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야 할 일 2001-12-11 21:06:43 read : 1864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드로후서 3:14
새집도 곧 헌 집이 되듯이, 사람도 태어나서 성장하지만 곧 늙습니다.
남녀간의 차이는 있어도 20대 초반까지는 몸이 성장하고 왕성합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되면 벌써 늙기 시작합니다. 20대 후반은 청년인 줄 알지만 사실은 노년기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후반만 되어도 피로 회복이 늦어집니다. 30대가 되면 배가 나오고 체중이 불어납니다. 40대가 되면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하얗게 세기도 하고, 50대가 되면 기억력이 아주 퇴보하고, 60대가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노쇠함이 급속도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체질입니다.
하지만 무섭게 자기 몸을 관리하고 훈련하는 사람은 60이 넘어도 배가 나오지 않고, 체중도 늘지 않습니다. 25년 더 젊게 살기도 합니다. 70세가 되어도 45세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신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게으르게 사는 사람이 치매에도 걸리고 기억력도 쇠퇴하고 정신도 오락가락 하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며 자신의 일에 힘쓰는 사람은 갈수록 기억력이 더 새로워지고 사고력이 더 강해져서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70이 되어도 기억력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폴 틸리히 같은 교수는 65세 정년이 되었을 때, 하버드 대학에서 그를 특별 교수로 7년간 계약하여 모시고 갔습니다. 계약이 만료된 72세 때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5년 계약을 하여 특별 교수로 모시고 갔습니다. 한국 나이로 78세가 되어도 현직 교수로서 명강의를 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력도 나빠지는데, 부지런히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몸도 훈련하고 지력도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매일 꼭 한 번씩 읽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적어서 제 책상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15)
대충 공부하면 평범한 학생이 되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학생은 굉장한 학생이 됩니다. 편한 대로 그냥 살면 보통 회사원이 되고 해고를 당하기도 하지만, 회사 일에 진력하는 사람은 해고 당하지 않습니다.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퇴근 후에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본 한 공무원은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며 살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하고, 퇴근 후에 매일 3시간, 4시간씩 공부했습니다. 그가 장관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미래에 살고 노인은 과거에 산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말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청년 때보다는 장년 때가 더 낫고, 장년 때보다는 노년 때가 더 풍성하고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살면 미래보다 현재가 더 좋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미래는 점점 더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사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무리 밑바닥에 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발돋움하면 하나님께서 올라서게 하십니다. 진흙에 있는 사람, 먼지투성이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별같이 세워 주실 수 있으십니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영국 런던 남부 지방의 빈민촌에서 가난뱅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곡마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며 계속 투쟁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26세에 구의원이 되고, 36세에 국회의원이 되고, 대처 수상 때에는 재무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0세인 1990년에 대영제국의 총리가 되어서 영국의 경제를 일으키고 국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사람이 있으라 할 때 나는 떠난다. 이제 나는 내 가정을 돌볼 것이다."
곡마단 출신의 아들이 세계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따라가지 못할 인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길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공부하는 것, 회사원이 성실히 직장 일하는 것, 전공 과목에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성령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흠도 티도 점도 없이 거룩하게 되기에 최선을 다하라." 할렐루야!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 또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원히 들어가 살 땅입니다. 거기는 잘 꾸민 신방처럼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신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남자는 실력으로 살기 때문에 못생겨도 괜찮습니다. 남자는 실력이 있으면 얼굴에 점이 많아도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얼굴에 점이 많은 한 분에게 아들이 "아빠, 아빠 얼굴에는 왜 이렇게 점이 많아요?"하고 물으니,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너 그 이유를 모르니? 아마 너의 엄마는 알 거야. 청년 때 내 인기가 굉장했지. 그때 아가씨들이 점을 찍어 놓아서 내 얼굴이 점박이가 된 거야."
참 좋은 대답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자는 얼굴에 점이나 티가 너무 많으면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신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특별히 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자기 관리를 잘 해서 하얀 드레스와 어울리는 아름다움 모습으로 식장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주님의 신부처럼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씀하십니다.
