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인이 한 광주리의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창고에 갖다 두었습니다. 얼마 후에 광에 들어가보니 이상한 냄새가 창고에서 났습니다. 여인이 사과 광주리에 다가가서 광주리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사과 반 이상이 썩어 있었습니다. 여인은 광주리에 있는 사과 모두를 버리기로 결심을했습니다.
여인은 그것을 버리기 전에 딸에게만은 그 사실을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딸에게 "창고에 보관했던 사과가 썩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모두 내다버려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딸은 "어머니는 나에게 언제나 음식을 낭비하지 말고 아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광주리에있는 썩지 않은 사과를 썩은 사과와 함께 모두 버리시겠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 광주리에 있는 사과들 중에 반이 썩지 않고 좋은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본문의 내용과 관련해서 유대 랍비가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앞으로 하시려고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고 다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의 의로우심을 상기 시키면서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들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킬 수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깨우치는 선생과 같은 위치에 서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나래이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주의 깊에 귀를 기우리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아브라함이 제기하는 질문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날 아브라함은 마무리 상수리 나무 곁에서 세 사람의 손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내신 사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그들이 내년 이맘때 다시 돌아오게 될 때에는 사라에게 반드시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떠나려고 일어서서, 소돔이 내려다 보이는데로 갈 때, 그들을 바래다 주려고 함께 얼마쯤 걸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와 목적이 들어있습니다. 그 내용을 세 가지로요약할 수 있습니다.
0.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0.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0.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가 약속의 상대로 삼으신 아브라함에게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계획은 소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예고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존귀한 인물로 세워집니다.
그 예고편 내용은 이러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 까지 들려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서가 아닌,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고독한 한 중보자로 나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의로우심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제기한 문제는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을 악한 사람과 함께 멸할 수 있는가?입니다. 아브라함은 매우 당돌하게 솔직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주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성안에 의인이 쉰명이 있으면 어떻게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소돔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아브라함은 첫 번째보다는 좀더 겸허한 자세로 다시 하나님께 아룁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되는 주제에, 제가 주께 감히 아룁니다. 의인이 쉰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 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께 아룁니다.
"거기서 마흔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결국 열 명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십니다.
"열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한 하나님과 진지한 협상에서 소돔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확인 하게됩니다. 아브라함이 확인 한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전체를 살려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악성이 작곡한 교향곡을 들을 때 그 것을 통해 그 곡을 작곡한 악성의 영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듯이 성서의 나래이터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소중한 메시지를 듣게됩니다.
먼저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가는 이 이야기에는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드러내려는데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는 의인을 사악한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모두 멸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 한 사람이라도 발견된다면 그 의로운 사람로 인해 그 곳 전체를 구원하시는 의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생각할 때 심판, 형벌과 같은 무서운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이야기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의는 공포와 두려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가 택한 사람에게 자세히 알리고, 그 계획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 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뜻을 이해시키시는 매우 자상한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이 알게 된 하나님의 의는 악한 사람을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의인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의의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약속의 상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여기서 선택은 당연히 누려야할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 역사의 현실에서 택함을 받은 자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서있는 곳은 중보자의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그가 소돔에 대한 계획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는 소돔을 그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된 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어떻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놓여있는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의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매우 솔직히 아룁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세상에서 택함받은 자의 고뇌와 아픔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는 택함받은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세상에 알려야하고, 한편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의 자비하심, 그의 인내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받는 고통과 억울함 가운데서 울부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아뢸 수밖에 없습니다.
택함받은 자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일에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부르짖음, 그러한 부르짖음 가운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부르짖음도 있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불의한 사회 현실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도 있습니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간의 울부짖음에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거기에 역시 선택된 자들도 개입하게 됩니다. 거기서 중보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국 구원입니다. 그 구원이 이루어 지도록 중보자는 기도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인 열 사람"과 관련된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을 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의인 열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절망적인 부르짓음이 있게됩니다. 진정 세상을 구원할 만한 의인이 있는가입니다. 거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내 아들을 준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의인 열 사람은 장차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의의 사건에 대한 메아리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 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니라." (롬5:6∼8)
이 세상이 누구의 의 때문에 보존되어 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성서에서는 그것이 인간의 의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 때문에 이 세상이 보존되어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는 세상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암담한 문제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그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마련된 성만찬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의의 사건에 대한 징표입니다. 우리는 떡과 잔을 받으면서 그 하나님의 의의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듣고, 보고, 만져보는 경험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위해 중보의 자리에 있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