式으로 쓸때 이 줄거리의 큼직한 묶음들을 우리는 대지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어떤 특정한 주제가 選定되었으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일단 자료가 층분히 수집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자료의 용도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자료가 수집된 다음 과정은 그 자료들을 命題를 뒷바침해 줄 수 있도록 분류하고 묶는 일이다. 그럼므로 대지는 명확한 사고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야 하겠다. 이러기 위해서는 각 대지들은 서로가 連結이 되어 있어야 하고 어떤 段階的인 방법으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이대지는 모두가 명제에 관계하여 統一性을 가져야 한다. 설교의 思想을 항목별로 묶는 것 곧 대지를 잡는 것에는 또 다은 한가지 유익점이 있다. 설교자가 자기의 메시지를 다 記憶해야 하는 努力을 크게 덜게 해 주는 점이다.
좋은 대지의 가장 중요한 유익 중의 하나가 남아 있다. 설교의 目的은 듣는 자로 하여금 確信과 깨우침을 얻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주제에 대한 잘 정리된 구조와 질서있는 展開는 聽衆들에게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주는데 큰 역활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에 있어 대지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새로운 대지가 시작할 때에는 앞뒤의 대지들과 잘 連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지의 정리와 서술을 主題하는 원리가 무엇이지 살펴 보아야 한다. 첫째로 좋은 대지들은 主題와 관계되는 것이라야 하고 명제를 서술하고 증명하는데 직접적인 역활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지는 論理的인 전개가 되어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사상의 점진성이 있어야 한다. 모든 說敎는 처음이 있고 中間이 있으며 마지막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지들은 각 부분마다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듯한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에 있어 좋은 大地의 네번째 特殊性은 命題를 완성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미 주지한 바도 있지만 하나의 說敎는 論理的인 시작이 있어야 하고 또한 분명한 마침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첫째 대지는 가능한 한 論證의 목표와 절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 대지는 첫째 대지에서 예시한 문제의 核心을 정확하고도 과감하게 붙잡아야 하며 셋째 대지에 가서는 命題를 완전히 논증할 수 있도록 설교자의 명확한 결단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대지들에 대한 일반적인 理論과 實際를 더듬어 오면서 설교자는 성경을 解析하고 설명하는데 심원한 지식과 신앙이 요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설교자가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說敎의 기술이다. 聖經은 영원토록 인간에게 關心과 의미를 주는 책이다. 사람들이 성경을 듣는 것을 흥미 없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 심원의 갈망을 잘못 說明하고 있는 다들이다. 두리들의 이와 같은 개발과 발전의 유일한 소망은 신성한 말씀에 대한 더 깊은 지식과 그들의 가르침을 生活에 실천하고 적응하는 것과 그리고 가르치고 설명한 말씀이 많으면 많을수록 剛斷(pulpit)은 더 나은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만이 그 열쇠가 될 것이다.
제 7 장 展 開
展開(development)에는 歸納的인 方法과 繹的인 方法이 있다. 귀납적인 것은 思想을 綜合하고 槪括할 수 있지만 섬세하고 자세한 說明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연역적인 方法은 큰 努力 없이도 사상을 擴大하고 넓힐 수는 있지만 사상을 조직적으로 꾸미는 데는 많은 곤란이 있다. 어떤 설교라도 成功的인 展開를 위해서는 몇가지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 첫째는 자기가 사용할려는 재료를 잘 選擇하는 일이다. 충분한 명상은 설교 전개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 쯤은 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정신분야에 있어 潛在意識은 說敎의 展開에 있어서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와같이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데 안내자가 될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바로 이 자료 選擇의 結果에 따라 說敎의 成敗의 決斷이 달려 있고 서로 다른 環境과 증력 가운데서도 최선의 表現과 目的을 달성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說敎는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고 생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生命力 있는 것이어야 함을 항상 명심해야 하겠다. 材料는 주제에 적응되고 주제와 일관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특별히 材料 중의 예화를 사용할 때에는 주제와 잘 연결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좋은 材料는 그 이상의 特性을 지녀야 되는데 그것은 설교자 자신의 독창적이 가미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명한 설교자와 평범한 說敎者 사이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그것을 그들의 설교의 능력에 관계하여 말한다면 바로 이 독창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가 전개되고 있는 동안 청중들은 그 아이디어가 獨創的인 것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아 채린다.
