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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바다 끝에서 7월 8일
    2001-12-10 18:45:24   read : 161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새벽 바다 끝에서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편 7절-10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치다 고래 배 속에서 철저하게 회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요나>라고 합니다.
    문화사에서 보면 주전 9세기경 아시리아는 강대한 군사 대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시리아의 포악스러운 죄악의 관영을 보고 그 나라를 심판하려고 요나에게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느웨>성으로 들어가 심판을 예고하라고 하였건만, 요나는 평소 원수의 나라에 대한 민족 감정 때문에 저들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마저 놓치도록 하기 위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짐을 받는 순간 큰 물고기에 삼킨바 되어, 삼일 동안 고기 배속에서 철저하게 회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요나와 같은 마음들이 다 있는 줄 압니다.
    적대국 원수의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도망치는 요나를 그대로 놓아두지 아니했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손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려고 해도 도망칠 수 없는 것이 인간 존재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특성을 보면 한마디로 하나님의 손길에서 자유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즉 하나님 없이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유}를 간섭하는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란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자유}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自由)는 방종(放縱)과는 다릅니다.
    방종(放縱)이란 한문을 보면 놓을 방(放), 늘어질 종(縱) 자입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 다른 설명을 보면 '도덕적 기준 없는 자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도덕적 기준이 없이 행동하는 것은 자유인의 행동이 아니란 뜻입니다. 도덕(道德)이란 본래부터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특성입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이 도덕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도덕률(道德律)이 되는 선한 양심(良心)이 있습니다.
    문명인이나 야만인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뺑소니 범인이 잡히지는 아니했지만, 평생토록 자신의 양심에서는 범인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양심의 주재자(主宰者)인 하나님의 손 길에서는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두 자유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얼마나 인생의 시행착오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보려고 지금도 많은 범죄자들이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어린이들 책에 보면 손오공 얘기가 나오는데 불의한 자들이 손오공의 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손오공의 손 안에서 놀아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2. 시편 기자의 신앙적 고백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라는 말씀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서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고, 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라는 말을 잘 음미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밤새껏 날아가서 새벽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밤새도록 날아가 저 바다 끝에 가서도 거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1968년도 제가 처음 미국을 갈 때만 해도 우리 나라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타고 밤새껏 태평양을 날아 새벽에 내렸더니 다시 또 그날인 것을 보면서 신기하게 느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요즘대로 말하면, 밤새껏 날아가 바다 끝인 저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에 내릴지라도 거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뛰어야 벼룩' 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을 얼마쯤 살아보니 우리 인생의 삶에서 새벽바다 끝에서 만나야할 것이 무엇일까? 이제는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① 새벽바다 끝이란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② 새벽바다 끝이란 인생의 좌절과 절망의 늪을 의미합니다.
    ③ 새벽바다 끝이란 자신의 인간 재능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④ 새벽바다 끝이란 밤이 맡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란 하나도 없이 날이 밝아오는 바로 그 허탈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⑤ 새벽바다 끝이란 아직도 끝이 안보이는 불확실성을 의미합니다.
    ⑥ 새벽바다 끝이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모든 새벽바다 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새벽 날개를 치며 밤새도록 도망쳐 자유를 만끽해보려고 하였지
    만 거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새벽바다 끝에서 아직도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저는 이런 사연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젊어서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어린 세 자녀를 키운 한 어머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나온 세월의 눈물과 고통은 어찌 말로 다 형언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지나온 세월의 눈물과 고통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세 자녀들을 이제는 다 성인이 되도록 잘 키웠습니다.
    이제 좀 효도를 받으며 살만하던 어느 날, 그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세 자녀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처음에는 원망도 하였지만, 하지만 그들이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아 이제는 자기들 스스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적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몸져 누운 어머님의 병 수발을 하는 동안 저들은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지금 눈물의 새벽바다 끝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눈물의 새벽바다 끝에서 비로소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렇게도 소중한 것을 간증하고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렇게 누구에게나 새벽바다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도 새벽바다 끝에서 주님을 만나는 새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그 수고는 주님을 만난 후에야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고난의 깊은 밤 중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면 새벽바다 끝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시편기자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오른 손이 나를 붙잡을 것이라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새벽바다 끝에서 이런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역경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손길이 나와 함께 함을 믿고 있는 신앙입니다. 다시말하면, 주의 손길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끔 새로 등록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부모님들은 다 믿었는데, 결혼할 때 믿지 않는 시댁으로 시집 와 시댁 어른들이 불신앙으로 살기에 한 20년, 어떤 이들은 30년만에 다시 교회로 나오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서 공통점이 무엇인가 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교회에는 나오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고 하였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서 머물러 있어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택한 자 하나라도 구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없도록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혜로운 삶이 디에 있습니까? 벽바다 끝에서 아직도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불행이란 것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 말이 있듯이 고생 끝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고생 끝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망으로 끝난다면, 그런 삶이란 얼마나 불행스러운 삶이겠습니까? 고생 끝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6.25 직후에 어려웠던 시절을 상상해 봅니다.
    숱한 사람들이 오직 생명 하나를 보존해 보려고 남으로 남으로 피난오던 길!
    전쟁 3년 동안 폐허화 된 강토에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던 그런 시절에,
    천막교회 자리를 펴고 앉아서 눈물로 부르짖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세계로부터 구호물자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밀가루, 우유가루, 설탕가루, 이것이 하나님이 내린 만나 가루가 아니고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새벽바다 끝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의 손길은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났었습니다.

    는 작금 우리의 형편을 보면서 이제 다시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나라의 앞 날이 매우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하면서 아침마다 새벽종에 발맞추어 새마을 운동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후 점점 잘 살게 되니까 하나님을 뒷전으로 한 경제제일주의로 치달리면서 허랑방탕 향락의 물결에 휩쓸리더니 잘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 줄도 모르고 오로지 물질의 풍요로움인 줄로만 잘 못 알아,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이 사회는 온통 부정과 부패의 깊은 밤에서 새벽바다 끝까지 왔다고 봅니다.
    이제 누가 누굴 비난하거나 심판할 능력을 가졌다고 보십니까?
    애국애족이란 말 뿐, 모두가 자기 앞, 자기 이익만 추구하기에 급급해진 모습들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사회의 정의가 퇴락되었고, 공의와 정직이 모두 무디어진 판에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 새벽바다 끝까지 올대로 다 왔다고 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오른손길이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날 곳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잘 살아보자고 외쳤지만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유목민이 땅을 소유하게 되면서 천막 생활을 끝내면서부터 가나안의 바알 신을 섬긴 것처럼, 판자 집에서 호화로운 현대식 아파트 생활을 즐기면서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러므로 우리가 다시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새벽바다 끝에서 이제 다시 무릎꿇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는 기도 운동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 위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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