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짊어지신 예수! 2001-12-14 11:09:18 read : 1658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말씀 : 마태복음 8장 14-17절
인간은 질병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병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행복하던 가정이 병으로 깨어집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질병으로 인하여 완전히 좌절합니다. 잘 나가던 기업인이 병으로 인하여 완전히 폐인이 됩니다. 인간은 많은 계획과 미래가 병으로 인하여 휴지처럼 되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질병이 없는 세상, 더 이상 질병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인간의 유전자 조직을 밝히는 일에 국력을 쏟다 싶이 하는 것도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을 정복해 보겠다는 인간의 꿈을 실현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병이 없는 세상을 꿈이나 이상일 수는 있어도 현실은 아닙니다. 너무도 많은 질병과 아픔으로 인간은 철저히 유린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교역자들이 합심하여 병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름들과 병명을 일일이 주님 앞에 고하였습니다. 여러 성도들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뿐이라는 생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 모든 병을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연약한 것을 자신이 대신 담당하시고 또한 인간들의 병을 대신 짊어지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지신 주님의 은혜를 함께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병에서 자유함을 얻거나 또는 질병 가운데 역사 하시는 깊은 은혜를 깨닫는 여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다니시면서 하신 일에 대하여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첫째 다니시며 회당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가르치시되 특히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의 길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는 말씀이나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하신 부분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모든 질병을 친히 고쳐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과 능력으로 천국 복음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기록입니다. 먼저 14절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고 하여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쳐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시몬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회당과 시몬의 집이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의 집에서 음식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열대 지방의 중한 열병은 말라리아 같은 치사율이 높은 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여인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 예수, 생명의 주가 있는 곳에서는 어떤 병이나 질병도 더 이상 큰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전능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는 병의 정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은 고치시지 못하고 감기나 몸살 같은 간단한 병만 고치시는 제한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면 어떤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어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병으로 죽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 같은 사람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전능자이신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병이 낳는 과정을 보면 먼저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셨습니다. 구원자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오심으로 구원의 길, 치료의 길, 새 생명을 얻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곳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는 구원의 역사,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생명이라고 하신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이 시간에도 이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믿음으로 그 생명을 받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의 집에서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는 장모를 발견하였습니다. 언제나 문제 있는 사람들,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사랑의 시선이 고통 당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무엇 보다 먼저 발견하신 것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사랑의 주님은 누구보다 고난 당한 사람들을 알아보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병든 자를 찾으십니다.
예수께서는 가까이 서서 열병으로 고생하는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손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의 치료하심에는 사랑에서 분출하는 불쌍히 여기심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 당하는 이들의 아픔에 함께 동참하는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여인의 손을 잡아 주신 것입니다.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고 하여 예수님께서 치유하심에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 놀라운 신적인 역사가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랜 질병에 고생한 사람이라면 고침을 받고도 회복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자 마자 예수님의 일행을 위하여 수종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고치심에는 이렇게 완벽하고도 곧 일어나게 하는 전능함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권능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은 곧 마을에 퍼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병든 자들을 데리고 찾아 왔습니다.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왔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각색 병자와 영적으로 고생 당하는 사람들이 다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다 고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생명과 능력의 말씀으로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령들을 쫓아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을 사로잡고 괴롭히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인간들의 악령의 사슬에서 벗어나 참 자유함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든 자들을 하나같이 다 고쳐주셨습니다. 빠짐없이 다 고침을 받는 풍성한 은혜와 기쁨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돈 있는 자나 권력 있는 자, 또는 유식한 자들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찾아 나온 모든 사람들을 하나같이 다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다 고치시기를 원하십니다. 구별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다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다 고침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구하여 해결 받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하여 예수님의 병 고침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그 병으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것을 그가 대신 짊어져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거운 짐을 홀로 질 수 없는 사람을 위하여 힘있는 자가 대신 져 주듯이 그렇게 주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져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님께서 어떻게 병을 짊어져 주셨을까? 가 의문이 됩니다. 짊어지셨다는 것은 대신 병을 앓아 주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을 퇴치하셨다는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완전한 해석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주님이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 속에는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짊어지셨다는 말씀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의 그 아픔에 동정으로 함께 하셨다는 뜻입니다.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셨고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깊이 헤아리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아픈 사람을 만났을 때 동정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14장 14절에서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고 하여 언제나 주님께서는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셨고 그래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일이었습니다. 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을 소리질러 부르며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리지름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소경들은 더욱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0장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주님은 아픈 이들의 고난을 함께 하시면서 민망히 여기셨고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오랜 질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사람도 부모가 너무 오래 앓게 되면 짜증을 내거나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만은 아픈 이들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시며 그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오래된 병이라도, 자식들이 외면하고 부모나 아내나 남편이 돌보지 않는 병이라도 주님은 함께 아파하십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더욱 괴로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아 위로와 치료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지셨다는 의미의 두 번째요 앞의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질병은 인간의 범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질병과 고난이 이 세상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실 때마다 범죄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그가 지게 될 십자가의 고난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9절에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하셔서 주님은 언제나 병을 고치실 때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을 경험하시면서 병을 치료하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희생이 따르는 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아픔과 고난을 함께 통감하고 죄를 대신하는 십자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병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4-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을 고난과 병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사랑과 회생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구원의 은총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그리고 더욱 신앙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맡기십시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어떤 질병 가운데서도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우리를 고난 가운데 버리지 않으시고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새 힘을 얻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