獨創力은 그 질에 있어서나 양에 있어서 순전히 우리들의 인격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人格의 範疇만큼 展開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와 같은 바람직한 창의력에 이르게 할 수 있는 3가지 方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째 방법은 열심있는 硏究이다. 하나의 問題를 취급하더라도 집중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설교자가 聽衆들로부터 이와 같은 권위를 인정받는 것 만큼 더 기쁘고 더 요구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적절한 예화를 사용할 줄 아는 수단이다. 이 方法은 설교의 한부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한대지나 전체의 설교를 뒷받침해주는 예화일 수도 있다. 세번째의 방법은 특이한 응용을 구사할 수 있는 手段에 의해서 얻어진다. 破格的인 獨創力은 청중들로하여금 쉽게 기억할 수 있게도 하며 깊은 感銘을 받게 할 수도 있게 한다. 또한 설교자 자신도 전개 자체에 놀라운 힘을 부여 받게 되고 目的한 바를 설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도 된다. 이 독창력은 열심있는 연구와 주제와의 一貫性이라는 요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이들과 잘 조화를 이룸으로서 완전한 效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獨創性의 능력은 예리한 觀察의 訓練과 習性에서 얻어진다고 많이 말하고 있다. 전개에 있어서는 더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論理的인 定理(배치)이다. 마치 대지가 명제에 대한 논리적인 서술이 필요하고 각 장이 그 책의 타이틀에 논리적인 연결이 되어야 하듯이 설교의 각 부분의 전개는 각 大地를 說明하고 擴大하고 論證하는 目的이 뚜렷해야 한다.
설교에 사용되어지는 여러가지 수사적인 형식에 대해서 論議하여야 할 것 같다. 수사적인 敍述方法은 4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이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설교자의 능력을 크게 증가시킨다
첫번째 方法은 敍述的 혹은 繪畵的(pictorial)방법이다. 성경에서 인용한 설화를 택하여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표현할 수 있는 說敎자는 대체로 그 회중들에게 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 있다. 美辭麗句적인 서투른 表現은 자칫 잘못하면 회중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심할 여지도 없지 않다. 둘째로 야화적인 방법이다. 이방법은 특별히 유명한 부흥사들이나 설교자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큰 효과를 얻고 있는 方法이기도 하다 그들은 보통 대지를 전개할 때 먼저 대지의 표제를 진술한 다음 약간의 말로 說明을 하고 돋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서 그 대지의 목표를 논증하는 방법이다. 좋은 야화는 몇가지 특출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시작이 멋있어야 한다. 시작은 대단히 중요한데 그것은 聽衆들과의 접촉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흥미있는 앞일을 계승할 수 있는 行動的인 요소가 많아야 한다. 전개의 세번째 수사적인 형식은 해설적 혹은 주석적 방법이다 이것은 주어진 성경 말씀을 자세하고 올바르게 해것하고 說明하는 方式이다. 서론에서는 의례히 본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교의 첫 부분에 이 해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감정의 무드가 고조되기 전에 하나의 지적인 호소와 基盤을 쌓는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퍽 유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전개에 사용되는 네번째 수사적인 方法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가끔 대단히 效果的인 結果를 가져다 줄 수 있는 方法이다. 이것은 교리문답적(catechetical)方法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연히 어떤 目標에 연걸하려는 여러가지 질문들이 주어지고 거기에 따르는 解答이 말해지는 내용을 담게 된다. 문제가 생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問題들이 청중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중들은 解答을 찾을려고 애쓸 수 있게도 된다. 이방법은 주로 젊은이들의 집회에 많이 사용될 수 있으며 간혹 나이 많은 사람들도 이 方法으로 크게 감명을 받는 경우도 있다.
설교 전개에 있어 나머지 한가지 더 주시햐여야 할 것은 材料(material) 정리에 대한 心理學的인 응용이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드리고 수긍하게 하기 위해서는 3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그첫째는 知性에 호소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그 제시된 명제에 대한 올바른 共感을 느낄수 있도록 감정적인 호소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行動을 뒤따르게 하는 의지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說敎의 보다 나은 전개에 있어서나 連續的인 說敎에 있어서는 이3가지 意識的이며 심리적인 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 또한 感情에만 호소하게 되면 행동적이 될 수는 있을런지 몰라도 확고하고 깊이있는 신앙을 갖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적절한 感情的인 호소가 있어야 생활의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정의(知情意)를 모두 갖추어야만 가장 바람직한 展開의 호소 方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8 장 결 론
大地와 그것의 展開는 命題를 完成하는 일을 한다. 說敎에 있어 결론의 부분은 지금까지의 論議를 재정리 하고 命題의 眞實性을 재확인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강약에 따라 命題의 명확성을 認識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지금까지 전개해 온 說敎의 效果를 크게 좌우한다. 文學的이며 修辭學的인 요소로서 설교의 마감 부분을 조심스럽게 準備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설교의 마지막 5분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展開해온 說敎의 모든 부분을 재확인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맺는 방법중 첫째 아주 普遍的인 方法은 지금까지의 설교의 중요 내용을 요약하는 방법이다. 요약이라는 어원이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은 說敎의 大地를 재진술하는 방법이다.
