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여 … 많아지니라 2001-12-25 17:30:40 read : 1815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장 31절)
<목회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위험한 일 많고 사고 많은 세상에서 살던 우리를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오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 좋은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가정과 교회를 멀리 떠나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입원해 있는 병상의 환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귀중히 여겨 여기에 모인
성도들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며
감사절에 감사한 마음으로 앉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더 갖도록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11월 첫 주일이며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늘 오후 2시 30분부터는 매년 [추수감사절]에 하는 '찬양잔치'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기쁨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을 비우면 평안합니다. 욕심을 갖지 않으면 편안한데 '몇 등 할까, 상 받아야지'하는 욕심을 가지면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마음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객지에서, 외국에서 internet을 통해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라는 단어(말)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린이들에게 '교회'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하게 그림을 그립니다. 십자가와 종탑이 있는 건물을 교회라고 그립니다. 제가 묻는 '교회'라는 말은 '공교회(The Holy Universal Church)'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를 지칭하는 교회가 아니라 지역 지역 마다 있는 '지역교회(local church)'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기둥교회>가 떠올라야합니다. 이 교회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교회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전파한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사는 죄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용서받고, 새사람 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며 실천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과 용서, 용서와 사랑을 배울 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에 화목하고 평안한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화목하지 못하고 평안이 깨지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분쟁이 있습니다. 분쟁이 있다는 것은 화목이 깨진 것이고, 평안한 교회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배드리는 장소에 모일 때마다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해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은 물론이고 보통 신자들도 예수 믿는 다는 것 때문에 붙잡히면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던 무리 속에 끼어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 되고 이름을 '바울'로 바꾸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잡아죽이고 핍박하던 바로 그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박해하던 무리들은 점점 잠잠해지고 교회는 평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행6:9-8:4).
평안의 복을 받은 교회
오늘본문 사도행전 9장 31절 말씀에 보면 초대교회가 큰 시련을 겪고 난 뒤 평안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때때로 고난의 때'를 만나지만 그 고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박해가 많았음에도 모이기에 힘쓰고 눈물로 기도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의 마음'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신앙생활하는 교회까지 평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 모이는 일과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 하는 일,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신앙생활 잘 하다가 삶이 좀 힘들고 어려워지면 교회에 나오는 일을 중단합니다. 예배를 위해, 기도를 위해, 배움을 위해...모이는 일에 참석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권면하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무슨 큰 벼슬하는 것처럼 '안간다'고 큰소리칩니다. 누구를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까?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박해자들이 목숨을 위협하고 죽이려고 해도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귀중히 여겼던 그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번 째 복은 "평안"의 복입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요14:27). 예수 믿기 때문에 얻는 평안, 예수 믿기 때문에 갖는 그 평안함을 그 사람들이 가졌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어려울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그것이 참된 평안이요, 참된 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범사(凡事)'라는 말은 '모두 범(凡), 일 사(事)', 즉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라는 말은 '모든 주위 사정,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을 뜻하며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God's will)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순종해야 되는 것이므로 "감사"는 모든 삶에서 우리가 의무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고, 다른 가정과 자신의 가정을 비교하고, 다른 교회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비교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언론인이 프랑크 총독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프랑크 총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행복해 지는 방법은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해 지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남을 부러워하며 사십시오. 비교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금방 불행해질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에 대해 먼저 감사하고, 그 조건에서 새롭게 나아지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주시는 것이지, 지금 조건은 무조건 틀렸고 원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더 큰 선물을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②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훈련받지 못했다'는 뜻은 '감사가 무엇인지, 감사의 표시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 표현을 왜 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끊임없이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하나님과 이웃에게도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자녀들에게도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저도 많은 경우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표현하며 살아야 할 텐데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 사람이 있어서 제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생활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Augustin)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감사'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삶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치 못하면 평안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감사했다는 것, 평안했다는 것은 갑자기 환경이 달라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조건이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핍박이 점점 줄어가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감사로 인해 평안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힘이 들고 어려운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든든히 서가는 교회
초대교회가 박해를 견디고 나니 평안해졌고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신앙을 확립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미완성처럼 안타까워 보이던 초대교회가 이제 홀로 설 수 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선 믿음이 강하고 든든해졌습니다. 누가 흔들 수도 없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좀 말하고 뭐라고 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토라지고 입술 내밀고 불평하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굳게 선 사람이 아닙니다. 든든한 믿음의 터 위에 선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든든한 믿음의 터 위에,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과 소망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랬다 저랬다, 안 해, 관둬, 싫어'라고 하는 사람은 든든히 서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가 든든히 서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강건하게 자라기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든든하게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장비들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발버둥 치고 배워도 변해 가는 이 세대와 첨단장비를 당해낼 능력은 <없습니다>. 단정지어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뭐든지 다 잘 합니다."라고 말하는 분들, 여러분이 자동차에 대해 다 알고 운전하십니까? 고장나면 다 고칠 수 있습니까? 도로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고장나면 완벽하게 고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안다고 하지만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것만 할 뿐이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 있는 TV와 오디오의 기능을 다 알고 사용하십니까? 대부분 <채널을 바꾸고 전원을 켰다 끄는> 것만 하겠지요. 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빠르게 변화해나가는 이 세상을 우리는 따라갈 방법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기억력은 쇠퇴해지고 알았던 것도 잊어버립니다. 다들 아직 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여자 24세, 남자 27세가 되면 늙기 시작한다는데.. 더 열심히 배우고 운동하면 늙지 않고 젊어질 것 같지만 아닙니다.
