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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희생이 있기에  
    2001-12-28 20:45:24   read : 182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행11:19-26


    한 사람이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거듭나기까지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
    다. 즉 희생 없는 전도는 없습니다. 전도라는 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희
    생 없이 생명을 구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가족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보도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강물에 빠지자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을 건
    지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 끝에 애들을 살리고 자기는 그만 힘이 다 빠져 물에서 나오지 못
    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때에야 가능
    한 일입니다.
    희생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희생을 해주었기 때문에 내
    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로 기도해주었기에
    내 심령이 열려서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영접한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 나를 위해 희생해준
    한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간을 바치고 심지어 돈을 써가면서 나를 위해 수고한 사람이
    있었기에 내가 오늘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전 인구의 4분의 1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통계를 내놓을
    정도로 부흥하여 세계적으로 소문이 난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된 배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27세의 선교 비전을
    품고 영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에 오자마자 꽃다운 나이에 아내를 잃
    었습니다. 아내를 잃어버린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그는 한 가지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 중
    국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한반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백성들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고 있으며 복음을 들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아직 남아 있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말로 된 성경책을 배에다 싣고는 대동강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그
    때는 한창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때로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죽이던 살벌한 상황이었기 때문
    에 누구든지 예수(야소) 소리만 내어도 세상 구경을 다시는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성경을 전해주려
    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관군들이 그 배에 불을 질렀고 드디어 그는 강변으로 끌려
    내려와서 칼에 맞아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자기 목을 치는 사람에게 성
    경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경을 받아든 그 사람이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되었
    습니다. 토마스라는 젊은이의 피가 그 강변에 뿌려졌기에 그 피 값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양화진에 가면 비석이 많이 서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세기 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거나 잘 적응하지 못해서 죽은 어린아이들의 무덤, 선교
    사 부인의 무덤,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젊은 선교사들의 무덤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무명의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한국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빚진 자 의식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희생 없이 생명이 살아날
    수 있습니까? 희생 없이 지옥으로 가던 영혼이 천국을 향해 돌이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도
    희생하셨는데, 어떻게 우리 희생 없이 전도가 되겠습니까?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 때
    문에 엄청난 값을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본문을 보면 안디옥은 당시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인구가
    50만 명이 넘었다는 기록은 안디옥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화려하고 요란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에 핍박을 피해 도망온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온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창립은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큰 환난이 일어나자
    그 흩어진 사람들이 주 예수를 증거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졌지만 불
    붙은 그들의 뜨거운 가슴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에게
    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안디옥 교회의 창립의 동기가 된 것입
    니다. 이 교회가 바로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안디옥 교회입니다.
    어떻게 이런 경이로운 부흥이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에 안디옥에서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
    까? 그 대답은 간단하지만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자들은 가장 큰 희
    생을 치른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복음을 전
    했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진지하게 자문자답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값진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있는가?'
    우리 한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주님은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빨리 가서 하나님이 기다리
    시는 잃은 양들을 찾아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들지 않으면서 이웃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는 않습니까? 내 가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
    까? 이 부패한 한국 사회가 치료받기를 원합니까? 희생 없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잘 이기면 더 큰 축복을 예비하셨다가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 자신들도 어떤 의미로는 흩어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사회로 돌아
    가면 흩어진 교회로서의 몫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지방에도 복음이 증거 되었다는 말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다는 기록이 있
    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부흥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런데 그 부흥의 방법은 그 시대가 필요한 일꾼을 통해서 부흥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적당한 시대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민족의 조상,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모세를 선택하여
    세워서 웅장한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모세의 시대가 끝나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서
    가나안 복지로 그 민족을 이끌어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해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을 세
    워 이스라엘 나라를 굳건한 나라가 되도록 하였으며, 솔로몬을 세워 새 성전을 짓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12제자를 세워서 하늘나라의 사업을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알맞는 일꾼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18세기 영국 사회가 극도로 퇴폐해지고 말씀이 살아 있지 않는 교회가 될 때에 존 웨슬리
    를 세워 복음운동을 일으키며 성결 운동을 일으켜서 영국 사회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일꾼은 자격과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울 때는 재덕이 겸전한 사
    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진실무망한 사람, 불의의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재주만 있고 덕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안됩니다. 재주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지혜나 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따라서 재덕이 겸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경거망동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
    이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진실 무망하다고 하는 것은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 깨끗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하나
    님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하여 이 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이며, 지도자를 세우는 근거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내려와서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교회가 크게 부흥될 때에 일곱 집사를 세운 기
    록이 있습니다. 그때의 자격도 출애굽기 18장의 천부장을 세울 때의 자격과 비슷합니다.
