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화를 캐는 사람 2002-01-06 18:30:14 read : 204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02. 25. 마태복음13:44
(랄프 네이버)
시계하면 지금도 스위스가 생각날 만큼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스위스는 시계 제조의 성역을 누려왔습니다. 40, 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세계 시계의 80%가 그 좁은 땅 스위스에서 제조된 시계였습니다. 1960년대말 한 발명가에 의하여 새로운 한 시계가 디자인 되었습니다. 이 발명가는 자기가 고안한 시계를 가지고 스위스의 한 시계회사를 방문했습니다. 깨끗이 거절당했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거지요. 스위스에 있는 모든 시계 회사들은 이 사람의 고안된 시계를 거절했습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우리는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발명가는 그 시계를 가지고 일본을 방문했고 세이코회사가 그 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고안한 시계가 바로 디지털시계입니다. 지금 이 디지털시계는 세계 모든 시계시장에 80% 내지 90%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보물을 잃어버린 스위스는 이 때부터 시계산업의 사양길을 걷게 되었고 디지털시계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보물이라고 생각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그 인생의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보물이 찾아왔을 때 그 보물을 얻을 수 있느냐? 그 보물을 잃느냐 여하에 따라서 성공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실패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 보물을 얻기 위해 당당히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댓가 지불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보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참으로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거짓된 보화에 속아왔습니다. 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참된 보화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이 보화를 발견했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을 바로 해석하자면 당시 유대 풍속과 역사적인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돈을 벌어 맡겨둘 만한 마땅한 은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속 깊은 곳에 보물 항아리를 묻어두고 새로운 보물이 생기면 넣기도 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 끄집어내 쓰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사회적인 변혁이 심했던 당시 이스라엘은 주인없는 보물 항아리가 종종 발견되곤 했습니다. 그럼 당시 법률에 따라서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 항아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물항아리가 남의 밭, 남의 땅에 숨겨져 있을 때는 여간 문제가 복잡해 지는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일꾼은 밭주인이 아니라 아마 품꾼이었던 모양입니다. 남의 밭에서 일을 하다가 노다지 항아리를 발견하고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소중한 보물 항아리를 얻어서 자손대대로 잘먹고 잘살았다 하는 얘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한절밖에 되지 않는 이 본문을 단막극으로 꾸며서 무대에 한번 올려보고 싶습니다.
무대의 막이 올려지면 한 농부가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가운데쯤 왔을까요 곡갱이를 내리쳤는데 뭐가 퍽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뭔가 조심스럽게 땅을 파 보기 시작하는데 뚜껑이 보이기 시작했고 흙을 제치고 뚜껑을 여는 순간 하늘이 아찔할만큼 어마어마한 보물이 그 속에 묻혀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넋을 잃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뚜껑을 덮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하는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천장에 보물 항아리가 왔다갔다 합니다. 그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밭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네 계십니까?" "건너 마을의 아무개입니다" "이 깊은 밤에 자네가 웬일인가?" "영감님 뵙고 부탁도하고 의논 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들어오게나" "영감님 저 건너 마을 비탈길에 있는 그 밭 말입니다." 그 자네가 소작하고 있는 땅 아닌가? 글쎄요. 제가 오랜시간동안 그 밭을 일구다보니 그 밭이 내 자식놈처럼 사랑이 들고 정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들어가고 하니 밭 마지기 정도는 가져야 되겠다 싶어서요. 주인님이 허락하시면 그 밭을 제가 이제 샀으면 합니다. 그리고 값을 부르는데 터무니없이 값을 부릅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흥정이 되어 계약서가 작성되었습니다.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집안식구들을 불러모아 놓고 건너마을 비탈길에 있는 밭을 샀다구. 내일이면 송아지도 팔고 집도 팔구 가재도구 다 팔아야 될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아내가 펄쩍 뜁니다. 이 양반이 퇴약볕에서 오랫동안 일하더니 머리가 돌았나보다고. 그리고 아이들은 길길이 뛰면서 우리는 어디서 살아?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농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니 송아지를 몰고 밖으로 나갑니다. 복덕방에 집을 내놓습니다. 가재도구까지 다 내다 팝니다. 주섬주섬 돈을 챙기더니 영감님을 찾아가 마지막 남은 돈을 다 치루었고 계약문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모든 절차가 다 마쳤겠지요. 얘들아 날 따라 오너라. 이제 저녁 무렵이 되었습니다. 해는 서산에 질 무렵, 땅거미가 내려질 시간이었습니다. 곡괭이를 가지고 밭 가운데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곡괭이로 깊이 깊이 팝니다. 아니 이 영감님이 우리 식구들을 다 땅에 묻으려나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보입니다. 흙을 털어내고 뚜껑을 여는 순간 온 가족은 깜짝 놀랄 수 밖에요. 석양이 지는 햇살에 보석들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모두다 넋을 잃었습니다. 모든 제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보석이 그 속에 묻혀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살았다 하는 얘기가 오늘 본문의 얘기죠. 그리고 막이 내릴 것입니다.