저도 겉으로 보기에는 젊어보이지만, 잔글씨가 안보여서 어렵고... 제가 생각해도 제가 한심합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탄저병 때문에 조심하고 있는데... 영어 뉴스를 듣다가 하도 '탄저병'에 대해 나오기에 단어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Anthrax, 탄저(炭疽)라는 단어를 외우는데 며칠 걸렸습니다. 외우면 잊어 버리고, 또 잊어 버려서 단어를 외우는데 고생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람 이름도 한번 들으면 모릅니다. 금방 들었는데 뒤돌아서면 '금방 누구였더라'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로하는 척 하면서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기억력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그 뒤에 있던 다른 분이 "늙어가는 거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완벽할 것 같고, 다 잘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가 흔들림이 많고, 잊어 버리는 일이 많아지고 점점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기 때문에 변해 가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달라져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절대로 잊어 버리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에 어떤 사람이 참석했는지 각 지역별로 출석을 점검하고 출석부를 만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출석부를 보니 어떤 사람은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오지 못할 형편에 있어서 못 온 사람은 제외하고라도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왜 한번도 안왔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찬양대도 한번만 세우지 않고 매 예배때마다 두 번 씩 세웠습니다. 불평을 하면서 섰을 것입니다.
출석을 점검하고 찬양대를 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해서 은혜 받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든든해지기를 원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투덜대면서라도 참석했던 분들은 은혜 많이 받으 신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왜 그래요? 아시지요?"라는 강사님의 습관적인 말씀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얼굴이 왜 그래요?"라는 질문에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은혜 받는 사람은 어떤 말에도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깨달은 말씀과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회
초대 교회 성도들은 평안하여 든든히 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평안하고 든든해 진 후 주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주를 경외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초대교인들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으로, 천국백성으로, 구원받은 자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야,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잡아 죽이는 데도 불구하고 예배드리는 곳에 갔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생활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탄테러, 비행기 테러, 탄저균... 등은 무서워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성령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거기 에 성령의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진행하는 교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교회야말로 초대교회처럼 '진행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행한다"는 말은 '살아있다',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고 '보다 나아진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힘들고 어렵다는 말도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편안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진행하고 새로워지려면 힘든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 조용한 것, 할 일이 없는 것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서 연말에 새해 예산을 세우는데 한 직원이 짜증을 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데 너무 돈이 많이 들어요. 경제도 어려운데 헌금하는 돈이 너무 많습니다." 그때 다른 한 직원이 말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저는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자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먹을 것, 입을 것... 개까지 사주었으니까요. 그 아이가 대학에 가니까 돈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졸업반 때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후 그 녀석에게는 한 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신경 쓸 일도 없어지고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이 사람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책에서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았는 지 모릅니다. 할 일이 없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30년 목회를 하며 이란 잡지까지 발행했던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이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 죽은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늘 공간(space)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 죽은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소리로 늘 시끄럽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죽은 듯 조용하다.
- 살아 있는 교회는 활동이 많서아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쓰기에 빚을 내야한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 살아 있는 교회는 새 얼굴이 많아 이름을 기억하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 살아 있는 교회는 주는 자(giver)로 가득 차 있고,
죽어 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차 있다.
- 살아 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해 바쁘고,
죽어 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우리 기둥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살아 있는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하기 때문에 자꾸 모이라고 하고, 배우라 하고 일을 시키고 바쁘게 만드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수가 많아지는 교회
초대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 안에서 모이기에 힘쓰니까 나타난 결과가 무엇입니까?
수가 많아졌습니다.
초대교회는 수가 많아졌습니다.
-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 예배를 위해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 전도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요즘 교회성장을 말하는 학자나목회자들 중에
- 혹자는 숫자에 역점을 두고
- 혹자는 숫자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최근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가운데 "이제 교회는 모이는 숫자보다 '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 같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에 나가서 끊임없이 전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가 13개의 지교회를 세운 것처럼 사람들을 내보내서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질(質)을 말하기 전에 '수(數)'의 성장을 분명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 사도행전 1장 13-15절에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과
120명이 모여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 2장 41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이 3000명이라 했습니다.
• 4장 4절에는 믿는 자가 남자만 5000명이라고 했습니다.
• 21장 20절에는 믿는 자의 수가 수만에 이르렀다고 숫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질도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변해가는 질적인 성장도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오늘 오후에 선교회 찬양잔치가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사람과 실력 있는 사람들만 골라서 하면 안됩니다. 이 찬양잔치를 통해서 평상시에 모이지 못한 사람을 불러내고, 그동안 잘 사귀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서 사귀고, 잘 연습을 못해서 동작이 틀리고 노래가 틀려도 함께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선교회원들이 함께하는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찬양잔치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됨을 알리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각자 각자 형편과 사정에 따라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섯 달란트를 받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나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자기의 조건과 형편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 없습니다. 나의 형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받은 것 중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두렙돈을 드린 여인,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단지 그것밖에 없었던 그 여인이 모든 것을 드렸을 때 주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평안하고, 말씀위에서 든든히 서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범사에 늘어나고 일어나며 수가 많아지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배와 감과 사과를 가져오라, 쌀을 가져오라, 추수감사예물을 드려라 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표현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배를 몇 개 가져왔는 지, 추수감사예물을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편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추수감사절에 범사에 감사하여 평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모든 것이 늘어나는, 달라지는, 새로워지는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초대교회처럼, 우리 기둥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되게 하시고
기둥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를
든든히 세워 주시옵소서.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가운데
가정과 일터에 문제가 있어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평안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11월 4일 주일 낮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