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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목적-나는 왜 이 설교를 하는가?
    2002-01-04 18:46:47   read : 483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글쓴이: 주승중

    1. 들어가는 말
    어느 토요일 저녁 김 목사는 아내에게 주일 아침에 할 설교를 읽어주고 있었다. 설교를 다 읽고 나자 김 목사의 아내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목사님, 왜 그 설교를 하려는 거죠?” 김 목사는 아내의 이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하였다. “설교가 참 좋다”라든지, “설교가 은혜스럽다”라는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그에게 “왜 그 설교를 하려는 것인가?”라는 아내의 질문은 김 목사로 하여금 대답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김 목사는 아내의 이 질문에 처음에는 내심 불쾌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질문은 그로 하여금 다시 한번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설교를 하려는 것일까?” 사실 그는 설교를 작성하는 동안에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 때, 자기가 그 설교를 하려고 했던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김 목사는 주일 새벽까지 그 설교를 완전히 다시 구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혜로운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전 과정을 통하여 “왜 이 설교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나는 왜 이 설교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설교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설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분명한 목적이 없는 설교는 아무리 균형 잡힌 설교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아름답고 현란한 어휘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회중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명확한 목적이 결핍된 설교는 회중들이 예배를 드린 후 떠나가면서 “목사님의 말씀은 잘 들었는데,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어”라는 질문을 갖게 만든다. 설교는 귀를 위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에드워즈(O. C. Edwards)는 “설교는 단순한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 ( O. C. Edwards, Jr., Elements of Homiletics: A Method for Preparing to Preach (New York: Pueblo Publishing Co., 1982), p. 63.)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 몸 말

    설교의 목적은 “당신은 왜 이 설교를 하고 있는가?”(Why do you preach that sermon?)에 대한 대답이다. 즉 설교의 목적이란 설교를 행한 결과로서 듣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Haddon W. Robinson, Biblical Preaching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p. 108.) 프린스톤 신학교의 설교학 교수였던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설교의 목적을 설교의 기능(function)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는 말하기를 “설교의 기능(목적)은 설교가 청중들과 함께 행하려고 하는 것”(Thomas G. Long, The Witness of Preaching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89), p. 86.)이라고 한다.

    설교자는 회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이 목적에 대한 진술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이 설교의 목적진술을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청중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을 표현한 것”(Ibid.) 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통해서 어떤 구체적인 면에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토저(A.W. Tozer)는 설교의 목적과 관련하여 우리를 일깨워 주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난 교리를 그 교리 자체를 위해서 가르치는 것만큼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도 거의 없다. 생활과 유리된 진리는 성서적 의미에서 이미 진리는 아니다.....아무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좋을 것이 없다. 마귀도 그 정도는 알고 있고, 아합왕이나 가롯 유다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 독생자를 보내사 죽게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못된다. 지옥에도 그것을 아는 자는 수백만이 있다. 신학적 진리는 그것을 순종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교리의 배후에 있는 목적은 도덕적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A. W. Tozer, Of God and Men (Harrisburg, PA.: Christian, 1960), pp. 26-27.)

    1) 일반적인 목적에 따른 설교의 분류

    우리가 설교의 목적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라는 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설교의 일반적인 목적들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보다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설교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설교학자들은 설교의 목적에 따라 설교를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그래디 데이비스(H. Grady Davis)는 설교의 일반적인 목적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약시대에 나타난 설교의 일반 목적은 세 가지의 양상을 띠는데, 그것들은 복음선포(proclamation)와 가르침(teaching) 그리고 치유(therapy)이다.(H. Grady Davis, Design for Preaching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8), pp. 98-138)


