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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아끼라
    2001-12-28 20:38:40   read : 185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골4:1-6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예외 없이 앓고 있는 병 하나가 있다면 아마도 월요병일 것
    입니다. 매일 아침,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샐러리맨들 치고 월요병의 징후를 경험해 보
    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월요병은 개인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
    니다. 제일 심각한 현상은 아마도 출근 거부 현상일 것입니다. 이것은 초등학생이나 중고등
    학교 학생들이 학교 가기 싫어하는 등교 거부 현상과도 본질적으로 유사합니다. 출근할 생
    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지고 또 두려움마저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겨우겨우 출근은 하더라도 만성적 우울증이나 노이로제에 시달리기 일쑤이고, 자주 꾀병을
    부리며 일찌감치 조퇴해 버리는 예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비정상적으로 퇴근하는 방법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이순신
    장군형 퇴근이 있습니다.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
    가는 경우입니다. 햄릿형 퇴근도 있습니다. "퇴근이냐 퇴사냐 이것이 문제로다"하며 사생 결
    단을 하고 퇴근하는 경우입니다. 또 나폴레옹형 퇴근도 있습니다. "나의 사전에 정해진 퇴근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배짱 좋게 퇴근하는 경우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퇴근
    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모토로 내거는 맥아더형 퇴근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심각한 지경은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문제가 되는 경우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무리 없이 직장 생활에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직장 생활에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업무를 게을리 하게 되고, 직
    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을 합하여 하루 24시간 중에 거의 절반 정도의 시간을
    직장과 관련해서 사용합니다. 이렇듯 생활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생활에서 만족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서 이미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
    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한 원인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불성실함, 나의 불의함, 나의 불공평이 모든 보람과 기쁨을 빼앗아간 근본 원인 일 수 있습
    니다.
    같은 인간으로 삽니다마는 엄격히 철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적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또 피곤하니까 쉬는 시간
    입니다. 또 인간적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부하는 시간이요, 사색하는 시간이요, 생각하
    는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크리스챤의 시간입니다. 이것은 내 시간이 아니요, 은혜로 주어진
    시간이요, 구속받은 시간이요, 은혜 안에 자유하는 시간이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뜻을 향해 직행하는 그런 의미의 시간입니다.
    다른 시간들과는 차원적으로 의미가 다릅니다.
    요새 '한계에 도전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 '한계'라는 말에 의미가 있습니다. 한
    계는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인간이 뛸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
    다. 기록을 경신 하지만 그것도 한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한계를 똑바로 알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생을 사는 것이 '부지런'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 담임 목사가 새로 부임했습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교인들 가
    정을 하나하나 심방하는데, 교인들마다 새로 온 목사를 앞에 놓고 다른 교인들 험담을 늘어
    놓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 집을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병들었구나'
    느낀 목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묘안을 주셨습니다. 어느 교인
    집을 심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주인이 또 다른 집사님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듣고 있
    던 목사가 가방에서 준비한 노트를 한 권 꺼냈습니다. 겉장에 '불평의 책'이라고 씌어진 노
    트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 문제는 제가 직접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하신 얘기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
    면 제가 여기에 잘 적어 놓았다가 그 집사님을 만나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대신 여기에 성도님의 이름을 기입하셔야 합니다."
    몇 사람이나 이 노트에 자기 이름을 기록했을 것 같습니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습관처럼 늘어놓은 것입니다.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인 언어를 쓰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그 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언어, 생명의 언어
    를 쏟아내실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
    데 보냄과 같도다." 곧 세상은 이리와 같다, 너희는 양이다, 그래도 이리 속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뱀같이 지혜로우라 하십니다(마10:16) 예수님께서는 또 비둘기와
    같이 순결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금과 같이, 빛과 같이 행하라
    하십니다. 빛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게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생명력을 공급하기도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
    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십니다. 지혜로 행하라- 다시 생각하여야 합니다. 안믿는 사람
    과 부딪히지 마십시오. 남을 무시하지도 말고 멸시하지도 말고 아주 지혜롭게 행함으로 그
    리스도인된 덕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해석을 하기 어려운, 굉장히 깊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원어적 의미를 보면 시간을 속량하라, 시간을 사라 하는 말이 됩니다.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열정도 있고 여러 가지가 다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정적인 것은
    바로 시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내가 얻는 게 아닙니다. 주어지는 것일 뿐입니
    다. 그러므로 오늘도 시간을 속량한다는 것은 시간을 얻기 위해서 또 다른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려면 돈을
    주고 사야 되지 않습니까? 돈을 주고 물건을 가져오는 것과 같이 우리가 귀한 시간을 만들
    기 위해서는, 더 귀한 시간을 얻어 들이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바쳐야 합
    니다. 이것이 속량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볼 때는 시간이란 선교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시간이 있어야 선교
    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와야 선교하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선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행하라 하는 것은 그 말씀입니다. 선교의 기회를 포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분, 그렇지 않습니까? 전도 아무 때나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
    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 이를테면
    술에 만취되어 있는 사람한테 설교를 하거나 거기 대고 전도를 하고 들면 큰일납니다. 그러
    면 돌아서서 물어버립니다. 공연히 예수님까지 욕먹이는 일입니다. 이게 지혜롭지 못한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속량하여야 합니다. 시간에 대하여 아주 지혜로워야 합니다.