'흠도 티도 점도 없이 거룩하도록 힘쓰라.' 할렐루야!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여성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 ecclesia)는 여성이고, 주님(the Lord)은 남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도록 우리를 단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외모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외모로 상대방 사람은 기쁘게 할 수 있으나, 우리 주님은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모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거룩함을 단장해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 11:4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베드로전서 1:1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데살로니가전서 4:3)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고 의로움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고,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공짜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9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감사만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은 다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지만 죄가 없어서, 깨끗해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많고 험한 우리지만,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는 정죄함이 없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마음, 인격, 생활이 정말 거룩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거룩하게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할렐루야!
말씀을 따라 살면 거룩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가슴에도 성령의 소욕이 있는가 하면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음란하고 싶고, 쾌락을 핥아먹고 싶고, 방탕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셨지만, 성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기도를 따라 사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맛이 나고 다 차려진 상의 밥도 내가 먹어야 배 부르듯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기도를 주셨지만, 우리가 부지런히 기도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고 말씀을 순종하려고 노력해야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은혜로 살지만 자녀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등록금을 대주고 밥을 해 주고 옷을 사 주고 살 집을 준비해 주지만, 공부는 자녀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 대신 공부해 줄 수 없고 입학 시험을 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을 주셨지만, 우리의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그것을 상 위에 주지 않으셨습니다. 만나를 볶아서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를 사람이 가서 끌어 모아 볶아도 먹고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인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에 은혜를 주시지만,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 발로 걸어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예배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 큰 만나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내가 나와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집에 있거나 다른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만나를 받아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점도 흠도 없이 거룩해야지. 내 입의 말과 내 생활이 거룩해야지.'하며 날마다 전쟁하듯이 노력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쓰면 달라집니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 좀 더 의로워져야지.'하고 마음을 먹어 보십시오. 그러면 확실히 진보하게 됩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난처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아는데 막 살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어떤 장로님이 실수해서 그것이 신문에 나 보십시오.
'아무개 장로가 여고생과 …'
그러면 우리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부끄럽고, 대한민국 교인들이 부끄럽고,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부끄러우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귀하게 살면 얼마나 빛이 나겠습니까?
이번에 영락교회의 한 권사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선한 일에 써 달라고 10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아들딸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내어놓으니 얼마나 빛이 납니까?
그러나 잘못되면 참으로 수치스럽습니다.
미국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한 여집사님이 앵무새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가 딱 한 마디 말만 했습니다.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Kiss me, please)."
혼자 있을 때는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이었지만, 손님이 왔을 때도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 라고 하니 '밤낮 키스만 가르쳤나?' 할까봐 부끄럽고 난처했습니다.
그런데 여집사님이 어떤 일로 목사님 사택에 갔습니다. 목사님 사택에도 앵무새가 있었는데, 그 앵무새가 여집사님을 보더니,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인사입니까?
목사님 댁의 개는 짖을 때도 은혜롭게 짖어야 한답니다. 목사님 댁의 개가 점잖게 짖지 않고 방정맞게 짖으면 은혜가 없다고 목사님이 욕을 먹는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댁의 앵무새는 언제나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앵무새가 그 말을 배우도록 여집사님은 목사님 댁의 앵무새를 빌려갔습니다.
목사님의 앵무새가 집사님의 앵무새에게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답을 했습니다.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의 앵무새가 기분 좋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군요."
만든 이야기겠지만, 목사님의 새는 주인을 기쁘고 흐뭇하게 해 주었고, 집사님의 새는 주인을 난처하게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난처하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흐뭇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빛나게 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려면 우리가 거룩해야 됩니다.