    그리고 헤롤드 브라이슨(Harold T. Bryson)과 제임스 타일러(James C. Taylor)는 청중들은 항상 각기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의 목적이 몇 개가 되어야 한다는 제한은 없다고 말하면서, 설교의 네 가지 일반적인 목적을 말한다. 그것들은 복음 전도의 목적, 성장의 목적, 관계의 목적 그리고 치유의 목적들이다. 설교자들은 복음 전도의 목적을 가진 설교를 많이 해야 하며, 그 외에도 복음을 생활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설교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중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관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잘 맺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설교의 목적을 두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설교를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여야 한다고 말한다.(Harold T. Bryson & James C Taylor, Building Sermons to Meet People's Needs (Nashville: Broadman Press, 1980), pp. 70-73. )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은 그의 유명한 책, 현대설교학 입문(An Introduction to Contemporary Preaching)에서 설교의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 설교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것들은 복음의 선포 또는 복음적 설교라고 불리는 케리그마적 설교(Kerygmatic Preaching), 교훈적인 설교(Didactic Preaching), 치유적인 설교(Therapeutic Preaching), 그리고 사회적-예언적인 설교(Social-Prophetic Preaching)이다. 그는 이 책에서 주장하기를 설교자는 이 네 가지의 설교의 모든 분야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성령의 능력주심에 따라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을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J. Daniel Baumann, An Introduction to Contemporary Preaching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1), pp. 205-219.)


    2) 어떻게 설교의 목적을 정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설교의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서 설교를 분류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설교의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보자. 우리가 설교의 구체적인 목적을 말할 때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설교자가 설교의 목적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은 무엇보다 설교자는 설교의 목적을 성경 본문의 석의로부터 가지고 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설교자는 설교 본문의 배후에 있는 목적을 찾아냄으로써 설교의 목적을 결정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본래의 청중들에 대한 성경 저자의 기대했던 바와 일맥 상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석의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경의 기자는 왜 이 본문을 기록하였는가?” “처음 독자들에게 성경 기자가 기대하였던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성경의 기자도 아무런 목적 없이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자 그것을 기록하였다. 예를 들어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한다”(요 20:31)고 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책은 그 안의 모든 부분이 읽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하려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설교자는 먼저 어떤 특별한 본문이 왜 성서에 기록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염두해 두고 하나님께서는 그 설교를 통해서 오늘날의 회중들에게서 무엇을 성취시키고자 하시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3) 설교의 중심사상과 목적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미 지난 호에서 설교의 중심사상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설교의 중심사상은 주제(subject)와 보어(complement)로 이루어진다. 어떤 하나의 중심사상이 이루어지려면 이 둘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주제란 “내가 무엇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가?”(What I am talking about?)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 명확한 대답이요, 보어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것(주제)에 대하여 나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What am I saying about what I am talking about?)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Haddon Robinson, Biblical Preaching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p. 20.)을 의미한다.

    즉 설교의 중심사상은 주제와 그것을 보충해주는 보어로 이루어진다.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이 중심사상을 설교의 초점(Focus)이라고 하였고, 설교자는 설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표, 즉 설교의 초점(Focus)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초점진술(A Focus Statement)을 분명히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초점진술은 “설교의 중심이 되며 전 설교를 통제하며 통일시키는 주제를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전체 설교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살피는 것”(Thomas G. Long, The Witness of Preaching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89), p. 86.)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설교의 중심사상 또는 초점진술은 설교의 목적(또는 기능)진술과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즉 설교의 중심사상과 설교의 목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쌍이 되어야 하며,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난 호에 설교의 중심사상을 말할 때 보았던 시편 117편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시인은 이 시편에서 “우리가 주를 찬양해야할 이유”(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한 보어로서 우리가 주를 찬양해야 할 이유는 “우리를 향하신 주의 사랑이 크시며, 그의 진실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편의 중심사상은 “우리가 주를 찬양해야 할 이유는 우리를 향하신 주의 사랑이 크기 때문이며, 그의 진실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설교의 목적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만일 설교자가 설교의 목적을 “우리를 향하신 주의 사랑이 크고 진실하심을 깨닫는데 있다”고 한다면, 이 목적은 설교의 중심사상과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설교의 중심사상은 우리가 찬양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이 설교의 목적을 “회중들로 하여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심과 진실하심을 깨달아 주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삶을 살도록 한다”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 설교의 목적은 설교의 중심사상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지는 것이다.