    기회에 대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누가 가령 어려운 일을 당했다든가 혹은 병원에 입원했
    다든가 무슨 시험을 본다든가 그 기회는 놓치지 말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열릴 때가 있
    습니다. 그 기회를 딱 붙잡아야 합니다. 시간을 속량하라는 것은 그런 말씀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전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전도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전도의
    기회입니다. 절호의 기회는 다시 오지를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선교로서는 중
    요한 기회입니다. 아주 중요한 기회입니다.
    영국의 성경학자 윌리엄 바클레이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의 노예들 가운데
    는 아주 지혜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 그 주인이 흡족해서 돈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돈을 그냥 써버리지 않고 신전에 갖다 맡긴다고 합니다. 또 돈
    이 생기면 또 맡기고--- 그렇게 하여 어느 만큼 돈이 모이면 자기 주인을 그 신전에 데리
    고 가서 맡겨놓은 그 돈을 찾아 자기 몸값을 치르고 자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
    리석은 노예는 어쩌다가 공돈이 조금 생기면 먹어버립니다. 노예 주제에 돈을 저금해서 무
    얼하나 하고 먹는 데 써버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노예는 자기의 자유의 날을 바라보면서
    조금씩조금씩 부지런히 저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죽기 전에 자유인이 된다는 것입
    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게 바로 시간을 속량한다는 뜻입니다. 아주 귀한 시간
    을 위해서, 귀한 생명과 구원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그쪽으로 아낍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
    하면서 시간을 아낍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빌립 브룩스라고 하는 미국의 감리교 감독 한 분이 연로한데 지금 중병을 얻어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누가와도 안만나줍니다. 그런
    데 하루는 어렸을 때에 학교를 같이 다니던 잉글슨이라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여
    러 번 전도를 했건만 끝까지 무신론자이기를 고집하며 일생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만남을 다 거절하던 사람이 이 친구는 만나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한참 얘기를 나누
    다가 돌아갔습니다. 가족들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귀한 분들은 다 거절하시면서 왜
    변변치 못한 무신론자 친구는 만나셨습니까?" 그러자 이 감독이 아주 유머러스하게 대답했
    습니다. "다른 사람은 천당에 가서 만날 것이니 인사 안해도 되지만, 저 친구는 틀림없이 지
    옥에 갈 것이니 마지막으로 인사나 하려고 만났지." 여러분, 같은 시간에 사는 것 같으나 절
    대로 같은 의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속성을 생각해보셨습니까? 시간이란 무형자원입니다. 자본 중에서 제일 큰 자본이
    시간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사실 시간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젊은 사람은 절
    대로 슬퍼할 권리가 없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젊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젊은데 울고 짜고 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젊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자, 이제 보십시오. 시간은 가장 큰 자원입니다. 무형자원입니다. 또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부한 자 가난한 자의 차별이 없습니다. 시간은 가장 공평합니다. 또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뜻을 알든 모르든 간에 시간은 소멸됩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계속
    해서 시간은 흘러갑니다.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자꾸만 지나
    갑니다. 또 하나 시간은 저장할 수 없습니다. 돈도 저장하고 지식도 저장하고, 컴퓨터가 어
    떻고--- 무엇이든 저장한다고 합니다마는 시간은 저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흘러갑니
    다. 시간은 양도하지 못합니다. 매매도 못합니다. 돈주고도 사지 못합니다. 이래서 시간은 소
    중합니다.
    가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간 좀 내주세요." 돈을 달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시간을 줄 수는 없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한 시간을 내주었다면 여러분
    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일생에서 소중한 한 시간을 내게
    떼어준 것이니까요. 이것은 돈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은 양도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 가끔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이 슬퍼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네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을-----" 그렇습니
    다. 시간은 양도하지 못합니다. 매매도 못합니다.
