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엡5:22-24)
들어가는 말
가정에 대한 시리즈의 첫 번째로 성경의 순서에 따라 오늘은 먼저 아내들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행동은 원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원리 속에서 살면 그 원리 속에서 수많은 잘못된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동 하나 하나를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삶의 원리를 뜯어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성경이 '이렇게 살아라'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아무리 둘러봐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까? 전자는 보편적으로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따라서 사는 것이고, 후자는 어려워서 실행하다 자꾸 실패하면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일이 있더라도 성경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풍조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억압을 받아왔고 부당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들이 해방되어 일어나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사회가 어떠했든지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든지 중요한 것은, 오늘 하나님께서 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말씀은 가족들의 각 관계 속에서는 한 우세한 덕목이 하나씩 있는데 그 주되고 우세한 덕목을 하나씩 지키며 살 때 그 이외의 작은 덕목이 빛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 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까? 있어야 할 것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있었던 상태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행위나 삶의 모습이 절대적으로 정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질서 속에 아내의 남편에 대한 우세한 덕목은 복종입니다. 이 덕목이 무시되면 다른 면에서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갖는 덕목은 당연히 사랑입니다. 또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갖는 덕목은 교훈입니다. 사랑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갖는 덕목은 배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덕목이 가장 우세한 덕목입니다. 오늘날 가정에 있어서 대부분의 문제는 우세한 덕목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불편하지 않게 잘 살아가면 잘 살아가는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에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는데 먼저 유의해야 할 단어는 '자기 남편'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길거리를 스치고 지나가도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한 지체로 설교자에게 설교를 들으며 목양을 받으며 살아갈 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여기서는 지금 여자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부모를 떠나서 결혼을 하는 그 순간에 그는 그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그 서약서 속에는 한 인격체인 남자에게 남편이라는 이유 때문에 깊이 복종하며 살 것을 하나님 앞에, 증인들 앞에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내가 순종하는 것은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입니다. 남편과의 관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질서의 경륜이 복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속에 펼쳐져 있는 이 모든 가정의 대부분의 비극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질서에 있어서 기본적인 전제는 남편이 영적인 가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은 남편들대로 영적인 사람이 되고 좋은 신앙생활을 해서 신앙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되는 것은 개인적인 전제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해주는가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닙니다. 여기서 복종하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복종시키실 때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언제 복종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넘치게 주실 때만 복종해야합니까? 성령 충만 할 때만 복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곤고하거나 충만하거나 우리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성경은 그렇게 복종하도록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
성경이 단순히 "복종하라" 하지 않고 "주께 하듯 하라"합니다. 복종해야할 이유를 말하기 전에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향해서 모아진 것, 그것이 '주께 하는 삶'입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남편의 무능이나 아니면 아내의 무능이나 인내심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출발 자체가 잘못된 꿈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여자임을 버리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려고 할 때 그것은 삶의 모든 꿈을 그 남자에게 묻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로 태어나기를 꿈꾸면서 결혼에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시집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리가 되어야합니다. '주께 하듯'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앙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것 같은 동일한 의미에서, 남편이 주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내의 머리
그러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남편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이유가 두 가지 때문인데 하나는 남편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남편이 아내에게 워낙 잘해줄 때입니다. 이런 것들은 원리가 지배하고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조화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떤 관계인지 깊이 경험을 해야지만 부부 관계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갖는 관계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몸인 교회는 아주 세밀하게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우리는 복종하고 우리는 간절히 탄원하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탄원을 듣고 그것을 긍휼히 여기시며 자기의 깊으신 뜻을 따라서 응답해주시는 것,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가 바로 하나님의 세우신 아내와 남편 사이에 존재하는 창조의 질서라는 사실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존재 가치로서의 우등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시는 것처럼 그렇게 남편에 의해서 한 가정이 다스려 나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복종시키기 전에 잘 다스리는 일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 남편의 다스림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다스림이 있으니까 복종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까 교회는 복종의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여, 진리로 여러분의 마음과 머리를 가득 채우십시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지를 채우십시오. 그래서 제발 가르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교훈으로, 그리고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하든지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다스림이 있고 복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질서입니다.