몇몇 주경가들에 의하면, 이 비유는 당신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 단어가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마치"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던 마태복음에는 한결같이 "하늘 나라" 천국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헬라 사람들과 이방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묵음으로 읽고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을만큼 경건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은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이 공중 하늘속에는 귀신들이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 나라 그러면 귀신의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늘 나라든 하나님의 나라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여정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정권교체 라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던 삶의 자리에, 세상의 가치관이 나를 다스리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왕좌에 앉아 계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지배하여 주시고 통치하는 삶의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판단하는 모든 판단 가치기준에 하나님이 서 계십니까? 여러분이 길을 선택하는 모든 삶의 여정속에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보화로, 소중한 가치로 인정하며 고백하며 살아가십니까?
본문이 말하고 있는 보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앞을 봐도 예수입니다. 뒤를 봐도 예수입니다. 오른쪽에서 봐도 예수입니다. 왼쪽에서 봐도 예수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예수입니다. 밑에서 올려다 봐도 예수입니다. 속을 뒤집어 까놓고 봐도 예수입니다. 너 왜 예수 믿느냐? 예수님 때문에 예수 믿습니다. 너 어떻게 영광스러운 이 나라로 오게 되었느냐? 예수님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갈래?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을래? 예수님 손 붙들고 죽는 겁니다. 기독교의 시작과 마침은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외에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복음을 듣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화를 샀다는 얘기는 땅의 모든 일을 희생하고서라도 예수를 샀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샀다는 말입니다.
천국복음을 얻기 위해서는 , 천국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땅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취미를 팝니다. 이전에 소중히 여기던 기쁨을 팝니다. 가치관을 팝니다. 세상줄이 짤려져야 천국의 줄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보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천국이라는 보화를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얻는 보화들은 모두다 한결같이 허무한 것들입니다. 오늘 피나는 경쟁에서 세상의 값진 보화를 소유한 사람이나 그것을 얻지 못한 사람이나 현대인들은 한결같이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세상 물질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귀영화도 궁극적으로 우리가 찾아야 될 보화는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손에 움켜쥐어 모든 것을 누려 보았던 솔로몬은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세상의 보화를 다 가져도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화가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자기 손등에 보화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가난하게 살던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부자집 아들하고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세상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손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걸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지요. 세상을 모두 움켜쥔 것처럼 기쁨이 충만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쁨충만 대신 근심충만 해지더랍니다. 누가와서 나를 찌르고 이 다이아몬드를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그래서 이틀 손에 끼어 보고 다이아몬드를 은행에 가지고 가서 맡겨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도 아직 그 이후 한번도 다이아몬드를 끼어 보지 못했답니다. 누리지 못하는 행복! 이것이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거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이집 저집 한술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부자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탈이란 말이야. 