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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구도자가 극복해야 할 오해
    2001-12-10 15:47:48   read : 180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왕하 5:9-14 성경본문보기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큰 병 없이 그냥 일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질병이라는 것은 인생의 행복을 위협하는 공적 제1호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난치의 질병의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성경의 본문에는 이런 난치의 질병에 맞서서 투병하고 있었던 아람, 지금의 시리아의 한 장군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때는 주전 849년부터 842년 사이의 어느날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리아는 벤하닷 왕이 통치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여호람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주인공의 이름은 나아만입니다. 본문의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는 열왕기하 5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5장 1절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있었습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일종의 국방부 장관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 인간적 특권이 있었습니다.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 주인, 즉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위대한 성취가 있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결정적인 국가적 난국에서부터 구출한, 일종의 구국의 영웅이었습니다. 저로, 즉 나아만을 통해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명예로운 타이틀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커다란 용사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복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약점이 하나가 있었다고, 오늘 1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5장 1절 마지막 부분에 무슨 단어가 나옵니까? "문둥병자더라" 우리말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마는 그 앞에 단어 하나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나! 문둥병자였다"

    자기 모든 행복을 결정적으로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딜레마, 난치의 질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어려운 병이지만, 당시에는 이 병을 얻으면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이제 그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뜻밖의 기회에 뜻밖의 사람을 통해서 뜻밖의 좋은 소식을(Good news) 접합니다. 이스라엘과 전쟁할 때, 시리아가 이스라엘에서 잡아왔던 전쟁포로 가운데 하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하녀가 어느 날 그 주인 앞에 나와서 이런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5장 2절입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라"

    이 계집종이 들려주었던 좋은 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5장 3절입니다.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계집종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제가 왔던 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 엘리사라는 이름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입니다. 그분 앞에 가면 병을 고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이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치유받기 위해서 여장을 차리고 출발합니다.

    본문의 사건을 결론부터 말하면 해피 엔딩 드라마에 속합니다. 그는 치유 받고 돌아옵니다. 구원을 받고 돌아오는 것이에요. 그러나 본문을 계속 읽어보시면, 본문은 그가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을 단순히 보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치유되지 못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치료받지 못했을 뻔했던 위기, 그 "하마터면"의 위기가 뭐냐하면, 이 나아만이라는 장관에게 오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오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 시대에도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고 인생의 변화를 추구하고 내 삶이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찾고 있는 구도자들이, 성경에 나타난 나아만 장군과 동일한 오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오해를 풀지 못했다면, 하마터면 구원을 얻지 못 할 뻔했습니다. 구도자가 극복해야 할 오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첫째로 이 오해는 메시지보다도 메신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오해입니다.

