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 Duplicate entry '3.135.236.134' for key 'PRIMARY'
INSERT INTO current_con VALUES('3.135.236.134', 1746214134,'none') 설교신문 0691.in/sermon66.com
Today : 2025년 05월 03일 (토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수십만 시민들 모여 “탄핵 반대” “자유 수호/ 이만희 교주로부터 수년간 성폭행 피해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실패의 밤에 찾아오신 주님
    2002-01-06 22:00:35   read : 235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11. 11. 눅 5:3-11



    I. 말씀을 향하여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어느날 밤 강물에 나룻배를 띄우고 작은 촛불 앞에 앉아 멋진 시를 써 보고자 했습니다. 도무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철학자 크로체의 미학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지요. 때마침 지나는 강변의 소슬 바람에 촛불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상은 사라지고 촛불마져 꺼져버리자 순간 짜증이 일었습니다. 짜증도 잠깐 나룻배안으로 달빛이 춤추며 흘러들어왔습니다. 보름 달빛이 나룻배안을 가득 채웠고 달빛에 반짝이며 춤추는 강물이 두 눈에 한 가득 채워졌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성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라졌던 시상이 쏟아져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름다움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구나. 진정 아름다움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득한 것을. 내 촛불이 꺼지자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는데 황홀한 달빛이 나를 반겨주는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촛불이 꺼지면 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달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촛불이 꺼지는 밤은 하늘의 빛이 보이는 시간입니다. 밝은 날엔 세상만 보이더니 인생의 깊은 밤엔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패의 밤중엔 예수님이 날 찾아 오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생의 한밤중 씨리즈" 그 다섯 번째 시간 "실패의 밤에 찾아오신 주님"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성경이 귀하지 않으리요 마는 저는 누가복음 5장 오늘 본문을 참 좋아합니다.

    ① 성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 가운데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그만큼 중요하고 또 우리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겁니다.

    ② 그래서 오늘 본문은 갈릴리 바다에서 만났던 예수님과 수제자 베드로의 첫사랑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사랑의 위기의 순간마다 갈릴리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첫사랑으로 돌아가자는 거지요.

    ③ 또한 오늘 본문은 쓰임받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④ 하나 더 오늘 본문속엔 실패의 밤이 멋진 승리의 아침으로, 빈 그물이 만선의 배로 바뀌어지는 역전의 드라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묻습니다.
    • 진정 여러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아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 당신의 연약함을 강함으로 바꾸어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 실패의 순간을 성공의 기회로 만들고 싶으십니까?
    • 당신이 만난 그 밤을 찬란한 아침으로 바꾸고 싶으십니까?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역사가 사람을 낳는가? 아니면 사람이 역사를 낳는가? 이는 오랜 세월 사가들의 질문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람을 통해 이루신다고요.

    문제는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필 왜 베드로를 부르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는 혹 그런 일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집에서는 쓰레기통과 밥그릇을 바꿔서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밥그릇엔 밥을 담았고 쓰레기통엔 쓰레기를 담았습니다. 준비된 그릇대로 사용한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당대의 과학자요 의사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고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답게 주님이 베드로를 찾으신 사건을 분명히 통찰하고 그 관찰한 내용을 그림처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찾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하는 것을 본문은 일목요연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II. 빈 배를 찾아오신다

    오늘 본문 3절은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여기 한 배는 고기를 잡지 못한 시몬의 빈 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왕족이나 귀족 정치가를 찾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 마을 갑부를 찾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권력가를 찾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빈 배를 찾아 오셨단 말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바로 실패의 밤중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늘 자신의 배가 넉넉히 채워지길 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빈 배라는 말은 베드로의 실패한 장면을 말합니다. 하룻길을 걸어도 험한 계곡과 태산 준령을 넘게 되거늘 하물며 사람이 한 평생 살다가 왜 실패의 순간이 없겠습니까? 낮과 밤, 빛과 그림자가 왜 없겠습니까?

    어떤이는 건강의 빈 배를 안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사업의 빈 배를 안고 몸부림 할 때가 있고, 때로 사랑의 빈 배를 안고 허탈과 허무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 빈 배는 인생의 밤을 의미합니다.

    그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밤은 우리가 절망하고 낙심해야 할 순간이 아니고 주님이 찾아오시는 기회입니다. 주님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이체는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라고 비판했고, 나사렛 예수는 인생의 걸레들만 데리고 다녔다고 혹평했습니다. 사실 일 수 있지요. 그러나 니이체가 몰랐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약자들을 들어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인생의 걸레쪽지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 면류관을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크리스챤은 실패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루즈벨트의 말처럼 언제나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문제시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밤이 문제가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문제더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빈 배를 찾아 오셨고 베드로는 주님께 그 빈 배를 내어 놓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새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창조되는 신비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명인사도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사용하시므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내 인생의 배에 오소서. 우리가정에 오소서. 우리 교회에 오소서. 우리민족 가운데 오소서. 오 주여 한국교회에 오소서.

