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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배움 1월 14일
    2001-12-10 18:26:45   read : 157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실패의 배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18-25>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말 중에 하나는 <실패>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실패는 꺼려하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성공보다는 실패한 흔적들이 누구에게나 많음은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기피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발명하려는 사람들도 모두 실패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실패를 반복하여 얻은 성공들이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실망까지 합니다.
    실망(失望)이란 희망까지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설사 실패했어도 희망이 있으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실패한 일이 있었다해도 그 실패를 배워서 성공하도록 해야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한번 실패하였다고 소망의 하나님까지 잃어버리면 그처럼 더 불행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실패는 고난이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모두 실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패를 사람들은 실패로 받아들이기에 그것이 실패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즉 실패는 배움입니다.
    실패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 배우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하였습니다.
    실패를 통하여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실패를 당하였을 때는 쓰지만 그 실패를 통하여 새로운 배움이 열리면 도리어 이 시편 기자와 같이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깨달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의 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을 스포츠에다 비유하였습니다.
    어떤 경기이든 경기에는 패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기라도 그 경기에는 심판관(judge)이 함께 합니다.
    그 심판관에 의하여 최후의 승패는 판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실패를 통하여 새로운 계기를 삼는 것이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어떠한 실패를 하였더라도, 그것을 통하여 다시 깨달음을 갖고 도리어 새 해에는 승리하는 기회를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2. 실패는 기다림의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죄의 길에서 실패한 인생들이 그 길에서 깨닫고 돌아섰으면, 미래를 바라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기본자세입니다.
    그 인내는 막연한 인내가 아닙니다.
    그 인내는 소망 없는 인내가 아닙니다.
    그 인내는 실패자의 위로의 인내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인내를 산 소망의 인내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썩어짐의 종노릇하던 존재들입니다.
    모두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던 사람들입니다.
    죄의 길에서 반복하며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원한 실패로 이어지는 멸망의 사람들이 아니라, 죄의 자리에서 해방될 사람들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몸에 구속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참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바라는 것이라면, 인내는 신앙인의 현실 참여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답답한 일을 만났어도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다림은 소망 없는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을 보증 받고 있는 확증의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현실적 괴로움이란 장차 신앙인이 누릴 영광스러움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초대교회 신자들은 로마학정의 300년의 기간 중에서도 참고 이겨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화형장과 사자와 맹수의 밥이 되어 끌려가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조그마한 경제적 불황 앞에서 도리어 낙심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젊음이 있고, 건강이 있고, 그리고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는데,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데, 왜 그렇게 쉽게 낙심하고 있습니까?
    실패가 두려움이 아니라, 실패의 배움이 없이 낙심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성공한 사람이란 뒤집어 말하면 몇 번씩 실패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저는 운전면허를 8수를 하여 얻은 면허증입니다.
    그 8수 가운데 4수는 날짜를 지키지 못해 자동 실패한 것이었고, 3번의 실
    패는 주행시험에서 언덕에 오르다 멈추어 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시험에
    떨어진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 이제는 어떠한 언덕에서도, 어떤 급경사에서도 멈추어 섰다가도 뒤
    로 미끄러지지 않고 재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실패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고갯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실패하였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12제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실패자들이었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주님과 함께 하면서 입으로는 모두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했지만, 베드로부터 다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리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다시 저들에게 나타난 주님! 저들의 실패를 책망하기 보다, 그 실패를 통하여 큰 깨우침을 주었고, 그 실패를 통하여 주님을 비로소 바르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제자들이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주님을 위해 순교의 잔을 마시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것이 필요합니다.
    실패를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교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실패의 배움이 우리를 한 차원 높은 신앙의 단계로 이끌어갑니다.
    신앙의 생활을 자의지력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처럼 약한 것은 없습니다.
    누가 죄의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아니해서 그 죄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죄의 멍에를, 아니 죄의 유혹을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실패를 통하여 깨달음을 주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강권적 능력이 우리의 의지를 덮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술고래들이 술을 끊게 됩니다.
    그래야 육체의 쾌락에 이끌려가던 길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의 의지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3.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승리의 월계관이 씌워집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에 보이는 것만이 소망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잘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이미 영안이 열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안(靈眼)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기울어진 마음에서는 이 세상의 것들만 보이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잠깐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보이는 세상의 것들은 모두 잠시 머무는 것들이란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에서의 승리는 잠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믿음은 영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기쁨과 보이는 세계의 행복감은 잠시 뿐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금년 새 해에 우리는 모두 실패를 통한 인내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위대한 힘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살게 하는 힘입니다.
    이 신앙의 힘은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실패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합니다.
    실패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체험토록 합니다.
    이것이 또한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서는 실패한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립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교단에서도 그렇고, 공직 사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실패를 통하여 깨닫게 하고, 그 실패의 배움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성취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역사(working)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는 <존 워너메이커> (John Wanamaker, 1838-1922)가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경영솜씨로 체신부 장관직을 맡아주시오" 워너메이커는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장관직을 맡음으로 인해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기자들이 워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 두해 하다가 말 부업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워너메이커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것은 잠깐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실에서 참아내야 할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우리는 없어질 보이는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실패의 배움을 통하여 한 단계 더 높아지는 믿음의 성숙함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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