    첫째로 성령 충만한 사람, 둘째, 지혜 충만한 사람, 셋째, 칭찬 듣는 사람, 한 가지 더 포
    함시키면 믿음 충만한 사람을 세웠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혜 충만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
    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사회에서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해야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와 같이 좋은 일꾼들을 세웠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행 6:7)라고 했습니다. 즉 부흥의
    축복이 주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왕성해야 합니다. 말씀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말씀 따라
    기도하고, 말씀 따라 생활하고, 말씀 따라 봉사하는 열심히 왕성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열
    심히 상고해야 됩니다. 말씀 공부하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의 수가 많아졌
    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착한'이란 말은 단순히 '바르다'는 뜻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선행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것을 드려 남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는 행위를 말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희생과 봉사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피하거나 무관심해 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드려, 물질을 드려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 즉 강도 만난 사람을 보살펴 준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내적 상태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즉 이중인격자가 아니라 상냥하다는 말입니
    다. 의지와 태도가 친절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남을 걱정해 주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희생 봉사한다는 사람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일하는 곳 어
    디에 가서도 신임을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에 대한 기사가 사도행전 4장과 9장 두 곳에 나옵니다. 먼저 4 : 37에는 초대교회가
    필요하여 그의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물질을 바르게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의 신
    앙생활을 흉내내다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9장에 보면 신약의 역사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훌륭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것은 핍박자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려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꾸러지고 나
    서 3일 금식 후에는 거듭나서 바울이 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던 사람이 4, 5일 후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한다면 누
    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사울이 다메섹에 가서 전도하니 아무도 믿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패였던 자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메섹에서 도망쳐 예루살렘
    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를 위시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나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
    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습
    니다. 그때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바나바가 나서서 중재한 것입니다. 사울 보고 믿은
    것이 아니고 바나바의 신실함을 보고 믿어 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착한 사람이라
    고 합니다.
    그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성실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진리에 강하게 붙잡힌 사람입니다. 허약하고 절망적인 의심에 시달리
    지 않았습니다. 본문 23절에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간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교회가 창립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구원받음
    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나바는 이 같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서 메시야로 오셨고 부활 승천하신 것을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라야 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나타
    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지도하는 그의 지도 방침
    이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입으로만의 충만이 아니라 그 분의 삶으로 충만
    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온유하고 겸손했으며 사랑하는 사
    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협력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본문 25절에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를 데리고 와서 1년 동안 안디옥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
    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사인 C.T. 스터드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
    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이 말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일하다가 생을
    마친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이자 대영제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아프리카의 개척자인 리빙스
    턴은 16년간 밀림에서 선교하다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습니다. 27번째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
    을 헤매다가 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연약한 몸이었습니다. 사자에게 물린 한쪽 어깨
    와 팔은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하고 마치 몸통에 힘없이 매달려 잇는 것같이 보일 정도로
    나약한 모습을 한 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설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주셨다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사람
    들은 내가 그곳에서 많은 희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들을 하지만, 도무지 갚을 수 없는
    큰 빚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을 갚았을 뿐인데 이것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장차 영
    광스러운 소망과 복된 상급을 약속받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희생이 되겠습
    니까? 그런 말과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것은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라고 말
    하십시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
    닙니다.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슈테른베르크가 그린 유명한 예수님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 속에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빌라도와 유대인들 앞에서 조롱을 받으며 서 계십니다. 그림의 제목은 '이 사
    람을 보라'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이 그림 앞에서 감동
    을 받은 하버겔이 쓴 찬송가가 185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주님의 은혜에 감동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조그마한 수고
    로부터 큰 희생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지 값을 치르려고 합니다. 바울도 그와 같은 사람이
    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
    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이처럼 자기 자신 전부를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어두움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혼자서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큰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좋은 협력자가 있
    을 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좋은 협력을 해서 일을 해나갈 때 서로 양보하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절제하는 마음, 온유
    한 마음이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이러한 성령 충만으로 1년 동안
    사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쳤지만 조금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
    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 충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말썽이 일어납니다. 열매가 나타나지 않
    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24절 하반절에
    그런 사람을 통해서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큰 무리는 적어도 500명, 천 명, 수천
    명을 말할 것입니다. 착한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하나를 통하여 큰
    무리가 주님께로 돌아오리라. 뿐만 아니라 26절 하반절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의 정식 명칭을 인정
    받은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십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기들이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며 자기들끼리 모이는 것으로 만족하
    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자기 주변에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끓어 오른 것입니다. 일찍이 스펄젼은 "참된 회개는 초신자가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려고 애
    쓰기 시작할 때 가장 충분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토마스 구드리는 "나는
    여러분이 기도하러 모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에겐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보다 죽음
    의 구렁텅이에서 몸부림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줄을 던져 주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나
    는 구원받은 영혼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의 표현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안디옥의 복음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던 소수의 사람들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이웃을 위하여, 수지지역을 위해서, 우리 한국을 위해서,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우리를 사용해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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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끝이 좋을 자신 있습니까?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이러한 기쁨에 사는 자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우리의 멘토 다윗
    은혜를 받아야 산다
    아름다운 면류관
    부지런히 가르치라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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