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주는 교훈 7월 1일 2001-12-10 18:44:45 read : 154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태풍이 주는 교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장 5-7절>
1. 해마다 여름이 되면 태풍을 경험하게 됩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우리에게 많은 손해를 입힙니다. 쥬디, 에그나스, 다이너, 베티, 사라, 준, 글래디스, 재니스, 셀마 등 이것은 우리 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던 10대 태풍의 이름들입니다.
이중에 우리는 <사라>호 태풍이 불어닥쳤을 때 입었던 큰 손해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풍은 폭우를 동반하여 도로가 유실되고, 가옥을 침수시키고, 농사를 망쳐놓고, 인명의 피해를 줍니다. 웬만한 원자탄의 위력과 맞먹는 파괴라고들합니다.
그러기에 태풍이 불어오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풍은 예측하지 못하는 동안 우리에게 불어닥칩니다.
이러한 태풍을 막을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태풍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연섭리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태풍은 겉으로 보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연 생태계적으로 보면,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유익함을 주는 것도 태풍입니다. 태풍은 온갖 더러움으로 침적(沈積)되었던 바다와 강과 자연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태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태풍을 통하여 생활의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이고, 영적 성장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는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태풍이 불어닥칩니다.
고요하고 행복하던 가정에 겉잡을 수 없는 태풍이 불어닥칩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 인물은 <욥>이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고, 또 부자였고, 10남매의 다복한 자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말할 수 없는 휘몰아치는 태풍이 불어닥칩니다.
평온하던 가정에 불행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왔습니다.
그 많던 소 떼와 양 떼를 원수들이 쳐들어와 뺏어갑니다.
10남매가 한꺼번에 태풍으로 인하여 집이 무너짐으로 참살을 당합니다.
그뿐아니라 몸에는 악창이 나 밤잠을 잘 수 없게 됩니다.
모두가 놀라서 그를 위로하려고 하나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멀리서 친구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너무 그 모습을 보고는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네가 무슨 죄를 범했기에 이런 재난과 고통이 임한 것이 아니냐고 도리어 핀잔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욥>은 이제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생명을 불러가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아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가운데서도 그 믿음을 변치 아니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고 하였습니다.
2. 그러면 태풍이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① 태풍은 강과 바다를 뒤엎어 심각했던 녹조현상을 완전히 없애줍니다.
② 태풍은 하천에 썩은 오물을 씻어내며 온갖 더러움을 청소해줍니다.
③ 태풍은 바닷물을 정화하고 산소를 공급하여 바다에 생물들을 살게합니다.
④ 태풍은 대기를 순환시켜 맑은 공기를 가져다줍니다.
⑤ 태풍은 부실공사를 무너뜨려 건축물과 교량과 도로를 보수토록 합니다.
이렇게 자연 생태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태풍은 불어야 합니다.
그러나 태풍이 불어닥칠 때에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갖지 못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엄청난 <파괴>와 <손실>과 <좌절> 속에서 하늘을 원망하게 됩니다.
때로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과 깨끗하고 청결한 믿음을 위하여 삶의 태풍은 유익하게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3. 그러면 태풍을 통하여 배워야할 영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삶에 태풍은 예기치 않게 일게 마련이란 점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닥쳤는가?
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불행스러운 일이 생겼는가?
사람들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어떤 고난이 닥치면 그렇게들 말합니다.
또 그래서 그런 시선과 말을 듣기 싫어서 아예 나오던 교회도 안나옵니다.
특별히 교인들 간에서도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도 욥과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말을 삼가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섭리의 손길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경제적으로나,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계를 다 돌아봐도 제나라가 제일이고, 우리 나라에서 돈만 있으면 제일 살기 편하고 좋은 나라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호랑이 코 털도 뽑아오라면 오는 사회가 우리네 사회라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무슨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할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러므로 조용하게, 문제없이 지낸다는 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에는 언제나 맑고 고요한 날만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태풍 속에 휘말릴 때는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아픔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당장에는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지만, 나의 삶의 방향과 가치관과 영적인 삶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인생의 고난의 태풍을 어려서 맞은 사람도 있고, 청년시절에 맞은 사람도 있고, 또는 장년시절에, 아니면 노년시절에 맞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할 것은 태풍을 맞을 때, 좌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태풍을 통하여 나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의미를 알아 같은 고난 속에 있는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영적 눈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비싼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2) 태풍 뒤에는 반드시 맑은 하늘이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근 출판된 책들을 보면 모두 '성공'에 관한 책들이 많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이 무려 1천권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변화에 성공하는 길' '성공하는 리더' 등등 모두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왜 실패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성공은 실패를 관리할 줄 알면 되는데, 실패를 관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래 성공(成功)이란 말의 뜻을 풀이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공이란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실패란 잘못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실패했을 때, 왜 그것이 안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란 태풍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행복>과 <불행>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불행을 관리할 줄 모르기에 행복해지지를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 뒤에는 더욱 더 맑은 하늘이 있고, 맑은 날이 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신앙의 눈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영안(靈眼)입니다.
고난 중에도 영안이 열리면 더 높은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합니다.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것을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불행이라는 태풍이 그를 휘몰아칠 때 그는 그 태풍 속에서 뭐라고 하였습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하였습니다.
카프만이 쓴 '생명의 샘'이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카프만이 누에고치 속에서 애벌레가 그 껍질을 뚫고 나비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벌레는 사력을 다해 나오려고 합니다. 카프만의 생각에 이 애벌레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하여 도와주려고 가위로 그 고치의 껍질을 잘라 주었습니다. 나비는 아주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나비는 날지를 못했습니다. 이 광경을 유심히 들여다 본 카프만은 늦게 깨닫고는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도와주려고 한 것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알았습니다.
애벌레가 나오려고 그렇게 애씀으로 다리와 날개의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고난은 바로 이런 이치가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라야 가치가 있고, 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풍은 이번 여름에도 다시 불어 올 것입니다.
언제, 어떤 태풍이 불어오던지 우리는 태풍을 통하여 생태계가 새로워짐을 깨닫고, 태풍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도록 미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신문에 보니, 아직도 작년에 태풍으로 무너진 제방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당하고도 아직도 준비 없이 지내다가 다시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까?
예산이 없다고 하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예산이 제때에 내려오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공금이 다른 데로 새어 나간 일은 없지 아니합니까?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 두 번 실패를 했으면 스스로 내 자신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연단 중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 태풍 속에 휘말려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태풍 뒤에 찾아올 맑은 하늘을 미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욥과 같이 입술로도 어리석은 말을 하지말기를 바랍니다.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