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10 :12 / 묵은 밭 2001-12-14 10:09:11 read : 1734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0:12)
1979년 가을에 위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네 가지 마음 밭 즉, 길가 밭, 돌짝 밭, 가시 밭, 그리고 옥토에 관한 설교를 했더니 한 자매님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무슨 밭입니까?'하고 물으니 '묵은 밭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묵은 밭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묵은 밭에 관해 찾아보았더니 호세아서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묵은 밭'이것은 자기만 묵어서 열매맺지 못하는 거시 아니라 그 이웃의 밭까지 묵은 밭으로 만듭니다. 해마다 내몽골과 서안 지방에서 엄청난 양의 묵은 밭이 생겨남에 따라 땅이 점점 사막화되어 가고, 그 결과 우리들은 해마다 황사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로 묵은 밭 때문입니다. 해마다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예수 믿는데 있어서도 한 사람이 묵으면 그 사람만 묵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묵혀버립니다.
제가 1965년, 예수님을 처음 영접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해서 성경을 읽는데 밥 먹는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당시에는 기도원에 간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끼니를 거르고 성경을 읽었더니 가족들이 불편해 했습니다. 그래서 벽장 속에 들어가 불을 켜놓고 창세기 읽고 기도하고, 출애굽기 읽고 기도하고, 그렇게 민수기, 신명기, 하나하나 읽어 가면서 기도하여 5일만에 신구약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그 때는 너무나 기뻐서 입에 찬송이 끊이질 않았었고, 걸어가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전도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그 감격과 기쁨을 나누었더니 집사님과 장로님들께서 '예수 처음 믿으면 다 그러는 법이여!'하셨습니다. 다들 그게 법이라는데 어떡합니까? 그런데도 일년동안 말씀을 볼 때마다 주께서 주시는 감격, 기도할 때마다 주시는 확신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1966년, 최초로 몇 사람과 함께 성경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함께 나눈 사람이 하용조와 김지철이라는 재수생이었습니다. 현재 김지철은 장로회신학교에서 유명한 신학 교수입니다. 입시에 합격하지 못해서 초라해져 있을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똑똑해서 훌륭한 대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저는 그럴 자격이 못되어 재수생 몇 사람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었습니다. 재수의 무거운 짐이 말씀으로 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게 주신 기쁨과 감격이 그들에게도 똑같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년 전에 다 그러는 법이라고 말씀하신 집사님과 장로님들에게 가서 그 은혜가 제게 임한 것뿐만 아니라 일년동안 꺼지지 않았고, 함께 한 사람들도 깊은 은혜 속에 산다고 말씀드리니까 '에이, 결혼도 안 했고 사회생활도 안 하는 젊은이들은 옳기만 하면 은혜 받는 법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그러는 법만 있고 은혜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되지 않으려 했지만 주께서 멱살을 잡아 신학교로 가게 하셨고 목사가 됐습니다. 저는 그 과정 가운데서 대학생들에게 평생 복음을 전하리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1975년에 남서울 교회를 개척했고, 성경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나 부목사도 해 본 경험이 없이 학생들을 전도하다 목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무얼 말하는가에 중심을 두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공부 했습니다. 당시 반포아파트에서 여자 분들과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 사람들 진짜 변했더라.'라는 소문이 반포를 한 번 휩쓸었습니다. 그랬더니 반포 불교협회 보살회에서 저보고 성경설법을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제가 준비해서 일곱 번 정도 성경설법을 했는데, 네 번쯤 하니까 그 분들이 저희 교회에 등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남서울 교회에는 전력이 보살이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옳은 것을 추구하지만 굉장히 강한 성격이어서 옆에 가는 것도 참 두려운 분이 완전히 바뀌고 나니 그 강한 면이 주님 앞에 멋지게 사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묵은 밭들이 '그러는 법이여.'라고 하셔서 저는 오랜 기간동안 교회에는 이러한 축복이 없는 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묵은 밭이 되지 않을까요? 묵은 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바른 신앙의 목표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얼마만큼 왔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게 되고, 또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르게 됩니다. 정확한 목표설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들 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살라는 목표를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 속에 이루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이라면 이 때에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늘 그분과 교제한다면 그분을 닮아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교회 목사님들이 지금 여러 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교 계십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는 그 목사님이 저를 닮았다고 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 목사님들을 보며 어쩌면 목사님 설교 스타일이 홍목사님과 그렇게 닮았느냐고 한답니다. 형제들끼리 우리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보는 즉시 '참 많이 닮았구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있었기 때문에 닮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많이 생각하고 주님을 많이 묵상하면 주님을 닮아갑니다.
이렇게 주님을 닮아 가는 것에 관해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1932-1996)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주님을 닮아 가면 외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고독함으로 바뀝니다. 저는 외로움은 타는 것이고, 고독은 씹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 외롭습니다. 홀로 입니다. 그 주변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잠시 있지만 그것들이 떠나고 나면 혼자 외로워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곁에 있어도 그립습니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함께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는 게 많은 사람의 얘기입니다. 어쩌면 한국사람은 그렇게 무드도 없는지, 어떤 남편이 칠 년 만에 외국에서 돌아오는데 아내가 보자마자 잽싸게 뛰어갔습니다. 그런 다음에, 남편에게서 얼른 짐을 받더랍니다.
인생은 참 외로운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고독이란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이 외로움에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긍휼과 자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내 자신의 외로움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갖는 고독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을 닮아 가면, 접근을 불허했던 인생이 홀로 서서 긍휼과 자비의 눈으로 인생을 보기 시작하며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삶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며, 자신의 영토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손님을 환대하므로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와의 만남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냅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갑니다. 환대하는 생애로 바뀝니다. 우리 주님을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심지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용기 백배해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은 죄인이 주님 앞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고독하셨습니다. 홀로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긍휼과 자비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홀로 외로움을 넘어 고독으로 서면 사람을 향해서는 내 인생이 적대감에서 환대로 바뀝니다.
