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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나 됨을 증거하는 성령
    2001-12-13 20:47:42   read : 1754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6월 3일
    롬 8:12-17









    내가 작아질 때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이 커 보인다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무역센터 건물에 간 적이 있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52층 꼭대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함께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 가운데 아빠와 함께 있는 너덧 살 정도 되는 아이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빠! 건물이 자꾸만 더 커지네! 그런데 그건 왜 그래? 아빠는 안 그래?" 하니까, "응 그건 네가 작아지니까 건물이 커지는 거야." 라고 말을 하더군요. 저 같으면 이렇게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작은 것도 얼마든지 커질 수 있는 거야! 내가 작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커질 수 있고 얼마든지 큰 힘을 가질 수 있단다."




    내가 커 보이면 세상은 작아 보이고 내가 작아질 때 세상은 커 보이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권능이 커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내가 작아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요, 죄인이고 허물 많은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정권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 안에 있으면 얼마든지 소중한 존재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든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내적인 생명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며(요 1:18), 아들 하나님은 보이도록 나타난 분이시고(요 1:14-18)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 속에서 역사하는 분이십니다(요 16:8:, 고전 6:19-20). 성령은 거룩한 영(Holy Spirit)으로서 모든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내적인 생명"입니다. 즉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 교회 교인들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 바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 중 10%는 죽었고, 80%는 잠자고 있고, 10%는 깨어있다..." 이 말을 성령과 연결하여 해석한다면 "현대 교인들 중 성령 충만함을 받은 이가 10%요,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가 10%요, 성령을 알고 체험하고 받았지만 점차 소멸해 가고 있는 이가 80%"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대부분 조직의 핵심 멤버는 조직원의 10% 정도입니다. 10%의 사람들이 그 조직을 실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 10%가 그 조직을 지탱해 가는 최소한의 멤버입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에 무관심한 사람이 전혀 없지가 않습니다. 이 10%는 방관자로 그 조직에 전혀 무관심합니다. 그냥 이름만 걸고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조직이 발전하느냐 쇠퇴하느냐는 나머지 80%에 달려 있습니다. 이들은 유동적인 사람들로 중간 지대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얼마간의 의무는 행하지만 역시 소극적인 자들인데 그래도 소속감은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조직의 성패 유무는 바로 이 80%에 해당하는 자들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달려 있고 그 조직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에도 이와 같은 법칙이 적용됩니다.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시작은 12명의 제자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들 12명의 핵심 멤버들과 더불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핵심멤버도 실은 한 사람의 소중한 구원받은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던질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까? (계3;20, 요1;12)


    둘째는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행19;2, 딛3;5)


    셋째는 당신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엡5;18)




    영국의 설교자 스펄전은 "하늘의 보고를 여는 문"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만약 우리의 믿음이 성령 안에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며, 우리의 본성과 삶이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가짜이고, 우리의 고백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화 되는 것은 절대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화 되지 않도록 하는 믿음은 부패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 중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만약 성령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여전히 전통의 노예, 죄의 노예, 율법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을 꼭 해야 할 몇 종류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1. 늘 울적한 얼굴과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고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위로자 되시는 성령님이 계시는데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지 못하고 어찌 우울해 할 수 있습니까?




    2. 교회의 일원이지만 매우 기분이 언짢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것이든지 반드시 흠을 잡는 타고난 불평장이입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불행해 하며, 모든 사람을 성가시게하고 귀찮게 하는 그대여! 그대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3. 또 다른 사람은 갑자기 화를 내고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끄집어냅니다. 그 후에 그는 그 일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를 치료하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격정을 쏟아 붓고 나중에 냉정을 되찾았을 때, 그 일에 대하여 후회하는 그대여! 그대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4. 또한 세상 즐거움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떠들어 댈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경건의 즐거움은 무시합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에 빠져 있는 그대여! " 당신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5. 돈을 모으기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부유해 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탐욕스런 돈을 한참 모으고 있는 그대여! "당신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찬양하면서 아침에 종달새처럼 높이 날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아버지의 뜻을 순종합니다. 거룩한 땅의 꿀을 담고 있는 그들의 매일의 대화는 감미롭습니다. 그들과 십분만 같이 있어도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는 그들을 봅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