나는 따뜻한 옷 한 벌, 쌀 한 가마니만 있으면 불평하지 않을텐데" 그 소리를 마침 하늘에서 내려와 길을 걷고 있던 천사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깡통에다가 금돈 한 닢을 딸그랑 떨어뜨려 주었죠. 천사를 붙들고 애원합니다. 집 한 채는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붙듭니다. 논 마지기는 있어야 자식들하고 먹고 살 것 아닙니까? "할아버지 금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그 자루가 찢겨져 금돈이 땅에 떨어지면 순식간에 흙으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거지 할아버지는 그래도 한푼만 더! 한푼만 더! 자루가 찢어질 만큼 금돈을 받았습니다. 어깨에 걸머지고 콧노래를 부르려고 막 시작하는데 자루가 좍 찢어지며 와르르 땅에 쏟아졌습니다. 물론 금돈은 모두 흙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얻은 밥도 먹지 못하고 배만 쫄쫄 굶고 돌아왔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너무 욕심만은 기업가들, 기업을 송두리째 땅에 쏟아 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세상을 얻었으나 건강의 그물이 찢겨져서 누리지 못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그물이 찢겨진 사람들, 영원한 가치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땅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로마 격언에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될 보화가 되지 못합니다. 돈 돈 돈 하다가 돈에 돌아버리고 마는 겁니다.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감추인 보화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에게 이 진정한 보화는 영원히 감추어진 보화가 되고 맙니다. 이제는 세상의 눈을 감고 영원을 향하여 눈을 좀 뜰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줄을 좀 자르고 영원한 줄을 붙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보화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수없는 보화가 묻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화를 보지 못하는 막혀진 눈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도 전국 방방곳곳 교회에서 수많은 보화들이 선포되어짐에도 불구하고 그 보화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수많은 책들을 통하여 보화가 세상에 가득히 넘침에도 불구하고 보화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그 보화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밭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만이 주님의 집을 사모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교회를 그리워한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값어치를 깨닫고 살아간단 말이죠. "주의 궁정에서 거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농부는 보화가 숨겨진 밭을 샀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특징은 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를 얼마나 열망하고 사모하고 살아가십니까? 한 주간동안 살아가며 이 주일날이 기다려지십니까? 예배가 그리워지십니까? 목장모임이 기다려지십니까? 직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것 말고 사역이 그리워지시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다 팔아서 보화만 산 것이 아니라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은 좋고 예수님은 좋은데 예수믿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게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신비를 알고 살아가십니까? 복음의 능력을 알고 살아가십니까? 성령충만의 맛을 알고 살아가시느냐는 얘기입니다.
구경하는 예수님 가지고는 안됩니다. 흉내내는 신앙가지고는 안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만난 성령충만이 있어야 됩니다. 무당들도 강신무당하고 학습무당하고는 폼부터 다르더라구요.
손오공과 사오정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시험을 치기 위하여 회사에 갔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손오공 차례가 되었습니다. 15번 손오공입니다. 자네 축구를 좋아하는가? 축구선수 가운데 특별히 누구를 좋아 하는가?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 문화혁명이 언제 있었는가? 18세기입니다. UFO 비행접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됐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곧잘 대답을 했어요. 나가보게나. 밖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사오정이 묻습니다. 무엇을 묻더냐. 뭐라고 대답했느냐. 꼬치꼬치 물어서 그대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달달달 외웠습니다. 27번입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안정환입니다. 당신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 18세기입니다. 아니 이사람 바보 아닌가? 과학적으로는 증명이 안됐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외워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흉내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천국가족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장모임이나 소그룹모임을 통하여 천국가족을 경험해야만이 천국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식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깨어진 관계가 깨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과 복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십니까?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여정속에서 하나님과의 말씀속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십니까?
