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정원 주인이 좋은 꽃씨를 잘 보관해 두었습니다. 봄이 되어 주인은 정원을 잘 경작한 후에 보관해두었던 꽃씨를 심었습니다. 꽃씨는 싹이 트고 자라서 아름다운 꽃나무를 이루었습니다. 그 꽃을 보는 사람마다 모두 기뻐했습니다.
주인이 자기 정원에 꽃씨를 심기까지 일정한 기다림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주인이 기다린 기간은 자연환경과 주위의 여건이었습니다. 주인은 오직 꽃씨를 자신의 정원에 심을 수 있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본문에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생각하시고 계획하셨던 그 일을 실행에 옮길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찼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실행할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이란 어떤 일인가?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된 여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은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무르익은 여건이란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수 있게된 그 시대 상황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시대 정치적 상황으로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주전 330년에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재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정복한 땅의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특별히 그가 정복한 땅 구석구석까지 그리스 문화를 보급시켜 이름 그대로 헬레니즘의 꽃을 피웠습니다. 헬레니즘의 핵심은 그리스 말이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세상을 정복한 뒤에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그리스 말이 보급되어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 언어가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요즈음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과 같이 그 시대에는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므로 인해 하나님의 메세지가 그리스어로 전달되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그 메시지의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로마가 세계를 통일 하므로 인해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대왕이 정복한 땅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이들 간에는 세력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로마가 출현하여 분열된 제국을 무너 트리고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강력한 로마는 주전 63년에 팔레스타인을 로마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로마가 세계를 통일하므로 전에 없었던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The Pax Romana'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통일하므로 인해 어디에나 쉽게 갈 수 있는 군사 도로가 건설 되었습니다. 이러한 도로의 건설은 세계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유대 전통과 유대인의 분산입니다. 유대민족은 오래 전부터 다른 민족이 갖고 있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다른 이방민족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이 주전 722, 586년 유대민족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므로 다른 민족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회당이 건립되고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복음이 곳곳에 선포되는데 결정적인 전초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도덕적 종교적 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통치하게 되면서 장기간의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과 함께 그 시대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도덕적 타락으로 그 시대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은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했고 로마제국을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했습니다. 도덕적 타락은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영적 고갈을 느끼게 했고,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다림을 갖게했습니다.
알렉산더의 세계정복, 그리스어의 공용화, 로마의 세계통일, 장기간의 평화, 로마에의한 고속도로, 히브리 전통과 유대인의 분산, 사회 도덕적 질서 붕괴, 영적 고갈과 같은 그 시대의 상황이 바로 '때가 찼다'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왔는가? 에 대해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본질적 차원에 모두 참여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본질적 차원에는 역사적, 생물학적, 종교적, 문화적 차원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이러한 차원을 떠나서 태어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 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에 참여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간 됨에서 중심되는 내용입니다.
제임스 스튜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과 가르침"이란 책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 하였습니다.
"드디어 구세주가 오셨다. 지구의 중심인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심장안 그 어디에서 그 시대의 위대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그리스도는 기다리고 계셨고 영원의 계획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안에 있는 모든 것과 인간의 영혼안에 있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그는 오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정확히 일찍이도 늦게도 아닌 가장 적절한 때에, 그것은 주의 날이 었다."
그가 오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아들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는 길은 단순히 법적 절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과정은 타인에 의한 설득으로,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되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발견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으로 됩니다.
어떤 자매님이 남편의 직장 관계로 항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적으로 많은 갈등과 목마름 가운데 방황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찾고 요즈음은 늘 감사의 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자매님은 이제야 진정한 남편을 찾았습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아들의 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고 드디어 참 아버지를 부르게 합니다. 아들이 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유업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존재양식을 가진 신분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게되고, 성령으로 변형되어가면서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참여해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때가 무르익어야 했습니다. 오직 그 한 때를 위해 천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데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30년, 다른 사람에게는 40, 50, 심지어 90년이란 세월이 요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그 한날을 위해 그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한날이 있게 될 때 그동안 지내온 그의 생의 역사를 새로운 의미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즉, 오직 그 한날을 위해 바로 지나온 날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성서에 이러한 시간 개념을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므로 이 세상에서 받는 특혜는 없습니다. 오히려 손해가 더 많을 수도 있고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상쇄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됨의 축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