    시간에는 물리적 시간과는 다른 심리적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시간이라는 성격의 가변성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기다리는 자에게는 시간은 너무나 깁니다.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빠르게 지나갑니다. 비탄에 빠졌을 때에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습니다. 기뻐할 때에는 시간이 짧습니다. 이런 심리적 시간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소중한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
    겠습니다. 첫 번째로 시간 파괴형이 있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파괴해버립니다. 도박을 하
    는 사람들, 술을 먹는 사람들, 마약을 하는 사람들, 이밖에도 많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그
    래 어쩌자고 술마시고 멍청한 가운데 보내고 있습니까? 그 아까운 시간을 말입니다. 그뿐입
    니까? 남의 시간까지 빼앗습니다. 남의 시간까지 파괴합니다. 이제 일어나서 가겠다는 사람
    을 술 한잔만 더 하라고 붙들어놓습니다. 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내가 파괴하고 있는 것
    입니다. 시간 파괴형의 인간이 있기에 세계는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은 시간 파괴가 아니라
    생명 파괴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간 소비형이 있습니다. 계획은 많이 세워 놓고 실천을 안합니다. 약속은 많이
    했는데 지키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엇을 해야겠다 생각만 복잡했지 정
    작 이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구력이 없습
    니다. 무엇을 시작했다 하면 끝을 내야지 들쑥날쑥, 하다말다 합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좀 너저분하지 않습니까? 창피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 것입니까? 시간 소
    비형입니다. 또 번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간 낭비
    입니다. 또 잠이라는 것은 적당히 자야지요. 그런데 몸이 무거울 정도로 잠이 많이 잡니다.
    시간 소비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멍청한 가운데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 창조형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뜻을 알고, 가장 고귀한 시
    간으로 그 의미를 꽉꽉 채워나가야 합니다.
    시간 관리에 있어서 그릇된 환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을 빨리 처리하면 시간의 의미가
    살아남는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을 오래오래 하면 시간의 의
    미가 좋아지는 줄로 압니다.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최선의 시간관리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먼저는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 시간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굉장히 크신 은혜로 내게 주어졌다,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감사하면서
    은혜요, 은사요, 사명이요, 기회로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기대가 여기에 있습
    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간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원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시간은 나를 끌고 있는 자에게 빼앗
    긴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자원해서 선택적으로 자유한 가운데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고 싶어서, 내
    가 선택해서, 나의 일을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면 그것은 나의 시간이지만, 목구멍이 포
    도청이라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으로 할 수 없이 일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시간을 빼앗긴 것
    입니다.
    또한 시간을 질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증오하는 시간은 빼앗긴 시간입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내 시간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
    손해본 것도 많은 데다 나의 고귀한 시간까지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멍청한 사람
    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시기 질투도 합니다. 내가 질투하는 사람에게 내 시간을 바치고 있
    는 것입니다. 이 또한 바보스럽습니다. 이것도 그냥 없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
    는 시간만이 진정한 내 시간이요, 감사하고 기뻐하는 시간만이 시간의 의미를 창조하는 시
    간입니다. 내 생명의 일부분, 좋은 시간을 여기에다 바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시간을 속
    량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귀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내 시간을 손해보는 것
    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의미를 질적으로 높
    여야 합니다. 양적으로가 아니라 질적으로 시간의 의미를 높여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을 아껴야 되겠지만 무엇보다 선교를 위해서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 뿐입니다.
    더욱이 미래지향적으로, 영원지향적 시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
    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이제 행선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야 할 그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아침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름지기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로울 것입니다. 시간에 대해서, 기회에 대
    해서 지혜로울 것이고 특별히 말에 대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나 자신을 구원하
    고 남과 화목할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여러분은 어떤 목적을 세웠습니까? 어떤 목표를 두었습니까? 돈입니까, 건강입
    니까, 명예입니까? 하지만 그 동안도 많이 애썼는데 별 볼일 없었습니다. 이제는 생각을 달
    리하십시다. "세월을 아끼라"- 새로운 기회, 새로운 시간, 새로운 어떤 가능성이 내게 주어
    지기를 바라서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이미 주어진 시간을 그대로 감사함으로 받고, 이 시간
    을 최선의 시간으로, 가장 높은 가치의 창조적 의미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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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끝이 좋을 자신 있습니까?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이러한 기쁨에 사는 자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우리의 멘토 다윗
    은혜를 받아야 산다
    아름다운 면류관
    부지런히 가르치라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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