그리고 거룩하면 담대하게 됩니다.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잠언 28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죄인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경찰이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나 의인은 '경찰들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나?'하며 담대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누구 앞에서나 담대합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담대합니다. 의롭고 거룩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지니 사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떨어지니 사자들이 뼈까지 부숴 먹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의 방패가 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거룩한 사람의 가정, 사업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최고 엘리트 중의 한 사람이 잘못 행동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구속된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그의 거룩이 한 번 깨졌습니다. 그 귀한 인재가 1시간 방탕했다가, 그 한 입 두 입의 쾌락을 맛보다가 수천, 수만 저주의 모래를 씹게 되었습니다.
선악과 하나를 먹는데 5분이 걸리겠습니까? 10분이 걸리겠습니까? 선악과 하나를 즐기는데 도대체 몇 분간이나 걸리겠습니까?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그 몇 분간의 쾌락 때문에 한평생 엉겅퀴에서 헤매게 됩니다.
마귀가 우리의 거룩을 깨려고 주는 선악과, 꿀 발린 독이 든 떡, 그것을 먹는 순간은 좋지만, 그것을 마신 다음에는 강물 같은 진노가 오게 됩니다. 몇 방울의 쾌락을 마시는 것은 강물 같은 진노를 마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면,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면, 이 세상의 일생도 든든히 서게 되고, 또 영원히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길로 달려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어 성경 Good News Bible에 보면,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do your best)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양곡의 가족들과 이 말씀을 방송과 문서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생활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삼성의 모 부장님은 다른 사원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사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근실하고 아름답게 생활했습니다. 몇 달 후에 그 부서의 모든 부원들이 부장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부장님, 우리도 부장님처럼 살고 싶어요. 우리를 좀 인도해 주세요."
그래서 매일 아침에 부장님이 부원들에게 한 시간씩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부서는 모든 일이 그렇게 잘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면 줄줄이 사탕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입으로 전하는 동시에 생활로도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두 번째로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 평강은 그냥 평강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누리는 평강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리드할 때 로마 시민권자는 어느 나라에 가도 든든하고 평안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영국이 세계를 리드할 때는 영국 시민권자는 어디를 가나 든든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또 대접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들이 그렇습니다. 테러 사건으로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미국 시민권자는 어디에 가도 여유가 있고 세계 일등 국민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러시아에 가셔서 우리 양곡교회를 세우신 목사님 내외분은 미국 시민권자이십니다. 그러니 러시아에서도 대접을 받고 계십니다. 한국 선교사님들은 비자가 만기되면 다시 한국에 와서 비자 연장을 신청해야 하고, 연장되지 않으면 다시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활동할 때도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갖고 계신 우리 양곡교회 선교사님은 그 곳 시장과 경찰서장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십 개가 넘는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국 시민권자이신 목사님을 쓰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영광도 오래 가지 못했고, 영국의 흥왕함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미국도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위대함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거기의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담대하게, 든든하게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유를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 세상의 풍랑 앞에서 벌벌 떠는 것, 무서워하는 것을 베드로는 봐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최선을 다해 주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다(our citizenship is in heaven.)고 빌립보서 3장 20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왔지 않습니까? 우리의 과거를 보면, 숨막힐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것 어떻게 하나? 아이고! 어떻게 하나? 아이고! 큰일났네.'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2부 예배를 마치고 내려가니, 한 집사님이 "목사님, 모든 것이 다 막혀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다 협력해서 선이 되었어요."하며 기뻐했습니다.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10장 29절에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절, 31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오늘,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평안하려고 애써라. 그냥 평안해라."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돈도 주지 않으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옷도 사 입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백만 원을 주면서 잘 먹고 잘 입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의 능력을 주셔서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1)
여러분 중에 걱정하는 분이 많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지용수야,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팽창배야,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도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Peace be with you(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 20:19)
우리 주님께서는 늘 평안을 주십니다.
