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십 일 동안 2001-12-25 19:43:21 read : 1734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행 1: 1∼5
지난 금요일은 2001년 새해가 시작되고서 사십 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저는 금요합심기도회에서 성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십 일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새해가 되고서 사십 일에서 이틀 더 지난 42일째가 되는 날인데 여러분, 이 42일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성서에는 중요한 일들이 사십 일을 한 단위로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십 일, 열두 정탐꾼의 가나안 땅 사십 일 탐지, 모세가 시내산에 사십 일을 머물며 계명을 받은 일, 골리앗이 사십 일 동안 이스라엘을 조롱한 일, 엘리야가 사십 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난 일, 요나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친 일, 에스겔이 오른쪽으로 사십 일 누워 있었던 일, 예수님의 사십 일 금식기도 등입니다.
열두 정탐꾼이 사십 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한 것처럼 우리의 사십 일이 '앞으로 일년을 이렇게 살아야겠다' 정탐하며 설계하는 사십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설계하는 기간이 길고 진지할수록 좋은 건물이 지어집니다.
또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보낸 사십 일과 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24장 10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 그 아들들과 장로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사십 일이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까지 가는 것과 같은 사십 일,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기 위해서 걷는 사십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보이셨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부활 이후 사십 일 동안 이 세상에 계셨다고 알려주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교회는 부활절 후 사십 일이 되는 날을 주님의 승천절로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십 일 단위의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사십 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당신 앞으로 여섯 주간밖에 살지 못합니다"한다면 그 여섯 주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먹고 싶던 것 먹고 가고 싶던 곳 가려고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일들만 하고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말만 하고, 우선순위 일 번의 일들을 하면서 그 여섯 주간을 보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의 사십 일을 정말로 빈틈없고 하루는 물론 한 시간도 헛되게 쓰지 않으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십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승천하기까지 사십 일은 아주 압축된 사십 일이고 중요한 사십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하기 이전 공생애 3년과 맞먹거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십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에서 승천까지 예수님이 보낸 사십 일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사십 일, 그렇게 살기 위해서 힘써야 할 사십 일입니다. 이 사십 일 동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가 꼭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말씀들입니다.
이 사십 일 동안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또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신 우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 세상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두며 살아야합니다. 산상보훈 가운데 하나인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지?' 하는 것이 먼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으로 생각하고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성숙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수고는 헛된 수고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냐?' 이런 질문을 가지고 답을 구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또 '누가 다스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단정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말씀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내가 이제 얼마 안 있다가 승천을 할 텐데, 하늘나라에 올라갈 텐데 거기는 이런 곳이란다. 기화요초들이 있고 성(城)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고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거기는 밤이 없고 거기서는 천군과 천사가 나를 호위하고…" 이런 뜻이 아닙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나라가 민주주의의 나라라면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나라, 주권재신(主權在神)의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이 다스리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이 다스리면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원리인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나라가 되면 한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찬송가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한서 남궁 억(翰西 南宮檍)선생이 작사한 찬송입니다. 남궁 억 선생은 우리 모두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일꾼이 되자는 뜻으로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각해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 아닙니까?
남궁 억 선생은 자기가 살고 일하고있는 강원도 홍천(洪川) 보리울이 그런 곳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마을에 교회를 세웠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양반 출신이면서도 거름통을 지고 나가서 밭에 거름을 주면서 천민들에게 존댓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양반 사회에서 말썽이 일어나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면 하늘에 있는 나라, 우리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고 살라는 말씀을 저 하늘에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삶에 소홀히 여길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하늘 나라에 가서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불교의 용어에 피안주의(彼岸主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피안은 저쪽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리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세상을 말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쪽 언덕이라는 뜻으로 차안(此岸)이라고 부릅니다.