'존경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존경의 분량 안에서 남편을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고 "아내들이여"하며 모두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였는데도 이런 기초적인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을 보니까 2천년 전인 이때에 이미 가정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오늘날만의 일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사단은 가정의 기본적인 뿌리를 흔들어놓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파괴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관계에 금이 가는 일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는 것은 벌써 떠나가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남편의 머리 속에 다른 여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내의 머리 속에 다른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이미 심각한 문제입니다.
범사에
여기에서의 복종은 노예들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으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 그러나..." 이 '그러나'는 헬라어로 '알라'인데 제가 보기에는 '오직'이라고 번역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직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범사'는 모든 일에 있어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군대 분위기와는 전혀 틀립니다. 인격적으로 나뉘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고 그 속에서 인격적인 결합체로서 살아가는데 그 속에서 지배하고있는, 아내가 남편을 향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고 우등한 덕목이 복종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때때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언쟁도 하게되고 의견이 나뉘어져서 합의를 봐야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성경이 그런 것들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경향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들여다보면 고집을 세우지 않아도 될 일인데도 고집을 세워서 관철시키려 하는 데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명백히 잘못된 주장을 하지 않을 때에는 일단 그것을 순종해야되겠다고 하는 마음의 경향을 가지고 들어야 되는데, 대등한 관계 속에서 말을 하면 자기가 다시 해석해서 그 중에서 원하는 것을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반응을 통해서 남편을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내된 여러분들은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남편의 말에 대해서 남편의 말이라는 사실 때문에 하자가 없는 한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경향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교인으로서 주님께 갖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깊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을 명하실 때는 '아멘'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은 특별한 뜻이 계셔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우리에게 물이 필요한데도 광야를 걸어가게 하시고 어떤 때에는 들판을 지나야 하는데 골짜기를 지나게도 하시고 생수가 필요한데 쓴 물을 보면서 뭔가를 생각나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범사에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처럼 완전히 선한지 않습니다. 남편들도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편의 명령에, 남편의 가르침에,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적인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누구에게 강력한 손해를 입히고, 그리고 가정의 기본적인 질서를 파괴하게 하는 어떤 위험과 커다란 부담이 동반되지 않을 때에는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칭찬 안 하십니다. 한 번도 여러분들은 그런 경향성을 놓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삶에 자기도 모르는 암초로 작용을 해서 그것이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힘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의 모습을 새롭게 하나님 앞에 가꿔가야 합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어머니 밑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유대인들이 혈통을 무척 따지지만 남편이 유대인이어도 아내가 이방인이면 피로서는 유대인의 피로 태어났어도 그 아이는 유대인으로 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여자가 이방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유대인으로 쳐줍니다. 교육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반말이나 하고 심지어는 욕설을 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하면서 사는 것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복종함이 없는 곳에서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작품입니다. 그런 기본적인 질서가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질서입니다.
마치는 말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복종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복종의 질이 어떤 것이냐를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십일조도 하고 헌금도 하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복종이라고 하는 것은 인격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그 복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의 신앙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 남편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순환 논리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편은 아내가 복종을 안 하니까 사랑할 수 없고 아내는 남편이 사랑해주지 않으니까 복종할 수 없는, 이러한 부끄러운 일들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정을 다스려 가시는 원리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다짐하고 이 세상에서 자기의 남편을 깊이 존경하기 위해서 애쓰고 단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이 그렇게 순종하며 살려고 애를 써보십시오. 아내의 행실로 남편이 존경받는 남편으로 변화되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생 같이 살아야 될 사람입니다. 존경받지 못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행위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남편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인 원리가 복종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모든 주권을, 가정을 다스려 나가는 커다란 주권을 남편이 쥐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방 가서 남편에게 존댓말 하라고 합니다.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또한 남편에게 범사에 복종하며 살기 위해서는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숟가락도 구별된 것을 남편에게 갖다 놓으면 자녀들이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인 가장으로서 한 가정의 목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가정을 다스리고 이끌어가야 할 가장이라고 하는 것을 아내들이 세워주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그렇게 존중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며 범사에 남편을 높이고 그 팔 아래서 안전하게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 남편의 신앙을 위해서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자기의 문제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 가정의 기본적인 질서가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시리즈 "가정을 위하여I"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