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01. 4.15
본문 요 16:28 - 33
내용
2000년 12월 19일 동아일보에는 십자가의 예수 체포에서 선고까지 위법 투성이라는 기획기사가 실렸습니다. 부제는『현행 형법으로 본 예수재판』이었습니다.
피고인 : 33세 예수, 고발자 : 가룟유다, 때 : 33년 4월, 공소사실 : 성전모독, 조세거부, 왕명사칭, 증거 : 없음, 적용법 : 로마, 검찰석 : 유대 제사장, 변호인 : 없음, 재판장: 로마총독 빌라도, 판결 : 사형(십자가형)
그 당시 예수의 재판은 억지혐의를 적용했으며 법적 절차를 무시했으며 백성들의 요구에 휘둘린 재판부의 무리한 판결로 점철됐다는 것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신학자들이 예수에 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유는 유대민족이 그동안 주권적인 사법 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재판을 따져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잘못된 재판을 다시 심리해달라
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법원은 소송기록이 없으며 신약에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라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예수, 적용할만한 법도 없어 아무 죄나 뒤집어 씌워 죽인 예수, 재심청구마저 기각 당한 예수.
사도행전 4:10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불교는 석가를 믿고 회교는 마호멧을 믿습니다. 회교도의 성지 메디니에 가면 마호멧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습니다. 북경에 가면 모택동의 시체가 있고 북한에 가면 김일성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는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회교도는 마호멧의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을 자랑합니다만 기독교는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달걀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그 달걀은 뚜껑을 열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음주일 교회에 나올 때 빈 달걀 속에 생명이 있는 물건을 한가지씩 넣어오라고 했습니다. 주
일이 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달걀 속에 새파란 나뭇잎, 개나리 꽃잎, 기어다니는 개미등 저마다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넣어가지고 왔습니다. 중병으로 앓고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계란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계란 뚜껑을 열자 아이들
은 "와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괜찮단다. 몸이 몹시 아팠던게로구나.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걸 보니 "라며 위로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는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잖아요 다시 살아나셨는데 빈 무덤에 뭘 넣겠어요 저는 제 생명을 달걀 속에 넣을거예요 "
10개월 후 그 아이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관 위에는 꽃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달걀이 놓여 있었습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라고 하셨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다음의 몇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1. 십자가와 부활을 믿느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구약시대 사건의 증인수는 2-3명이면 성립됐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15:5이하를 보면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는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증인이 500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13이하에서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 했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 과학자, 의사, 교수, 학자, 예술가, 군인 등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는가하면 지금도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믿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믿지만 그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도 믿고 부활도 믿지만 영생과 천국은 믿지 못하
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믿어야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전인적 신앙이라야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는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멘.
2.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느냐?
마태복음 28:20을 보면, 승천하시기 전에 주께서 제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9을 보면,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16에서는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일은 계속해 나가신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라고.
누가 나와 지금 동행하고 있습니까?
친구 형제 부모 부부 모두 다 우리들의 동행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동행자는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뿐입니까? 권력도 재산도 건강도 나를 떠납니다.
한때 정권의 핵심부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실세 한사람을 만났습니다.
"오랫만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네 그럭저럭 소일하고 있습니다 등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골프도 하고 그리곤 옛친구들 만나 차도 마시고....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차림새와 자조 섞인 대답 속에서 인생무상, 권력무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권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사업이 끝장나고 건강이 악화돼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가운데 인간이 가장 경이롭고 신비하고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신체구조자체가 신비하고 경이롭기 때문입니다.
심장의 경우 1년 동안 4천만번 뛰면서 6만마일 이상 피를 흘려보냅니다. 눈은 전자동 거리조정과 조리개가 있어서 사물을 측정하고 관찰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때문에 인간이 다른 피조물에 비해 위대하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동행
하시기 때문입니다. "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의 보도에 의하면 모유가 아기의 질병감염을 막아주며 두뇌발달에도 좋다고 합니다. 모유를 먹이면 성장 후 혈압이 정상적으로 유지돼 심장병을 예방해준다는 것입니다.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들 1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갓
난아기 때부터 분유를 먹고 자란 66명의 아이들은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보다 동맥혈압이 4포인트나 낮았다는 것입니다. 우유나 모유는 사람이 가공한 식품이고 모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식품입니다. 그 속엔 예방제 성장촉진제 치료제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유를 먹이려면 엄마가 아이와 함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유나 분유는 언니가 먹일 수도 있고 고모가 먹일 수도 있고 남이 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유는 반드시 엄마가 품에 안고 먹입니다. 따뜻한 엄마
의 체온을 느끼고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고 엄마의 살냄새를 맡으며 모유를 먹게 됩니다. 그때 사랑과 정과 생명의 교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서로 적용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품에 있을때 거기서 말씀을 듣고 그 손길
을 느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이 평안 주심을 믿느냐?
본문 33절을 보면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하셨습니다.
한국 씨름과 일본 씨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씨름은 삿바를 잡고 온갖 기술을 동원해 상대를 넘어뜨려야 합니다. 삼판 양승 제도입니다. 세 번 싸워 두 번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씨름판도 평지에 평면으로 만들고 모래를 깔아 만듭니다. 씨름선수들의 복장이나 차림새도 단순합니다. 그러나 일본씨름판은 위치가 높습니다. 단판에 결판이 납니다. 한번 밀려서 밖으로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머리를 요상하게 꾸미고 소금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쳐 댑니다. 한번 떨어지면 그것은 끝납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긴 사람은 함성을 지르고 소리를 지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씨름뿐이겠습니까? 모든 경기가 다 그렇고 인생이 그렇고 신앙이 그렇습니다. 이겨야 기쁘고 소리 지를 수 있고 노래 부를 수 있고 그리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책을 쓴 클론 로저스박사는 책의 결론을 이렇게 썼습니다.
"유대인들의 최후요새는 무너졌다. 끔직한 전쟁은 끝이났다. 유대인들은 20세기에 그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나라를 1948년에 세우기까지 땅 없는 민족으로 살았다 "고
전쟁이 지고 인생이 지고 영적 전쟁에 지면 평안이 없고 땅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7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니 "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승리로 주신 위대한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모두 함께 평안을 노래하십시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
"행복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을 네게 주노라 "
"승리를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승리 승리 승리 승리를 네게 주노라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