셋째로 주님을 닮아 가면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많은 환상을 갖고, 인생을 살면서 근심, 걱정, 염려의 환상과 야망이라는 환상에 붙잡혀 삽니다. 그랬던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는 생애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내 야망이나 필요,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그 뜻을 찾아내며 가는 삶, 그분과 대화하는 삶으로 바뀌어 갑니다. 목표를 갖게 됩니다.
아직 외로운 인생입니까? 아니면 홀로 설 수 있는 고독의 인생입니까?
주변을 향해서 매일 긴장하고 미워하는 적대감을 가진 인생입니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와서 기댈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고 휴식을 얻을 수 있는 환대의 사람입니까?
모든 세상의 근심과 걱정, 염려를 다 지면서 그 많은 상상 속에 헤메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모든 인생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께서 내 생애를 향해서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삶을 사십니까? 물론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다는 것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의 중요한 세 부분을 잘 가르쳐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설정이 잘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법에 메여 있어 교회 행사나 교회에서의 몇 가지 습관만 잘 행하면 믿음이 좋다는 얘기를 들으므로 그것으로 끝인 줄 압니다. 속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서 우리들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묵은 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묵어지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주신 은사와 환경, 영향력을 땅에 묻어둔 채 삽니다. 주변을 향해서는 쓰지 않고 기껏 나만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성경은 그런 인생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르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 게으른 사람, 게으름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하는 게으르기에 딱 좋은 성품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 주셨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 25:26)라는 말씀에 벌떡 일어납니다. 주께서 주신 그 귀한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최선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날마다 갈고 닦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균형입니다. 땅에 주어지는 비료의 불균형이 그 땅을 묵혀 버립니다. 뿌리기만 하면 세 배, 네 배나 수확량이 늘어나는 화학비료가 나오자 이제까지 유기질 비료만 쓰던 한국의 농부들이 손쉬운 화학비료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요소나 질소비료를 주로 줘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가리와 인산의 부족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에는 균형이 없었습니다. 물과 햇빛, 질소와 인산, 가리 이 다섯 가지가 항상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얼른 열매만 맺게 하기 위해서 금비(金肥)를 주었다가 땅이 묵어버렸습니다. 반대로 옥토에도 비료를 주지 않으면 처음에는 상당히 열매를 맺지만 나중에는 그 수확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기도원을 세우기 위해 사과 과수원을 샀습니다. 그 분이 제게 와서 자랑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거기에 기도원을 세우느라 바빠서 올해는 비료도 안 줬으니 열매도 안 열리겠다 했는데 아, 글쎄 열매가 작년이랑 똑같이 소담스럽게 열렸어요.' 다음 해에도 열매는 열리지만 해가 갈수록 수확량이 적어집니다. 삼 년 정도 비료를 주지 않으면 돌사과 밖에 수확할 수 없게 됩니다. 그 후에 그 땅을 다시 원상복구 하려면 십 년을 노력한다 해도 원래의 옥토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균형 있는 비료의 공급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말씀과 기도, 전도, 봉사와 교제, 이 다섯 가지 영양소가 늘 있어야 합니다. 그 영양소를 베드로 전서 전체를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입니다. 베드로 전서 1장 23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 다음 2장 2절입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이 말씀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말씀이 곧 신령한 젖으로 우리의 영양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내게 날마다 주어지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정신을 차려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깨어있지 않으면 기도가 안 됩니다. 잠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는 기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면 압니다.
세 번째로 '전도'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무얼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전도는 성령의 인도 받아서 아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준비하는가?' 아닙니다. 준비하고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폭발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넷째로 '봉사'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와 은혜는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나를 위해서만 쓰는 것은 독을 쌓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과 은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고 그분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멸시받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만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타락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자신만을 위해서 쓸 때 교만해집니다.
다섯 번째는 '교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 4:8-9)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인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누구에게 부족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깊이 교제하면서 서로의 잘못들이 교정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이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원을 이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맛보기도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시 133:1-3) 형제가 아름답게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 영생의 이 땅에서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다섯 가지가 교회의 건축으로 위축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다섯 가지는 계속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개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면 한동안 모든 예산을 예배당 짓는 데에만 집중적으로 편성합니다. 그 때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 집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지어 놓고 갈라지는데, 한동안 그 마음이 묵은 밭에서 황폐화 된 결과인 것 같습니다.
남서울 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책임자로 계셨던 분께서 교회에 재정이 없으니 선교위원회에서 남는 재정을 좀 빌리자고 했습니다. 그랬다가 그분이 현지에서 돈 빌릴 데도 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선교사들에게 써야 할 것인데 그걸 어떻게 빌리려고 하느냐고 얼마나 꾸중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한참 후에 오시더니 '홍목사님, 제가 평생 이렇게 무안 당하고 꾸중들은 적은 없지만 참 기분이 좋습니다. 바르고 옳은 일이니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밀알학교 체육관이 지어질 때에도 교육과 구제가, 장학과 선교가 끊어지면 안됩니다. 아름답게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가능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엄청난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이 약속을 주께서 내게 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20-21) 구하는 것을 넘치게 주신다고 했는데 네가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밀알학교 체육관이 지어지면서 우리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과 산업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건물은 아름답게 지어질 것입니다. 건축을 돕는 주락경 선생님은 중국의 경덕진 대학에서 도예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세계에서 이분보다 도예에 기교가 뛰어난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선생님의 작품보다 더 걸작으로 여러분의 생애가 지어져 가기를,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걸작의 인생을 드리는 놀라운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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