    이 시간 인생의 빈 배, 영혼의 빈 배로 인하여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 주님전에 빈 배 저어 나아 오신 분이 계십니까? 실망하지 마시고 주님 만나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밤은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요 관계의 종교입니다. 무능한 인간이 전능자를 만났을 때, 추한 죄인이 속죄의 주님을 만났을 때, 연약한 인간이 능력의 주님을 만났을 때, 어리석은 인간이 지혜의 주님을 만났을 때, 병든 인간이 치료의 광선을 만났을 때, 가난한 자가 부요의 주님을 만났을 때, 인생의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자신의 빈 배에 은금 보화를 가득 담아 주시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빚도 갚고 가족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담고 금은 보화를 담아야 할 그 배에 당신이 타셨습니다. 빈 배에 예수님이 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빈 배를 채우기 전에 먼저 영혼의 빈 배, 말씀의 빈 배를 채우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말씀입니다. 영혼의 그릇이 문제입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 말씀을 채워주셨고 말씀을 주신 다음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슨말입니까? 얕은 곳에서만 놀지 말아라. 때로 위험부담이 있고 더 수고해야하고 장비를 더 갖추는 수고가 있어도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무담도 도전도 없이 큰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좀더 진실해지지 않고 인정만 받으려는 사람, 땀흘리지 않고 열매를 얻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꿈과 비젼, 소원과 큰 복을 기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당당히 댓가를 지불하는 사람만이, 위험과 도전을 감당하는 사람만이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III. 하필 왜 베드로를!

    그런데 이 시간 나는 주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주님, 갈릴리 바다에 빈 배가 한 둘이 아니었을텐데, 하필 왜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까?"
    "예수님 제자가 한 둘이 아니었건만 하필 왜 베드로를 주님의 수제자로 삼으셨습니까?"

    이때 예수님의 대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한 두 곳이 있습니다.

    1. 첫째, 5절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 즉, 베드로는 끈기와 뚝심,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기가 잘 잡히는 그물질이야 밤을 새워도 재미가 있지요. 그러나 그물을 던지고 또 던져도 피라미 새끼 한 마리 안잡히는 날, 그물질로 밤을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꽁치 한 마리, 멸치 한 마리 안 걸려드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미칠 줄 아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 맡겨진 일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뿌리를 뽑고야 마는 근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큰 일을 맡을 수 있는 자질이었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야 없지 않은가. 쓰러지고 넘어지고 깨져서 마지막 심장 한토막이 남거들랑 그 심장을 부둥켜 안고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맡겨진 고지에 깃발을 꽂고야 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주님이 찾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성공회는 극도로 타락을 했습니다. 교회는 치부에 여념이 없었고 성직자들은 권력에 결탁하므로 영적인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중앙본부에서는 바울 성당을 짓는다는 명목 아래 가난한 교회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때 댐즈강에서 한 작은 성당을 섬기는 젊은 신부 한 사람이 이 타락에 가담하지 아니하고 신념있게 살았습니다. 때에 의식있는 사람들 속에서 “댐즈로 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교단본부에서 이 젊은 신부를 파면하기 위해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조사단장이 내려와 하는 말이 “이보게 젊은이 자네 혼자 고집 부린다고 썩어진 영국사회가 하루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는가. 자네 혼자 뜨겁게 산다고 얼음덩어리가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저 댐즈강을 끓게 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젊은 신부가 무섭게 눈을 뜨고 대답했습니다. “예, 나혼자 댐즈강을 끓게 할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나를 댐즈강 가운데 집어 던졌을 때 나 혼자 만큼은 그 가운데서 이글이글 끓고 있을 것입니다.”

    옳습니다. 여기 모여 뜨겁게 기도했던 사람들에 의해 영국 성공회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예수 사랑에 가슴이 끓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교회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져 있는 사람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맡겨진 일에 생명을 내걸고 끈기와 열정과 뚝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 예수님 - 베드스다 연못가 - 38년된 병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시간 내가 맡은 그 일을 감격해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불로 불로 역사해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은 그곳에 오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찾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게 된 베드로의 됨됨이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날 베드로의 사업은 불경기였습니다. 기분 나쁘고 짜증스런 아침이었습니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이 즈음에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배를 좀 띄워 주시오. 바다로 갑시다. 깊은 데로 갑시다.”

    ※ 순종이 어려운 이유 - 감정(feel이 통하지 않는다), 시간, 경험, 힘들다. 명령 대상이 싫다.

    지금 베드로가 가고 싶은 방향은 집이 있는 육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다로 가자는 겁니다. 더 깊은데로 가자는 겁니다. 이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만큼 되었습니다." 이건 굉장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명령을 순종한 것입니다.

