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람들(III) 9월 9일 2001-12-10 18:50:57 read : 1736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예수의 사람들(III)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
(갈라디아서 5:19-26)
지난 주일에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의 사람들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다 가야할 것인가를 지난 주일에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온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겠고,
② 열심히 성도간에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겠고, ③ 먼저 대접하면서 살아야 하겠고,
④ 그리고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면서 살아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역시 계속되는 말씀이겠지만, 예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할 수 있어도 적어도 예수의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금하면서, 절제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의 일들을 삼가야 합니다.
성경에는 <영>과 <육>을 구별하여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의 일'들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며, 세상 사람들이 관행으로 하는 것들이기에 이 모든 것들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대로 보면, 육체의 일이란 19절 이하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① 음행과 ② 더러운 것과 ③ 호색과 (이모든 것은 인간의 성적인 문제들이다) 그리고, ④ 우상 숭배 ⑤ 술수와 ⑥ 원수 맺는 것과 ⑦ 분쟁과 ⑧ 시기와 ⑨ 분냄과⑩ 당 짓는 것과 ⑪ 분리함과 ⑫ 이단과 ⑬ 투기와 ⑭ 술 취함과 ⑮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오늘의 이르기까지 인간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Sex)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게 되는 경로를 보면 성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성적 타락은 곧 정신적인 타락입니다.
정신적 타락과 성적 타락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나 단체나 국가나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신이 타락하는 유일한 길은 성적인 타락입니다.
로마제국이 미개한 야만족들에게 멸망당한 것도 그 시대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 전체가 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라나 개인이 부강해지고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성적인 유혹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을 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예수의 사람들도 사람인고로 유혹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스스로 파멸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믿음에는 버리운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딤후3:7절에 이런 사람들은 항상 들으나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
다.
우리 예수의 사람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해야 하겠습니다.
24절에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정이란 영어로 Lust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Lust 란 욕정(欲情)을 의미합니다.
이성을 볼 때 언제나 욕정의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보는 눈을 갖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性)이란 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탐욕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것이 죄를 낳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벗었으나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부터 스스로 하체를 가리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을 탐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성과 본능을 주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이성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사탄의 유혹대로 사용하였기에 그 본능적욕망이 죄를 짓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까지 계속되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타락한 인간의 본능대로 행하면 이것이 세상의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일에는 어둠 속에서 행하는 것과 같은 행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어둠 속에서 행하는 일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의 사람들은 결단할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 복종시킨다는 구체적인 행위는 바로 결단하는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들은 이전에 좋던 것을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초창기 복음이 들어와서 세례문답을 할 때 반드시 묻는 것이 있습니다.
"주색잡기를 버렸습니까?"
즉 술 먹는 일, 성적인 음행, 마작이나 도박, 이런 것들을 끊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그대로 다 하면서 무슨 예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일가 친척 고향을 떠나는 결단이 있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초대 성도들도 결단하는 용기들이 다 있었습니다.
우상단지들을 다 불태우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르는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법에 자신을 복종시키면 성령의 열매가 달리게 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달립니다.
이것은 육체의 열매와는 다른 것입니다.
육체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맺는 열매들입니다.
열매가 달리려면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달리게 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 결단입니다.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죄 속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전혀 범죄하지 않을 수 없는 약한 존재라 하여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실수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단할 때 결단했습니다. 버릴 때 버렸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가던 길을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예수의 사람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여 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허영심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허영(虛榮)이란 헛된 영광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왜 허영에 휩쓸리는가? 속에 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헛 바람만 들어있고 예수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길이 아닌 길을 길이라고 가는 사람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생명으로 이어지지 않는 죽음의 길로 끝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불쌍한 인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가 좋다고 해도 모두 죽음으로 끝나는 것들입니다.
잠시 잠깐이면 모두 날아가는 것이 세월입니다.
얼굴에 주름살이 안 생기도록 별별 기술을 다 동원해도 세월을 막을 힘은 없습니다.
이렇게 없어질 것들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면서 세상의 헛된 허영을 위하여 투기하면서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을 대하면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영의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아직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영의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하였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욕망에 항상 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아직도 우리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육신의 욕심대로 이끌립니다.
아직도 육체의 욕망을 제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직도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습니 다.
그러면서 '마음에는 원이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면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들이란 예수와 함께 멍에를 메고 그를 따르려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무엇입니까?
단순한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예수의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고,
단순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의 사람들답게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흔적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아직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의 흔적이 없다면 이제부터라고 예수의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이 도울 것입니다.
나와 함께 멍에를 메면 내 멍에는 가볍고 쉽다고 하였습니다.
막상 주님과 함께 메려고 결단만 하면 쉽고 가벼운 것이 주님의 멍에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예수의 사람들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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