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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를 좁히라
    2001-12-25 17:04:30   read : 179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마태복음 26장 57-58절)
    <목회기도>

    하나님!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아버지
    예배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우리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삶에 지친 곤고한 이들이 왔습니다.
    시험과 경쟁… 진학의 좁은 문에서 싸우던 이들이 왔으며,
    상처 받은 가슴을 가지고 왔고, 해결 못한 무거운 짐진 자들도 있으며,
    가족의 아픔 때문에 괴로운 이들도 있고,
    은밀한 죄로 괴로워하는 마음 아픈 이들도 여기 모였사오니…
    하나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새힘을 얻게 하시고
    새 용기를 얻게 하시며 영적 양식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여러 명이 있습니다.
    저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나가 있는 사람,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
    유학으로 출장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에게까지
    하나님,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셔서
    저들에게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미국 미시간주 호프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건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듀크대의 레드포드 윌리엄스 박사도 "스트레스성 호르몬 코티졸은 동맥에 수많은 작은 상처를 낸다"며 "반복되는 분노는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면역성을 떨어뜨려 암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2001. 4. 5 조선일보 참조)
    여러분 주변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얼굴부터 붉히는 사람은 '일찍 가고 싶어서' 화내는 것이므로 불쌍히 여기시면 됩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이고 이제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여러분, 넓은 마음을 가지시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에게 "내가 참는다. 내가 용서한다. 먼저 믿은 내가 용서한다. 나이 많은 내가 용서한다. 마음 착한 내가 용서한다"라는 마음을 가지시고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착한 내가 참고 용서한다"

    오늘은 종려주일(Palm Sunday)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던 것을 근거로 종려주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요12:13).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악마를 대적하는 상징물]로서 사용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잔인한 처형의 자리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고난주간의 시작은 슬픔과 탄식의 시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갖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엄숙하게 보내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강단 꽃장식도 보라색과 예수님이 머리에 쓰셨던 피 묻은 가시관을 상징하는 꽃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전세계의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주간에 생일을 맞았다고 해도 미리 파티를 하거나 생략하고 결혼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주간에는 우리들도 경건하고 엄숙하게 지내야 합니다.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의 행렬은 개선장군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의 행진이 아니었습니다. 고난과 가시밭길을 시작하는 행렬이고 죽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은 2000여년 전 '이 주간에 있었던 한 사건현장의 한 사람'을 중심으로 고난주간의 의미를 재확인해 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움의 대상이 되셨던 예수님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은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통과 관습에 젖어 사는 관념, 관습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돈벌이 하는 자들의 상을 뒤집어 엎고 그들을 내어 쫓은 일이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하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전통 앞에 도전하고 나타난 예수가 못마땅했고,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의 도움으로 쉽게 예수를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체포한 예수를 오늘 본문 말씀처럼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감리교회의 법에는 목사님들이 70세에 은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퇴 하기 싫어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목회할 기회도 주어야 하고, 나이가 많아 활동하기가 불편함으로 은퇴하는 것이 좋아 나이를 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죽을 때까지 봉직했습니다(민29:23-29, 27:12-23). 그러나 로마가 이스라엘 민족을 지배하면서 대제사장직을 임명직으로 바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별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자 다시 임명제로 대표자를 지명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지방자치제가 잘 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이 나오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방의회에서 결정한 일과 지방일에 더 관심이 많고 중앙정부에서 하는 일에는 비협조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명제, 지명제는 중앙 정치하는 사람들의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대제사장직을 로마에서 임명하기로 한 후에 로마 당국은 자신들의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보다는 로마에 충성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보다 로마에 충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이권을 챙기려는 상인들의 상을 뒤집어 엎고 내쫓은 일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모든 것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는 생각으로 예수를 죽일 거짓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요11:47-54).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26장 59절에도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마음 먹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려고 했는데 누가 모였습니까? 훌륭한 교사인 "서기관들"과 유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인 "장로들"이 모였습니다. 성경을 가장 잘 알고, 교회를 가장 잘 알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싸우고 입을 삐죽거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교회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부덕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사촌 같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이름으로 모여서 어떤 일들을 합니까? 집사, 권사, 장로, 목회자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낙심한 자에게 용기를 주며, 절망한 자들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며,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입니까? 아니면 집사, 권사, 목회자들이 모여 남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을 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무리에 속합니까? 선교회원들이 모이면, 속도원들이 모이면 무슨 대화를 나누십니까? 예수이름으로 만난 김집사, 이집사, 박집사가 전화로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이 무엇입니까? 낙심한 자를 돕고,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십니까? 아니면 "김집사가 이랬대, 박집사가 저랬대, 전도사님이 이렇대, 목사님이 이렇대"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십니까?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 성경을 많이 보고, 봉사를 많이 하고, 목회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마치 예수님을 죽이려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교회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2000여년 전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은 잠자리도 거부한 채 밤중에 모여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밤에 모여 기도하기 보다는 잠도 안자고 모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사실 몰래 모이는 모임치고 건전한 모임이 없습니다. 모든 불의와 음모는 어둠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은 죄를 가리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알면 안되는 비밀"이니 "김집사가 알면 안돼", "너만 와",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이 알면 안돼", "이건 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마"라고 하는 일들 가운데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죄짓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캄캄한 곳에서 모이고 만나자는 곳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알면 안되는 비밀 이야기는 알 필요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리를 두고 "멀찍이"

