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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와 나오미!
    2001-12-14 11:04:06   read : 148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말씀 : 룻기 1장 15절-22절

    오래 전 한 가정에서 심방을 요청하였습니다.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신자의 가정이었습니다.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생각하며 성경을 보고 있는데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룻기서 1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1장을 읽어보았습니다. 나오미라는 여자가 흉년이 든 이스라엘을 떠나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하게 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달리 다 잃고 며느리 하나를 데리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새 신자에게 도움을 줄 말씀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씀을 전하려고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룻기 1장이 강하게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를 마친 후에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목사님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왜 그러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자신은 처녀 시절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며 헌신하며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여 남편 따라 등산, 낚시하러 다니면서 세상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 주일 범하고 교회 출석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병들어 죽고 두 아들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막상 전에 나가던 교회를 다니기가 부끄러워 이사하여 교회를 옮겨 등록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목사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이런 말씀을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안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아신 것이라는 대답을 하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그 사랑을 저버리고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는 주셔도 깨닫지 못할 때 무서운 진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과 진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심판과 용서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분문에 보면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흉년 때문에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는 한 가정이 나옵니다. 룻기서 1장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떠나 우상숭배의 나라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룻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사사시대입니다. 특별히 사사시대 초기로서 이스라엘이 모압과 잠시 평화스럽게 지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이스라엘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이 들었던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오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이 다 타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든 또 하나 이유는 미디안의 침략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온 나라가 힘들어졌고 토지가 황폐해졌던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엘리멜렉은 고향 이스라엘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민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이스라엘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이민을 왔는데 모압으로 이민 온 이후 엘리멜렉의 생활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어려움과 환난이 계속 찾아 왔습니다. 1장 3절 말씀에 보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라고 하여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모압으로 왔는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어 5절 말씀에 보면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하여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습니다. 엘리멜렉, 나오미, 말론, 기룐 이렇게 4식구가 흉년을 피하여 살길을 찾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 모압으로 왔는데 3명이 죽고 나오미만 남게 되었습니다. 정말 나오미의 인생은 비극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먹고 살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어서라고는 하나 나오미의 가족은 먹고 살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떠날 때에는 풍족하게 떠났으나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핑계였습니다. 살만하고 견딜만 한데도 자신의 쾌락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나오미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데 고향사람들이 나오미를 보고 놀라서 19절에서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고향 이스라엘 베들레헴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는데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이 정말 나오미냐?"하고 수군거리며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향을 떠날 때는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떠났었는데 10년 만에 돌아온 모습이 남편도 없고 아들들도 잃고 실패자로서 초라하게 돌아 온 것입니다. 고향사람들의 이런 걱정스러운 질문에 나오미 자신도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인정하면서 20절 말씀에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희락' 이었습니다. 10년 전 그가 하나님이 계신 베들레헴 땅에서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고 있을 때 그는 기쁨의 삶을, 희락의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오미라는 이름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삶은 고난이었고 아픔이었으며 또한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하였습니다. 마라라는 이름의 뜻은 '괴로움', '쓰라림', '고통' 이런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제는 내게는 괴로움과 쓰라림과 고통과 눈물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찌 나오미라 부를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적당한 이름은 마라가 어울리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의 삶은 어떻하십니까? 그냥 나오미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기쁨과 희락이 있는 삶입니까 아니면 괴로움 쓰라림 실패와 아픔만이 있는 마라의 인생입니까? 말씀을 들으시면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고 모압으로 갔다가 실패한 마라와 같은 삶이 변하여 다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함으로 나오미와 같은 삶으로 바뀌는 은혜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고통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신앙의 땅 이스라엘을 떠나 우상숭배의 나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 보았지만 우리 가정에는 흉년만 있었고 어려움이 떠날 날이 없었다'라고 생각하여 신앙을 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기 위하여 신앙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나오미의 불행은 베들레헴을 떠남과 동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을 떠남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인간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찬송가 440장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괴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멀리 멀리 가면 처량하고 곤고하며 슬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TV를 통해 동물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멧돼지 새끼들이 엄마 품안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엄마 품이 답답하니까 자꾸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 때마다 엄마는 새끼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아당겼습니다. 그래도 새끼들은 틈만 나면 엄마 품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하더니 결국 엄마 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엄마 품을 너무 멀리 나자 새끼에게는 위험이 닥쳤습니다. 품을 벗어나기를 기다렸던 맹수가 달려들어 물어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요, 은혜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떠났으니 결국 그 영혼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민수기 32장 15절에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라고 하여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에서는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고 하여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도 솔로몬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솔로몬은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13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하여 여호와를 떠나게 되면 수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생수의 근원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는 행복의 근원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성공의 근원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진정한 복과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교훈은 나오미 가족이 베들레헴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게 된 것은 흉년 때문이었습니다. 흉년은 우리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 더 무서운 흉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적인 흉년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흉년은 세상 흉년이 아니라 말씀의 흉년이고 기도의 흉년이고 찬양의 흉년이고 예배의 흉년입니다. 비가 적어지고 물이 적어지면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이 적어지고 기도가 적어지고 예배가 적어지고 찬양이 적어지면 신앙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서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웨첬습니다. 물이 없는 것, 양식이 없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에게 기도가 없으면, 우리에게 찬양이 없으면, 우리에게 예배가 없으면 우리는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말씀이 없으면, 우리 가정에 기도가 없으면, 우리 가정에 찬양과 예배가 없으면 우리 자녀들은 건강한 인격체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흉년이 들지 않도록 더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 교훈은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옴으로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을 뿐만 아니라 전보다 더 복된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룻기 2장 이후의 말씀을 보면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생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씩 회복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경이 어려워지면 현실을 원망하고 반항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난을 회개의 기회로 삼고 더욱 가까이 하나님 편으로 돌아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탕자가 그랬습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회개를 거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다시 받아 주십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서 8절까지를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4절에서 6절까지를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길갈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브엘세바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다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후반부를 보시면 반복을 통해 강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9절에 "이에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때에" 그리고 22절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여 그들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음을 베들레헴을 반복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멀리 떠났던 신앙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신앙을 찾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 결과 룻기 2장 이후를 보게 되면 모든 문제들이 하나 둘 해결되어지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결국 룻을 통하여 손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손자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황폐하고 더 이상 소망이 없었던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은혜를 받아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와 함께 함으로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아 새롭고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게 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진 삶이 고닲으고 힘들더라도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참 복을 빼앗기지 않고 누리는 귀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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