    여러분, 병자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뭘까요? 어떻게 병 고치나, 그게 필요한 메시지 아니에요? 나아만 장관에게 그 메시지가 주어졌습니까?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주어졌어요. 10절 한 번 읽어보세요.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이 문둥병에서 깨끗해지리라"는 메시지가 주어졌어요. 이렇게 하면 산다는, 이렇게 하면 치료된다는 메시지가 주어졌어요. 그런데 왜 이 메시지를 받지 못 할 뻔했습니까? 그것은 메신저 때문에 그랬어요. 이 메시지를 전해준 사람에게 마음이 상했어요. 그래서 메시지를 안 받고 돌아 가려고 그랬어요. 9절부터 읽겠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한 나라의 장관이 치병을 하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여행해서, 드디어 엘리사의 집 문 밖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0절 읽어보세요.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엘리사가 문밖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자기의 비서를 통해서 메시지만 보냈어요. 그 메시지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랬더니 나아만이 매우 화가 났습니다. 11절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절에서는 "아니 강이 여기밖에 없느냐" 하면서 가려고 했어요. 메신저가 나를 무시했다고 느끼고 마음이 상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혹시 여러분들의 문제가 아닙니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죄의 문제, 혹은 이 죄에서부터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에 관해서 하나님은 명백한 구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 시대의 구원을 찾고 있는 사람, 인생이 새로워지고 싶은 사람, 변화받고 싶은 사람, 인생의 깊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메시지예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스도를 믿으면 네가 구원을 받는다고, 네 가정도 변화된다고,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명확한 구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 메시지를 받고 구원을 얻지 못합니까? 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 내 주변의 교인들을 보니까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교인들 뿐 아니라 목사도 마음에 안 들어요. 이상한 목사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목사지만, 목사들이 마음에 안들 때가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저는 제가 마음에 안들 때도 너무나 많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얘기까지 생겼겠어요? 어떤 교인이 천국에 갔답니다. 계속 천국에 사람들이 도착하는데, 어느 날 목사 한 사람이 도착하자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시더래요. 그러시더니 내려가셔서 목사를 안아 주시면서 너무너무 좋아 하시더래요. 이 장면을 보고 이 교인이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예수님 저 목사님들은 세상에서도 대접받고 그랬는데, 천국에서도 사람 차별하십니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교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네가 오해하였도다. 목사가 하도 오랜간만에 하나 도착하지 않았더냐" 목사라고 다 천국 가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예수님 당시에도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거짓 선지자라고, 삯군 목자라고 공격하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신앙을 대표하고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의 계급 가운데 바리새인들이 있었어요. 예수님의 신랄한 공격과 도전은 이 바리새인들에게 퍼부어졌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3장3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어느날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행위는 본 받지 말라" 저들의 잘못된 행위를 본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저들의 행위를 본 받지 말라" 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앞서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되"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올바른 메시지였다면, 그 메시지는 필요한 것이 아니냐, 너희들이 메신저에 대한 실망 때문에 메시지까지 포기한다면 그건 너에게 손해야" 여기서 예수님은 메시지와 메신를 구별하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본문의 엘리사의 경우, 저는 그의 행동이 꼭 지탄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만한 사람이 먼 길을 왔으니까, 집 문밖에 나가서 영접하고 환영하면 더 좋았겠죠. 그러나 어쩌면 엘리사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더 깊은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어떤 성서학자들은, 엘리사가 집에 나가서 직접 이 사람을 영접하고 기도해 주었더라면, 나아만은 아마 엘리사를 신격화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만 붙들고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치유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결과에 있어서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엘리사가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그 속 깊은 뜻을 알았겠어요? 그래서 메신저에 대해서 마음이 상했을 지도 모르죠. 나아만에게는 메신저에 대한 어떤 오해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 오해보다도 더 중요한 오해가 있다면, 메신저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더 중요한 것은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뭐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가 있을까?" 하는 메시지에 집중을 해보세요. 메신저에 대한 실망이나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교인들의 오류나, 그런 병리현상 때문에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했던 구원의 메시지, 생명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를 거절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마터면 나아만이 그냥 치료받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 갈 수 있었던 위기, 그 위기를 초래한 두 번째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처방보다도 자기의 처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오해입니다.

    본문의 11절 읽어 보겠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이 분노하면서 물러가며 말한 내용에서, 중요한 단어는 "내 생각에는"입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와" 나아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먼 길까지 저를 찾아 왔는데, 사실은 내가 저에게까지 이렇게 올 것이 아니라 저가 내게 나와야지, 비록 문둥병자이기는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야, 황송한 마음으로 환부에 손을 얹고 안수해서 나를 고쳐야지"

    지금 이 사람은 환자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통한 치유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하고 있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여러분, 환자가 의사에게 지시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사람들은 구원을 열망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직도 구원을 어디서 찾는 줄 아세요? 자기 안에서 찾아요. 자기 생각 안에서 찾아요. "내 생각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면서, 구원의 근거를, 구원의 처방을, 자기 사고 안에서 찾고 있는 거예요.

    종교 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이성 종교이고, 또 하나는 계시 종교입니다. 이성 종교란 자기의 이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을까의 문제에 대하여 "내 생각에는, 우리의 철학에 의하면, 내 추적에 의하면, 내 사고에 의하면, 내 발견에 의하면" 하면서 자기 이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성을 무시하진 않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반이성주의적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성의 불필요성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에 얽매여 있지는 않습니다. 기독교는 이성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계시종교라고 말합니다. 계시라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인간의 이성이 절망했을 때, 내가 내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어요. 그때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구원의 길을 보여 줄께!" 이것이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어요. 그럼 그 처방을 받아야 지요. 기독교의 처방, 구원의 처방,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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