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교회(1): 사랑 2001-12-28 13:38:44 read : 1973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민수기 8:1-4
일시: 01/07/2000(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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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벤처 기업의 장래가 기대된다고 꽤 들떠 있었는데, 작년 젊은 벤처 기업가 몇 사람이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려 버린 후 밤늦게 까지 환하게 밝혀 있던 서울 테헤란로의 불빛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경제가 현재 얼마나 어두운 상태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우리는 지금 어두운 밤 한 가운데 있습니다. 꿈과 희망, 새로운 미래와 도약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2001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우리가 어두운 밤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이 어두운 밤을 지나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없겠습니까? 누군가 이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누가 등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일을 할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 올해 표어를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면 환한 빛이 필요합니다. 불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해 갈 때 하나님께서는 밤에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불기둥이 비출 때 그들은 춥지도 않았고, 어둡지도 않았기에 가나안 땅을 향해 아무 걱정 없이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등불이 되셔서 우리를 밝혀 주신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앞을 향해 힘차게 나갈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2장 29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두움을 밝혀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도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권사님이 주신 『의식 혁명』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정신치료협회 종신 회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쓴 것인데 저자는 우리 내면의 신성(불꽃)이 활성화되는 시대가 다가온다고 하면서 인간의 의식 레벨 수치를 빛의 강도를 표현하는 룩스(lux)로 측정해서 보여줍니다. 인간에게는 다 누구에게나 그 속에 불꽃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불꽃의 강도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에너지 수치가 200이하의 수준이면 개인이든 사회이든 파괴적인 삶을 뜻하며, 200이상의 수준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에너지 수준이 20은 <수치심>을 가지고 사는 것인데 이것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을 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입니다. 에너지 수준 30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학대, 피해 의식에서 생기는 여러 증상들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죄의식에 쌓여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 수준이 50인 사람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징지어 진다고 하며 이런 사람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이고, 비애(悲哀)가 인생의 주제라고 합니다. 에너지 수준 75인 사람은 <슬픔>에 빠진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늘 후회와 낙담, 우울함으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비탄, 공허, 과거에 대한 후회밖에 없다고 합니다.
에너지 수준이 100인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즉 적에 대한 두려움,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등에 꽉 눌려서 사는 겁니다. 에너지 수준 125인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욕망이란 축적이나 탐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욕망이란 언제나 끊임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에너지 수준이 150인 사람은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에너지 수준 175인 사람은 <자존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수준 200인 사람은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데 여기서 에너지 200이야 말로 인생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이라고 합니다. 용기의 수준에 이루면 인생이 흥미롭고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된답니다. 또 에너지 수준이 250인 사람은 <중용>의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중용의 태도를 가짐으로서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패배하거나 좌절하거나 놀라는 일이 없게 된답니다. 에너지 수준 310인 사람은 <자발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고, 에너지 수준 350인 사람은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고, 에너지 수준 400인 사람은 <이성(理性)의 단계>에서 사는 사람인데 여기엔 노벨상 수상자, 위대한 지도자 등이 많으며,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같은 유명한 이들도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본문 민수기 8장 3절에 보면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론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종의 직무를 다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등불을 밝힌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아론처럼 주님의 등불을 밝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등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특히 '사랑의 등불'을 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등불을 켜는 일'에 대해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호킨스 박사도 에너지 수준이 500인 사람을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등불은 '사랑의 등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사랑은 육체적 매력, 소유력, 탐닉, 에로티시즘 등의 격렬한 감정과 결합된 형태를 띱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쉽게 무너지고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 이런 사랑은 미움으로 쉽게 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존심에서 비롯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그런 관계에서는 사랑이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500의 에너지 수준의 사랑은 아무 조건도 없고,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뜻합니다. 이런 사랑은 외부의 조건에 좌우되지 않으며 한결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비타민 C가 동이 날 정도로 인기라고 합니다. 비타민 C가 좋다고 하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서는 '사랑의 비타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비타민 S가 필요한데 이것은 자신(self)에 대한 사랑입니다. 또 비타민 O는 이성(opposite sex)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며, 비타민 F는 친구(friend)와 가족(family)에게서 받는 사랑이며 비타민 P는 부모(parents)로부터 받는 사랑입니다. 이 많은 사랑의 비타민 중에서 하나 라도 결핍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우리에게는 비타민 G가 꼭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God)으로부터 받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비타민 G는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고 합니다. G1은 의존적인 사랑, 즉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만, G2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특별히 인간의 죄에 직면해서는―인간은 거기에 대해 폭력을 사용해야 할지 겸손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당황스러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항상 겸손한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단번에 온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겸손한 사랑은 어떤 것보다 강하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우리 만큼 강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의 등불을 켜는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1) '용서하는 것'에서 사랑은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하셨습니다. 당신을 배반한 제자들, 그리고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까지 당신을 저주하며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찾아 가셔서 그들을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들고 불러 먹이실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주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도 이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불꽃이 우리 가슴에 활활 타오르게 될 때, 우리는 사람들의 어두운 영혼을 비취는 빛이 될 수 있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구원과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따뜻한 격려, 관심, 친절'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8-9절에는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며 자비심을 가지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칭찬과 격려가 절대 필요합니다.