    여러분! 정체감에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누굽니까? 여러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 됨의 정체, 사람됨의 정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를 잃어버릴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뭡니까? 도대체 뭘 보고 인정하라는 겁니까? 머리를 보나 팔을 보나 행동을 보나 생각하는 걸 보나 하나도 하나님 닮은 데가 없어요. 하는 짓들이 믿음이란 조금도 없어요. 이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도대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교회에 출석은 제법 잘 하는데 교회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시각이나 비판하고 비난하는 논조로 가득한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분들은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증거하지는 못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해 주어야 됩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실적을, 성과를, 열매를 보여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




    오늘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8장 9절에 명백하게 말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 두 가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 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철학자 루소는 인간을 이같이 개탄하며 탄식 조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보통 인간들이 십대는 과자에 움직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십대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인다. 이 오십대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 명예에 욕심을 가지는 거예요. 정말 시원치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인생 다 망쳐버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이 루소가 개탄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이요,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그 얼굴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3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은 많이 고민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짓는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신을 객관시하고 자기 정체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오직 성령이 나를 자유케 하시는 거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죄와 율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합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요,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신비롭게 영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로 인해서 성령 안에서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게 될 때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란 말입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임종 직전에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생동안 지은 죄를 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자마자 옆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때도 내가 너를 사랑했다." 또 회개하려고 하면 또 "그 때도 내가 너를 사랑했단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음성을 들려주시더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위에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끌려가고 있을 때, 그 인도함을 받을 때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 몸은 밝은 이성의 지배를 받고 내 이성은 영의 지배를 받고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함을 받을 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존 번연이 지은 유명한 "천로 역정"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하늘 나라를 향해서 멀리 여행을 떠나는데, 그 어느 곳에 가서 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방에서 누가 청소를 하는데 그저 비로다가 먼지를 열심히 쓰니까 그 먼지가 일어나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되었어요. 쓸려고 하면 할수록 더 방이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았어요. 이제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것이 율법이니라.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가 많아지고 점점 더 어지러워지느니라." 바로 옆방을 들어가 보니까 그 옆방에는 먼지가 똑같이 많은데 쫙 다 물을 뿌리고 그리고 청소를 하니까 깨끗하게 청소가 되는 겁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성령이니라. 이건 은혜의 역사니라."