    첫째, 시간적인 불가능입니다. 아침 햇살이 떠올라 맑은 갈릴리 바다에 그물이 오르고 내림이 거울처럼 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경험상 불가능입니다. 바로 조금전에 그물을 던지고 던져 고기가 뻔히 안잡히던 그 자리에 그물을 내리라는 겁니다.

    셋째, 분위기상 불가능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밤을 세워 지칠대로 지쳐있어 또 시행착오를 할 만큼 여유가 없었습니다.

    넷째가 중요합니다. 명령 대상의 불가능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이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진 어부요, 지금 명령하는 예수님은 직업이 무엇입니까? 목수, 그것도 전직 목수요 현직 실업자입니다. 그러나 순종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열정과 집념이 있고 끈기가 있는 사람의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감정적이기 쉽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기가 쉽상입니다. 그래서는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열정은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열정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집념과 끈기는 말씀에 순종하는 집념이기를 원하십니다.

    ※ 예수님과 제자들 소풍 (위경)

    3. 셋째, 순종하므로 그물이 에워지도록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5절에서 "선생이여!" 하던 호칭이 8절에서는 "주여!"하고 달라집니다.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밤새 고기 한 마리 못잡은 것도 이상하고 이 멀건 대낮에 고기를 왕창 잡은 것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아하 이분은 물고기까지도 통솔하시는 분이시구나' 베드로가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면 예수님이 언덕 위에 서셔서 물고기를 쫓으시는 겁니다.

    오른쪽에 있는 물고기를 왼쪽으로 이동 이동, 앞으로 던지면 뒤로 이동 이동. 그리고 깊은데 고기를 잔뜩 모아 놓습니다. 갈길리 바다에 있는 고기들 여기 집합! 10열 종대로, 아래 위로 입체로 집합!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여기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러신 것입니다.

    물고기를 통솔하시는 예수님! 파도를 다스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 그분 앞에 베드로는 주여! (큐리에) 하고 꼬꾸라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베드로를 찾으신 세 번째 이유였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 이후 한 사람을 찾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에게 사람찾는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아,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들은 외모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이 찾으신 이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의 중심이 어쨋단 말인가? 다윗의 중심을 보려면 골리앗과의 싸움장면으로 가보면 됩니다.

    다윗이 위문차 전쟁터에 갔다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보고 사울 임금을 찾아가지요. "임금님 여호와께서 나를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나를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여 물매돌을 들고 앞으로 나서지요. 골리앗이 어린 다윗을 보고 기가차서 하는 말이, "네 이놈 네가 나를 강아지 새끼로 알았더냐. 그 막대기로 개 쫓으려고 왔냐? 너를 공중에 집어던져 독수리 밥이 되게 해주마."

    이때 우리는 다윗의 대답을 주목해야 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지만 나는 네가 저주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할렐루야.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권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전술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나아갔습니다.

    옳습니다. 주님을 높이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중심으로 생각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앞장 세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앞길을 개척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어부를 부르신 예수님 저들을 통해 세계 역사를 뒤집어 놓으실 작정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황제를 통해 어부를 부르시지 않고 어부를 사용하셔서 황제들을 주님 앞으로 이끄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출발이 예수요, 마침이 예수입니다. 예수 믿고 얻은 것이 예수요 예수 믿고 남은 것이 예수입니다. 앞을 봐도 예수요 뒤를 봐도 예수입니다. 속을 봐도 예수요 뒤집어 놓고 봐도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오 우리의 전부입니다.

    IV. 말씀을 맺으며

    예수님을 바로 알고나니 자신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전능하신 그분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안 베드로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늘 우리는 그분 앞에 무능한 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가 변화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먼저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태산처럼 쌓여있는 배 위의 고기를 바라보니 그것들 마저 다르게 보였습니다.

    본문 마지막 11절을 보십시오.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주신 축복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주신 복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병에서 나았으면 왜 건강을 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질을 받았으면 그것을 주신 이유가 있는게고. 지위를 받았으면 거기 오르게 하신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것 깨닫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 생명이 온천하 보다 귀중하지만 이 목숨 역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에만이 그 생명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I'm something I'm nothing I'm everything

    미끼를 들고 고기를 잡던 베드로는 주님의 장엄한 부름앞에 자신이 기꺼이 하나님 나라의 미끼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갔던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자신이 하나님의 그물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빈 그물 - 실패와 좌절, 씻은 그물 - 포기, 던진 그물 - 재도전, 찢어진 그물 - 주님의 풍성을 다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믿음, 버린 그물 - 주님만이 최고의 가치, 따르기로 결심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로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당신을 찾아 오셨습니다.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어 날 받으옵소서.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돌을 굴리는 노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늘집을 짓는 마음으로
    제2의 종교개혁
    돌보시는 하나님
    타작 마당
    하나님이 쓰는 사람
    양식과 씨
    엘 샤다이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
    심령이 가난한 자
    걸어도 뛰어도 피곤하지 않는 삶
    용서해 놓고 기다리신다
    이겨놓고 싸운다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