    오늘 본문에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와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밤에 모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인솔로 찾아온 군사들에 의해 잡혀 가시게 되자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마26:56). 성경대로라면 물론 거기에는 베드로도 포함되었습니다. 그토록 주님의 사랑을 받고, 그토록 가깝게 지냈으며 멋진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전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기가 민망했던지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했는데 거리를 두고 본문에 표현된 대로 "멀찍이"(58절) 따라 갔습니다. 베드로는 마음 속에 담긴 정이나 사랑으로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신 후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자신의 신변의 위협이 느껴졌고 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안전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운전할 때는 앞차와의 간격을 두고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운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앞차를 바짝 좇아 따라가다가 부딪혀 사고가 나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뒷차에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운전'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안전거리를 두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안전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전거리를 두고 멀찍이에서 예수님을 따라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천국을 소유한 믿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가졌지만 눈앞에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움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두려움을 갖는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단순한 이성간의 사랑에만 빠져도 물불 안 가립니다. 목숨도 걸만큼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서워 벌벌 떤다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전거리를 두고 멀찍이에서 예수님을 따라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해(손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멀찍이 두고 신앙생활하는 사람, 교회를 멀찍이 두고 사는 사람, 목회자와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본 것이 있으십니까? "예수 믿는 것이 아니었더라면...."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런 일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희생하고 손해 보며 참는 일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닐 것입니다. 고난 당하고 어려움을 겪으면 예수님과 교회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더 손해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참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척 친한 사람인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비행기에 서세원이라는 사람 옆에 앉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하게 제가 더 잘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한테 반갑다고 아는 척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서세원을 자기들이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을 하고 종이를 내밀고 싸인을 받으려고 야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연예인을 보고 반가워하고 아는 척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만큼 TV에서 많이 봐서 익숙해 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과 자신이 거리가 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배를 잘 드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는다면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와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 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도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아, 이런 말씀 목사님께 드리고 기도 부탁도 하려고 했는데 목사님이 워낙 바쁘신 것 같아서요"라고 하십니다. 제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겠으며 무엇 때문에 제가 바빠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가깝게 하지 않은 핑계를 제가 바쁘다는 이유로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목회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숨긴 베드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몸을 숨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갔지만 자신을 숨겼습니다. 하속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멀찍이 앉아 자신을 숨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신분을 숨겼습니다. 숨기는 그것이 곧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시면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기둥교회 집사, 권사, 장로입니다."라고 밝히십니까? 음식점에 가서도 떳떳하게 예수 믿는 사람처럼 기도하고 드십니까? 아니면 골치 아픈 사람처럼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기도하고 드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과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사람들 틈에 껴서 그들과 어울려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제자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예수 믿는 사람답게 주님과 동행하고 사십니까? 우리도 가끔 주님을 멀리 두고, 함께 갈 수가 없어서 멀찍이 하속들과 앉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도 주님을 모시고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주님 곁에 앉을 수 있는 곳에만 앉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멀찍이의 신앙, 거리를 둔 신앙은 주님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을 보려고 간 베드로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라 갔던 것도 아니고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 보기 위해 간 사람은 구경꾼입니다. 그당시의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갔지만 58절에 보니 "그 결국을 보려고" 갔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보다는 관찰자로서 구경하기 위하여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의 자리에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기 위해 오셨습니까? 아니면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의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세가 가까옴을 볼수록 사람들이 모이기를 폐한다고 했습니다. 가능하면 모이지 않고 편안하게 신앙생활하자고 하는 것이 말세에 들려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들로 산으로 경치 좋다고, 날씨가 좋다고 나가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거리를 넓힌 사람들입니다.

    기도로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에 그분께 자신의 기도제목을 아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눅21:36).

    하나님께 드림으로 좁히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등 '얼마를 드리느냐?'는 물질의 양,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마6:21).

    착한 행실로, 빛된 삶을 통해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챤 다운 삶을 통해서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자신과 가정,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거리가 가까운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통을 당해 보고, 손해 볼 일이 생기고 신변의 위협을 느낄 일이 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그밖의 제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멀찍이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아니 오늘부터 예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믿음의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교회에 찾아 나와 예배 드리게 하신 주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때로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서, 손해볼 까봐
    하나님과 거리를 두었던 삶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며 용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같이 계셔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드리려고 하는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일천번제 헌금 등 여러 가지 예물등도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정성으로 준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생활 속에 일용할 양식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물질 때문에 죄와 타협하지 않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1년 4월 8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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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이 있는가?
    신앙생활은 오락이 아닙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한 맘이 되어 보자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알지 못함이라
    밤중에 부르는 노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배우고 뛰라
    어찌하여...놀고...섰느뇨?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해방된 사람
    가서 제자 삼으라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선한 싸움의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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