그 밭을 사고 보면 때로는 불편을 감내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속에는 반드시 보화가 숨어있고 그 보화가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감추어진 보화! 그것은 참으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감추어진 보화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자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전도내용은 "예수 천당" 이었습니다. 그 천당 때문에 가난해도 좋았고 배고파도 좋았습니다. 모진 핍박과 시련가운데서도 "예수 천당"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한을 품고서도 하나님 소망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순교의 현장속에서도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저 하늘에는 이별이 없네. 저 하늘에는 고통이 없네. 저 하늘에는 죽음이 없네."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참된 보화를 알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가치를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참된 가치를 알고 살았던 주기철을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피를 머금고 한국교회는 지금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보화를 가치를 복음을 용서의 복음을 알았던 손양원을 우리는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노래했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가오리.
저 언덕 넘어 보화가 있으면 가시밭길이라도 걸어갔습니다. 울며 걸어갔습니다. 피 흘리며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 전도의 메시지 - 예수믿고 복 받으시오. 보화가 희미해졌습니다. 보화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썩을 보화에 속으며 살아갑니다. 보화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게 무엇입니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듣지 못한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그것 가졌다는 행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세계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화를 간직한 행복! 이게 예수믿는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오늘 교회나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화가 부족합니다.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간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나누어 줄게 없습니다.
뇌성마비 천재소녀 송명희 양의 시가운데 이런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없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나 같게 하셨네
값을 알아야
내가 가진 보화의 값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요한 사람인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행복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값어치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보석 하나를 얻었습니다. 한 스승이 절대로 팔지말고 값을 알아보라고 했죠.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감자 두되를 주지요.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소고기 10근을 드리지요.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내 가계를 송두리째 드리겠수다. 이 보화의 값이 얼마나 됩니까? 세상 모두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보화입니다.
이 보화를 여러분은 간직하고 살아가십니까? 이 보화의 값을 알 때에 이 보화에 눈이 열릴 때에 내가 그 보화를 가진 행복을 내가 깨닫고 살아갈 때에 나는 이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구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허물이 깨끗이 덮여지고 용서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천하디 천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고귀한 신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 인생이 끝난다 할지라도 영원히 아버지 나라에서 살 이 값진 인생을 내가 누리고 삶에도 불구하고 60억 인구 가운데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우리는 잘못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의 가치, 내가 누리는 영원한 천국의 가치를 얼마나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11에 대한히 비극적인 구절이 한토막 나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이 얼마나 슬픈 기록입니까? 예수님께서 천국 삶을 가지고 이 땅에 찾아오셨으나 사람들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서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한 1947년 양치던 목동들에 의하여 사해 부근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입니다. 이것이 발견되어졌기 때문에 가장 원문에 근접된 오늘 우리의 성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것이 가죽 두루마리에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목동들은 그것을 잘라서 허리띠를 삼고 신발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우리는 오늘처럼 값진 성경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보화의 값을 모릅니다. 어머니의 금목걸이를 갖다주고 알사탕을 바꿔먹습니다. 미국인들이 아프리카에 갔더니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공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콜렛 하나만 주면 한보따리씩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 아버님은 인천상륙작전에 출전하실 때에 해군 소대장으로 참전하셨다가 적탄에 맞아 피흘려 돌아가신 값으로 "충무 무궁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병석에 계신 내 아버님은 그것을 늘 벽에 걸어놓고 "나는 나라를 위해서 피흘렸으니 너도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된다"고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고난 다음 제가 어느날 학교에 갔다 왔더니 철없는 내 동생이 그 "충무 무궁 훈장"을 걷어다가 엿장사에게 갖다 주고 엿 한줄을 바꿔먹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 무궁훈장을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보화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 이 노래가 여러분의 진정한 삶의 고백의 노래가 되고 있습니까?
이 세상 명예보다 더 귀하다. 진정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재물보다 귀하다.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사람들이 누리는 어떤 행복보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고백할 수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