미국 유학시 supervising pastor로 Ken Gelhaus 목사님이 배정되었고, 그분을 통해 저는 엄청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지난 번 스위스 연구소에서 시험을 볼 때, 첫 시험이었는데, 시험관인 분석가에게 전화를 하며 영어를 걱정했더니 "너도 영어는 외국어이고, 나도 마찬가지니,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자"고 해서 큰 위로를 얻고 시험을 잘 보아 통과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칭찬하고 격려하는 게 너무 부족합니다. 얼마나 각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럴까 이해도 되지만 현대인들에겐 정말 격려와 칭찬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마고라는 사람의 말입니다. "언제나 남을 칭찬하는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성공하여 열광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십시오... 속으로만 말고, 말을 하십시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그런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얼마 전에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사람들』(행가람) 이란 잡지 2001년 1월 호에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라는 캠페인이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제목이 "언제 식사 한번 함께 하실래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는 게 아니라 식구들끼리도 이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솥밥을 나누는 생명 공동체라는 뜻인데 요즘 너무나 식구들끼리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언제 식사 한번 함께 하실래요?"라고 가족끼리도 약속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잡지의 편집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은 온 가족이 식사를 함께 합시다. 식구(食口)가 됩시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식구 됨을 확인하고, 따뜻한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할 때 사랑의 불꽃이 우리 가슴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이것은 성도들(이웃들) 간의 교제에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이 속도 원들이나 선교 회원들 혹은 어려운 이웃을 따뜻하게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붙들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랑을 느끼고 용기와 희망을 얻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3) 내 가슴에 사랑의 불이 타오를 때 비로소 이런 사랑이 가능하며, 내 가슴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려면, 사랑이신 하나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내 가슴에 충만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찬송가 가사를 읽어봅니다. 이게 모두 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읽으며 은혜가 되는 곳에 잠깐 머물곤 합니다. 지난주에는 찬송 418장이 제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 찬송은 미시간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오스카 클루트 박사가 작시한 것으로써 우리에게 참 자유와 새 힘과 열정을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참 사랑 내 맘에 부어 주시사 충만케 하소서(1절) 내 주의 참 사랑 햇빛과 같으니 그 사랑 내게 비추사 뜨겁게 하소서(2절). 그 사랑 앞에는 풍파도 그치며 어두운 밤도 환하니 그 힘이 크도다(3절). 하나님 사랑에 참 자유 있으니 내 맘과 영에 채우사 새 힘을 주소서(4절) 아멘."
여러분, 사랑의 등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는 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의 등불이 타오를 때 세상의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고, 이 세상은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망과 낙담과 한숨과 자기 비하라는 어둠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런 뜻에서 "사랑은 우주적인 힘 가운데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거대하며 신비로운 힘"(떼이야르 드 샤르댕)이이는 말은 사실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인용하며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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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헌 옷을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화음을 울리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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