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자의 능력 6월 24일 2001-12-10 18:44:02 read : 150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무능자의 능력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애굽기 2:11-15>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애굽기 3:9-12)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구조 조정으로 인하여 직업난이 심합니다.
그래서 벤처기업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고, 머리가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곳으로 몰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유망한 회사라고 생각되면 지원율이 심하여 몇 100대 1의 경쟁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택하여 쓰려고 할 때,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쓰심을 보면, 그와는 다릅니다.
도리어 스스로 능력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을 무능하게 만들어서 다시 능력 있게 쓰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얼른 보면 좀 이상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무능하게 만들어서 다시 능력 있게 쓴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은 자신(自身)을 신뢰하는 자들을 광야로 보내어 연단 시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에 대한 기록입니다.
모세의 일생을 보면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피정복국의 유대인의 핏줄로 태어나 출생 자체부터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였습니다. 결국 나일강에 버려진 몸이 되었고, 그를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여 자기의 아들을 삼았습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는 유모가 되었고, 그에게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라면서 자기 능력을 마음껏 키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초강대국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니 무엇인들 모자람이 있었겠습니까?
호의호식하면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다 전수하였고, 애굽의 엘리트 코-스를 다 거쳐서 앞날이 촉망되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애굽의 높은 관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애굽인과 유대인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애굽인이 유대인을 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동족애가 발동하여 애굽인을 쳐죽이어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룰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 보냈습니다. 자신감에 차 있었던 모세! 못할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모세! 그를 깨뜨리기 위하여 광야로 내 보내어 40년간 연단을 시키었습니다. 말이 40년이지 그때 모세는 벌써 80살이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양치는 세월 동안 그에게는 이제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인생으로서는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는 종착에 이르렀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모세는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자기의 무능을 절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출애굽의 대역사의 분부를 맡기었습니다.
자신은 이제 할 수 없다고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는 모세에게 너는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믿고 있는 한 그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뒤에 두고 아직도 자신의 능력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어디 네가 할대로 해 보라"고...
성경에 많은 인물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대 임금들을 보면 자신의 힘과 능력을 앞세웠을 때 하나님은 모두 숨어 계셨습니다.
오늘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보다 아직도 돈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뒤에서 계십니다. 아직도 자신의 수완과 능력을 앞세우고 권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면서 자신(自身)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쓸 사람들을 광야에서 철저하게 깨뜨려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손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사64:8)
하나님은 금과 은을 연단 하듯이 당신의 사람들을 연단 한다고 하였습니다.(말3:2-3)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만드실 때 토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시기까지 그렇게 연단 하여 쓰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지나친 자기 과신은 하나님의 사역에 지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한창 나이인 40세가 되었을 때 너무나 자신감이 컸을 것입니다.
무엇인들 못할 것이 없을 만큼 자기를 과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한방에 쳐죽였습니다.
그는 육신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애굽사람을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애굽사람 한 명을 쳐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육의 힘과 자기 실력만을 의지하여 무엇을 하려는 사람은 1,000을 거두고 10,000을 거둘 수 있는데 겨우 하나 밖에 거두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하려고 할 때 그를 깨끗케 하여 쓰십니다.
토기장이 손이 진흙을 자기 마음대로 빚어 불 가마에 넣어 구워 내듯이, 하나님은 당신이 쓰려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부수고 깨뜨리고 녹여서 완전히 새 사람을 만들어 쓰십니다. 은과 금을 연단 하듯 불순물을 제거하십니다.
아직도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동안, 광야에서 방황토록 합니다.
{실패의 가마} 속에서 철저하게 자기 무능을 절감케 한 후에, 하나님은 자기를 들어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보내어 그의 육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 자신의 능력을 앞세우고 사는 동안은 숨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택하여 쓰려는 자들에게는 철저하게 무능을 체험케 만듭니다.
다윗, 히스기아, 웃시아, 요시아왕들의 치적(治積)을 보면 모두가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아직 자신만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숨어 계십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나의 육신의 힘과 내 자신의 능력을 더 의지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능력에 조력자가 되어 달라고 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철저하게 부셔져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함에 있어서, 그리고 교회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에 하나님은 뒤에서 숨어 계시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
깨어지지 못한 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니 혈기만 부리게 됩니다.
3. 하나님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에, 할 수 있게 하십니다.
모세를 광야 떨기나무 불 가운데 부르실 때, 모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더욱이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리라고 할 깨, 나는 무능하오니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몇 번이고 사양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약속하였고, 그 약속의 표징을 기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무능 자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이었습니다.
모두가 약한 존재들이었고, 무식하고, 배경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완전히 허탈 상태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실망 중에 내려가던 제자들도 있었고, 이제는 고기나 다시 잡아 생활해야 하겠다고 그물을 새로 씻어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능했던 자들을 통하여 인류의 대역사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케 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옛날 모세와 함께 하였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말씀>이 내 뒤에 있는 한,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깨지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말씀의 용광로에 녹아지지 않고 있는 내 이 혈과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하나님이 나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하나님보다 나의 능력을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행위가 아니라, 아직도 내 자신의 경험과 재능과 실력으로 그물을 내리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이 손으로, 이 주먹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철저하게 무능하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모세는 거의 자신의 일생은 이제 이것으로 끝난다고 온전히 자기 무능을 스스로 고백하고 경험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어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을 벗어 들라는 의미는 자신의 능력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께 항복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안되어 인생의 광야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것, 즉 교만과 불신과 불평 불만과 그리고 거역의 신발을 벗어 들어야 합니다.
아직도 나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면 이제 내 자신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을 벗어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모세는 변하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겨우 애굽사람 한 명을 이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애굽의 모든 세력과 권세를 상대할 수 있었고,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자기 동족 한 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60만 아니 200만 이상을 구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무능 자로 하여금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 후에 모세의 행적을 보면,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항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의지하였습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 섰을 때 아우성 치는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였습니다.(출14:13)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은 사용하지 않고 광야로 보내십니다.
광야에서 철저하게 부셔진 후에, 그리고 스스로 무능 자라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껍질이 불어터질 때까지 하나님은 햇빛을 내려 쪼일 뿐입니다.
반석이 깨어질 때 생수가 나오듯이, 인간적인 육신의 교만과 자기 과신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 무능 자에게 능력을 행하게 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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