이 要約의 方法은 이미 앞에서 말한 중요한 대지들을 순서에 맞추어 간단하게 재졍리함으로서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의 효과를 급증하게 하고 기억에도 남게 하는대 큰효과가 있다. 특히 이방법은 교리적인 명제나 生活의 觀點에서 다룬 논리적인 설교에 있어서는 특히 가치있고 가장 적절한 方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방법은 예화(illustration)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方法은 가장 간편한 方法이라는 것이다. 어떤 思想으로서도 제시할 수 없는 보다 실제적이고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感情의 호소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方法은 잘 선택되고 적절한 이동문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인용문은 언제나 암송한 것이라야 한다. 說敎의 마지막 부분을 원고를 보고 읽는자는 것은 대단히 나약한 방법이다.
유명한 부흥사나 說敎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또다른 하나의 方法은 자기 설교의 마지막 셋 혹은 네개의 文章을 또박 또박 짜임새 있게 강조하는 方法이다.
제 9 장 說 敎 의 種 類
說敎(sermon)는 說敎者가 意圖하는 目的에 따라 여러가지 方法으로 분류 될 수 있다. 이 설교의 根本 要因이 되는 본문의 활용에 따라 설교의 유형들이 구분된다고도 말ㄹ 수 있겠다. 說敎는 4가지 종류로 구분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본문 설교(textual sermon), 題目 說敎(topicl sermon), 해석설교(expository sermon), 그리고 추리설교(inferential sermon)이다.
本文說敎- 본문이 곧 주제가 되는 설교의 形態라고 말할 수 있는데 본문의 많은 부분은 說敎의 大地로서 사용되는 說敎이다.
題目設敎- 이것은 本文이 단지 그 說敎의 題目만 제시하는 설교의 形態이다.
註解說敎- 주해 설교는 本文 가운데서 主題가 발췌되는 說敎류 중의 하나이며 설교의 전 내용이 본문의 해석과 논의로서 끝난다. 本文은 반절(half verse)정도의 짧은 것에서 부터 한장(chapter)정도의 긴 것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는 說敎다.
抽利說敎- 抽利說敎의 境遇에서는 그 展開가 本文에서 유도될 수 있는 推理的인 사실을 가지고 그 內容을 삼는 것이다. 이 有形의 설교는 아래의 매크라렌(Alex Maclaren)의 失禮를 들어 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추리 說敎는 모든 다른 種類의 說敎보다도 가장 어려운 설교라 할 수 있다. 이상의 失禮에서도 보여진 바와 같이 몇가지 특성이 필요로 하는 설교이다. 本文 사용에 대한 아주 기술적인 活用이 있어야 하며, 人間의 本性에 대한 깊은 洞察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내심의 性品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어쨋든 이상에 말한 네가지의 설교 有形들은 각기 長短點이 있기 때문에 어느하나가 특출한 方法이라거나 效果的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種類의 說敎를 사용하던 그 전개에 있어서 신선하고 獨創力이 가미될 대는 훌륭한 說敎가 될 수 있다.
제 10 장 材 料 收 集
說敎의 材料收集에 대한 뚜렷한 方法은 첫째로 모든 知識은 說敎者를 도와 준다는 原理를 이해하여야 한다. 지식은 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만큼 經驗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대단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報告者 하는 재료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췌하는 것과 같은 뚜렷하고 명백한 材料들을 말한다. 설교자는 좋은 재료들을 힘써 찾아야 하며 그것을 保存할 때에는 몇마디 메모를 통해서도 언제든지 필요할 때에 理容할 수 있는 良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설교자는 어떤 양식에 의해서 이같은 材料들을 수집해야 할 것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그 첫번째 方法은 각 題目의 중요성에 따라 혹은 가나다 순서에 따라 큰 봉투를 사용하는 方法이다. 정기적으로 철하는 習慣을 갖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들은 장차 說敎나 강연을 準備할 때 필요한 수고와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훌륭한 效果를 얻을 수 있는 方法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方法은 스크렙 북이라고 불리우는 方式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의 目的은 참고가 될만한 자료들을 간단한 陳述로서 保管하는 것인데 시나 명 文章의 인용, 혹은 서신을 통해서 앋은 특별한 道德的 靈的 意味가 있는 것을 발췌하거나 그 밖에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라도 秩序있게 定理해 둔다. 세번째 방법은 설교 재료를 얻기 위하여 정기 刊行物을 購讀하고 있는 사람이나 最善의 說敎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될 수 있는 方法이다. 다른 한가지 方法은 讀書를 통하여 수집되는 方法이다.
마지막의 方法은 특히 學生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方法이며 여행자나 큰 會議 참석자들에게 필요한 方法이다. 그것은 항상 포켓용으로 넣어둘 수 있는 備忘錄(memorandumbook)의 사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