불안과 초조는 마귀가 주는 마귀의 영권입니다. 그러므로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사탄아, 물러가라!"마귀를 물리치고 주님 곁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40리터(두 말)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그 항아리가 지금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신 다음에 그 물을 떠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여러분 집에 때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주님께서는 반드시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동해 해변에 구계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낡아서 수리해야 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 김상태라는 집사님이 낡은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세요. 그래서 교회를 수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작년 12월 23일 밤에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24일 새벽에 10kg이나 되는 방어 2370마리가 집사님의 그물에 들어왔습니다. 같이 고기를 잡는 다른 사람들의 그물에는 한 마리도 들어가지 않고 집사님의 그물에만 들어왔습니다. 10kg 방어 한 마리의 값이 169,000원이나 된답니다. 그러니 4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 돈을 몽땅 헌금했습니다. 성탄절을 보내고 1월 24일에 집사님이 또 바다로 나갔는데, 세상에! 밍크고래가 잡혔습니다. 그것을 또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래서 수리하려고 했던 교회를 새로 잘 지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도 축복 속에 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 우리 집은 끝이야.'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우리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평강 가운데서 살라고 말씀한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살았습니다. 말씀만 그렇게 하고 자신은 덜덜 떨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헤롯 왕에게 잡혀 가 목이 잘리게 되어 있는 전 날 밤에도 감옥에서 평안하게 쿨쿨 잠을 잘 잤습니다.
왜입니까?
'내일 헤롯 왕이 나를 죽일 것이지만, 내 생명은 헤롯 왕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살리시고자 하시면 헤롯 왕을 죽이시고 베드로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베드로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아니 평안했습니다. 헤롯 왕만 생각했다면 덜덜덜 떨었겠지만, 주님을 생각하니 평안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한 권사님이 위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제가 전화로 세 번 기도를 해 드렸는데, 전화를 드릴 때마다 "목사님, 마음이 이렇게 평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안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병을 보면 도저히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위중한 병입니다. 그러나 권사님이 병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니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이 우리의 생명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잡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어떤 풍랑을 만나도, 그 풍랑 뒤에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 들어갔는데도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 배의 사공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파일럿이신 주님이십니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할렐루야!
「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 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에 나라에 이르리라」 할렐루야!
존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 때 하신 말씀을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축복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뉴욕 암 환자 센터에 입원해 있는 크리스천 환자들이 함께 모여서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한 다음에 전도를 했답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찬송과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하고 천국에 갈지 모르니 모두 눈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나는 암 환자입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내 생명은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각 병실을 다니면서 전도했답니다.
암에 걸렸을 때 기도해서 암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죽는다면 죽을 때까지 전도하는 것이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고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답니다.
한 암 환자가 병실을 돌면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한 병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디가 그렇게 아프세요?"
"어서 와서 도와주세요. 아파서 미치겠어요."
"나는 의사가 아닙니다."
"의사가 아니라고? 빨리 의사를 불러요."
암 환자가 비명을 지르는 환자에게 가까이 가서 물었습니다.
"어디가 그렇게 아프세요?"
"의사가 아니면 필요 없으니 빨리 비켜요. 괴로워 죽겠으니 어서 의사나 불러 줘요."
그때 아파 죽겠다며 비명을 지르는 환자의 눈에 팻말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암 환자입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나는 6개월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래도 나는 기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아파 죽겠다며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환자가 팻말에 쓰여 있는 글을 본 순간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는 치질 수술을 받고 그때 막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였습니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환자가 암 환자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정말 기쁩니까?"
"정말 기쁩니다."
예수님 때문에(because Jesus Christ)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치질 환자는 물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평안하고 죽어도 평안합니다.
그리고 이 평안함을 입고 살면 우리 몸도 강건하게 됩니다.
나이 사십 전까지는 아무리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도 건강은 무너지지 않는답니다. 중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충격을 받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격을 받으면 성적은 떨어지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넘은 사람은 충격, 쇼크를 받으면 몽롱해지고, 휘청거리게 되고, 죽기도 합니다.
부산의 모 재벌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으로 앓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그 부인이 충격을 받고 그날 밤에 같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충격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런 충격을 받아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충격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방파제가 되어 주시니, 예수님의 평안이 방파제가 되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지는 일이니 무슨 뜻이 계실 거야.'하며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앞길에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순적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터져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으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거룩함을 유지하고, 늘 평안을 유지하다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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