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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하지 아니한 것”
    2001-12-13 16:13:17   read : 1552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 25:31~46 설교자 : 임영수




    오늘 본문은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묵시 문학이나, 예언서를 대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묵시문학에서 나오는 마지막 심판에 관한 것도 아니며, 심판의 위협에 직면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메시지도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의 전체적인 가르침에 대한 요약으로써, 인간의 필요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라는 사실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권능에 싸여 나타나는 인자의 모습이요, 다른 하는 목자로서의 인자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이러한 두 모습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비유에서 인자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는 고난의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자는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 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는 모습입니다.

    또 한편 여기서 인자는 길 잃은 양들을 애타게 불러 모으는 목자가 아닙니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는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더 이상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안전해 질 때까지 끊임없이 따라 다니며, 인생의 짐에 눌려 신음하는 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돌보시는 초라한 목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 가운데서 본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는"(계12:5) 영광스러운 목자이십니다. 그 분은 영광의 목자로서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마28:10)을 가지고 그의 임무를 이행하십니다. 그는 긴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양은 그의 오른 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구분하여 세우십니다.

    인자와 목자의 모습에 왕의 모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왕으로서 그분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 사람들 중에 먼저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창세 때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주십니다. 그분은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그러한 영광스러운 나라를 상속받게 된 이유에 대해 왕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찾아주었다."

    똑같은 형태로 그의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왕은 매우 준엄한 판결을 내립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그러한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해 밝힙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거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지 않았다. "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왼쪽에 있는 사람들, 다 똑같이 왕에게 반문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당신에게 그렇게 하였습니까?" 한편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당신에게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대꾸합니다.

    그들의 반문은 옳습니다.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한번도 그들이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주님께 한다고 생각한적은 없었습니다. 역시 책망을 받은 사람들도 한번도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습니다.

    왕의 답변은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 그들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에는 우리가 귀를 기우려 들어야 할 몇 가지 영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먼저 비유에서 왕이 양쪽 사람들에게 다같이 요구한 것은 그들이 쌓은 지식, 그들의 명성, 업적, 그들의 선행의 횟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왕의 요구는 아주 단순한 것들로써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ㅇ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ㅇ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ㅇ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ㅇ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ㅇ 병든 자를 돌보아 주고,

    ㅇ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왕이 요구하는 것은 큰 자선, 구제, 체계화된 사회선교가 아닙니다. 그들의 이름이 매스컴에 알려지고, 역사의 기록에 남길 만한 일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왕이 요구하는 것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아주 눈에 잘 띠지 않는 단순한 도움(베품)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러한 단순한 도움(베품)들이 사회적 가치로는 계산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동기가 있거나, 사전에 미리 계획되었거나, 의도적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매일매일 일상적인 삶의 현실에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매우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현실에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외로움에 처해있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들을 도와줍니다.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평가할 만한 가치가 되지 않습니다. 공적패, 감사패, 텔레비젼 브라운관에 나오거나, 신문에 기사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기쁨, 충만, 행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삶에 대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비유에서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은 경제적 가치로는 별 것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는 매우 가치 있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도움이 바로 자신에게 한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자신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놀라운 진리에 대해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장 미천한 사람들 속에 숨어 계시며, 실제로 그 분은 그들 속에서 발견되고 느껴지게 된다는 진리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단지 차이점은 그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특별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의 자녀들을 도울 때 그 분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길은 그의 자녀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하나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인이 있습니다. 그 분은 성 프랜시스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영적으로 목마름,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다가 길에서 한 나병인을 만났습니다. 프랜시스에게는 그를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감동이 왔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그의 일그러진 손과 상처에 입을 맞추고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그가 끌어안은 나병인의 얼굴은 그리스도의 얼굴로 변했습니다. 프랜시스는 나병인에게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 마틴이라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추운 겨울에 말을 타고 로마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을 때, 한 걸인이 그의 앞에 와서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적선을 구했습니다. 마틴은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의 앞에 서있는 걸인은 추워서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마틴은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낡은 군인 외투뿐이었습니다. 그는 외투를 벗어 둘로 찢었습니다. 마틴은 찢은 반조각을 그 걸인에게 입혀주었습니다. 그날 밤 마틴이 꿈에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천사들이 있고 그리고 예수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이 입는 외투 반쪽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반쪽자리 군인 외투를 입고 계십니까? 누가 주님께 그것을 주셨습니까?" 예수님은 부드럽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것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설 때에,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경제적 가치나, 세상적 가치로 계산될 수 없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행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것으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돕는 일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그 기쁨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 매스컴이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아도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는 아름다운 일을 우리는 배워가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은 그러한데서 드러납니다.

    비유에서 왕이 요구하는 일은 아주 단순한 도움이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알려지고, 우리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액수의 구제와 자선을 베풀 수 있지만 이해 관계가 전연 없는 가운데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돈, 재물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 겸손, 자유함이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합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없어서 목마름과 배고픔 보다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 병든 사람, 나그네, 목마른 사람, 배고픈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베푸는 도움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섬김과 복종의 삶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만을 가지는 것으로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는 그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자들이 있는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의 새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부활의 새 생명을 소유한 삶은 도움을 요구하는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사랑의 반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죽은 자의 삶은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자의 삶에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반응이 있습니다. 그 생명의 반응이 바로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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