    여러분 내 노력으로 바로 해 보려고, 뭐 큰 일 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애써보아도 볼수록 점점 더 먼지만 나고 점점 더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성령, 역사 안에서만 깨끗하게 모든 율법과 죄와 허무함과 불의함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오늘 성경은 분명히 양자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친아들이 아니고 잘못된 자녀이지만 이제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양자의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자유의 영이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양자라고 하면 전에 내가 속했던 그 가정의 모든 문제와 내가 무관합니다. 신분과도 무관합니다. 옛날에 내가 종의 노예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이제 오늘 내가 귀족에게 양자 되면 귀족입니다. 그 날부터 귀족입니다. 이것이 양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옛 집의 모든 책임과 또 그 부채로부터 무관합니다. 옛날에는 부채는 죽을 때까지 꼭 갚아야 되었습니다. 못 갚으면 자식이 갚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빚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 본 집이 지금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서 꼭 노예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 누군가가 와서 이 사람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데려 가면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우리는 다 같이 빚진 자" 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모든 옛 것, 죄의 빚으로부터 자유했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이제 양자 된 이 집의 모든 신분을 내가 그대로 일시에 물려받는 겁니다. 유산도 물려받고 신분도 물려받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원래 노예의 자식인데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어서 대 로마제국의 왕이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양자가 되면 바로 그 순간 이 집의 모든 권리를 내가 물려받고 뿐만 아니라 그 신분과 명예까지 다 물려받는 것입니다. 이 것이 양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양자 삼을 때, 양자 해놓고 키워가다가 쓸만하면 호적에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먼저 호적에 올려놓고 양자를 만든 다음에 그 다음에 양자로 키워 가는 것이 양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나, 우리의 수준이나 우리의 어떤 도덕적 수준 묻지 않습니다. 자격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먼저 양자로 삼은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키우시고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기는 했지만, 그저 어떤 사람은 무당 끼가 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점보는 끼가 좀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 못된 미신을 섬기던 끼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가끔 보면 한심한 짓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양자됨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거기에 내 정체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후견인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후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었습니다. 물에는 수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면 파열돼서 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물 속 깊이 탐색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튼튼한 강철로 배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다 깊은 속에 물고기는 삽니다. 그 깊은 곳, 수압이 높은 그 속에도 물고기는 살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면, 그 물의 수압과 물고기의 자기 몸 안에 있는 압력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의 후견인이 됨으로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정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 이라고 하는 소설에 보면 코제트라고 하는 고아 소녀가 나오는데 불쌍한 고아입니다. 지금은 양부모가 돌보아주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업신여김을 받고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정말로 겨우겨우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불쌍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장발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자가 저의 후견인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그 아이는 그 때부터 신바람이 납니다. 거침없이 활발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후견인이요, 그리스도가 내 후견인이요, 성령이 이것을 증거해 주실 때 신바람 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의 나 됨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오직 그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병들었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실패했을 때도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음을 성령이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크신 성령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 받을 수 있을 때 모든 사건에서 모든 환경에서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형성이 되었고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서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신앙의 시작과 하나님 사역에의 참여는 모두가 성령의 지도하심과 주관하심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에도 성령의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을 믿고 기원하면서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에 매진하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히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공동체적 사명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요일5:6-7)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드시고(행1:8) 교회로 하여금 증인 공동체가 되도록 요청하십니다(행13:1-3).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 부어주심을 힘입어 그에게 순종하여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더욱 신속하고 용기 있게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결코 우리를 종교적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거나 비정상적 삶을 사는 신비주의자가 되게 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부르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거룩의 영이신 그분께 대한 순종과 헌신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심으로 이룩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온 교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교통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사고 차량이 통행을 막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통이 정체되는 더 큰 이유는 그 교통사고 난 것을 구경하는 다른 차들 때문에 더 많은 지체가 유발된다는 것입니다. 그 구경꾼들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구경꾼들은 자신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단지 구경만 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경하기 위해 기웃거리는 저들로 인해 그곳으로 급히 달려오는 구급차를 오지 못하게 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을 저들은 잊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책망하셨을까요? 진정한 본이 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주역은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된 삶을 사는 새 시대의 사명자들이 바로 120 문도였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은 120 문도는 그들의 의식이 변화됩니다. 삶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뀝니다. 자기 것을 내어놓습니다. 필요에 따라 나눔을 갖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성령께 자신들을 비워드리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를 비운다는 말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협력한다는 말입니다. 반목과 적대가 아니라 소통과 일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응집된 그 힘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춥니다. 그럴 때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어 복음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함으로 주님의 은총을 덧입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여,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새롭게 뜨게 해 주십시오. 문명의 전환점에서 우리가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해 주십시오. 낡은 사고의 틀과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틀을 갖추게 해 주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시여, 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십시오. 정복하거나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보살피고 섬기는 힘을 갖추게 도와 주십시오. 온 생명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으로 지탱하게 이끌어 주십시오.




    지혜의 영이시여, 오셔서, 우리를 진리로 세워 주십시오. 우리의 오만과 편견으로 찌들은 언어를 버리고, 오직 성령이 시키는 말로 사랑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새로운 언어사건을 엮어 나가게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온 생명으로, 온 삶으로 부활의 능력을 역사의 한 가운데서 증언하게 도와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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