피안주의는 죽은 다음에 가는 세상을 사모하며 그쪽을 열심히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쪽 언덕에 있는 소가 저쪽 언덕을 바라보니 파래 보입니다. 거기는 풀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 쪽 언덕을 바라보며 '아, 저기 가면 풀을 마음놓고 실컷 뜯어먹을 수 있겠는데…' 하면서 풀 뜯어먹기를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굶주리고 여위고 죽게될 것입니다. 여기서 풀을 찾아 뜯어먹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숙어입니다만 이것을 차안지초(此岸之草)라고 합니다. '내가 있는 이 쪽 언덕의 풀로 만족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쪽 언덕에서 바라보면 이쪽 언덕의 풀이 더 파래 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에서 승천까지 사십 일 동안, 아주 중요한 이 기간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나라의 일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의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지난 사십 일을 그렇게 사셨습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에 거기서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 아니냐? 그 동안 갈릴리 주변에서 맴돌다가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그러니 여기에서 떠나지 말아라'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라면 예수님은 로마로 가서 로마를 떠나지 말고 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성전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고 교회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서양 격언에 "집의 벽에 자녀들의 지문이 많으면 경찰서 범죄인 카드에는 지문이 오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 벽에 손바닥 자국이 많이 찍혀 있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성도들의 발자국이 많으면 그는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른 그 어느 곳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값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 늘 머물 수는 없습니다. 가정이 있고 일터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성전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은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에 옮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린 기도를 이루며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린 찬양이 일상생활에서도 나와야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교회에서 들은 가르침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1절에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행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행하셨습니다.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 다음에 가르치셨습니다. 행동이 앞서는 가르침이 살아있는 가르침입니다. 군대에서 돌격할 때 지휘관이 뒤에서 "나를 따르라!"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교훈을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4절에 "모이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식사를 같이 했다는 뜻입니다. 「표준 새번역」을 보면 "사도들과 함께 모이사"라는 말은 "사도들과 함께 잡수시는 동안에"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식사는 일상적인 것 가운데서도 가장 일상적인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할 때 배가 고픈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가장 일상적인 것이 생활에서 빠져 버린다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됩니다. 아침 먹으면 오전 일과가 시작되고 점심 먹으면 오후가 시작되고 저녁 먹으면 휴식의 시간인데 식사가 빠지니까 생활이 리듬을 잃습니다.
예수님은 일상생활 속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을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일상생활 속에서 말씀의 교훈이 살아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난 40일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사셨습니까? 성전 중심의 삶을 사셨습니까?
예루살렘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전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 제일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자리잡기 바랍니다. 생활이 예배의 연장이 되기 바랍니다.
셋째,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강림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셨는데 그 성령이 오실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또한 다른 모든 구체적인 약속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까?
그 축복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양교회에게 부흥을 약속하셨습니다. 부흥할 줄로 믿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약속이 빨리 이뤄지고 늦게 이뤄지는 차이는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 강림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뒤에 있었습니다. 빨리 이뤄졌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생각으로 늦게 이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일종의 약속이지요. 이 약속이 이루어져서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갔다가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하는 것은 "주님 말씀하신 약속을 이뤄 주셨군요. 약속이 이뤄졌으니 저는 이 세상에서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혼자 된 후 팔십사 년이 지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역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다음 주일에 지방회가 열립니다. 어제 자격심사위원회가 저희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장로님들은 당회에서 장로로 선출된 다음에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매년 과정 심사를 통과하고, 또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장로 안수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를 시작한 서리 전도사들 역시 자격 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준회원으로 연회에 추천 받을 수 있습니다.
1년 반전에 교회를 개척 설립한 한 서리 전도사에게 자격심사위원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동안 목회를 해 보니 어떻습니까?" 그 서리 전도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에 목회를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고 교회가 금방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제자리걸음이고 최근에 두 가정이 이사를 가서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요즘 좀 실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심사위원 목사님이 충고했습니다. "그것이 목회의 과정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무엇을 해 보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주님께 맡기는 것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전도사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 넘어지지 말고 꾸준히 잘 하십시오."
목회를 30년 하신 심사위원 목사님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목회를 2년도 하지 않고 실망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20년을 했는데도 실망스러우면 그 때 말하십시오"
여러분, 약속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지난 사십 일이 약속의 성취를 믿으며 기다린 사십 일이었습니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예수님이 꼭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때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나타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승천하시기 전까지 사십 일 동안 예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곳에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부활하신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 되니까 말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이 입을 열어 한 마디 하시면 그 말씀은 아주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교회 중심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곡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 중요한 일들이 사십 일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사십 일을 한 단위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는 분들, 사십 일 금식기도를 하고 싶어하고.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회를 할 때도 사십 일 특별기도회를 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말씀 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2월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달입니다. 올해의 사순절은 2월 마지막 날인 28일에 시작되는데 사순절은 사십 일 동안 경건하게 살기 이해 힘쓰는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40일을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유익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 40일, 정확하게는 42일이었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욱 하나님 나라의 일에 힘쓰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