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희망이 있어요?! 2001-12-18 14:58:39 read : 181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 : 조봉희 목사(지구촌교회(서울))
* 설교일자 : 2001/12/16
* 설교제목 : 아직도 희망이 있어요?!
* 설교본문 : 로마서 15:13
로마서 15:13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말엽에 해군 잠수함 한 척이 본부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관 고장을 일으켜 항구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잠수부들이 급히 바다 속으로 내려가 잠수함 뚜껑 위에 접근했습니다. 그들이 잠수함 지붕 위에 내려앉으니까 그 안에서 승무원 한 사람이 망치로 이런 내용의 모르스 부호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어요? Is there hope?】
이것은 오늘도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 아직도 살 가치가 있나요? 아직도 기다려볼 필요가 있나요? 아직도 다시 도전해볼 의미가 있나요?
때때로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이런 애절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
아마 사업가들도 이런 가느다란 의문을 품고 스스로 물어보곤 할 것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을까?"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탈선 문제 앞에 동일한 질문을 할 것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
저는 오늘 아침에 이렇게 대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어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입니다.
인간은 음식 없이는 사십 일을 살 수 있고, 물 없이는 사흘을 견딜 수 있고, 숨을 쉬지 않고는 8분을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단 일초도 버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합니다(We need hope to cope).
우리가 인생의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희망만 갖고 있다면, 오히려 모든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역동적인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희망의 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지난 10일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인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그들이 절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해에 있어서 절망은 가장 나쁜 죄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절망은 재앙을 부르는 가장 나쁜 죄이다."
그렇습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엘케골도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선언합니다.
인생의 모든 불행과 비참은 희망을 포기하는 절망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잘 알고 있는 유태인 심리학자 Victor Frankle이 나치 독일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동료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한 동료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창을 봐야 시커먼 회색 담벼락밖에 없지 않소."
"아니, 그 회색 담벼락 저 건너편에 있는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밤에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다."
그는 어느 날 노동 시간에 흙 속에 파묻힌 유리병 조각을 몰래 바지주머니에 숨겨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 유리조각으로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깨끗이 면도를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독백으로 반복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매일 두 번씩 면도를 한 것입니다.
수용소에서 아침이 되면 나치스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일렬로 선 유대인들 중에서 그 날 처형자들을 골라내 가스실로 끌고 가는데, 언제나 깔끔하게 면도하여 삶에 의지가 뚜렷이 나타난 이 사람만큼은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 안에서 힘없이 죽어 나갔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기대하며 견뎌나간 사람들은 결국 살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가 곧 세계적인 심리학자 Victor Frankle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아무리 암담하고 절벽 같은 사면초가라 할지라도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어요!】
특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13절).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희망이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의 원천이십니다.
1.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이름의 종류가 15개나 됩니다.
엘로힘, 엘 샤다이, 아도나이, 여호와 닛시, 여로와 살롬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계십니다.
그 중에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가 있습니다(에스겔 48:35).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국만리 타향 땅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한 많은 노예생활의 고생을 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서도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2장까지는 "여호와는 거기 계시지 않는다"이고,
33-48장까지는 "여호와는 거기 계시다"는 메시지입니다.
즉 하나님은 죄악의 자리에는 더 이상 함께 계시지 않으나, 고난과 시련과 환난의 자리에는 함께
하고 계시며, 여전히 돌보고 계심을 강조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든 것이 어둡게 느껴지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견딜 수 없이 외로울 때, 버림받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에게서조차 멀어졌다고 느껴질 때,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돌보고 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 큰 어려움과 암담한 미래를 맞이할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걱정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렇습니다.
인생의 확실성은 하나님께서 나를 결코 떠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혼자라고 느껴지고, 내가 외롭다고 느껴지고, 내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보아주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아십니다. 그래서 미래를 다스려주십니다
예레미야도 이런 간증을 통해 절대적인 확신을 심어줍니다(예레미야 애가 3:19-21)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무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분과 한번 손을 잡은 이후로 그분은 결코 나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어떤 시인은 이런 소박한 시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확신을 찬양합니다.
"어제는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고, 오늘도 그분은 도우시리라.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영원하리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돌보아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줄 내가 확실히 아네"
2. 하나님의 목적은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즉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나요? 왜 하필이면 저인가요?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그러나 우리는 내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내다보는 희망을 걸고 사는 자들입니다.
"당신의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God's purpose behind your problem).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 인생의 모든 사건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작용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삶의 현장에서 벼라 별 일들을 다 겪었습니다.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큰 목적과 섭리를 확고하게 믿고 견뎠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5)
오늘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크신 목적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이렇게 역설적인 간증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이 말씀은 모든 일들은 언제나 happy ending으로 끝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점은, "하나님은 모든 일의 위대한 디자이너"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목적을 갖고 우리 인생을 기획하시며,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우연이나, 운명, 팔자 같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목적 지향적으로 다스려나가십니다. 질병도, 실패도, 실직도, 실수도, 오류도
하나님의 목적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다 합력해서 유익 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I am not sold by you, but sent by God.(창 45:7)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즘 당신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어떤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질병, 사고, 실직, 실패, 자녀들의 실패, 경제적인 파산, 사업의 부도, 뜻밖의 우환이나 재난, 고통,
무슨 일들을 만나고 있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하필이면 나에게 일어나는가?
우리는 잘 모르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다 똑같이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그래요.
나는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라도,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확실하게 간증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웅대한 목적을 갖고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도 이런 놀라운 확신을 심어줍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천국에서 모든 해답을 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지상낙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 낙관론자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적 미래지향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 희망은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 땅 위에 있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더 불쌍한 자들입니다(로마서 8:2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은근히 유토피아적 미래지향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인생의 문제는 이 땅에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가야, 들을 수 있는 대답들이 많습니다.
욥이 왜 그처럼 혹독한 재난과 시련을 당해야 했는지, 왜 모세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죽어야 했는지, 사도 바울이 왜 그처럼 육체의 지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우리는 아무도 속시원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야 대답을 얻든지, 아니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후에야 모든 해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왜 경건한 신자가 회사에서 실직 당하고, 왜 헌신적인 성도의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고, 왜 훌륭한 믿음의 가족들 중에 탈선한 자녀들이 나타나는지, 왜 사랑하는 남편이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모른 것은 모르는 상태로 놔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고전 3:13).
왜 하나님은 불의와 고난을 방치하시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만이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이 말하듯이, 이 세계가 희망을 가졌든, 못 가졌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사건들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속단하거나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힘차게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견고한 희망입니다. 절대 희망입니다. 영원한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아직 나의 인생을 향한 계획을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계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나를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주고 계십니다(베드로후서 1:3).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 보상을 하늘에 간직해두고 계십니다(4절).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능력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5절).
그래서 우리는 결국 천국에 가서 찬란한 영광과 칭찬과 명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7절).
이처럼 베드로는 영광과 희망의 신학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천국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두 번의 실패가 내 인생을 결판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최상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여전히 나를 돌보아주십니다.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지켜주십니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주여 지켜주옵소서"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말씀 그대로,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이 차고 넘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초청) (찬미 685 / 나의 영혼이 잠잠히)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이런 애절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
아마 사업가들도 이런 가느다란 의문을 품고 스스로 물어보곤 할 것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을까?"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문제 앞에 동일한 질문을 할 것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나요?"
저는 오늘 아침에 이렇게 대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절망의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여호와 삼마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인생 여정에서 주님의 거대한 목적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요,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천국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희망찬 내일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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