    몇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설교자가 야고보서 1:5-8절을 본문으로 할 경우에 설교의 주제는 “시험 중에 지혜를 얻는 비결”로 잡을 수 있고, 이 주제에 대한 보어는 “믿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라”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의 중심사상은 “시험 당할 때의 지혜는 믿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구함으로써 얻어진다”이다. 그렇다면 설교의 목적은 “시험 중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시험을 이길 지혜를 구함으로 그 시험을 이기게 하는데 있다”


    설교자가 엡 6:10-12절을 설교할 때에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들”이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한 보어는 “사탄의 궤계에 대적하며, 사탄의 체계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의 중심사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들은 사탄의 궤계에 대적하며, 사탄의 체계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탄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전신갑주를 입도록 자극하기 위하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설교의 중심사상과 목적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4) 목적이 분명할 때의 이점들

    설교의 목적이 분명할 때에 그 목적은 설교의 준비 과정 및 전달의 과정에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설교의 목적이 분명할 때 거기에는 많은 유익한 점들이 있는 것이다. 제일 먼저 목적이 분명하면 설교에서 제기될 성도들의 필요에 설교의 서론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즉 설교자가 설교를 시작할 때에 무엇을 성취시켜야 하는지를 알고서 시작한다면, 설교자는 생각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분명한 목적은 설교의 본문에 무엇이 삽입되어야 하며 무엇이 빠져야 하는지를 결정해 준다. 설교자가 주석을 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유혹은 그가 본문에서 듣고 본 모든 것을 한 설교에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그 설교는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는 한 가지를 말하고 행해야 한다. 즉 설교는 본문으로부터 한 가지 분명한 주장을 중심으로 통일성 있게 전개되어야 청중들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설교의 목적은 설교의 자료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분명하게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목적에 따라서 자료들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에도 도움을 준다. 즉 설교의 목적은 그 설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예화를 비롯한 자료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의 목적은 설교의 적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설교의 목적을 생각할 때에 설교자는 항상 “내가 설교하게 될 청중들의 필요가 무엇이며,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과 씨름을 하는 설교자는 결국 회중들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 맞는 적용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적용은 회중들의 실천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설교자가 고린도 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 가운데 섬김의 은사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다면, 설교의 목적은 회중들의 삶속에서 그 은사들을 행하는 가운데 나누도록 하는데 둘 것이다. 이 때에 설교자는 이 설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즉 그 설교가 끝난 후 4주 안에 회중들로 하여금 자기 구역식구들 가운데 한번도 집에 초청해 본 적이 없는 형제나 자매를 초청해서 식사를 나눌 것을 제안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4주 후에 회중들로 하여금 그 경험을 간증하게 하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설교의 목적의 중요성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다.


    3. 나가는 말

    결론을 내리자면 회중들이 그 설교를 듣고 “Let's try something!" 라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설교의 목적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에 가장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쩌면 바로 이 점, 즉 설교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설교가 범람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전 세계 교회에서 한국의 목회자들처럼 설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없다. 보통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일주일에 최소한 3번 이상의 완전한 설교를 해야 한다.

    일년이면 156회의 설교를, 10년이면 1560회이고, 3,40년 목회의 기간동안 5,000회 이상의 설교를 해야 한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국 교회 성도들처럼 설교를 많이 듣고 있는 성도들이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설교의 홍수 속에서도 한국교회 교인들의 삶은 그 다지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왜 그럴까? 문제가 무엇일까? 어쩌면 설교의 목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까? 많은 설교를 듣지만 그 설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도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데이빗 스미드(David Smith)는 말하기를 “설교는 행동으로 결론지어주는 말”이라고 하였다. 결국 설교가 무엇인가를 성취시켜야 하는 것이라면, 설교는 정말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설교자는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나는 왜 이 설교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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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믿으라고만 하지말고 믿을 내용을 주라
    선배 목회자에게 듣는 부활절설교 힌트
    서론에서 설교의 성패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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