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중에 부자! 2001-12-14 11:02:28 read : 1526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말씀 : 디모데전서 6장 17-19절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있습니다. 너무도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말씀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살려 믿음으로 살아보자고 제정한 주일이 선한 사마리아인 주일입니다. 열 번째 맞이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주일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 비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가던 중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겼고 심하게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 옆을 여러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 중에는 제사장도 있었고 레위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그를 보살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시당하고 천하게 여김을 당하는 한 사마리아인이 쓰러져 있는 그를 도와 죽을 자리에서 다시 살게 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이웃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는 과정에 나타난 이웃 사랑의 정신을 말씀에서 조목조목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누가복음 10장 33절 말씀에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라고 하여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잘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만 바라보려 하지말고 고난 당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33절 마지막 부분에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라고 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기는 보았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요, 다 제가 타고난 운명이지 내가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그의 고통과 고난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동정하였고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고난 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외면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가슴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34절에 보면 "가까이 가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불쌍하다 그런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에게는 행동할 수 있는 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불쌍하다는 생각만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뜨거운 가슴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발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가가야 합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가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34절에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라고 하여 그의 것을 희생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습니다. 진실로 남을 섬길 수 있는 손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로 다가 갈 수 있는 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손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 사랑의 정신입니다. 부흥 전도자 무디는 말하기를 '많은 사랑은 혀끝에 있고 참 사랑은 손끝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34절 하 반절에서 35절에 보면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라는 말씀에 나타난 철저한 돌봄입니다. 그가 다시 일어나 제 인생을 살 수 있기까지 철저하게 보살펴주는 넉넉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한두 번 돌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철저히 돌보는 사마리아인의 정신은 두고두고 생각하고 배우고 닮아야 이웃 사랑의 교과서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고난 당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마태복음 12장 7절에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이상으로 이웃을 돌보고 사랑함이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을 보면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너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라고 하여 초대 사도들도 구제와 이웃 사랑에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로 나서는 바울에게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부탁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 유대인을 전도하겠거니와 너희는 이방인들을 전도하라 대신 한가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가난한 자를 도와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의 부탁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하여 베드로가 바울에게 부탁하기 전에 바울도 그 일을 힘써 지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것이 자기에게만 머문 것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는 구제사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9장 9절에서는 "기록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여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시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열 번째 맞이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주일을 기하여 이웃의 아픔을 생각하고 베푸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자신의 삶에도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더욱 베풀고 나눌 수 있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에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여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부자 중에 부자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부자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성경은 진정한 부자, 부자 중에 부자는 오히려 선한 사업에 부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 중 첫째는 재물을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교만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마치 재물을 큰 성곽처럼 생각하고 도도하거나 거만하게 굽니다. 분명 잠언 18장 11절에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라고 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더 겸손하게 주신 재물을 감사하며 재물이 많을 수록 하나님이 크게 맡기셨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잠언 14장 21절에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가진 것이 있다고 없는 자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김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말고 더욱 돕고 나누어 복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부자 중에 부자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여 한시적이고 쉽게 사라지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풍성케 하시고 영원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재물을 영원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이하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여 세상에 쌓아논 재물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하고 보장된 하늘에 쌓아 놓으라고 충고하셨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길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 부자 중에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부자 중에 부자, 진짜 부자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부자면 하나님께 꾸어주기 까지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라고 하여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5장 10절을 보면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제를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후하게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여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은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구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염려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쓰고 남아서 구제할 만큼 부유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첫째는 마음의 여유들이 없어서 그렇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활이나 간신히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구제하게 되면 당장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푸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제는 오직 넉넉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데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후히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물질로 구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노벨이라는 사람이 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동시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시인데 시 제목이 [조금(A little)]이라는 시입니다. 많은 것이 아니고 작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것이 의미 있게 사용된다면 풍성하고 넉넉함을 보여주는 시라 생각합니다. 그 시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음식 맛이 달게 된다네.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내 몸이 깨끗하게 된다네.
햇볕을 조금 가지고도 새싹이 자라난다네.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 나는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네.
조금 남은 양초, 하늘하늘 춤추는 불꽃 이 불꽃은 여전히 어둠을 밝힌다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 또는 조금만이라도 나누고 베푼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베풀고 자눔으로 더 넉넉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베푸는 사람이 부자 중에 부자가 되는 이유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베푸는 자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갚아 주셔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이 됨으로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때에 그 넉넉함이 우리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21장 13절에서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고 잠언 28장 2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하셨으며 잠언 11장 24절에서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1장 24-25절에서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베풀고 나누어 더욱 풍성하고 영원한 여유와 누림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화가가 복음에 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은 폭풍이 치는 바다에서 침몰한 배에서 선원 한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두 손으로 바위를 움켜잡고 있는 그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참으로 생동감이 있고 세상 풍파 속에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를 때 산 소망이 주어진다는 뜻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가는 그림을 보다가 다시 한번 더 붓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으로는 복음에 대한 충분한 표현이 완전하게 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붓을 들고 다시 그림을 그렸습니다. 두 개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얼핏 보기에는 똑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군데 틀린 곳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린 그림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 바위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있는 모습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린 그림에는 한 손은 바위를 움켜잡고 다른 한 손은 물에 빠져 죽어 가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신 의미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나누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얻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구원 얻기를 위해 전도하며 도우며 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신앙이요 부자 중에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이 사마리아인의 정신으로 살아 부자 중에 부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